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크랩톤 - 구름을 타고온 바흐
10년 만에 두 번째 내한 공연을 갖는 에릭 클랩턴을 두고 영화평론가 심영섭은 '구름을 타고 온 바흐'라고 표현했다. 그가 없는 기타 세상은 이제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는 순간, 에릭 클랩턴은 이미 '살아있는 고전'이 된 것이다. 나라와 세태를 초월해 누구든 그이 음악 한두 소절 정도는 흥얼거릴 줄 안다는 건, 이미 그 존재 자체가 전설이 되었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내한을 앞 둔 그와 나는 인터뷰--
1997년에 있었던 첫 번째 내한 공연을 위해 에릭 클랩턴이 한국을 찾기 한 달 전 무척 친해던 선배 하나가 세상을 떠났고, 남겨진 그의 연인은 평소 그 선배가 좋아하던 애릭 클랩턴의 공연을 보러 가고 싶다고 했다. 계획에 없이, 남은 자의 가련함을 위로하고자 찾은 공연장, "저 노래는 그가 녹음해주었던 노래" "저 곡은 그가 자주 흥얼거렸던 노래", "저 노래는 가사가 너무 좋다며 편지에 적어주었던 노래"--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에릭 클랩턴의 연주 속에서 떠나간 연인과 다시금 만나고 있었다. 벌써 10년 전 일이고, 지금 그녀는 행복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다. 에릭 클랩턴의 두 번째 내한 소식이 전해지자 마자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나직이 말했다. "벌써 10년이나 됐나. 다시 가봐야겠구나--" "그녀도 세상도 많이 변했지만 떠나간 사랑의 서늘한 가슴을 쓸어내렸던 이름 '에릭 클랩턴'은 거짓말처럼 여전했다.
우선 '10년 만'이라는 데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요?
의미는, 죄송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늦게 찾아 뵈어서요, 그렇게 오래 되었는 지조차 몰랐습니다.
한국에서는 10년이면 강산이 한 번 변하는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10년 전 당신을 보러 찾았던 한국 팬 중 많은 이들이 다시금 이번 무대를 찾을 거라고 예상하는데. 당신이 공연과 비교해 달라진 것은 무엇입니까?
제 자신의 기대 자체가 가장 많이 달라졌죠. 이번 투어는 긴정한 의미에서의 '월드 투어'입니다. 그동안 북미 혹은 유럽 몇 군데에서 진행하던 것과는 달리. 아시아와 호주까지 장장 1년에 걸쳐 순회하는 일정이 될 겁니다. 'Cream' 과 'Derek & Dominos' 그리고 제 음악적 카탈로그를 총망라하는 공연을 구성하려고 해요. 지난번 한국 공연 당시 여러 곡에 대한 리퀘스트를 받았을 만큼 제 음악에 대한, 그리고 서로 간의 교감에 대한 열의가 참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당신의 명반을 조용히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에릭 클랩턴 최고의 매력은 역시 라이브 연주라는 말에 모두 공감합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라이브 무대의 희열은 무엇입니까?
전 키티리스트입니다. 기타는 제게 있어서 좀 더 자유로운 규칙을 제공해주는 게 매력이지요. 특히 블르스 음악에 있어서 기타의 매력은 상당히 즉흥적이라는 데 있어요. 같은 노래를 매일밤 연주해도 그날의 느낌. 관객의 반응. 연주자의 상태에 따라 그 음색이 변화될 수 있는 놀라운 악기죠.
당신은 음악성으로도 대중성으로도 모두 최고의 평가를 받은 아티스트입니다. 이 상반된 요소가 혹시 당신으니 내부에서 충돌을 일으킬때는 없습니까?
대중을 의도해 작업을 한 적은 없습니다. 제 어떤 앨범이든 항상 블루스가 기본 배경이 됐습니다. 제가 음악을 함에 있어 -좀 이기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저를 위한 제가 만족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것입니다. 다행히 사람들이 계속 좋아해주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죠. 이건 많은 아티스트들도 공감하는 부분이라 생각해요. 제가 만족할 수 있는 음악을 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을 음악을 생업으로 삼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Wonderful Tonight' 나 'Tears in Heaven' 같은 곡은 한국인이 따라 부를 수 있는 몇 안되는 팝송 중 하나입니다. 특히 'Tears in Heaven'은 특별한 사연이 있어서 더 특별한 곡으로 기억되죠. 이제는 한참이나 세월이 흘렀는데, 요즘 이 노래를 부를 때의 심정은 어떤가요?
그 노래를 통해 그리고 어린 아들의 죽음을 통해 전 그 후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코너(아들)의 장례식 이후 술과 마약을 끊은 지 15년이 지났지요. 저 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을 떠나보낸다는 것은 아주 고통스럽고 죄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제 생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는 모르지만 명이 다할 때까지 건강하게 열심히 사는 것이 코너의 죽음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해요. 'Tears in heaven'의 성공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싱글로 내놓을 생각도 없었고, 아들의 죽음을 기리고자 한 제가 아는 최선의 방법을 실천했을 뿐이죠. 이제 제게는 더 열심히 지켜야할 젊은 아내와 세명의 딸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당연히 '그때'였겠죠?
그렇죠. 믿을 수 없었던 아들의 죽음.
