석촌님께서 올려주신 하와이 여행 소회를 읽다가 아주 오래전 사이판 여행을 갔다가 떠올렸던 어떤 상념이 떠올랐고, 북한의 김정은에 의해 사지로 내몰린, 비록 적군이라 하나 아직 어린 병사들의 상황과 맞물려 여러 생각들이 일어납니다.
가족여행으로 사이판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한국인 위령비를 보았습니다.
정부의 지원 없이 민간인들의 뜻과 성금을 모아 세웠다는 한국인 위령비는 가까이 만세절벽이니 자살절벽이니 일본군 최후사령부 등등 일본정부와 일본인들의 손에 의해 잘 가꾸어진 곳들에 비해서는 아주 초라해 보였습니다.
위령비 앞에서 묵념을 하던 중에 스콜이 쏟아지다가 금세 그쳤습니다. 그 비를 보며 떠올린 장면이 있었습니다.
사이판으로 출발하기 전날 공교롭게도 윈드호커란 영화를 보았습니다.
미국과 일본의 사이판 전투를 배경으로 나바호 원주민 암호병을 보호하는 내용으로 엮어진 전쟁 영화였죠.
홍콩의 오우삼 감독이 미국인 시각으로 만든 그 영화에서 미군들의 총질 몇 번에 서너 명씩 쓰러지던 일본군들 속에 징병으로 끌려간 수많은 조선인들이 포함되어 있었겠지요. 적군이니 죽어 마땅한 병사들로...
사이판에서 희생된 조선인들이 거의 3천 명 정도였다고 합니다.
죽어서도 대한국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그저 침탈과 박해의 표상인 전범 일본의 병사 모습으로만 기억되는 한을 풀기에는 위령비가 너무 초라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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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엔 시린 달이 동그마니 떠있다. 오늘은 별도 몇 보이지 않는다.
'어무이...'
둥근달에 비친 어머니 얼굴을 보며 살며시 불러본다. 남의 집 머슴살이 하시던 아버지와 못 먹어 앙상 마른 동생들의 얼굴도 떠올랐다 사라진다.
이 밤이 지나고도 살아 있을까...?
양코쟁이들은 시시각각 다가온다는 소문이 들리고, 그 소문을 입증이라도 하듯 멀리서 대포소리가 밤하늘을 가로질러 쿵쿵 들려온다.
남쪽에 있던 부대들은 미군들의 함포 사격과 상륙작전에 거의 전멸해 버렸다 하고, 이곳에도 곧 그들이 당도하리라.
대포 소리가 들리면 느껴지던 두려움도 이젠 없어져 버렸고 발목에 채워진 족쇄도 견딜만하다.
'쪼르륵...'
저녁에 먹은 주먹밥 한 개로 배고픔을 달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나라 없는 백성. 태어나면서 받은 이름은 없고 뜻도 모르는 켄타라는 왜놈 이름이 가슴에 허술한 바느질로 붙어있다. 조센징... 그래 켄타란 이름도 사치. 나는 언제나 조센징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나는 그냥 조센징이었다.
"쿵~~!! 쿵~~!!'
가까이 포탄 터지는 소리와 함께 화약 냄새가 짙게 맡아진다. 그들의 공격이 드디어 시작되었나 보다. 멀리서 들리던 것과 가까이에서 터지는 포탄 소리는 확연히 다르다.
엄습하는 두려움에 적도의 새벽인데도 온몸이 덜덜 떨려온다.
참호 속에 소총 한 자루 끌어안고 온몸을 웅크려보지만 땅은 지진이라도 난 듯 벌벌 떨려오고 바지는 나도 모르게 오줌을 지렸는지 축축해진다.
온 천지를 가득 메우던 대포 지원사격이 끝났나 보다. 오금이 저려 펴지지 않는 다리를 간신히 펴고 일어서보니 참호 밖에는 동료들의 몸뚱이가 갈가리 찢긴 채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다리 한쪽이 떨어져 나간 악독하기로 유명했던 일본인 조장은 악악~ 거리며 연신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그 아래쪽에서 까맣게 밀려오는 미군들. 혼비백산 도망치려고 몸을 돌리니 발목을 묶은 족쇄가 나꿔어 챈다. 개머리 판으로 그 족쇄를 마구 내려쳐본다. 그 족쇄만 끊으면 살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미군이 다가와 내 등에 총부리를 겨눌 때까지 그 족쇠를 미친듯이 내리치고 또 내리쳤다.
한 발의 총알이 내 몸과 영혼을 분리할 때까지...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올 즈음 저 앞에서 손짓하는 어머니가 보였다.
'어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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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유튜브 영상 하나를 보았습니다.
우크라이나 드론에 포착된 러시아 병사는 풀밭에 누워 드론을 향해 살려달라고 빌고 있었습니다.
