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의 함정과 반토막의 한반도를 생각한다. (1)
한국사회문제연구소장/박사
조상진
회고하는바, 조선 왕조 518년 역사는 주자 성리학의 패착이었다고 평가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전통 유학은 3,000년 전 건국한 주나라에서 만들었다. 그러나 춘추전국 시대를 거치는 동안에 유가, 도가, 법가, 묵가 등 제자백가도 출현하였지만 유학은 항상 그 대세를 이어온 것이다.
그러다가 기원전 221년 대륙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진나라에 의하여 분서갱유를 당하였고, 유학의 맥이 끊어졌으나, 그후 한나라 무제는 유학을 다시 회생시켰다. 하지만 다시 당나라로 이어지면서 불교가 융성한다. 종교는 형이상학적 세계관으로 현세 중심의 유학과 성격이 다르다. 서양에도 기독교가 대세를 이루면서 하늘과 땅 이라는 이원적 세계관으로 종교가 굳어져 있었다. 그 속에서도 서양의 철학은 인간의 이성을 중시하면서 천부인권 사상으로 근대 민주주의 사조를 견인하여 온 것이다.
한편, 학문과 종교를 모르는 북방 유목민들은 중국대륙을 향하여 무력을 앞세워 침입이 잦았다. 중국의 유학자들은 이러한 북방 민족들을 교화하려는 속셈으로, 좀더 유식한 학문이 필요했다. 이러한 시대 흐름에서 남송의 하급 관리이었던 주희에 의하여, 유학을 보강 집대성한 성리학(性理學)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 당시에 한반도는 고려의 후기에 해당하였다. 고려 역시 불교가 대세를 이루고 있었는데 왕권과 권문세족들은 승려들과 결탁하면서 국가적 타락을 초래했다. 따라서 이를 개혁하려는 세력들이 신진사대부이었다. 남송이 1279년 원나라에 패망한 후, 고려의 안향은 원나라를 통하여 주희의 성리학을 처음 수입한다. 그 뒤를 이어서 이색, 정몽주, 정도전 등의 주요 인물이 나타난다. 그 신진세력들이 고려의 정치적 타락의 해결책으로 주자(주희) 성리학을 조선으로 연결한 것이다. 그렇다면 성리학이 무엇인가. 주요 핵심은 이기론, 심성론, 수양론으로 설명된다.
1) 이기론(理氣論)에서, 이(理)는 만물이 존재하는 근원이며 우주의 보편적 법칙, 도덕적 규범이다. 기(氣)는 우주 만물을 구성하고 움직이게 하는 물질적, 현상적인 에너지이다. 즉 세상의 모든 현상은 이와 기가 결합하여 나타난다.
2) 심성론(心性論)에서, 인간의 마음(心)은 본성(性)과 감정(情)으로 나눈다.
인간의 본성(性)이 곧 우주의 원리인 이(理)와 같다는 성즉리(性卽理)이다. 그리고 본성은 본래 선하다는 성선설(性善說)을 바탕으로 한다.
3) 수양론(修養論)에서, 인간 본성에 내재된 이(理)를 온전히 보존하기 위한 구체적 실천 방법이다. 거경(居敬)으로 항상 마음을 경건하고 엄숙하게 유지하는 자세이다. 또한 궁리(窮理)로서 사물의 이치를 깊이 있게 연구 탐구한다. 그리고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어 완전한 앎에 이르는 격물치지(格物致知)에 이른다. 즉 관념적 구성이 너무 과도한 것이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