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지하철 전도가 하나님의 의를 위해서인가? 내 의를 위해서인가?
사진은 엊그제 1호선 열차에서 만나게 된 주기현 전도자님이시다
직분은 장로님이시고,
하나님께 사명을 받고 현재는 저렇게 지하철에서 복음을 전하고 계시다고 하신다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골 1:25)
솔직히 전하시는 복음이 썩 인상이 깊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평소에도 흔히 볼 수 있는 성경 말씀만 줄줄히 외우듯 전파하는 정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분은 매칸마다 전하시는 복음의 내용이 틀렸다는 것이다
어떤 칸은 인간은 죄인임으로 회개를 강조하는 복음으로..
어떤 칸은 하나님의 축복 속에 세상에서 승리하자는 복음으로..
또 어떤 칸은 세상의 무겁고 힘든 짐은 모두 예수께로 내려놓자는 복음으로..
그렇게 그 전도자분께서는 매칸 마다 성령님께 입술을 맡기고 그야말로 도구가 되었던 것이다
인간적인 힘과 의지로 하는 전도가 아닌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기는 복음 전도...
그에 비해 나는 뭐냐 말이다
아무리 하나님께 받은 지혜로 간증멘트를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한풀이 일 뿐이고 내가 이만큼 성공했다는 자랑이 아닐까?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빌 1:16~17)
정말이지 냉철하게 생각해 볼 문제이다
지금까지 아무리 오랫동안 지하철에서 전도를 하면 무엇하는가!
그 안에는 아버지의 사랑을 전하려는 순수함보다는 그를 이용해 성공해 보려는 불순한 마음이 있는데 말이다
행위로 위로받지 말자
주의 영이 있는 곳에는 자유함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말이다
내가 전도를 안 했다고 해서 벌하거나 구원을 안 시켜 주는 분이 아니시다
그런데도 하루쯤 전도를 안 했다고 해서 불안해 하거나 찜찜한 마음이 든다는 것은 혹시...?
암튼간에 나는 이번 일로 인해 나의 전도 패러다임에 터닝포인트를 갖는 계기로 삼아야 하겠다
그래야만 인간적인 의지로 매일 해야만 하는 압박감의 전도에서,
그분처럼 자유함을 갖고 순수한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전도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터닝 포인트에는 무엇이 우선일까...?
늘상 술회하는 것이지만 기도가 수반되어야 하겠다
옛날에 기차를 움직일 때는 석탄과 불이 필요했다
그런데 여기서 석탄은 말씀이고 기도가 불이라고 치자
그렇다면 나는 현재 석탄만 잔뜩 가지고 있을 뿐 불이 없다보니,
가장 중요한 기차가 움직이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썩고 있는 꼴이 아니냐 말이다
나도 안다
기도가 중요하다는 건...
그런데 문제는 기도만 하려고 하면 자꾸 딴 생각이 나고,
조금만 눈을 감고 있으면 하품이 나오면서 졸리는데 도저히 잠을 못 이겨낸 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이 문제로 인해 내 신앙이 항상 그 자리인가 보다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나눔이 없다보니 내 의가 우선적으로 선행되기 때문이겠다
"기도의 중요성은 알지만 육신이 연약하다는 핑계로 기도생활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
한낮 핑계거리 밖에 되지 않겠지만,
암튼간에 하루빨리 기도의 진수를 깨달아 영적으로 성장한 장성한 전도자가 되어야 하겠는데...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3)
하나님과의 사귐은 갑자기 이뤄지지 않는다.
그는 우연히 또는 바쁘게 들락날락하는 이에게 그분의 은사를 주시지 않는다.
홀로 하나님과 더불어 많은 시간을 갖는 것이 그분을 아는 비결이요, 그분의 영향을 받는 비결이다.
하나님은 그분을 아는 믿음의 끈질김에 굴복하신다.
하나님은 그분의 은사에 대한 이해와 소원을 진지하고 꾸준하게 표시하는 자에게 가장 풍성한 은혜를 주신다.
다른 일은 물론 이 일에 있어서도 우리의 모범되시는 그리스도께서는 여러 번 밤을 새워 기도하셨다.
그의 습관은 많이 기도하는 것이었다.
그는 고정되 기도의 장소를 갖고 계셨다.
오랜 시간의 많은 기도는 그의 생애와 인격을 형성했다.
"기도의 능력"이라는 E.M 바운즈가 쓴 글인데 여기서 기도의 중요성을 잘 말해 주고 있다
예수님은 물론,
바울,다니엘,다윗 등 얼마나 많은 신앙인들이 기도를 중요시 했더냐 말이다
그에 비해 나는 자칭 전도자라면서 기도생활을 게을리 하며 내 의를 나타내려 전도를 했으니...
그래도 감사한 건,
아버지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중심을 보시고 항상 은혜를 내려 주신다는 것이다
신현정
박진성
얼마전부터 찾기 시작한 일의 감... 2007년 3월 11일 일기 참조
사실 전주에는 좀 뜸하더니 어제와 오늘 연달아 두 건 청약의 만나를 얻었기 때문이다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느 1:11)
어떤 문제를 놓고 엄청난 영적 부담을 가지고 이렇게 간절히 기도했다는 것은 성령의 감동이 있었다는 뜻이다.
성령의 감동이 있었다는 것은 이 일에 대하여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뭔가 시키실 일이 있다는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파송의 노래를 듣게 된다.
요즘 읽고 있는 "세상 중심에 서다"라는 책에서 나온 글인데,
신기하게도 오늘 마음에 와 닿은 말씀이 이 절귀였는데 어쩜 이렇게도 잘 맞아 떨어지는지 말이다
어쩐지 새벽부터 뜸금없이 내 입술에서 이런 찬양이 나오기 시작하더라
원수를 다 이기고 무덤에서 살아 나셨네
어두움을 이기시고 나와서 성도 함께 길이 다스리시네
사셨네, 사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
찬송가 150장 "무덤에 머물러"라는 찬양인데,
어찌보면 난 그동안 무덤(?)에 머물러 있었는지도 모른다
청약이 쉽게 나올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눈 앞에 있었는데 그걸 모르고 헤매고 있었으니 말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동안 일도 못하고 헤매기만 했던 내 자신이 얼마나 미련하고 바보스러운지 모른다
해답은 바로 코 앞에 있었는데 말이다
얼마나 많은 경우 사람들이 옳은 이야기를 잘못된 방법으로 말해서 일을 그르치고 마는가?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느헤미아는 평소 철저히 기도하며 준비해온 대로 아주 지혜로운 언어로 왕의 마음을 움직였다
(세상 중심에 서다 中)
정말이지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나는 그동안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려는 나머지,
상대방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도 못 한 상태에서 상품만 들이댔으니 당연히 거절만 당했지 말이다
청약을 이루자 너무도 감사하고 기쁜 나머지,
길거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띤 예배당에 들어가 아버지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동안 무덤 속만 같던 암울했던 시기에서 벗어나 이제 새롭게 도약하는 FC되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이 기운을 계속 이어가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지혜롭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입술을 주시옵고,
제가 하는 말을 통하여 그들의 마음문이 열리도록 아버지께서 도와 주시옵소서
왜 그런 말이 있지 않는가...
우리가 일할 때는 우리가 일하는 것이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