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귀떼기청봉의 깃빨.

[돌삐]

원치 않는 결혼 문제로 고민을 하던 묘령의 여인네가 한강 다리에서 투신을 하자 이를 바라 본

많은 이들은 이걸 어쩌나 하며 발만 동동 굴리고 있을 적에 떡꺼머리 총각놈이 용맹하게 입수를

하곤 뒤 이어 당도한 경비정에 처녀와 함께 구조되어 올라 오자 우선 방송사 기자들이 카메라 후렛쉬를

요란하게 터뜨리며 마이크를 드리 댄다.

물을 한 양동이나 입으로 뿜어 낸 총각놈의 일성이 참으로 잼 난다. 어떤

씹핼넘이 내 등을 떼 밀었냐는 것이다.

가을 단풍의 진수라고 하는 설악산으로 향하는 우리 느림보 산악회엔 오늘 따라 참으로 귀하고 반가운 

분들이 여럿 오셨다. 지난

영남 알프스 태극 종주 산행에서 우연히 만난 약관 24살의 열혈 청년 엄 태풍님께서 울산에서, 빼어난

촬영 솜씨 덕분에 사진 찍어 달라고 보채고 징징 거리는 여인네들의 성화 때문에 잠시 고향땅에서 은거중인

느림보의 대표 찍사님이신 시나브로님께서 각각 야간열차를 타고 이곳 분당 느림보 본진에 합류를 하였고

느림보의 총괄 산행대장님을 하셨던, 지금은 이곳 강원도 땅에서 귀촌 생활을 하고 계시는 아리수님께서는 

삐이팀 산행 들머리인 장수대 매표소에서 함께 우정 등반을 하시게 되었고 에이팀 산행 들머리인 한계령

휴계소에선 출발한지 채 십분도 되지 않아 한때 우리 느림보에서 벙개 팀장으로 맹활약을 하셨던 마이산님께서 

우리 강 대장님의 뒷모습 만으로 금새 알아 채시곤 반가이 인사를 건넨다. 우연히

옆에 있던 나에게도 공포의 늑대 주둥이 돌삐님이 아니시냐는 것이다. 마이산님은 서울의 어느

산악회의 일원으로 산행을 하시게 되는데 귀떼기청을 거쳐 대승령에서 장수대로 하산을 하는 우리와는 달리

백담사로 하산을 하시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우연한 만남을 군사 용어로는 조우라고 한다.

능선길에 오르자 허연 엿판을 엎어 놓은 듯한 너덜 바위들의 위용에 잠시 압도를 당하는 듯 하더니만 이내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의 모진 칼바람이 귀싸대기를 두드려 댄다.

어느 누가 내 팔을 비틀었던 것도 아니요 올라 갔다 내려 오면 어느 넘이 세금을 깎아 준다는 것도 아닌데

이런 험하디 험한 준령 산행에 합류를 한 나의 미친놈의 발작 증세를 도무지 이해 하기가 어렵다. 앞 뒤에서

전진을 하고 있는 우리 느림보 대원들의 윈드 쟈켓과 머리들이 바람에 휘 둘리는 모습들을 보노라니 청마

유 치환 선생의 깃발이란 시가 문득 떠 오른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텔쟈의 손수건...

근데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 두번이면 족하다는 말이 있듯이 처음엔 시원했던 바람도 계속해서 불어 대자

가야 할 길이 바쁜 내 입에선 어느새 청마 선생의 주옥같은 글귀들이 서서히 변질되어 튀어 나오기 시작한다.

