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1:11,12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바울은 옥중에서 있으면서,
강하고 충만한 은혜가운데서
복음의 아들된 디모데에게 서신을 쓰고 있다.
바울은 고난가운데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는 그가 믿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잘 알고 있고,
또한 의탁한 것을 주님께서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모데도
자기처럼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기에,
두려워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안에 거할 때,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킬 수 있음이라고 말한다.
복음은 언제들어도
샘솟는 기쁨과 은혜와 소망을 불일듯 하게 한다.
태평양건너 미국출장길에,
한인교회에서 드린 주일예배와 새벽기도회에서
하나님은 동일한 은혜를 주셨다.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다.
고난과 시험은
그를 더욱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순전케 할 뿐이었다.
욥기23:10"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바울도 고난을 통해
더욱 주님의 은혜와 능력을 풍성하게 체험할 수 있었다.
어려움이 있거나,
고난이 있으면,
어찌해서든 그 길을 속히 통과하는데 관심이 쏠린다.
할 수만 있다면
좁고 협착한 길을 잘 피해서
쉽고 넓고 큰 길을 가고 싶다.
그러면 더 많이 섬기고
더 많이 주와 복음을 위해서 일할 수 있을텐데 하고 말이다.
그러나,
바울은 오히려 그 많은 고난가운데서
복음 선포자로 사도와 교사로 쓰임을 받았다.
목숨이 위태한 상황에서도
목숨을 버릴 각오로 사명을 감당했다.
마치 목숨을 버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이런 그는 세상이 감당치 못할 자였고,
놀라운 이적과 표적과 기사가 나타났다.
무엇보다 말씀의 역사가 흥왕하게 일어났다.
이는 그가 자신을 돌보지 않고,
오직 복음전도자로서의 사명만을
온 마음과 힘과 뜻을 다해 추구하는 자였기 때문이다.
이런 그에게 불순물이 끼어들 틈이 없다.
딴 생각이 들수가 없다.
바쁘고 고되고 힘든 시간과 공간은
오히려 그를 더욱 주님만을 향하는 자로 순전하게 단련할 뿐이다.
주님!
저는 제 자신을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생각해왔습니다.
그래서 기회되는대로 많은 일을 벌리고,
많은 보람과 성과를 취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다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시간이 갈수록
결코 다 잘 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마음의 여유도 없어지고 조급해지는 것도 느낍니다.
이런 때,
나를 위한 일이 아닌 누군가의 일을 해줘야 할때면
마음이 불편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비록 가족의 일일지라도 말입니다.
내코가 석자고,
나부터가 잘 하고 나서,
여유가 생길 때
다른 사람도 돌아보려 하는 본성때문입니다.
비행기안에서 비상사태때,
산소마스크를 본인이 먼저 착용한 다음에,
아이에게 씌우는 원리를 엉뚱하게 적용합니다.
그러나,
주님도 항상 양떼를 먼저 돌보셨습니다.
바울도 감옥과 고난중에서도
항상 다른 사람들을 돌보고 세워주려 힘썼습니다.
주님,
제가 그동안
이 핑계, 저 핑계로
삯군목자의 마음을 갖고 있었음을 회개합니다.,
용서하여 주시고,
저의 마음을 찢어 넓혀주옵소서.
세상일에서 열매맺고자
아둥바둥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상급을 기대하며,
소망가운데,
먼저 주의 양떼를 돌아보는
선한 목자의 마음을 갖게 도와주옵소서.
이를 위해 부족한 이 종을
축복된 복음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신 줄 믿습니다.
제가 모든 분주함속에 있는 게으름을 극복하고
제게 주신 주님의 일을 최선을 다해 감당하는 자되게
때마다 믿음과 용기와 지혜와 소망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제게
죽어도 살고, 살아도 죽지 않는
부활의 생명력을 허락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한마디 : 고난가운데서 정금같이 빚어가실 주님을 바라봅니다.
첫댓글 정금 같이````````♬
저의 노래이기도 합니다
묵상에서 뵈니 넘 기쁘네요
사도 바울도 성령받기전에는"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누가 이 사망에서 나를 건져내랴"고(롬7:24)
탄식하였습니다. 그는 성령받고 능력가운데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초월하지 못한 육신때문에 항상
"자신의 몸을 복종시켜 나갔습니다."(고전9:27절)왜냐하면 완전히 구원받은 자라고 할찌라도 항상
은혜안에 거하지 않으면 느슨해질수가있으며 결국 개가 토하였던것을 먹듯이 더러운곳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항상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더 극단적으로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절)
고 까지 고백합니다. 우리의 남은 생을 볼줄 아는 지혜가 있어서 남은 우리의 때를 오직 복음을 위
하여 목숨까지 버렸던 바울을(행20:24)
본받는 저의 남은생애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습니다. 엡4:11절에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
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여 봉
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하기위하여 주님앞에 온전히 주님을 닮는 온전한 목사로 서
있는 것이 급선무라고 봅니다. 그게 진정한 선한목자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그 선한 목자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오늘도 열심히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가는(딤후4:7)우리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