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포대의 편액 제일강산(第一江山)은 몇 사람이 썼나
강릉 경포대는 경치가 아름답고 전망이 좋아, 예부터 갖가지 전설과 일화가 깃들인 명승지다. 그런데 경포대의 누대 안으로 들어가면 천정에 제일강산(第一江山)이란 편액이 달려 있어서 눈길을 끈다. ‘第一江山’이란 네 글자 중, 앞의 두 자 ‘第一’과 뒤의 두 자 ‘江山’의 글씨체가 서로 다른데, 앞의 두 글자는 초서체로 씌어 있고, 뒤의 두 글자는 해서체로 씌어 있기 때문이다.
아래의 사진이 바로 그 편액이다.
이에서 보는 바와 같이, ‘第一’과 ‘江山’의 글씨체가 다르다. 그곳의 문화 해설사를 비롯한 모든 분들이, ‘第一’과 ‘江山’의 글씨체가 다른 연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원래 주지번(朱之番)이 같은 글씨체로 넉 자를 썼는데, 중간에 어떤 일이 생겨, 끄트머리 두 글자 즉 ‘江山’을 잃어버려, 후세에 다른 사람이 ‘江山’ 두 자를 새로 써 넣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말한다. 앞의 두 자는 초서체로 쓰고, 뒤의 두 글자는 해서체로 씌어 있는 것을 그렇게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에는 상당한 의문점이 있다. 이런 주장을 하게 된 이유는, 이 편액이 여러 조각의 판자를 이어 붙인 것에 착안한 것 같다. 즉 원래 하나로 된 현판이 중간에 동강나서, 이를 보수하면서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현판 조각의 크기가 차례대로 반복되어 있는 규칙적인 배열임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앞의 ‘第一’이 쓰인 4조각과 뒤의 ‘江山’이 쓰인 4조각의 너비가 배열순서에 따라 일치한다. 그리고 앞의 판자 4쪽에 두 자를 쓰고, 뒤의 판자 4쪽에 두 자를 써서 나란히 배치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이어붙인 판자의 너비가 규칙적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이 편액은 한 개의 판자로 된 것이 아니라, 8개의 판자를 이어 붙여 만든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뒤의 두 자 즉 ‘江山’도 원래의 조각판에 쓰였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第一’이란 글자판도 원래 하나의 판이라거나, 부서진 판목을 수리하여 붙인 것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만약에 기존의 설명대로라면, 본래의 현판이 최소한 8조각으로 파손되었다는 얘기가 되는데, 현재의 편액을 얼핏 살펴보더라도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그럼 여기서 이 현판에 대해 참고가 될 만한 사진 한 장을 보기로 한다.
아래 사진의 글씨를 보면, 이 문제에 대한 상당한 시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진은 어느 지인이 공자의 유허지인 곡부와 태산을 기행하고 찍은 ‘第一山’이라고 쓴 비석이다. ‘第一山’은 중국인들이 신성시하는 태산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 글씨를 보면 앞의 ‘第一’ 두 자는 초서로 쓰고, 뒤의 ‘山’ 한 자는 해서체로 되어 있어서, 글씨체가 경포대의 ‘第一江山’과 너무나 유사하다.
이 ‘第一山’이란 글은 미불(米芾)이란 사람이 쓴 것이다. 미불은 북송 시대의 유명한 서예가로, 자는 원장(元章)이며 호는 녹문거사(鹿門居士), 양양만사(襄陽漫士), 해악(海岳), 남궁(南宮) 등으로 썼으며 채양, 소동파, 황정견과 함께 북송 4대가로 불리는 사람이다.
그러면 미불이 쓴 이 ‘第一山’과 경포대의 현판 ‘第一江山’과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이 ‘第一江山’이라는 글씨체의 현판은 원래 평양의 영광정에서 사용했다. 영광정에서 처음 이 현판을 만들 때, 第一山 석 자는 미불의 ‘第一山’을 탁본해 와서 그대로 쓰고, 거기에 없는 ‘江’ 자만 새로 써 넣어 제작하였다. 조선 중기의 유명한 서예가인 이광사(李匡師)의 원교서결(圓嶠書訣)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영광정의 ‘第一江山’ 편액은 바로 미원장(米元章)의 석각서를 탑본하여 판각한 것이다. 그 중 ‘江’자는 본래 없어서 주지번(朱之蕃)의 글씨로 채웠으나, 둔열하여 썩 어울리지 않았다.
백하(白下)가 이를 바꾸어 썼으나, 오히려 주지번보다 못하니 애석한 일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주지번은 호를 난우(蘭嵎)라 하는 사람으로, 명나라 때의 뛰어난 서화가다. 그리고 백하(白下)는 윤순(尹淳)이란 사람의 호인데,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글씨의 대가로, 시문과 그림에도 능하였다. 이광사도 그의 문하생이다.
이로 보건대 평양 영광정의 ‘第一江山’ 현판은, ‘第一山’세 글자만 미불의 석각서를 탁본하여 그대로 사용하고, 거기에 없는 ‘江’자는 처음에 주지번이 썼는데 그 글씨가 별로 좋지 못하므로 그것을 버리고, 뒤에 윤순이 새로 써 넣어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주요한 것은 강릉 경포대의 제일강산 현판은, 바로 이 평양 영광정의 현판을 모본(模本)으로 삼아 그대로 제작했다는 사실이다. 1953년경에 경포대 현판을 만들 때, 명필가로 알려진 이희수라는 분이 영광정 현판 4자를 한 자씩 4장에 그대로 모사(模寫)했던 것을 가져와 만들었다. 그런데 경포대 현판을 만들면서 도중에 ‘江’ 자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강릉 지방의 한 서예가가 ‘江’ 자를 새로 써서 제작하였다. 이렇듯 강릉 경포대의 제일강산 현판이 만들어진 과정은 그 곡절이 자못 흥미롭기까지 하다.
요약컨대, 지금의 경포대 ‘第一江山’ 현판은, ‘第一山’ 3자는 미불의 석각서 탑본이 모본으로 사용되었고 ‘江’ 자 1자는 강릉의 한 서예가가 쓴 글을 사용하여 제작되었다.
그러므로 경포대의 ‘第一江山’이란 편액은, 세간의 말처럼 뒤의 두 글자가 쓰인 현판 부분을 잃어버려 다시 쓴 것도 아니며, 이에 따라 앞의 두 자와 뒤의 두 자를 각각 다른 사람이 쓴 것도 아니다. 결론지어 말하면, ‘第一江山’ 현판의 글은 ‘第一山’을 한 사람이 쓰고, ‘江’을 다른 한 사람이 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