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 김대건 -
☆ 2015년 나해 7월5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청주]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
청주교구 청주 성모병원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제1독서 2역대 24,18-22
† 제2독서 로마 5,1-5
† 복음 마태 10,17-22
오늘 전례
◎ 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우리나라의 첫 사제로서 이 땅의 복음화를 위하여 꽃다운
나이에 피를 흘리신 성 김대건 신부님은 지금도 우리의 믿음이 뜨겁게
불타오르기를 하느님께 전구하고 계십니다. 순교자들의 피를 통하여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오늘의 미사를 봉헌합시다.
★ 여호야다 사제는 아탈야를 몰아내고 요아스를 임금으로 세웠다. 그러나
여호야다의 아들 즈카르야가 우상을 숭배하는 요아스에게 하느님의
심판을 전하자 요아스는 그를 죽인다. 요아스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은 것이다(제1독서).
★ 바오로 사도는 역경과 환난을 겪으면서도 오히려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환난은 언젠가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갖게
하며, 그 희망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제2독서).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박해를 받게 되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복음).
◈ 오늘의 묵상
몽골의 첫 신학생이 한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올해 부제품을 받았고,
두 번째 신학생도 한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김대건 신부님과 최양업 신부님을 자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박해 시대에도 우리나라에는 선교사들이 아주 없지는 않았고 지금
몽골에도 많은 선교사들이 있지만, 한 나라에서 그 나라 출신 첫 번째
사제는 그 나라 교회 전체를 위하여 참으로 소중한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공부하려고 몽골에서 파견된 첫 신학생들은 몽골 교회의
미래를 짊어진 이들입니다. 열심히 공부하는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몽골에 돌아가 돌보아야 할 후배들과 신자들에 대한 강한 소명감과
책임감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도 이와 같으셨을 것입니다. 최초의 신학생으로 마카오에
유학하여 공부하시면서, 늘 우리 교회의 앞날을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박해받는 교회, 목자 없는 양 떼! 이 땅에 돌아와서는 사제로서 짧은 삶을
사시고 순교하셨으니, 신앙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영광이야 아쉬움이
없으셨겠지만 이 양 떼를 두고 가시는 간절한 마음은 어떠하셨을까요?
김대건 신부님이 피로 순교하셨다면,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님은
우리나라 전국 각지에 복음의 씨를 뿌리고 4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땀의 순교자, 착한 목자이셨습니다. 두 분 신부님들이 오래 사셨다면,
사제 부족으로 극심한 어려움에 처해 있던 초창기 우리나라 교회가 뿌리를
내리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갖게 됩니다. 아주
인간적인 생각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뜻은 이와 달랐습니다. 우리 인간은 통계나 경험을
토대로 만사를 판단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지만, 하느님의 계획과 섭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뜻과 우리 생각이 다를 때, 그분의 뜻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 이것이 바로 신앙이지요.
한국 교회가 오늘과 같은 모습으로 성장한 것은 순교자들의 피와 전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박해가 없는 오늘날, 외형적으로 크게 성장한 교회가
순교 정신을 잊고 복음에 대한 충성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오늘
특별히 김대건 신부님의 전구를 청해야 하겠습니다.
- 매일 미사 -
◈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5년 나해 7월5일 주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리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이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로마 5,2)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믿음의 사람이기에 자랑스러워 하십시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의 믿음 때문에 당신 사랑을 충만히
여러분에게 부어주셨기에 어떤 환난이 다가와도
희망을 잃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믿음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조그마한 어려움이나
환난이 닥쳐오면 절망에 빠져 허덕이게 됩니다.
신앙인과 비신앙인의 차이는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려움을 겪고 있나요? 환난이 닥쳐 왔나요?
그 때문에 죽을 지경이고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나요?
하느님이 원망스럽고 내 꼬라지가 비참하나요?
아니지요?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하느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저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을 믿고 있지요?
그러니 어떠한 상황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하느님께서 나를 붙잡아 일으켜 주실 것을 기다리시겠지요?
여러분이 그런 분이시기에 축복합니다.
믿음과 사랑과 희망의 사람이기에 진정 하느님의 사람입니다.