이것은 승질 더러븐 시에미년의 씨잘데기 없는 잔소리 빨래줄에 널린 시누이년의 오줌 지린 고쟁이와

노스텔쟈의 손수건 처럼 연신 펄럭이는 시에미년 월경포. 순정은 물결 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난 뉴스, 다큐 드라마 그리고 스포츠 중계 외에는 티비 정규 방송은 거의 보질 않는다. 허나

화요 느림보 산행을 하기 전날인 월요일엔 일찍 잠을 청하기 위한 방책으로 티브이를 틀다가 가요 무대에 맛을

들이게 되었는데 얼마 전에는 우리와 비슷한 연령대로 엄청난 소녀팬을 확보하였던 70년대 인기 가수 

이 현씨의 모습을 오랫만에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 육군 군번 1번이신 이 형근 대장의 자제분이시자 귀공자풍의 외모에 감미로운 음색으로 팬들을 

매료 시켰던 이 현씨가 아마도 중풍 탓이 듯 하다 약간은 불편한 모습으로 그 분의 데뷔곡인 춤 추는 첫사랑을

부르실 적엔 내가 괜스레 콧등이 찡하면서 눈물이 글썽여 졌다. 저렇게 화려한 삶을 

사셨던 분들도 속절없는 세월과 병마 앞에서 어느 새 떨어 진 감꽃같은 모습을 하고 계실줄이야 차마 ..

고대광실 높은 기와집에서 기생과 더불어 술이나 마시며 유유자적 사는 것이 내 인생의 지고지순한 

목표였지만 이젠 나이로 보나 머로 보나 꿈도 꾸지 못할 공염불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넘들 공부할 적에

낙동강에 가서, 먹지도 않을 죄 없는 피래미 잡느라 세월 다 보내고 남들 돈 버느라 눈알이 싯뻘걸 적에

어디서 줏어 듣긴 들었던 모양이다. 양반 체면이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다 머다 하며 돈 알기를 댄스 파티의

체인징 파트너처럼 우습게 알다가 어느덧 정신 버쩍 차리고 보니 불편한 몸으로 무대 위에서 마지막 열정을

다 하고 있는 내 또래의 이 현씨가 보이질 않는가? 추억을 

그리워 하는 내 또래의 올드팬이 아닌 그 어느 누가 가수 이 현씨를 보고 열광을 하겠냐는 것이다. 70년대

절정을 구가하던 그 세월은 이미 강을 건너 버린 송아지 처럼 내 손을 이미 떠나 버린 것이다.

천 고지가 넘는 설악산 같은 산을 네발로 기든 오체투지를 하든 자기 발로 오를 수가 있다면 그래도 아직은

우리네 인생은 분홍빛 이라고들 한다.  

오늘 후미 대장을 맡으신 내 고향칭구 꽃님 대장님께선 강 가에 세워 둔 어린아이 쳐다 보듯 나를 지켜 보며

내 주위를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강 대장님께서도

심심찮게 나에게 다가 와선 어지럽지 않느냐 속이 메시껍지 않느냐 하며 걱정스런 눈빛으로 물어 본다.

아무래도 이번 산행을 마치고 내려 가선 지난 번에 몇번 시도를 하다가 내 팽개쳐 버린, 체력 단련을 위한

특수 훈련을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지옥문을 왕래하는 공포의 철사장 단련법.

큰 드럼통에 굵은 모래를 잔뜩 넣곤 밑에서 장작불을 우선 밤새 지핀 다음 모래에서 나오는 열기가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을 적에 양쪽 손을 편 채로 모래 속으로 사정없이 쑤셔 넣었다가 뽑아 올리기를

해가 그으름할 때 꺼정 시도를 하는 것이 중국 무술 영화에 나오는 철사장 단련법의 한 장면인데 난 이를

약간 변용하여 시도를 해 보았다. 내 신체 중에서 현재 건강 상태가 가장 취약한 걸로 진단이 나오는 

그 부위를 집중 단련 시키고자 땅벌 구멍에 그시기를 드리 대는 것 보다 헐 고통스럽다는 즉 가운데 토막을

뜨거운 모래에 사정없이 담구었다 건져 올리기를 수도 없이 시도하는 그 공포의 철사장 단련법.

