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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과 신작로(新作賂)
최 명 익
금녀와 유감이는 시집온 후로 이제 첫 봄을 맞았다. 친정의 외양간 기둥에 그대로 결려 있을 것 같은 나물 바구니와 호미를 눈 앞에 그리며 이 봄을 맞았다.
이 동리에서도 봄고양이가 울었다.
지난봄 어느 날이었다. 금녀와 유감이가 가득 찬 나물 바구니를 겨드랑이에 끼고 피곤한 어깨를 늘어뜨린 손에 호미를 들고 건드렁 건드렁 활개를 치며 가물가물 어두워오는 동구 안길을 찾아들고 있을 때 나뭇새¹ 수수깡 바자 밑에서 고양이가 울고 있었다.
그 고양이는 털을 거슬린 목을 짜내듯이 허리를 까부러치고 우는 것이었다.
한참 서서 보는 동안에 그 고양이는 몇 번이나 울음을 멈추었다. 그때마다 금녀와 유감이의 머리카락을 스치는 바람결에 바자의 수수깡잎이 버들피리같이 울었다. 그러자 또 고양이가 우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저편에서 다른 고양이가 울기 시작했다. 이놈이 울면 저놈이 귀를 재우고 저놈이 울면 이놈이 귀를 재우는 모양으로 서로 소리를 더듬어 가까이 갔다.
버들피리같이 우는 바자 안의 파줄기가 입에 물고 빨던 아기의 손가락같이 달빛에 젖어 부옇게 빛날 때 고양이 한 쌍은 마주쳤다. 마주친 두 놈은 얼크러져서 잔디밭 언덕에서 떨어지듯이 굴러내렸다.
유감이는 얼굴이 붉어졌다. 잘 보이지 않아도 금녀도 붉어졌으려니 생각하고
“가자 얘―”
“앳쇠―”
금녀는 재채기를 하고 깔깔 웃으며 달아났던 것이다.
이 봄에 이동리에서 우는 고양이 소리를 금녀도 들었고 유감이도 들었다. 그러나 유감이만은 우물길에서나 집에서 우는 고양이를 만나면 발길로 차거나 부지깽이로 갈겨 쫓아내었다.
동갑인 금녀와 유감이는 한동리에서 자라 열다섯 살 되던 지난 가을에 같이 이 동리로 시집온 것이다.
그들의 친정어머니들은 각각 자기 딸의 재장²을 성벽〔性癖〕내기로 했다. 금녀가 분홍 인조 항라 적삼을 했다면 유감이네도 같이 했고, 유감이가 송화색에 주주길솜³ 놓은 깨끼저고리⁴를 했다면 금녀도 지지 않았다.
금녀네보다 며칠 후에 온 유감이 예장에는 커다란 은가락지가 왔다. 금녀 예장에는 가락지가 없었다. 그래서 금녀는 울고 금녀어머니는 곧 중매를 불러다 야단을 쳤다. 중매 노파는 또 부리나케 금녀 시집에 가서 야단을 쳤다. 정작 야단이 난 것은 유감이네 시집이었다.
다만 모자서 사는 집안에 저 몰래 은가락지를 보낸 아들이 나무러워서⁵ 유감이 시어머니는 사흘이나 밥을 안 먹었다.
금녀 시어머니는 은가락지 대신에 농 밑에서 가는 백목 한끝을 더 보냈다.
그 백목에 씨암탉 한 마리를 보태서 금녀도 은가락지를 끼고 시집왔다.
그래서 두 색시는 한우물에서 물을 길을 때, 같은 저고리에 같은 치마에 같은 은가락지를 끼고 만나게 되는 때가 많으므로 이 동리 여인들은 쌍둥이 색시, 색시 쌍둥이라고 하며 금녀나 혹은 유감이만이 나온 때는 색시 쌍둥이 한 짝은 어디 갔나? 하고 놀려먹기가 일쑤였다.
그러나 두 색시의 남편들은 그들 쌍둥이와 비하면 너무 달랐다.
저의 어머니 몰래 은가락지를 보낸 유감이 남편은 서른이 가까운 장정이다. 장가 온 신랑이 큰상을 물리기도 전에 취해서 상 치우러 온 서재⁶ 애들이 드린 단자를 담뱃불로 소지를 올렸다.
금녀의 남편은 금녀보다 두 살이나 어린 애였다. 큰상을 물리자 후행 왔던 아버지를 따라간다고 한바탕 떼를 쓰고 울었다.
그래서 동리 사람들은 유감이 남덩 (남편)은 주정뱅이요 금녀 새스방(남편)은 울램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서로 다른 남편에게 시집온, 유감이는 갓 올린 머릿봉이 무거운 듯이 고개를 숙이고 늘 외면을 하지만 금녀는 병아리의 갓 돋친 면두룸이⁷ 같이 빨갑 꼬들채⁸를 나풀거리며 처녀 적이나 다르잖게 굴었다.
이 봄이 되자 유감이는 젖가슴이 높아지고 허리가 차차 굵어갔다. 혹시 받들어 이려는 물동이를 하마터면 메어칠 듯이 우물 둑에 내려놓고 헛구역을 하고는 눈물이 글썽글썽 고이는 것이었다. 그런 때 마침 금녀만이 있으면 유감이는 물동이를 다시 일 생각도 않고 흐득흐득 느껴 울었다. 그렇게 섧게 우는 유감이를 바라보는 금녀는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억세게 소구루마⁹ 채를 한 팔로 그러잡고 달려와서 바가지에 쩔쩔 넘는 물을 뻘걱뻘걱 다 마시고 가는 유감이 새스방의 땀내와 술냄새가 코에 서리던 것을 생각하면 유감이가 우는 곡절을 알 듯도 모를 듯도 해서 별했다.