그 축복을 되새김하는 복된 주일 되소서~~^^
- 작은 형제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한상우 바오로 신부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5년 나해 7월5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 복음 마태 10,17-22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성직자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오늘의 제 모습을 보게됩니다.
본받을 분이 있다는 것은 언제나 행복한 기쁨입니다.
머물렀다 떠나는 우리들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가치가 무언지를
다시 오늘의 현실에서 물어보게 되는 대축일입니다.
죽음은 결코 존재의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가치를 향한 첫걸음은 언제나 새롭고도 두렵기만합니다.
두려움속에서도 나아갈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고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외롭고 고독한 시간들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견디어 내었기에 희망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희망으로 그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사람답게 살다가 간다는 것은 무엇을 위해
우리가 살아야 할지를 우리가 안다는 것입니다.
절망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했으면 좋겠습니다.
분명 우리에게는 희망은 있습니다.
끝까지 견디어 내신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는
분명 한국 성직자들의 희망의 토양입니다.
희망에 충실했던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처럼 우리들또한 희망에
충실한 신앙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모두는 서로에게서 그리스도의 희망을 일깨워주는
희망의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희망의 길을 다시금 힘차게 걸어가는 신앙인이 되게 하여 주소서.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서울]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2015년 나해 7월5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리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제1독서
<너희는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즈카르야를 살해하였다(마태 23,35 참조).>
◎ 역대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24,18-22
제2독서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5,1-5
복음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7-22
한국의 여자 골프는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국제 대회에서 1등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골프가 세계적인 수준이 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한
선수가 있습니다. 1997년 우리가 IMF로 고통을 받고 있을 때, 위로와
용기를 주었던 박 세리 선수입니다. 당시 박 세리 선수의 맨발 투혼은
공익 캠페인에 자주 등장했습니다. 미국의 프로야구는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그런 미국의 프로야구에 한국인 선수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런 모습을 당연한 것처럼 보고 있지만 맨 처음 미국
프로야구에서 한국인의 존재감을 드러낸 선수가 있습니다. 바로 박 찬호
선수입니다. 박 세리와 박 찬호는 비록 스포츠의 세계이지만 우리도
세계적인 수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저는 또 한 분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노벨 평화상을 받았던 김 대중 전
대통령입니다. 노벨상은 과학 분야에 주로 주어지는 상입니다. 하지만
과학의 발전은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 쓰여져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고,
그래서 노벨상의 가장 큰 영예는 바로 노벨 평화상입니다. 그런 상을
우리의 대통령께서 받았다는 것은 제게는 큰 기쁨이었고, 우리나라의
국제적인 위상에도 큰 도움이 되는 쾌거였습니다. 김 대중 대통령은
남아공의 만델라 대통령처럼 자신을 박해한 사람들을 용서하였습니다.
평화는 나에게 잘못한 이들을 용서하는데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남, 북
정상회담을 이루어냈습니다. ‘햇빛정책’이라는 표현처럼 북한의 닫힌 문을
조금씩 열었습니다.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남과 북의 문화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국제사회는 그런 김 대중 대통령의 공로를
인정하였고, 노벨 평화상을 수여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노벨 평화상을
받는 한국인들이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김 대중 대통령께서 길을
터놓았기 때문에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사제인 저에게 박 세리, 박 찬호, 김 대중 대통령보다 더 멋진 분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축일로 지내는 ‘김 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입니다.
한국인 최초의 사제인 김 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달릴 길을 충실하게
달렸고, 순교로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비록 삶의 길이는
26년으로 짧으셨지만 삶의 의미는 160년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습니다.
김 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삶은 한국인 두 번째 사제인 최 양업 토마스
신부님에게도 이어졌습니다. 김 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 피의 순교를
하셨다면 최 양업 토마스 신부님께서는 땀의 순교를 하셨습니다. 박해의
칼날을 피하시면서 조선 팔도를 다니셨고,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신자들에게는 위로와 용기를 주셨습니다. 최초의 한국인 사제들이 이렇게
모두 훌륭하게 사제의 직무를 수행하였으니, 제게는 큰 자랑이며,
기쁨입니다.
우리는 신앙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습니다. 공기를 마음껏 마시듯이,
우리는 아무런 걱정과 두려움 없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후배들인 저희 사제들은 천국에서 김 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 가슴
아파할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떤 일들이 있기에 그럴까요?
