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제 현 (1287~1367)
고려 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익재 이제현(1287∼1367)의 초상화이다. 이제현은 원나라의 만권당에서 조맹부 등과 교류하며 고려에 신학문과 사상을 소개하고, 성리학을 전파,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호는 익재·역옹으로, 『국사』, 『역옹패설』 등을 남겼다.
이 그림은 충숙왕 6년(1319) 이제현이 왕과 함께 원나라에 갔을 때 당시 최고의 화가인 진감여가 그린 그림으로, 전해오는 고려시대 초상화가 대부분 다시 그려진 이모본인데 비해 직접 그린 원본으로, 안향의 반신상과 함께 현재 남아 있는 고려시대 초상화의 원본 2점 가운데 하나이다. 이 그림은 전신을 그린 것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얼굴과 의복을 선으로 표현한 것은 고려시대 다른 초상화들과 비슷하며, 조선시대 초상화가 인물이 오른쪽을 향하고 배경이 되는 바탕에 아무런 그림을 그려 넣지 않은 것에 비해 빈틈없는 구성과 왼쪽을 향하고 있는 모습에서 고려 초상화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2차 입성책동을 저지하다.-
1323년(충숙왕 10)에는 유청신(柳淸臣)·오잠(吳潛) 등에 의해 제2차 입성책동이 전개되었다. 이보다 앞서 1320년에 충선왕이 원나라에서 실각하고, 고려인 환관 백안독고사(伯顔禿古思)의 참소로 토번(吐蕃)으로 유배되었다.
또한 다음해에는 충숙왕이 국왕인(國王印)을 빼앗기고 원나라에 억류되는 사건이 있었다. 이때 원나라에서 심왕 고(瀋王暠) 등이 충숙왕을 참소하는 가운데 고려에서는 심왕옹립운동이 일어났는데, 유청신과 오잠은 심왕 고의 편에 서서 입성문제를 제기했던 것이다.
이번의 입성논의는 상당히 진전되어 행성의 이름을 삼한행성(三韓行省)으로 정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당시 원나라에 머무르고 있던 이제현(李齊賢) 등이 원나라의 중서성(中書省)에 상서해 부당함을 강력히 주장하였고, 원나라의 승상 배주(拜住), 집현전대학사 상의 중서성사(集賢殿大學士商議中書省事) 왕약(王約), 참의중서성사 회회(回回) 등이 반대함으로써 실행되지 않았다. 1325년(충숙왕 12)에는 공식적으로 철회되기에 이르렀다.
출처:
http://www.heritage.go.kr/heri/cul/imgHeritage.do?ccimId=2031887&ccbaKdcd=11&ccbaAsno=01100000&ccbaCtcd=11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7796
첫댓글 부원배 무리들… 모국과 자신의 동족들도 배신할 정도로 힘을 숭상하고 자신의 영달만 추구하는 무리들은 시대를 뛰어넘어 존재하는 모양입니다.
지금도 부일배는 존재하죠..ㅋㅋㅋ
@몰라요 일본만 있을까요? ㅎ
주어진 조건하에서 최선을 다한 명정치가
이때 쿠빌라이가 약조한 세조구제를 명목으로 활용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