금녀와 유감이가 물을 긷는 우물은 이 동리의 한편 모퉁이를 스치고 지나간 신작로 기슭에 서 있는 버드나무 밑에 있었다. 이편 산모퉁이에서 저 넓은 벌판 가운데로 난 신작로를 매일 오고 가는 짐자동차가 우물 둑에 서곤 했다.
언제부터 그 자동차가 이 길을 오고 가게 되었는지는 모르나 금녀와 유감이가 이 우물에서 처음 보는 운전수는 우물에 나온 여인들과 내외 없이 농지거리를 하는 것이었다.
“그놈의 자동차는 물두 먹기두 한다. 벌써 멧 바가지짼고.”
빈 동이를 들고 조수가 물을 떠 나르는 바가지가 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여인이 이렇게 말을 건네면
“자동차 체통을 보구려. 그 큰 배를 다 채울래니. 하긴 아즈마니 배에는 그 동에루 맻 개나 드우? 하하하.”
우물 둑에 두 다리를 뻗고 앉은 운전수는 이렇게 그 여인의 만삭 된 배를 비양청¹⁰하고 웃기도 했다.
하루에 두 번 거진 같은 시간에 오고 가는 운전수와 조수가 이 우물에서 기름 묻은 손과 머리를 씻을 때마다 여인들은 뛰어 나는 비누 거품을 피하여 쌀 함박과 나물 그릇을 비껴놓으며
“에이구 그 사향 냄새¹¹는 늘 맡아두 역해.”
하고 코를 집는 시늉을 하면서도 물을 떠서 그들의 머리와 손에 끼쳐주는 것 이었다.
어느새 금녀도 적은 제 물동이 바가지를 쌀 씻는 여인의 큰 바가지와 바꾸어서
“손쉽게스리.”
하고 첫 바가지 물을 떠주리만치 그들에게 살가워졌다.
“운전수가 오늘은 노상 쉐미 (수염)를 매끈히 밀었어 얘.”
자동차가 떠나간 후에도 금녀는 유감이에게 운전수 이야기를 하자고 드는 때가 있었다. 갸름한 얼굴이 가무잡잡하고 눈이 반짝한 운전수는 세수를 할 때마다 양복저고리 옷 주머니에서 곱게 접었던 알락달락한 인조 하부다이¹² 수건을 꺼내서 손과 얼굴을 문지르는 것이었다.
“그 손수건이 아주 하이칼라야.”
“정말.”
“언제나 봐두 늘 고 쁜사디?”
“어데 좀 봅세다.”
“말큰하디!”¹³
이것은 금녀의 말이었다.
“괜히 홀아비래디. 색시가 정성을 드리게 그렇갔디.”
“홀아비는 하이 칼라 수건두 못 가지우?”
우물가의 여인들이 오늘도 그 수건 타령을 하는 말에 운전수는 이렇게 톡 쏘듯이 말하고는 웃었다.
“한데 그런 수건이 멫이나 되노? 아마 벨렀다 곱구자루¹⁴ 여게 와서만 쓰나 봐.”
이렇게 코가 유난히 붉은 여인이 놀리는 말에 운전수는
“천만에.”
하고, 수건을 떨고 펴서 다시 접어 넣었다. 그 말에 어린 조수가
“천만에나 새나요. 정말 아즈마니 말마따나 우리 이 긴상이 이 우물에 꼭 반한 색시가 있어서 밤잠을 안 자구 수건만 대린다우.”
이렇게 말하고 달아나는 것을 운전수는
“요런 깨보가 잘망스럽게.”¹⁵
하며 따라가서 주근깨투성이 조수의 얼굴을 자동차에 밀어넣고 들어갔다.
웃고 떠드는 여인들을 내다보는 운전수의 눈은 금녀의 눈과 마주쳤다. 여인들이 웃는 동안에 유감이는 이제 운전수와 마주쳤던 눈동자를 어떻게 할지 몰라서 얼굴이 빨개진 금녀를 바라보다가 눈이 시린 것같이 눈물이 핑 돌아서 힘드는 줄도 모르게 동이를 이고 돌아섰다.
“형애야 얘.”
금녀가 이렇게 부르는 소리를 유감이는 들었다.
두세 걸음 뒤에서 따라오는 발소리로나, 남달리 똥땅거리는 듯한 물동이 쪽박 소리도 금녀인 줄 알았다. 그보다도 구역이 나고부터 별로 냄새가 잘 맡아지는 코에 머리카락도 흔들지 않는 바람이지만 풍겨오는 살냄새로 금녀가 따라오는 줄 알았다.
“형애야 얘.”
“응.”
이렇게 대답하는 유감이는 남편의 살냄새와는 다르지만 왜 그런지 금녀의 살냄새도 싫었다.
“형애 너두 자동차 못 타봤지?”
유감이는 대답하기도 싫었다. 앞서 가는 유감이의 물동이 바가지 소리만을 몇 걸음 들을 뿐인 금녀는 혼잣말같이
“얼마나 훌륭하갔네 글쎄. 신작로루 내내 가문 피양(평양) 인데 사꾸라래나? 요좀이 한창이래 얘.”
