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의 공간
문희봉
악기가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은 텅 비어 있는 공간을 충분히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악기든 비어 있는 공간이 있어야만 아름다운 음향을 낼 수 있다.
불필요한 것을 과감히 버리는 지혜는 노년으로 갈수록 더 흐려진다던가. 귀중품과 패물은 유산으로 남기기보다는 생전에 선물하는 것이 낫다고 한다.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모든 것을 잃지 않는 것이란 역설 같은 얘기가 귀에 거슬리지 않는 요즘이다. 되지도 않을 일로 속 끓이지 않는 현명함, 포기할 것은 과감하게 포기하는 현명함이 절실히 요구되는 요즘이다. 바닥까지 모두 비울 줄 아는 바다의 겸손과 아량을 배울 일이다.
무궁화는 필 때의 모습이나 질 때의 모습이 한결같다. 자신의 모습에 대해선 자기가 철저하게 책임지는 모습이 아니겠는가? 그러하기에 내 영혼의 공간에서 울리는 고상한 음향은 내가 만들어내야 한다는 생각이다.
“좋은 친구는 피로회복제와 같다.”며 늘그막에 나에게 친구하자고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세상을 열정적으로 살아간다. 언제 봐도 신선한 산소 상자를 단단한 두 어깨에 짊어진 사람 같다. 마음이 따뜻한 이불 같다. 어쩌다 가시에 찔린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경우에도 내 마음 포근하게 싸매어줄 사람이다. 문화예술분야에서 인정받는 공인된 대한민국 국보급 예술가다.
술을 원수로 생각하지 않고, 친구로 생각하며 분위기를 선도한다. 조용하던 회식 자리가 갑자기 활기를 얻는다. 소나무가 늘 푸르러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처럼 그의 가슴에서는 늘 푸른 종소리가 난다. 가벼운 엽서 한 장에 잊힌 사연을 적어 추억을 되새김질하게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 성실하지 못한 친구를 갖는 것보다는 적을 갖는 편이 오히려 낫다 하지 않는가.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다.
거울 속의 얼굴은 육신의 일부일 뿐 진정한 내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곤 내 소리에 열중하는 침묵의 작업을 시작한다. 초지일관하는 자세와 쓰러지지 않는 부추김으로, 보다 나은 나를 만드는 일에 몰두한다.
멋은 몸에 걸친 장신구와 의복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말씨와 행동거지, 사람을 대하는 몸가짐과 신뢰성에서 온다. 멋을 소유하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내적인 멋과 외적인 멋이 조화를 이루면서 풍기는 인상이야말로 세상을 사는 지혜이며 용기가 될 수 있다.
속눈썹 위에 올라있는 한 점의 먼지를 털어낼 수 있는 슬기는 오랜 견습 기간을 거치고 나서야 터득한 나만의 노하우요 철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작품 중에 무릎을 칠 만큼 후한 점수를 줄 만한 게 없다. 왜 그럴까? 욕심을 너무 부리기 때문이다. 남보다 더 나은, 진정으로 추앙받는 작품을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제대로 된 작품을 건져 올리지 못하는 것이다. 깊은 샘의 물은 가뭄에도 아니 마르는 법이다.
그릇은 화려한데 담을 음식이 없다. 자기의 그릇은 보통인데 큰 그릇인 줄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에게 어떤 업무가 주어지면 감당하지 못해 남의 입에 오르내린다. 마음을 비우면 제대로 된 세상이 보인다. 떳떳하게 지는 법을 익히면 제대로 된 세상이 보인다. 꿈꾸지 않는 독수리는 한낱 지상의 연약한 가금류일 뿐이다.
“영국에는 나보다 훌륭한 정치인들이 많았을 텐데 그들의 대부분이 제1차 세계대전에 솔선 출정하여 전사하였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이 정계에 머물고 있어 부끄럽다.”고 영국의 전 수상은 말하고 있다. 고차원의 영혼을 지닌 사람이다.
철책에 갇혀 사는 동물들의 눈빛에는 슬픔이 고여 있다.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뿐인가? 영혼이 고갈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행장 하나 걸치지 않고 홀가분한 몸으로 왔던 길로 떠나는 낙엽의 그 큰 뜻을 배울 일이다. 흐르는 물은 아무리 급해도 그 언저리는 늘 조용하다.
도시의 인심이 백열등처럼 밝지도 따뜻하지도 않다고 야단들이다. 하나의 참은 아흔아홉 가지의 거짓을 이긴다 했다. 마음 한번 잘 먹으면 북두칠성이 굽어본다. 어떻게 해서라도 백 년의 침향을 간직하고 싶다.
적당한 망각과 관용을 배워 질긴 인연을, 아픈 사랑을, 괴로운 육신을 훨훨 벗고 진정 구름 같은 신선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