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라이프
손인호
어느날 거울 속에서 가끔 만나는 당신은
퉁, 하니 버려진 신발 한 짝 같기도 하고
창문 긋고 지나가는 산비들기 날갯짓 같기도 하고
아직 눈 녹지 않은 쓸찮한 그늘도 같아서
그래도 어둠 속에서 먹먹한 그 사람 눈두덩이 들여다보면 덩어리로 일렁이다가
옛적 얼굴로 획 변하는 달항아리
한 손으로 꼽을 만큼의 아카시아 잎 같기도 하고 소싯적 같기도 한 전생이
그니의 뺨에 빗살무늬로 그어져 있고
속엣 것이 바깥으로 발설되지 않아 꿍, 하고 감자처럼 몇날며칠 웅크리고 누웠던 배앓이
애당초 뜻 없던 삶에의 옻칠 같은 집착력
비늘처럼 비릿했던 청준
누군가 당신으로 인해 죽어나갔을 수도 있는 미필적고의의 삶이 죄스러워
눈 내리깔고 숨 죽여 살던 쓸쓸한 근대사가
모래 구슬처럼 빛도 투명함도 잃고 있었어
그리하여 도돌이표로 치직거리는
가랑비같은 어느 이야기를 이제야 꺼내고는 싶었나봅니다
- 손인호시집『누구의 잘못도 아니어서』
손인호
서울 출생, 거추장스럽지만 밉지 않은 시 같은 것은 묻어두고 지냈으나, 산책 친구 금은돌의 갑작스런 죽음 뒤에 아침저녁 누군가를 기다리기라도 하듯 책상 앞에 앉았고, 그리움의 부산물을 그럭저럭 모았다. ‘해인사 싸리비’라는 단장을 법정스님이 〈홀로 사는 즐거움〉에 두고두고 읽힐 시로 소개한 것이 유일하였고, 지금은 영종도에서 육상화물하역원으로 일하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