며칠 전, 유감이가 물 길으러 갔을 때 일이었다. 우물 둑에 서 있는 자동차 짐짝 위에서 주근깨 많은 조수가 휘파람을 불다가 유감이를 보자 휘파람을 쉭 날려버리고는 큰기침을 한 번 했다. 그러자 우물 둑 아래 가렸던 두 머리가 쑥 비어져 이쪽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유감이가 가까이 갔을 때 운전수는 손에 들었던 꽃가지를 우물 위턱 돌 위에 던지고, 그때도 그 아롱아롱한 수건으로 손을 씻고는 곧 자동차를 몰아가고 말았던 것이다. 자동차가 막 떠날 때
“재수가 막국수네.”
이렇게 조수가 창밖으로 내다보며 던지듯이 한 그 말이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나 유감이는 무슨 억울한 핀잔이나 욕을 당한 듯이 분하고 지금도 “요 철없는 년아” 하고 금녀를 꼬집어주고 싶게 미웠다. 평양 사꾸라를 못 봐서 네가 달떴갔네? 이렇게 생각하는 유감이는 아직 코를 흘리고, 울램이라는 말을 듣는 금녀의 새스방을 생각할 때 저렇게 금녀가 달뜰 것을 알 듯도 모를 듯도 하여 별했다. 그뿐 아니라 더 별한 것은 요새 금녀가 저를 유감이라 않고 ‘형애’라 부르는 것이 별하기보다 서러웠다. 유감이는 요새 자꾸 울고만 싶은 것이 구역이 나고 어지럽고 밤을 지나고 나면 허리가 미어지는 것 같아서다. 자꾸 몸이 고달픈 탓이라고도 생각했지만 그보다도 금녀가 부르는 형애라는 말이 더욱 서러운 듯하였다. 이 형애라는 한마디로 금녀는 자기를 멀리하려는 듯이 생각되었다. 그뿐 아니라 금녀가 철이 없다면 자기도 꼭같이 철이 없어야 할 나이에 금녀가 꼬집어주고 싶게 철없어 보이는 것이 더욱 서러웠다.
유감이네 소를 얻어서 방아를 찧었던 금녀네는 오늘 방아를 찧게 된 유감이네 집에 금녀가 품을 갚으러 갔다. 연자 멍에를 돌리는 소 엉덩이를 회초리로 툭툭 치며 돌아가는 금녀는 국수당고개의 금빛 사철화와 뒷산의 진달래와 집집이 굴뚝 모퉁이마다 핀 살구꽃을 바라보면서 금시에 처녀 적 기나리¹⁶라도 나올 듯하였다.
시집살이는
할까 말까 한데
호박에 박넝쿨
지봉을 넘누나
한번 이렇게 목청 껏 빼어보고 웃기도 하고 울고도 싶었다.
유감이는 모지라진 비를 들고 판돌¹⁷ 변자리¹⁸에 칼동¹⁹으로 밀려 나온 노란 좁쌀을 밀어 넣기도 하고 종대²⁰ 밑의 배꼽을 따기도 하면서 쫓아오는 소 멍에를 피하여 모로 돌아가며 이마의 땀방울을 소매로 씻었다. 그리고 이따금 비를 놓고 치맛자락으로 코를 풀었다. 금녀는 유감이더러 맡은 일을 바꾸자고 해보았다. 그러나 유감이는
“날기²¹가 설 말라서 좀 잘못하문 쌀이 모이기가 쉬워.”
이렇게 말하는 유감이는 쌀이 마른 짐작을 제가 더 잘 아는 이만치 방아밥을 밀어 넣고 배꼽을 따내는 도수와 남편이 돌리는 풍구재²²에 나르는 두량을 제가 아니면 서투르다는 듯이 그 무거운 몸을 끌고 돌아가는 것이었다. 높은 풍구재에 무거운 쌀박을 쏟다가 혹시 쌀을 흘리는 때면 춘삼(유감이 남편)이는 그 굵은 목을 꼬아 흘겨보며
“제미씨 손모가지가 부러뎄나.”
하고 골을 내었다. 그럴 때마다 유감이의 좀 도타운 입술은 핏기가 없어지고 떨렸다.
하늘은 무척 맑다. 낮닭의 명랑한 울음소리는 서로서로 어우르듯이 집집에서 들린다. 새까만 헝겊 자박²³을 도리어 땅에 붙인 듯한 작은 그림자를 발부리에 끌면서 애들과 돼지 새끼와 닭과 개들은 양기에 취한 듯이 혹은 졸고 혹은 뛰노는 것이었다. 앞벌 좁은 최뚝길에 점심 광주리와 물동이를 인 여인들의 흰 치맛자락을 가볍게 펄럭이는 바람이 금녀의 귀밑에는 아직 산드러운²⁴ 맛이 있다.
중낮 지붕 그늘을 함박 뒤쓰고 있는 방앗간에서는 씩씩하는 소의 콧김이 한 뼘이나 희게 보이고 멀리 바라보이는 논두렁에 비스듬히 기대놓은 논갈이 보십²⁵은 눈부시게 빛났다.
들을 바라보던 금녀의 눈에는 까만 벌판을 건너 자줏빛 아지랑이 낀 산모퉁이에서 나타난 짐자동차가 보였다. 느린 소 걸음을 재촉하여 한 바퀴 돌아서 보게 될 때마다 신작로 저편 끝에 보이는 자동차는 조금씩 조금씩 커갔다. 금녀는 마치 손꼽아 기다리는 명절이 속히 오라고 밤마다 일찍 자보는 처녀 때의 조바심으로 자동차 안 보이는 반 바퀴를 빨리 돌아서 조금 더 커진 자동차를 보았다.