그 드론에는 박격포탄 하나가 달려 있었어요.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그 병사는 결국 귀순을 하며 살아났지만, 그 병사의 간절한 그 눈이 제 눈에는 어느 어린 북한 병사의 눈처럼 보였습니다.
왜정 시절에는 나라를 잃었으니 어쩔 수 없이 원수의 병사로 헛되이 목숨을 잃었지만, 지금은 비록 분단되어 있다고는 하나 유엔에서 인정하는 한 국가의 병사인데, 아무 의미 없는 타국의 영토 전쟁에 끌려나가 러시아 부리야트자치구 출신의 병사로 헛되이 죽어갈 1만 명이 넘는다는 그들.
인간이 어떻게 하면 저렇게까지 비대하고 섬뜩한 외모를 가질 수 있을까 싶은 김정은, 그 독재자의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수많은 젊은이들이 사지로 내몰린 기가 막히는 상황.
예상치 못한 전쟁 장기화로 무기 부족과 이미 70만 명의 병사가 죽거나 다친 러시아가 소총 한 자루만 쥐어주고 맨몸으로 우크라이나의 진영으로 돌격하게 하는 스톰제트라는 전술에 북한 병사들을 내몰 거라는데...
우리와 대치한 북한 병사라 하나 딱하기가 그지없습니다.
그들이 한꺼번에 다 항복해 버리고 남쪽으로 귀순하는 그런 일이라도 일어나면 좋겠는데... 그런 헛된 희망을 품기에는 상황이 너무 절박해서 안타깝네요.
잊혀진 젊은이들,
잊혀질 젊은이들...
우리 민족의 질곡은 참 끈질기게도 오래갑니다.
첫댓글 북은 준비해서 내려 왔고
우린 준비되지 않은채 수많은 인명이 이슬되어 사라졌지요
슬픈 역사이며 아픈 과거죠
그러면서 지켜온 이강산이 ..
왜이리 되었을까요..
모든 청춘의 삶은 영원히 기억해야할 우리의 업 아닐까요
네. 우리가 짊어질 수밖에 없는
슬픈 업인 것 같습니다.
그러게요.
북한 병사들이 한꺼번에 투항군이 되어
우크라이나로 돌아오면,
젊은 목숨도 건지고 또,
대한민국으로 돌아왔음 합니다.
제 생각에는 러시아를 도와봤자
이길 승산도 없지만,
남의 땅을 뺃는 싸움에서 총알받이로
의미 없는 죽음을 맞을까 봐,
걱정이지요.
마음자리님,
참 걱정되는 세상입니다.
그런 뉴스를 들으니 자꾸 가슴이
울컥거립니다.
별 방법도 없고 기대는 너무 허황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때는 일본을 대신한 조선족이요 지금은 러시아를 대신한 북조선족인데 그때는 주권이 없어 그랬다지만 지금은 주권을 팔아먹어서 그런건가요?
한사람의 독선이 비극을 부르네요.
세대를 이어가는 그 집안의 권력과 부귀영화를 위하여 민족의 너무 많은 것들이 희생되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시킨다고 공약했으니 믿어봐야죠
여러 국제정세가 얽혀있으니 그것도 쉽지 않겠지만 일단 공약이니 한번 기대해 봐야지요. ㅎ
믿을 사람
믿음이 가는 사람
믿지 못 할 사람
다 사람나름이지요.
그러나
전쟁놀이에
휘말려서는 안되겠지요.
잊혀진 젊은이들,
잊혀질 젊은이들,
아타깝기만 합니다.
네. 참 안타깝습니다.
뭐라도 방법이 있으면 좋겠는데...
일제의 강점기도 육이오 전쟁도
겪어보지 못 한 세대라,
전쟁이라는 게 겪어 본 사람처럼
절절하게 다가 오지는 않지만,
참 무섭긴 무섭다는 생각은 합니다.
타국에서 어무이를 부르며
죽어 간 젊은이들.
안타깝고 불쌍합니다.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의
공포에 떨고 있을 젊은이들.
그들을 생각하면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있는 게 미안할 따름입니다.
잊혀진 젊은이들.
잊혀질 젊은이들.
지구상에 더 이상 저런 슬픈 일은
없기를 간절히 바라고 싶습니다.
마음자리 님, 글 잘 읽었습니다.
그들이 현명한 선택을 해서 어떻게든
살 기회를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역사는, 희생된 이들의 편에서 보면 참으로 참혹합니다. 전쟁이 이어지는 지금의 정세를 보면서 제발 그만 끝나기를 바랄 뿐입니다.
러시아군 병사가 우크라이나군 드론을 향해 애원을 하고, 이어서 그 드론이 물병을 떨어뜨려 주는 그 모습은 감동적이었습니다.
그 영상을 보셨군요.
남의 일처럼 보이지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