첫째는 ‘도전의식’이 부족합니다. 현실에 안주하려는 사제들이 많습니다.
본당이라는 틀에 머물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과감하게 선교를 떠날
수 있어야 합니다. 본당 이외의 곳에서도 사목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고을로도 떠나야 합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습니다.’ 본당 안에서도 주일에 미사 참례
오는 신자들만을 보고 만족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본당 안에는 ‘쉬는
교우, 비신자, 독거노인, 환자’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을 찾아가는
사목이 더욱 필요할 때입니다.
둘째는 ‘섬기려하기 보다는 섬김을 받는데 익숙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토록 경계하셨던 바리사이파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은 지키지
않으면서 신자들에게 지킬 것을 강요하는 율법주의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섬김을 받는데 익숙해지면 섬길 수 없는 분들에게 가까이 갈 수 없기
마련입니다. 고난의 현장, 아픔의 현장, 소외된 이들과 가까이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황님께서는 비록 상처를 입더라도, 흙이 묻더라도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곳이 사제들이 머물
곳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권위를 갖기 보다는 권위적’으로 살고 있습니다. 참된 권위는
섬김과 나눔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권위적인 삶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는 삶입니다. 말을 함부로 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고, 신자들의
눈높이에 맞추지 않고, 자신의 입맛대로 살려는 것입니다. 세상은 손님이
짜다면 손님의 기준에 맞추어서 음식을 다시 만들어 줍니다. 과연 사제들이
그렇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넷째는 ‘말씀선포’의 소중함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말씀선포는 교회가
사제에게 맡겨준 거룩한 직무입니다. 그러기에 사제는 말씀을 선포하기
전에 깊이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온 몸으로 묵상해야 합니다.
세상의 학문도 공부해야 합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들의 아픔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자신 또한 말씀이 이끄는 데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살아있는 강론, 감동을 주는 강론, 메마른 대지에 단비를 주는
깨우침의 강론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김 대건 안드레아 사제처럼 지금 순교하는 삶은 살지 못한다 할지라도
‘평신도들이 바라는 사제’로서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침묵 속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사제
강론 준비를 충실하게 하는 사제
본당 재정에 투명한 사제
교우들에게 겸손한 사제
가난한 이들을 먼저 찾는 사제
죽기까지 사제직에 충실한 사제”
저 또한 그렇게 살도록 다짐하면서 김 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축일을 지내려고 합니다.
사제들을 위해서 기도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서울] 세상과 다른 사랑
민경일 신부(재단법인 바보의나눔 사무총장)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5년 나해 7월5일 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마태오 복음 10장 17-22절
세상과 다른 사랑
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우리나라의 첫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기리는 대축일입니다.
사제로서 김대건 신부님의 삶은 무척 짧았습니다. 서품 후 불과 1년
남짓의 사제 직무를 수행하고 순교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일 년은 불꽃과도 같은 일 년이었습니다.
신부님이 목숨을 바쳐 증거한 하느님의 사랑은 지금도 한국 가톨릭 신앙
안에서 아름답게 꽃을 피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 사도들의 시대부터 교회의 위기는 곧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로마에서 박해가 시작될 때, 사도들은 곳곳에 퍼져 숨어 지낼 수밖에
없었지만, 뿔뿔이 흩어진 사도들이 곳곳에서 복음을 전함으로써 오히려
복음이 널리 퍼지게 된 계기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복음이 가장 모진 박해를 받던 그 순간이 어쩌면 모든 민족에게 가장
복음을 잘 전할 수 있었던, 가장 위대한 증언을 할 수 있었던 기회가 된
것이었죠.
우리가 순교자들을 기리는 건 그들과 같은 증거의 삶을 살기를 바란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세상이 가장 비복음적이라 느껴질 때, 세상에서 가장 사랑이 없다고
느껴지는 바로 그때, 그 순간이 바로 우리에게는 기회일 수 있습니다.
그때가 바로 진정한 사랑, 세상과는 다른 사랑을 우리가 증언하고 보여
주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을 기리는 오늘, 나 자신은 과연 세상에 묻혀,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가치만을 추구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그러한 세상 한가운데에서도 이웃을 돌봄으로써
사랑을 증거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일 것입니다.