다시 볼 때마다 커지는 자동차가 혹시 물 길으러 가기 전에 우물을 지나가고 말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금녀는 안타까워졌다. 마침내 등이 단 금녀의 회초리는 소 궁둥이에서 부러졌다.
“끼랴 망할 놈의 소.”
채찍이 부러진 것은 새색시가 짜증을 내리만치 소 걸음이 느린 탓이라고 짐작한 춘삼이는 이렇게 소리를 지르며 큰 손바닥으로 소 궁등이를 철썩 갈겼다. 놀란 소는 흰 콧김을 더욱 길게 뿜으며 두세 바퀴를 뛰다시피 돌아갔다. 그 바람에 방아밥을 밀어 넣던 유감이는 쫓길라기게²⁶ 숨이 차고 어지러웠다.
좀 부은 듯한 유감이 얼굴이 붉어지고 젖가슴이 들먹거리는 것을 본 금녀는 다시는 자동차를 안 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춘삼이가 보았다. 자동차를 보자 춘삼이는 물었던 곰방대를 빼 들고
“제미씨 한번 돌창²⁷에나 구게백이름. 백당²⁸ 놈의 거.”
이렇게 중얼거리는 춘삼이는 그 자동차가 미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른 봄 어느 날이었다. 우차에 짐을 싣고 동구 밖에 나갔을 때 이리로 오던 그 짐자동차가 따지개²⁹ 눈섹이³⁰ 길에 바퀴가 빠져 결난³¹ 황소 영각³²같이 으르럭거리기만 하고 기동을 못했다. 마침 춘삼이를 만난 운전수는 춘삼이와 소의 힘을 빌렸다. 춘삼이는 돌을 주워오고 나믓가지를 꺾어다 와락와락 스미는 길에다 깔고 제 소에 자동차를 매어서 끌어내주었다. 그때 운전수는 막코³³ 한 개비를 주고 갔다.
그 후 며칠 지나서였다. 성안에서 먹은 술에 거나하니 취한 춘삼이는 빈 우차에 걸터앉아 탄탄한 신작로에 제 길을 찾아가는 소 고삐를 얹어놓고 귀밑이 간지러운 봄바람에 어느덧 건들건들 졸고 있었다. 졸던 춘삼이가 덜컹 소리와 흠칫하는 충동에 놀라 눈을 떴을 때, 전날 그 자동차는 우차 꽁무니에 코를 부딪히고 섰고 매섭게 눈을 발가집은³⁴ 운전수가 뛰어내리자 춘삼의 뺨을 두 세 번 후려갈기고 갔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바로 며칠 전 일이다. 춘삼이는 역시 우차를 몰고 동구 밖에 나섰을 때 뒤에서 오는 자동차 고동을 들었다. 전날 일이 분하지만 할 수 없이 길을 비켜줄밖에 없었다. 운전수와 조수는 장한 듯이 몸을 흔들며 창가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싱글싱글 웃는 것이 보였다. 춘삼이는 불끈 쥐어지는 주먹으로 하다못해 자동차 유리창이라도 부숴주고 싶었다. 그러나 주먹을
들 새도 없이 자동차는 그의 곁을 스치고 지나간다. 씽하니 그의 귀를 스치는 바람결에
“금녀와 유감이는 어이 안 오나.”
이런 창가(?) 소리가 들렸다. 흠칫 놀란 춘삼이가 눈을 더 크게 떴을 때에는 지나친 자동차 창밖으로 조수의 얼굴이 나오자 한층 더 새진³⁵ 목청으로 “금녀와 유감이는” 하고는 혀끝이 날름했다. 그 혀끝이 사라지자 와하하 하고 터지는 웃음소리. 그 웃음소리를 싣고 자동차는 달아나고 말았다.
이 세번째 봉변은 춘삼이의 생활에 큰 검은 그림자를 던져주었다. 그때부터, 춘삼이는 성안에 가서 짐을 부리고 받은 돈으로 그렇게 맛나게 한잔 걸치던 술을 끊으려고 애쓸밖에 없었다. 본시 입이 무거운 성미지만 술이 취하기만 하면 말이 흔해지고 나중에는 주정까지 하는 제 버릇을 춘삼이는 잘 알고 있었다. 이번에 술이 취하기만 하면 떠놓고³⁶ 주정을 하고 색시를 때리고야 말 것이 무서웠다. 그래서 그 좋은 술도 못 먹으니 춘삼이의 마음은 더욱 괴로울밖에 없었다. 아무리 궁리해도 모를 일이었다. 운전수가 어떻게 유감이라는 이름을 알았을까. 제 색시의 이름이지만 혼인신고를 한 후에는 한 번도 불러본 적이 없었다. 그렇듯 아무도 알 리 없는 처의 이름을 ㅎᅟᅮᆷ쳐낸 운전수는……? 운전수가 훔친 것이 아니라 시집온 후로 언제 한번 제게 살프시 웃어본 적이 없는 처가 정표로 저고리 고름 대신에 제 이름을 운전수에게 가르쳐준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에 미칠 듯한 춘삼이는 이제라도 무감이를 때리고 강문³⁷을 받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억지로 마음을 돌리려 애썼다. ‘배 안에 든 거야 분명 내 새낀데’ 하는 생각으로. 그뿐 아니라 색시는, 세상살이 밑천인 이 소보다 못지않게 소중한 것이었다.