그가 키타리스트로 음악 신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던 초기 시절. 런던 거리의 한 벽에는 클랩턴은 신이다Clapton is god'라는 낙서가 등장했다.에릭 클랩턴이 위대한 만큼, 단박에 그를 알아보고 한 즐의 결정적인 글을 남겼던, 누군지 모를 낙서 주인이 불현듯 궁금해지기도 한다. 사실 그의 음악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은 음악보다 더 인상 깊은 그의 삶 때문일 것이다. 조지 해리슨의 아내 패티 보이드를 향해 그 유명한 연가 'Layla'를 바친 로맨티스트, 불의의 사고로 아들을 잃은 아버지, 약물 과용 등으로 한때 폐인이 되다시피 했다가 극적으로 재기에 성공한 불굴의 인간 그리고 레게와 컨트리, 팝 R&B를 돌아 다시금 자신의 근원인 블르스로 회귀한 진정한 아티스트, 삶의 굴곡과 희로애락이 그대로 스며들었을 것을 생각하면 그의 음악이 이처럼 근사하게 빛나는 것은 물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만큼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
살아 있는 전설, 신이 내린 키타리스트 등 당신의 이름 앞에 늘 따라붙는 이런 문구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아마도 제 음악이 저만의 어떤 개성을 지니고 있기 땨문에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전 어린 나이에 제 감성과 감정을 말할 수 있는 저만의 음색을 찾았습니다.아마도 자신의 언어를 가진 음악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겠죠. 그러나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기타의 기교가 더 좋다거나 하는 기술적인 이유가 아니라, 한 인간이 감정과 고통을 좀 더 잘 표현하는 개성 있는 키타리스트로 인식됐으면 해요.
결국 온갖 음악 장르를 섭렵한 뒤 고향의 품에 안기듯 다시금 블루스로 돌아갔습니다. 힘들었던 유연 시절을 지켜주었던 블루스 음악, 무엇 때문에 헤어나올 수 없는 걸까요?
블루스는 제가 첫 번째 들었던 음악입니다. 블루스를 연주하는 첫 번째 이우는 '현재의 고통'을 치유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블루스는 제게 있어 아주 오래된 친구죠. 제 머리와 기억 속에 있는 그리고 저 수평선을 바라보며 생각하는 아주 소중한 친구입니다. 제가 태어나 처음으로 들은 음악이 블루스였어요. 지금까지 블루스라는 음악의 순수성을 믿어 왔고, 언제까지나 그럴 겁니다. 또한 블루스는 제가 가장 편하게 생각하고 잘 말할 수 있는 언어죠.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언어를 갖고 있지 않습니까. 제게는 아주 어려서부터 블루스가 언어이자 습관이며 문화가 되었던 거죠. 이 언어는 그것을 이해하고 흡수하는 사람에게만 통하는 것입니다.
이미 당신 자신이 많은 뮤지션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만, 그 반대로 지금까지 가장 매료시킨 아티스트나 뮤지션은 누구입니까?
뮤지션의 개인적인 욕심일텐데, 제가 가장 일해보고 싶은 아티스트들이 있어요. 제 평생의 소원이 비비킹B.B. King과 함께 일하는 것이었고, 제이제이 케일J.J. Cale과도 함께 작업하는 것이었습니다. 과거에 지미 핸드릭스Jimi Hendrix를 무대에서 처음 보았을 때도 그랬으며, 밥 말리Bab Marley가 웸블리에서 처음 공연할 때에도 같은 생각을 했죠. 이제 또 기회가 주어진다면 타지마할Taj Mahal과도 같이 작업해보고 싶습니다.
이른바 '브리티시 록'의 계보를 잇는다는 젊은 아티스트나 무지션들을 보면 혹시 "이건 너무 다르잖아"라고 느끼는 부분, 그러니까 뮤시션은 누구입니까?
얼마 전 음악잡지에서 콜드 플레이의 젊은 친구가 리처드애시크로프트Richard Ashcroft(영국 밴드 'The Verve의 리드 싱어)를 영국 최고의 보컬리스트라고 얘기하는 인터뷰를 봤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현재의 많은 밴드들은 자신들이 음악이 어디에서 오는 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 쁘리가 어디이며 그 출발이 어디인지를요.
당신의 음악에 대해 '고급스럽다'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고급스러운 음악은 어떤 음악이라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여겨주신다니 감사합니다. 제가 하는 음악의 근간은 블루스입니다. 가끔은 어쿠스틱 또는 언플러그드를 연주하기도 하지만, 그럴때도 여전히 음악적 뿌리는 블루스죠.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들어보면 1970년에 했던 음악이나 지금의 음악 모두 그 뿌리는 변함없음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블루스 음악은 아주 오랫동안 이어져온 질긴 생명력의 음악입니다. 넓은 계층에서 두르 사랑받고 그것이 고급한 느낌으로 이어진다면, 아마도 블루스가 유행을 차지 않는 '고전'이기 때문에 그럴 겁니다.
당연히 음악이 당신에게는 가장 큰 행복이겠지만, 두 번째 행복을 얘기한다면 무엇인가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데, 그 이유는 딸 셋을 둔 한 가족의 가장이기 때문입니다. 이 단순한 사실이 제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고 있죠.
가장 호사스러운 순간은 언제인가요? 아니면 당신이 꿈꾸는 가장 큰 호사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새로 꾸린 가족이 제게 있어 가장 호사스러운 일이 된 듯합니다. 제일 큰 기쁨이니까요.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는 게 세상에서 무엇보다 귀중한 사치입니다. 모은 것은 갖는 것보다 지키는 행복이 더 귀한 것이니까요.
한국은 곧 가장 큰 명절인 설날이 다가옵니다. <럭셔리> 독자에게 새해 덕담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그럼 제 공연이 2006년을 정말로 마무리하는 자리가 되는 셈인가요? 아시아 투어를 하다 보면 보수적이고 자제하는 관객이 많은데 한국 사람들은 그러지 않아서 좋습니다. 다정하면서도 열정적인 느낌이예요. 그런 정서들을 언제나 잃지 말고 살았으면 합니다.
테레사 수녀, 법정스님, 그리고 에릭과 동시대를 같이 호흡했다는 것만으로도 사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김민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