◎ 우리의 순교자들에게 감사하면서도 내 욕구만을 만족시키는 세상적
삶만을추구한다면, 그것처럼 이해 안 되는 일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
- 민경일 아우구스티노 신부(재단법인 바보의나눔 사무총장) -
◈ [서울] 한국 대표성인 24살 김대건 신부
2015년 나해 7월5일 성 김대건 안드리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제1독서
<너희는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즈카르야를 살해하였다(마태 23,35 참조).>
◎ 역대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24,18-22
제2독서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5,1-5
복음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7-22
한국 대표성인 24살 김대건 신부
우리나라를 전 세계에 좋게 알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어 고맙습니다.
그런 분들 중에서 저는 한국의 대표성인 김대건을 먼저 떠올리곤 합니다.
1821년 생,1845년 8월 17일 상하이에서 서품, 1846년 9월 16일 참수.
해외유학에서 라틴어 불어 영어 중국어 세계상황을 배우고 귀국하였습니다.
김신부님의 지식을 조종이 활용했다면 일본보다 선진국이 되었을 겁니다.
허나 쓰라린 역사로 시달렸고, 이젠 한국대표 성인으로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오 10,22)”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 [청주]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5년 나해 7월5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제1독서
<너희는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즈카르야를 살해하였다(마태 23,35 참조).>
◎ 역대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24,18-22
제2독서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5,1-5
복음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7-22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1784년 최초의 영세자를 탄생시킨 한국천주교회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1794년 12월23일 비로소 한국 땅에 처음으로 주문모 신부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801년 신유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그후 1835년 조선에 입국한 모방 신부님은 방인 성직자를 양성할 목적으로
1836년 최양업, 최방제, 김대건 세 소년을 선발하여 마카오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최방제는 그곳에서 병사하였고 김대건과 최양업은 사제로
서품되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과 최양업 신부님은 서양학문을 정식으로
익힌 첫 조선인으로서 최고의 지성인답게 당시 조선 왕국의 국가 정세와
교회 사정 및 민생상태에 관하여 예리하게 관찰하였습니다. 두 분은 보고
듣고 체험한 내용을 유창한 라틴어로 써서 스승 신부님들께
보고하였습니다.
신부님께서 1845년 8월17일에 상해근교의 김가항에서 사제 서품을
받으셨습니다. 이때는 서품식이 요즘처럼 성대하지 않았습니다. 쪽배를
타고 그곳까지 간 11명만이 참석한 조촐한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그 날은
한국천주교 사상 가장 뜻깊은 날입니다. 한국인으로서 처음으로 사제품에
오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날이 진정 빛나는 이유는 우리 모두의
귀감이 될 만큼 명실 공히 그리스도를 닮은 거룩한 사제였기 때문입니다.
신부님께서는 서품을 받으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15세에 영세
입교하시고 신학생으로 뽑혀 멀리 산 설고 물 설은 마카오로 떠난 그날부터
겪은 고초를 생각하며 감개무량했을 것입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겼겠습니까? 우리는 상상할 뿐이지 말로써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서품을 받으면서 그날 모든 감사를 하느님께 드리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신부님이 사제가 되어
고향에 돌아가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었습니까? 금의 환양이요.
개선장군같은 환영입니까? 아닙니다. 박해의 칼, 체포와 죽음뿐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사제가 된다는 것은 어려움도 있지만 교회
내에서는 영광스럽고, 소중한 품위에 오르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도
존경받는 신분에 오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김대건 신부님께서 사제가 되었을 때는 사회적으로는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목숨을 바치는 순교정신, 곧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없이는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시련과 고통을 안겨다 주는 일이었습니다. 명실
공히 십자가를 따르는 일이었습니다. 신부님은 그것을 잘 아시면서도
바로 그 믿음과 순교정신으로 사제품을 받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목숨이 소중한 것이 아니라 한국 신자공동체가 더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한국당의 복음화와 구원이 더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라면
당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쳐도 좋다고 생각하신 분입니다.