춘삼이가 잘 알고, 혹시 당해본 일이지만 이 촌의 색시들은 누구나 한때는 정표로 저고리 고름을 뜯거나 속 댕기를 품거나 봄동산에 나물 바구니를 굴려보는 것쯤은 예상사였다. 개중에는 살진 암말같이 체³⁸ 밖을 벗어나 달아나는 색시도 있었다. 그런 색시의 남편과 시부모는 어찌할 도리가 없이 제 고삐를 제 잔등에 얹어두고 요행 철들어 돌아오기를 기다릴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렇듯 한때 애먹이던 색시도 애를 배게 되면, 대개는 추파로 샐쭉하던 눈이 바로 서고 착 비뚜로 쓰던 수건이 제대로 자리 잡히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어머니가 되고, 비로소 처가 되고 마침내는 며느리 구실까지 하게 되고 완전히 청춘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린 색시를 맞아들인 남편과 그의 부모는 처와 며느리가 하루바삐 애 배기를 기다리고, 낳은 후에야 안심했다.
춘삼이도 그런 한 사람으로 지금 그 괴로운 생각을 잊으려고 처의 높은 배를 보고 헛구역 소리를 들으면서 ‘흥 네까짓 놈이 암만 그래 봐라’ 이렇게 생각하면 속이 좀 풀리는 듯도 했다. 그래도 춘삼이는 차차 커 보이는 자동차가 가까워짐을 따라 방아밥을 밀어넣으며 돌아가는 유감이의 눈치만을 살필밖에 없었다. 유감이는 아까부터 자동차가 오는 것을 알았고 또 춘삼이의 심상치 않은 눈초리에 늘려서 방아확밖에는 눈을 두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금녀의 태도가 아슬아슬해서 이마에는 더욱 땀이 솟았다.
점심 먹으러 들어가던 춘삼이는 한 걸음 앞서 갔던 유감이가 물동이를 들고 나서는 것을 보자 저기 오는 자동차를 할끗 보고
“냉수는 오마니가 좀 길으소고래.”
하고 윗목에서 물레질을 하는 늙은 어머니에게 짜증을 냈다.
“내 얼른 길어올라.”
하고 금녀는 동이를 채가지고 바자문을 나섰다.
금녀는 땀이 난 발뒤축에 고무신이 결리지 않고 철덕거리는 것이 성가시고, 치맛자락이 별로 휘감기는 듯 마음이 바빴다. 솜털 끝마다 가는 쌀겨가 달라붙은 뺨에 두세 줄기 땀방울이 흘러서 금녀의 얼굴은 이슬에 젖은 버들개지같이 보였다. 햇빛에 반질반질 윤나는 머릿봉 위에 붉은 꼬들채 댕기가 나뭇새 수수깡 바자의 길을 넘어서 나풀나풀거렸다. ‘벌써 지나가지나 않았나.’ 금녀는 더욱 빨리 걸었다.
자동차는 기다리듯이 우물 둑에 서 있었다. 조수는 버들피리를 만들어 불고 운전수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우물에는 붉은 해가 가라앉고 흰 구름이 떠 있다.
운전수는 사면을 돌아보며
“혼자 나왔소?”
하고 물었다. 조수는 짐짝 저편으로 사라진다. 물을 긷는 금녀 앞에 마주 앉은 운전수는
“내 말대루 평양 가지 응?”
하면서 금녀의 손목을 붙들었다. 그러고는
“꼭이 어느 날이라구 말만 하면 내, 밤에 금녀네 집 뒷메에 가서 기다릴 게.”
대답이 없이 수그리고 있는 금녀의 얼굴을 운전수는 두 손으로 치켜들고 입을 맞추었다. 숨이 막히게 코를 짓눌렀던 운전수의 얼굴이 떨어지자 금녀의 입술은 배시시 웃었다.
“요고.”
이렇게 대담해진 운전수는 다시 금녀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꼭이 작정해 말하면 내 고개 너머 주막에서 자다가 재밤³⁹에 뒷산에 가서 기다릴 테야 응? 자, 나하고 평양 가요.”
“괜히 촌체니 데레다 성 안 갔다 팡가티문 난 어떠카구 흥.”
“내가 금녀를 버려?”
“그럼?”
그 대답을 주저하던 운전수는
“자, 그러문 내가 금녀네 방으로 갈까?”
“싫어. 그래두 난 피양(평양) 갈래.”
이렇게 말하는 금녀는 제가 정말 평양에를 가려는지 알 수 없었다. 혹시 자동차를 타고 훨훨 떠날 듯도 싶은 꿈같은 생각에 그저 운전수의 품으로 기어들었다. 그러한 금녀의 모양을 내려다보던 운전수는
“금녀 새스방하구 딴 방에서 단둘이만 자지? 그럼 오늘 밤에 내 금녀 방으로 갈 테야. 정말.”
“아사요. 그러다 들키문!”
운전수의 말에 놀란 금녀는 금시에 눈이 동그래졌다.
“그까짓 새스방 구실두 못하는 것한테 들킨들 멜 하나?”
“멜 하다니 망신하고 죽게?”
“죽긴 누구한테?”
“그럼 안 죽어?”
이렇게 말하는 금녀는 누구한테 죽을지는 몰라도 죽기는 꼭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런 짓을 하다 들키면 운전수 말대로 새스방 구실도 못하는 울램이 손에도 꼼짝을 못하고 죽을 것 같고 시어머니나 시아버지한테 코를 베이거나 인두로 지지울 것 같고 그렇지 않더라도 망신한 친정아버지나 어머니까지도 저를 죽이고야 말 것 같았다. 혹시 누가 안 죽이더라도 저 혼자 저절로 죽을 것 같기도 했다.
