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 -
제작, 연출, 감독, 작가의 역할을 맡은 사람들은 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무수한 지문들과 배경 등을 설정하여 각본을 준비한다. 만약, 이들이
제각각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다르다면 아무 맛도 없는, 혹은 어느 한쪽의
간이 짜거나 달기만 한 먹음직스럽지 못한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실로폰 소리처럼 맑게 띵동거리며 음악이 흐르기 시작한다. 주로 보아
오던 외국 애니매이션과는 달리, 정감이 넘치면서도 세세한 움직임들이
무수히 많은 컷으로 그려졌음을 짐작케 하는 애니매이션 속에 내 어린
시절이 들어있다.
자전거, 굴렁쇠, 달팽이, 모자 등의 소품과 어두운 소재로 장식된
와니의 집 거실은 그래서 더욱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곱살맞다.
단조로운 듯 하면서도 그들의 직업에 어울리는 듯 창의적인 이미지의
단색 티셔츠, 그리고 와니의 작은 전설...
마치 감자, 고구마, 옥수수, 밤 이런 곡식들에서 느끼는 단백한 맛.
감미료를 첨가하거나, 모양도 내지 않고 그냥 솥에 쪄서 씹다보면
입 안에 감도는 낯익은 향기...
녹말같은 영화, 와니와 준하.
와니의 집 -
동거라는 소재는 아무래도 전통적 이미지에 비추어 볼 때 아직은
불량스럽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거기에 이복동생과의 사랑까지.
그런데 녹말같다는 이 영화에는 그런 거부감이 없다.
먼저 나는 김희선이라는 배우가 나오는 영화에 대한 신뢰감이 없다.
그녀는 튀는 미모 탓인지 드라마나 영화에서 늘 튄다. 아무리 예쁜
꽃이라 해도 혼자 별난 색깔과 향기를 지니고 있으면 꽃밭의 어우러짐을
망쳐 버리는 것처럼 그녀는 영화 속에서 유독 따로 움직이고 있는
느낌이 들게 한다.
또한, 그녀는 시나리오 선택에 영 서투르다. 사람들은 어느 배우에
대해서는 '그 배우가 나오는 영화라면 볼만 할거야' 하는 식의 배우를
통한 영화선택을 하기도 한다. 나의 기호가 때로는 어느 배우의 색깔과
맞아 떨어져서 배우의 선택을 통해 나 또한 영화에서 내뿜어져 나오는
향기를 더욱 진하게 맛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김희선은 그녀의 선택에 믿음을 가지게 하는 배우는 아니다.
우연히 비디오를 통해 보게 된 이 영화의 여주인공이 김희선이라는
얘기를 듣고 나는 다른 일이나 할까, 생각했었다. 내가 계속 자리를
지키게 된 것 첫 부분을 장식한 애니매이션에서 였으며, 와니와 준하의
집을 비추는 카메라의 앵글과 조도 때문이었다.
나는 간혹 시나리오의 내용을 떠나서 카메라의 움직임과 각도, 연출자의
세련됨을 통해 영화를 끝까지 보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볼수록 이 영화는 참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김희선(와니 역)은 적당히 물먹은 먹빛으로 알맞은 조도를 그려내는
매력있는 연기를 했다. 그리고 어두운 실내(와니와 영민의 사랑은 작은
전설처럼 준하에게 그리고 영화를 보고있는 나에게 감추어져 있다.)에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처럼 강희와 준하의 시선을 밟으며 우리는
조금씩 알아간다.
주진모(준하 역)와 조승우(영민 역)라는 배우의 매력 또한 대단하다.
수수하면서도 정 많게 생긴 주진모는 <무사>에서 열연을 했었으며,
조승우는 순수한 청년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이미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에서 이도령 역할을 맡아 데뷔작이 맞냐는 칭송을 들은 바
있었고, 1998년 학전소극장에서 공연한 <의형제> 무대에서도 그를
만난 적이 있다. 귀여우면서 개성있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최강희(소양 역)도 반가운 조연이었다.
줄거리 -
함께 동거를 하고 있는 와니와 준하는 깨가 쏟아지게 즐겁고 좋은
관계는 아니다. 와니는 무언가 경계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애니매이터로써 또한 그만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다음 단계의 부서로
옮기라는 선배와 동료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가장 힘든 기초 밑그림
작업에만 몰두한다.
준하는 자주 오류메세지가 뜨는 노트북에 영화에 꿈을 키우는 가난한
시나리오 작가다.
과거와 현재가 오버랩되어지는 화면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와니의 지난
날들이 조금씩 보여지고 영민의 귀국전화와 갑자기 찾아온 손님 소양에
의해 이복동생과의 사랑이야기가 애니매이션처럼 순수하게 펼쳐진다.
애니매이션에서는 준하의 어린시절이 보여지며, 소극적이었던 준하의
모자가 바람에 날려 높은 나뭇가지에 걸린 것을 파란대문집 소녀의
도움으로 꺼내게 됨으로, 와니는 동화단계로 일을 옮겨가면서 갈등과
마음 속의 경계를 해소시킨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며 이야기를
마친다.
감독, 각본 : 김용균
연출 : 이선미
촬영 : 황기석
음악 : 김홍집, 강민
애니매이션 : 이종혁
출연 : 김희선, 주진모, 조승우, 최강희
음악은 <와니와 준하> O.S.T 중 와니와 준하의 Theme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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