신부님은 자신을 위해 사제가 되신 분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해서 사제가 되신 분이 아닙니다. 동포를 위해, 조국을 위해 세상에
대해서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잘 살기 위해서 사제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해 1845년 10월에 배를 타고 조선의 충청도 해안에 상륙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846년 5월12일 순위도에서 잡혀
9월16일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그리스도처럼 양들을 위하여
당신의 목숨을 아낌없이 바치셨습니다. 정말 어렵고 힘든 가운데 수품을
받고 조선에 입국하였지만 아깝게도 겨우 13개월 동안만 사제로
살았습니다. 그나마 2개월은 조선에 입국하기위해 황해 바다 위에서
보냈고 또 4개월은 감옥에서 지내다가 순교하셨으니 사목활동은 거의
하지 못하였습니다.
사실 한국 땅에 천주교가 들어온 것은 1784년, 지금부터 약 229년
전입니다. 당시 사회는 유교 사회였고 양반과 상놈이 구별되는 철저한
계급사회였습니다. 그리고 조상 제사에 대한 관습과 예절이 철저했던
시절입니다. 이때 천주교회의 기본 교리는 신분 계급과 조상제사라는 두
부분에 큰 충돌을 가져왔습니다. 남녀평등을 주장하고 양반 상놈 구분을
거부하며 우상 숭배의 제사를 거부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큰
죄악이었습니다. 그리하여 103년 동안
(신유1801, 기해1839, 병오1846, 병인1866) 산발적인 박해 속에 살아야
했고 그 와중에 한국인 첫 사제가 나왔지만 13개월 만에 목자를 잃고 만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과 인간의 생각은 분명 다릅니다. 지나고
보니 신부님의 죽음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신앙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출생하신 솔뫼, 순교하신 새남터, 묻히신 미리내는 오늘도 우리에게
신앙의 표징이 되고 있습니다. 당시의 죽음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신부님께서는 더 많은 사람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몫을
여전히 하고 계십니다. 신부님께서는 죽음을 앞두고 “하느님을 위하여
죽으니 내 앞에는 영원한 생명이 시작할 것입니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천상에 대한 희망이 신부님을 지켜주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1842년부터 1846년까지 21통의 편지를 썼습니다. 그중
한문과 한글로 쓴 편지가 각각 한 통씩이고 그 외에는 모두 라틴어로
썼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은 1842년부터 1860년까지 19통의 편지를 전부
라틴어로 썼습니다. 그런데 김대건 신부님의 편지는 대부분 사제 서품
전에 쓴 것입니다. 반면 최양업 신부님의 편지는 사제 서품 후에 쓴
것입니다.
오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편지를 한 통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이
편지를 통해 그분의 믿음과 하느님과 그 백성을 위한 사랑이 얼마나
간절하였는지 묵상하고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스물한 번째 편지는 옥중에서 쓴 것입니다.
옥중에서 쓰신 마지막 회유문(1846년 8월말)을 읽어드리겠습니다.
“교우들 보아라. 우리 벗아 생각하고 생각할지어다… 온갖 세상일을
가만히 생각하면 가련하고 슬픈 일이 많다. 이 같은 험하고 가련한 세상에
한번 나서 우리를 내신 임자(하느님)을 알지 못하면 난 보람이 없고, 있어
쓸데없고, 비록 주님의 은총으로 세상에 나고 주님의 은총으로 영세
입교하여 주님의 제자 되니 이름이 또한 귀하거니와 실이 없으면 이름을
무엇에 쓰며, 세상에 나 입교한 효험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주님을
배반하고 주님의 은혜를 배반하니 주님의 은혜만 입고 주님께 죄를
더하면 아니 남만 못하리.
이러한 어려운 시절을 당하여 마음을 늦추지 말고 도리어 힘을 다하고
역량을 더하여 마치 용맹한 군사가 병기를 갖추고 전장에 있음 같이 하여
싸워 이길지어다. 부디 서로 우애를 잊지 말고 돕고 아울러 주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환난을 걷기까지 기다리라. 혹 무슨 일이 있을지라도 부디
삼가고 극진히 조심하여 주님의 영광을 위하고 조심을 배로 더하고
더하여라…..이런 군난 때는 주의 시험을 받아 세속과 마귀를 쳐 공덕을
크게 세울 때니 부디 환난에 눌려 항복하는 마음으로 물러나지 말고
오히려 지나간 성인성녀의 자취를 가르쳐 성교회의 영광을 더하고 천주의
착실한 군사와 의자(의로운 아들)됨을 증거하고 비록 너희 몸은 여럿이나
마음으로는 한 사람이 되어 사랑을 잊지 말고 서로 참아 돌보고 불쌍히
여기며 주의 긍련(불쌍하고 가엾게 여기다) 하실 때를 기다리라.” 하시며
주님께 대한 믿음을 더하기를 촉구하십니다.