“안 죽구 멀 하구!”
금시에 울 듯한 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금녀의 해쓱해진 얼굴을 본 운전수는
“정말 들켜서 금녀 시애비가 낫을 들고 덤벼들어!”
이렇게 말하며 몸서리를 치듯이 흠칠하면서 금녀의 기색을 살핀다. 몸을 소스라친 금녀는 더욱 눈이 동그래졌다.
“우리 둘이 좋와하다 죽으문 멜 하나.”
이렇게 말하는 운전수는 웃지도 않았다.
“그렇지?”
또 이같이 물으며 그는 금녀를 다시 끌어안으려 했다. 금녀는 운전수가 무서워졌다. 그의 팔을 뿌리치고 일어나려 했다. 운전수는 억지로 금녀를 껴안으며.
“정말이야 나는 금녀 방에 갔다 죽어두 좋와. 오늘 밤에 금녀가 뒷산으로 안 나오문 금녀 방에 가서 문을 두들겨서 금녀 망신이라두 시킬테야.”
이 말에 금녀는 정신이 아득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디 말라구요. 정말. 난 죽어요.”
애원하듯 말하고 간신히 몸을 일으키는 금녀를 노려보며 운전수는 노한 말소리로
“그러게 오늘 밤에 뒷산으로 나오문 무사하구. 내 말 안 들었단…….”
그때 저편에서 조수의 강한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운전수는 말을 마치지 못하고 우물 둑으로 뛰어올랐다. 금녀 새스방이 송아지를 몰고 오는 것이었다. 운전수는 놀란 것이 어이없다는 듯이 한 번 금녀를 돌아보고는 다시 외면하고 서서
“내 말이 거즛말 같으문 저녁에 마당(앞뜰)에 나와 보름아. 이제 갔다 쟁거(자전거) 타구 밤에 꼭 온다.”
혼잣말같이 그러나 마디마디를 떼어서 똑똑히 일러주고는 자동차를 몰아 달아나는 것이었다.
금녀는 설마 운전수가 오랴 하면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저녁을 먹자 신작로가 바라보이는 나뭇새밭⁴⁰에 가서 김을 매는 척 망을 볼밖에 없었다.
아까 물 길으러 갈 때만 해도 단둘이 만나면 좋기만 할 것 같던 그 사람이 지금은 무섭기만 하였다. 그렇게 무서운 사람인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혹시 저를 놀라게 하느라 시치미를 떼고 그러는 것이나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했으나, 새스방이 오는 것을 보자마자 막 말을 더 을러대던 것을 보면 결코 능말이 아니었다. 어린것이라고 저만치서 보고 있는 새스방을 사람값에 치지도 않는 모양인 운전수는 저까지도 수모하는 것 같아서 금녀는 분하기도 했다. 그러한 운전수는 제가(금녀) 망신을 하거나 코를 베이거나 죽거나 하는 것을 도무지 상관한 사람 같지도 않았다. 오늘 밤에는 무슨 일이 나고야 말 것이 무서웠다. 유감이 형애와 모면할 의논을 해볼까 하는 생각에 그 집을 바라보았다. 멀리 바라보이는 그 집 마당(앞뜰)에는 유감이 남덩이 비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뵈불⁴¹을 놓는 모양으로 마당 한가운데서 펄떡 불길이 일어났다. 이글이글 피어오를 때마다 마당쓸이⁴²를 불에 던지고 섰는 유감이 얼굴이 빤히 보이다가는 껌뻑 냇속에 사라지고 마는 것이었다. 또 불길이 환히 일어났다. 마주 선 두 사람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다. 유감이만 있으면 몰라도. 그렇더라도 저를 철없이 여기는 눈치인 유감이가 금녀에게는 시어머니 못지않게 어렵게 생각되었다. 의논을 한대도 ‘네 봐라 싸지’ 할 뿐 유감이도 별도리가 없을 것 같았다. 불빛을 보던 눈에 더욱 어두워진 벌판에서는 머구리⁴³ 소리 만 들렸다.
농 걸쇠 같은 초승달에 거울 조각같이 빛나는 앞벌 논에서는 논물이 와글와글 끓어오르는 것같이 머구리가 울었다.
금녀는 다시 “설마 올라구” 중얼거리면서 끝없는 머구리와 깊어가는 어둠 속에 신작로 꼬리가 사라진 저편에 동트개⁴⁴ 하늘같이 희끄무레한 불빛을 바라보았다. 밤마다 밤이 깊어가卑 새훤한⁴⁵ 화광이 서리는 그곳이 성안이라는 말은 들으면서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금녀에게는 한없이 멀어 보이는 곳이었다.
지금도 차차 더 훤해가는 그 화광을 바라보는 금녀의 눈에 작은 불똥이 이리로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담뱃불이 그렇게 빨리 걸을 수는 없었다. 반딧불이 그렇게 붉을 리는 없었다. 그것은 자전거 불이었다.
분명히 운전수라고 생각한 금녀는 옛말에 들은 호랑이나 만난 듯이 집으로 달아올밖에 없었다.
바주문 안에 들어서자
“새박(새벽) 밥 할레 어서 일즉아니 자라.”
하는 시어머니 말소리가 들리고는 그 방의 불은 꺼지고 말았다.