다음 날이면 끝부분은 온통 물집으로 난리가 나지만 이를 감내하셔야 됩니다. 약 일주일이 지나

터졌던 물집이 구들 구들하게 아물어 갈 즈음에야 2단계 훈련법인 모래사장 단련으로 들어 갑니다.

철사장이나 모래사장에서 나오는 사는 모두 모래 사입니다. 그래서 우선 철물점에 가시면 삿포라고 하는

물건을 팝니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뻬퍼라는 것인데 종이에 크기가 각각 다른 모래를 부착하여

어떤 물건을 갈거나 연마를 할 적에 사용하는 쌘드 페이퍼인데 이것을 사서는 마악 물집이 잡히는 

대가리 끝부분을 인정사정 없이 박박 문질러 주세요. 

선지피가 뚜욱 뚝 떨어지지만 참으셔야 됩니다. 이 훈련을 석달 열흘만 계속하면

가운데 토막으로 송판도 관통할 수가 있다고 합니다. 특히 밤이면 밤마다 예폔네가 

남편 들으라고 이룬 노래를 열창하시는 가장은 이 철사장 훈련을 반드시 이수 하셔야 됩니더.

옆집 아저씨는 오줌을 누면 소변기에 들어 있는 나프탈린이 30쎈치나 튀어 오르는데

우리집 멍텅구리는 아침에 일어 나 오줌을 누면 발끝에 또옥 똑 떨어 지고

뒷 불곡산의 딱따구리는 쌩나무도 잘 뚫는데 

우리집 멍텅구리는 뚫린 구넝도 입구 조차 찾질 몬한다. 흐 흐.

겨우 당도한 대승령에서 장수대 쪽으로 하산을 서둘러 본다. 물경 아홉시간 이상을 산행케 되니

조기 출발을 하였지만 곧 이어 해가 떨어 질 기미를 보인다.

대승암지에서 급한 발길 이지만 어느 스님이 살았을 청빈한 수도 생활을 머리에 떠 올리며 대승 폭포에

당도 하였지만 뉘웃 거리는 해와 시간 때문에 절경을 애써 외면하곤 철사장이 아닌 철계단을 수도 없이 내려 

오노라니 뽀알간 등산복을 입은 어떤 분이 올라 오신다. 설악산 단풍 귀신인가 하여

흠찟 놀라고 보니 우리 느림보의 김 대장님 이시다. 랜턴을들고는 후미팀들을 배웅하러 가시는 길이라고 한다.

예배당에 가서 잠자리채에 연보돈 많이 집어 넣거나 절집에 가서 쌀뒤주 같은 복전함에 복 받을 돈을 수도 없이

쑤셔 넣는 것 보다는 김 대장님 같은 이룬 등불 공덕이 헐 가치가 있다.

느림보 리무진 옆에 임시로 차린 상이 여태도 있었고 경자 언니가 말아 주는 육계장 한그릇에 맛난 

강 대장님표 열무 김치 한 접시를 후딱 해 치우고 나니 그제서야 하늘이 노래 진다.

다음 오대산 산행을 기대하며 오늘은 이만.

분당 탄천변에서 워터벅 돌삐 인사 드립니다. 

[sannary]

단풍이 이토록 고운 저 골짜기 단풍을 이 가을에 못 보고 지나갔더라면 얼마나 억울할뻔 했을까요.
네발로 기어서라도 설악산에 오를 수 있다면 아직은 분홍빛 인생이시라는 말씀은 맞습니다.
그것도 험난하기로 유명한 서북능선을 오르신 돌삐님은 아직도 청춘이십니다.ㅎ
우리가 바라본 첨봉들이 도열해 있던 골짜기는 지도를 찾아보니
비탐구역인 상투바위골이었습니다.
흡사 아바타 촬영지 같던 그 멋진 풍경을 보고 오신 걸로 힘든 산행 보상받았다 생각하시어요.
다음주는 편안하게 선재길을 걸으시지요.
선재동자의 불심을 생각하시면서..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