그리고 “이런 큰 어려움도 역시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니 너희가 감수
인내하여 주님을 위하고 오직 주님께 슬피 빌어 빨리 평안함을 주시기를
기다리라. 내 죽는 것이 너희 육정과 영혼대사에 어찌 거리낌이 없으랴.
그러나 하느님께서 오래지 아니하여 너희에게, 내게 비겨 더 착실한
목자를 상주실 것이니 부디 설워 말고 큰 사랑을 이뤄 한 몸같이 주를
섬기다가 한가지로 영원히 천주대전에 만나 길이 누리기를 천만천만
바란다”. 고 기록하였습니다.
이렇게 큰 사랑과 믿음을 지키라는 간곡한 호소를 담았습니다. 혹
우리에게도 힘에 겨운 일이 생긴다면 더 큰 믿음으로 주님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농부가 수확을 기다리며 온갖 수고와 땀을 아끼지 않듯이
우리도 참고 견디며 천상 것에서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믿음의 소유자 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10,17-22)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도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그뿐만 아니라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로마5,1-4) 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삶의 여정을 보면, 열심히 산다고 하는데 어려운 일이 생기기도
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실망과 좌절이 올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계획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고 그 안에서 좋은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따라서 다가오는 예기치 않은 어려움과 시련 속에서 주님의
안배와 섭리를 찾기 위해 기도하고 간구할 때 새 희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김 대건 신부님의 삶은 하느님의 뜻과 세상의 일이 서로를 거스를 때
우리가 택해야 할 길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련 속에서, 억울함 안에서, 생각하지 못한 난관 앞에서 끝까지 견디며
하느님을 먼저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더 좋은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이만하면 됐지’ ‘나도 사람인데’ ‘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
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바라보고 사는 이에게는 이것이 유혹입니다.
사실 천상을 바라보고 사는 이에게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견디는”
인내가 행복입니다. 언젠가 천국에서 누릴 영광스러운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 흘리는 수고의 땀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주님께서도
눈물과 피로써 십자가를 짊어지고 세 번씩이나 넘어지면서 걸어가셨는데
우리가 아무런 수고 없이 공짜로 천국을 얻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인내에 인내를 더할 수 있는 은총을 간구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기뻐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 어떤 신자분이 성경을 읽으라는 신부님의 말씀을 듣고 억지로라도
하루에 한 줄이라도 읽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매일 아침
성경을 펴서 첫눈에 들어오는 한 줄을 읽고 말씀대로 실천하기로 결심하고
성경을 펼쳤습니다. 그 말씀이 마태오 복음 27장5절의 말씀이었습니다.
“유다는 그 은돈을 성전 안에다 내던지고 물러가서 목을 매달아 죽었다.”
그러니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다시 찾아 읽겠다고 성경을
펼쳤습니다. 루카복음 10장 37절의 말씀이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 중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너무 기가 막혀 삼세번이다
하면서 다시 성경을 펼쳤습니다. 요한복음 13장 27절의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
우리 신자분들 중에는 오늘의 운세를 보듯, 점을 치듯 성경을 읽는 분이
계십니다. 말씀은 그렇게 읽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되는대로 눈이 가는
대로 읽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고 나는 듣는 것입니다. @@
- 청주교구 청주 성모병원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인천]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를 뿐인 것이지요.