제 방으로 들어온 금녀는 벌써 잠든 새스방 옆에 주저앉았다. 이것(새스방)이 유감이 남덩 같으면 오늘 낯에 운전수의 말을 듣지는 못했더라도 그 눈치를 못 챘을 리가 없고 그때 벌써 벼락이 났을 것이다. 금녀는 오히려 그편이 나을 것 같기도 했다. 지금 운전수가 이 뒷문에 와서 똑똑 두들기고, 열어보고 안 열리면 덜컹덜컹 밀어보고, 마침내 금녀 금녀 부른다면 그 문을 안 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쑥 들어선 운전수는 와락 덤벼들고 저는 끽소리도 못하지만 이 비좁은 단칸방이라 아무리 굿잠⁴⁶을 든 새스방이라도 깰 것이요 깨기만 하면 고함을 치거나 무서워서 와 울거나 하여 시아버지가 낫을 들고 건너오고…… 이런 생각이 눈에 선히 벌어지는 금녀는 훅 불을 끄고 이불에 얼굴을 묻고 엎드렸다. 한참 동안은 머리 속까지 캄캄하였으나 다시 살아나는 생각은 제아무리 문을 두들겨도 죽었소 하고 가만히 있을까? 그래도 그냥 문을 흔들면 그제는 조죽놈(도둑놈)이야 하고 방문을 차고 시어머니 방으로 갈까? 이러한 제 생각을 들여다보듯이 숨을 죽이고 엎뎌 있는 금녀는 그러나 빤히 그 사람인 줄 알면서 도둑놈이야 소리가 나올 것 같지 않았다. 설사 그래서 운전수가 달아난대도 색시 방에 왔던 놈이 심상한 도둑놈이 아니라고 서두르는 시부모와 동리 소문이 망신스럽고 혹시 운전수가 붙들려서 금녀가 오늘 밤에 제 방으로 오래서 왔다고 하면 거짓말은 거짓말이지만 저는 안 그랬다고 변명할 수 없을 것도 같았다. 아무리 변명한대도 낮에 한참이나 늦어서야 물을 길으러 갔을 때 “너 채심⁴⁷해라” 하던 유감이부터 제 말을 믿어줄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유감이 남덩도 우믈에 모이는 여인들도 누구나 제 말을 믿을 것 같지 않았다. 남들이 안 믿는 것은 고사하고 그 사람을 오라고 안 그랬다는 제 말을 저도 못 믿을 것 같았다. 이렇게 꼭 오늘 밤에 부득부득 온다는 것이 싫고 남한테 들킬 것이 무섭기는 하지만 어느 날일는지는 몰라도 어느 날 밤에는 꼭 만날 듯이 기다린 그 사람이 제가 오래서 왔다고 거짓말을 한대도 안 그렇다고 할 수는 없을 것도 같았다.
달도 지고 말았는지 뒷문 창에 비치던 아카시아 그림자도 사라졌다. 그저 컴컴한 뒷담 구석이 희끄무레해 보였다. 깊어가는 밤에 그 뒷문을 바라보고 귀를 세울밖에 없는 금녀는 그 창밖에서 버석버석 발소리가 나고 검은 그림자가 마주 서서 방안을 엿보는 것만 같았다.
갑자기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들어도 꼭 뒷산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금녀는 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운전수가 이 방으로 오기 전에 제가 나가기로 결심하였다.
문밖에 나선 금녀는 이슬에 젖은 아카시아 잎이 뺨에 스치고 아카시아 가시가 치마에 걸리는 것도 모르고 걸었다. 무서운 줄도 모르고 슬픈지, 기쁜지도 알 수 없었다. 운전수가 그리운 밤마다 이 길을 걸어가는 재미있던 꿈을 깨트린 듯이 허전하지만 그래도 늘 걷던 길을 가는 듯이 걸어가는 금녀는 흐르는 줄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얼마 안 가서 이리로 오던 운전수와 마주쳤다. 금녀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운전수가 껴안으며
“낮에는 혼났지!”
하고 그래야만 금녀가 이렇게 나올 줄 알고 그랬다는 운전수의 말도 금녀는 잘 들리지 않았다. 그저 입술에 닿은 운전수의 입과 코에서 얼굴에 끼얹는 듯한 술냄새에 구역이 나고 어지러워서 정신이 흐려져 갈 뿐이었다.
금녀가 집에 돌아오기는 닭이 세 홰나 운 때였다. 이슬에 젖고 풀물에 더럽힌 보손⁴⁸과 옷을 감추고 난 때에 건넌방에서는 시어머니의 기침 소리와 문턱에 떠는 시아버지의 대통⁴⁹ 소리가 들렸다. 부엌에 나온 금녀는 팥을 솥 안에 안치고 아궁 앞에 앉아서 불을 지폈다. 금녀의 손등과 머릿봉에서는 연기같이 김이 올랐다. 찬 이슬에 스치어 빨갛게 된 손등과 팔목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보고 있는 금녀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흘렀다.
이 봄도 다 가서 늦게 피는 아카시아꽃마저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금녀는 종시 자리에 눕게 되었다. 얼마 전부터 아랫배가 쑤시고 허리가 끊어내고 참을 수 없이 자주 변소 출입을 하게 되었다. 금녀는 제 병이 무슨 병인지는 알 수 없으면서도 제가 앓는 것을 누가 알 것만이 걱정이었다. 그래서 억지로 참아가며 더욱 부지런히 일을 하려고 애써보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프기만 하던 배가 갑자기 붓기 시작하였다. 걸으려면 높아진 배를 격하여 보이는 발끝이 안개 속이나 구름 위를 걷는 것같이 허전하고 현기가 났다. 아침이나 낮에도 금녀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무엇이나 다가오는 어두움과 싸우는 저녁노을같이 누렇고 희미하였다. 금녀는 이를 악물고 무슨 병인지 모르면서도 숨기기만 하려고 애썼으나 더 참을 수 없어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금녀가 죽기 전날 저녁에 금녀네 시집 송아지가 죽었다. 그날 아침에 금녀의 새스방이 끌고 나가서 동둑 아카시아나무에 매었던 송아지가 갑자기 죽었다. 시어머니는 세상살이 반 밑천을 잃었다고 에누다리⁵⁰를 하며 통곡했다. 시아버지는 소를 돌보지 않았다고 아들을 때렸다. 온 동리에서는 알 수 없는 우역 〔牛疫〕이 생겼다고 떠들었다. 그 이튿날 아침에 장거리의 순사와 면소 농회 기수가 출장하였다. 죽던 날 아침까지도 새김질을 잘하고 웅장하게 움머 소리를 지르던 송아지가 갑작스럽게 꺼꾸러진 병통을 알 수가 없었다. 송아지를 매두었던 풀밭을 낱낱이 뒤져보기도 했다. 마침내는 무슨 쇠꼬챙이나 부둥가리⁵¹를 삼켜서 창자가 상한 것이나 아닌가 하여 송아지의 배를 갈라보았다. 그러나 창자 속에는 아직 소화되지 않은 풀잎과 아카시아나무 껍질이 가득 차 있을 뿐 죽은 원인이라고 할 만한 상처는 없었다.
이 뜻하지 않은 소의 변사로 온 동리가 불안에 싸여 떠들고 있는 저녁에 금녀는 죽었다. 부중⁵²이라는 집증으로 한방의가 처방한 약이 화로 위에서 쓴 풀뿌리 냄새를 피우며 끓는 소리를 들으면서 금녀는 죽었다. 비가 한 소나기 쏟아지고 멎어서 초저녁부터 앞벌 논의 머구리 소리는 한층 더 요란한 저녁이었다. 빗방울이 뚝뚝 듣는 집 뒤 아카시아나무 아래서는 아직도 짝을 찾는 봄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는지 못 듣는지 금녀의 흐려진 눈에서는 눈물이 그치지 않고 흘렀다. 곁에서 유감이가 잡고 있는 손을 끌어서 가까이 오라는 눈치를 보였다. 그러고는 죽을 힘을 다 들여서 제 속옷과 바지를 갈아입히지 말고 묻어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송아지가 죽은 원인은 밈도는 아카시아 껍질을 먹은 탓이라는 기사가 난 신문이 구장집에 온 날 금녀의 상여는 나갔다.
온 동리 사람들은 심지도 않고 접하지도 않았지만 산에나 들에나 마당귀에나 심지어 부엌 담 안에까지 뻗어 들어온 아카시아나무를 새삼스럽게 흘겨보며 소와 돼지를 경계하였다.
아카시아는 본시 아메리카의 소산이라는 신문 기사를 들은 그들은
“거 흉한 놈의 나무 같으니라구. 아메리카라니 양코대 사는 미국 말이지? 어떤 놈이 갖다 심었는지 미국서 예까지 와서 우리 동네 소를 죽여! 억울하지.”
“억울한 말 다 해서. 사람의 신수라니. 생때같은 송아지가 죽고 엊그제 다려온 메누리가 죽구.”
“그러게 말이야. 소는 미국 아카시아를 먹구 죽었대두 꽃 같은 색시는 왜 죽었을까.”
이러한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금녀의 상여를 멘 그들은 신작로를 걸어갔다. 상여 뒤에서는 금녀의 친정 어머니가 통곡을 하였다. 시어머니도 울었다. 유감이는 그 뒤에서 치마폭에 얼굴을 파묻고 속으로 울며 따라갔다. 늙은 여인들은 쓰러질 듯한 유감이를 부축하며
“오죽하갔네 정말 쌍둥이같이 지나다가. 그래두 참어야 하느니라.”
이렇게 유감이를 위로하였다.
뒤에서 자동차의 경적이 들린다. 금녀의 상여를 멘 사람은 신작로 한편으로 길을 비키려 하였다. 그중에 상여 앞채를 멘 춘삼이가
“네놈의 자동차 어떡하나 보게 가든 대루 가자꾸나. 쌍놈에게.”
하고 버티었다.
“그래볼까.”
“자, 그래.”
젊은 축 몇 사람이 부동하고 버티었다. 그 바람에 금녀의 상여는 모로 기울어진다. 뒤에 따라오던 금녀의 시삼촌이 따라와서
“성분(成墳)이나 하구는 한잔 도이 먹을데 그러지 말구 어서 곱게 모시라구.”
하였다.
“누가 술 못 먹어 그러나 흥.”
춘삼이는 더욱 밸이 울뚝했으나 길을 비킬밖에는 없었다. 자동차는 상여를 지나치는 동안 속력을 줄일밖에 없었다. 갑자기 유감이의 울음이 와하니 터져 나왔다. 모두 눈이 둥그레졌다. 자동차는 상여를 지나치자 달아났다. 회오리바람이 지나간 것같이 누런 먼지가 일어났다. 금녀의 상여는 그 먼지 속으로 더벅더벅 걸어갔다.
“이전에 없든 병 두 다 서양서 건너왔다거든.”
아까 꽃 같은 색시는 왜 죽었을까 하던 사람이 먼지에 막혔던 말문을 열었다.
“그놈의 병두 자동차 타구 왔다든가?”
이렇게 춘삼이가 한마디 툭 했다.
-끝-
2016년 4월 21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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