2015년 나해 7월5일 성 김대건 안드리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제1독서
<너희는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즈카르야를 살해하였다(마태 23,35 참조).>
◎ 역대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24,18-22
제2독서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5,1-5
복음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7-22
지난 번 이태리 성지순례를 다녀올 때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보게 된
광경이 하나 있습니다. 화장실에 갔다가 제 자리로 돌아오다가 각자의
자리 앞에 있는 모니터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모니터를 통해서
사람들은 영화나 방송 그리고 기타 정보들을 볼 수가 있지요. 그런데
사람들이 보고 있는 화면들이 모두 다른 것입니다. 서로 다른 영화를 보고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게임을 하고 있으며, 음악이나 뉴스를 듣는 사람도
보였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화면들이 조화를 우리는 그 모습이 멋있어
보였습니다. 만약 다 똑같은 화면이라면 어떤 통일성을 볼 수도 있겠지만
그리 멋져 보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 느낌을 어떤 신부님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당연한
거 아냐?”라고 말씀하시네요. 맞습니다. 다양한 모습들이 멋지고 아름다운
것인데 이 당연한 것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왜 그리 많을까요? 나의
생각과 다르다고 판단하고 단죄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람들에게 ‘+’ 가 그려진 카드를 보여주면, 수학자는 덧셈이라 하고
산부인과 의사는 배꼽이라고 합니다. 또 신부님은 십자가라고 하고,
교통경찰은 사거리라고 하고, 간호사는 적십자라고 하고, 약사는
녹십자라고 대답합니다. 자기 입장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이렇게 답이 다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답이 틀린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를 뿐인 것이지요.
산의 모습이 모두 똑같다면 아마 사람들은 등산을 즐기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산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이 산, 저 산을 쫓아서 등산을 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다름에 감사할 수 있고, 또 그 다름을 멋있다고 칭찬해
주면 안 될까요? 항상 우리를 지지해주시는 주님처럼 말입니다.
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로 너무나 젊은 나이에 순교를
하시게 되지요. 박해를 가했던 당시의 집권자들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비롯한 많은 천주교인들이 틀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이 틀림에 빠져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끔찍한 박해를 했던
것이었지요. 하지만 이들의 큰 착각은 틀린 것이 아니라, 자신들과 다름을
인정하지 못한 것입니다.
지금도 이런 모습은 계속 되는 것 같습니다. 나와의 틀림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면 이 시대의 박해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처럼 다름의
아름다움을 인정해주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때 세상은 더욱 더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아름다운 공간이 될 것입니다.
삶에는 굴곡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 줄 순 없지만, 옆에 있어 줄 순 있다. 결국 오랜 시간을 두고
본다면 그것이 가장 강한 사랑의 표현이 아닐까?(이주향)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참 잘했어요.
초등학생 때, 숙제나 일기 등을 제출하면 선생님께서는 이를 보시고는 맨
뒤에 ‘참 잘했어요.’, 또는 ‘잘 했어요.’라는 도장을 찍어 주셨습니다. 저는
정말로 잘 한 것인 줄 알고 다른 친구들과 비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친구들 역시 이 둘 외의 도장은 찍혀 있지 않더군요. 그러다보니 저와
친구들은 숙제를 했다는 것 그 자체에 의미를 두었지, 다른 친구들과 내
점수를 비교하는 등의 행동이 굳이 필요 없었습니다. 하긴 성적표에도
단순히 ‘수우미양가’라고 표시될 뿐이었습니다. 이처럼 이때는 비교가
필요 없었고, 그래서 친구들과 즐겁게 놀면서 좋은 추억들을 많이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다 숫자화 되어 버렸습니다.
학교 성적도 숫자로 표시되었고 몇 등을 했는가가 중요하게 평가됩니다.
언젠가 어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이 “ 내 점수는요~~ ”라고
말하는데, 솔직히 이 부분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습니다. 사람마다 노래가
와 닿는 정도가 분명히 다를 텐데, 보편적인 모든 사람을 제외하고
전문가라고는 하지만 어떻게 단 3명으로부터의 평가가 정답인 듯이 되어
버리는 모습에 씁쓸한 기분이 들어서 그 뒤로 보지 않게 되었지요.
세상이 점수에 의해 규정되면서 비교의 가치가 되고 말았습니다. 저 역시
때로는 홈페이지 방문자 수를 유심히 바라보면서 다른 곳과 비교하기도
하더군요. 숫자는 그냥 숫자일 뿐인데 말입니다.
숫자로 명확하게 나타나는 주관적인 판단도 중요할 수 있지만, 객관적으로
‘잘했어요, 참 잘했어요.’라고 서로에게 말해 줄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비교하지 않고 서로를 격려하고 힘이 되어주면서 살 수
있는 곳이 되지 않을까요?
참 잘했어요. 도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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