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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천사봉(문례봉, 폭산), 도일봉, 중원산이 살짝 트이고, 용문봉은 연무에 가렸다
정상에 서거나 어떤 성과를 얻는 일에 나는 관심이 없다. 그런데 왜 산에 오르는가? 생과 사
의 갈림길에서 나 자신과 싸우면서 얻는, 그 새로운 ‘약’이 필요해서인가? 나는 산 없이는 못
산단 말인가? 나는 정말 산에 병이 든 것일까? 나는 이에 대한 해답을 찾아 나섰다.
―― 라인홀트 메스너, 『죽음의 지대』
▶ 산행일시 : 2018년 6월 24일(일), 맑음, 폭염주위보 더운 날씨, 용문 33도
▶ 산행거리 : GPS 도상 10.8km
▶ 산행시간 : 7시간 2분
▶ 갈 때 : 동서울터미널에서 용문 가는 첫차 타고(요금 : 6,500원), 용문에서 택시 타고
용문사 입구(용문관광단지)로 감(요금 : 10,500원)
▶ 올 때 : 새숙골 용문산자연휴양림입구에서 택시 타고 양평터미널로 와서
(요금 : 6,100원), 버스 타고 동서울터미널로 옴(요금 : 5,400원)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가급적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6 : 15 - 동서울터미널 출발
07 : 17 - 용문터미널
07 : 30 - 용문사 입구(용문관광단지) 주차장, 산행시작
08 : 02 - 용문사
08 : 27 - 용문산 남릉 주릉 ╋자 갈림길 안부, 직진은 상원사 가는 길
08 : 48 - 636m봉
09 : 18 - 839m봉 내린 ┣자 갈림길 안부, 오른쪽은 마당바위로 감
10 : 25 - 용문산 가섭봉(△1,157.1m)
10 : 57 - 용문산 서봉(1,149.9m) 아래 ┫자 갈림길
11 : 09 - 장군봉(1,045m)
11 : 25 - 함왕봉(△967.0m)
11 : 53 ~ 12 : 15 - 함왕산성, 점심
12 : 23 - 868.0m봉
12 : 37 - 구름재, ┣자 갈림길 안부
13 : 08 - 백운봉(△941.2m)
13 : 38 - 682.5m봉, 헬기장
14 : 05 - 두리봉(543.2m)
14 : 32 - 새숙골, 약수사, 용문산자연휴양림 입구, 산행종료
14 : 57 - 양평터미널
17 : 03 - 동서울터미널
1.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용문산과 그 주변
▶ 용문산 가섭봉(△1,157.1m)
용문터미널. 간발의 차이였다. 바로 눈앞에서 용문사 가는 군내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다음
군내버스는 33분 후에 있다. 그 시간을 돈 주고 산다. 택시비 10,500원. 버스와 택시가 짜고
하는 배차가 아닐까 의심이 든다. 택시기사님은 이 고장 토박이다. 지평 근처를 지나다보니
지평막걸리 이야기 나왔다. 지금의 지평막걸리 주조장은 일제강점기 때에도 규모만 작았지
운영했었다고 한다.
지금처럼 전국적으로 이름이 난 것은 어느 해인가 KBS 방송에서 2시간이나 ‘백년의 가게’로
소개하고부터라 한다. 그러면서 지평막걸리의 특장은 트림이 나오지 않는다는 데 있다고 한
다. 나도 여러 번 지평막걸리를 먹어봤지만 트림을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
는다. 그래도 막걸리의 뒷맛은 트림하는 데 있지 않을까?
용문관광단지 주차장에 내려서면 으레 보이던 용문산이 오늘은 연무(?)로 캄캄 가렸다. 용
문사 문화재 관람료 2,500원을 징수하는 매표원은 아직 출근하지 않았다. 괜히 유격장 쪽으
로 돌아갈 뻔했다. 용문천 무지개다리는 보수공사중이라 막아서 위쪽으로 돌아간다. 길섶 화
단의 당귀 꽃이 어엿한 화초다. 일주문을 지나면 좌우로 늘어선 노거수와 계류의 법문소리로
인해 이속하는 느낌이 든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탐욕을 버려라 등의 거룩한 말씀은 도리어
군더더기거나 소음에 불과하다.
용문사 은행나무는 노익장을 자랑한다. 수령 1,100년 추정.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30호다.
우리나라 천연기념물은 총 348개인데 그중 30번째이니 일찍부터 유명세를 탔다. 용문산을
대표하는 게 이 은행나무다. 곳곳의 이정표는 은행잎 모양을 만들어 이수를 적어놓았다. 용
문산 정상의 조형물이 은행나무인 줄 오늘에야 알았다. 여태 그 뜻을 모르고 막연히 부채모
양으로만 보았다.
가장 흔한 것이 가장 귀한 것이라고 한다. 여러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다닌 등로를 쫓기로 한
다. 용각골 입구 ┫자 갈림길에서 용문산 남릉 주릉이 가까운 왼쪽의 상원사 가는 길로 든다.
마른 계곡의 울퉁불퉁한 너덜길이다. 바람 한 점 없이 후덥지근한 오르막이다. 금세 땀을 비
오듯이 쏟는다. 더하여 몸은 무겁다. 어젯밤 손흥민의 골로 아파트가 별안간 들썩이는 환호
성에 잠이 깼고, 이후로 잠을 설쳤다.
너덜길이 끝나자 가파른 지그재그 오르막이다. 낙엽 헤쳐 먼지가 폴폴 인다. 때 이르게 바지
자락까지 땀에 젖어 다리에 감기니 걷기가 불편하다. 날파리 떼는 아까부터 내 얼굴 주위를
맴돌고 모기떼는 귓전에서 윙윙거린다. 우리나라 축구만큼이나 고전이다. 주릉. 야트막한
╋자 갈림길 안부다. 평상이 놓였다. 왼쪽의 532.0m봉 오르는 능선은 등로가 없다며 출입
금지다.
이제는 시간이 산을 가겠지, 조급하지 말자 맘 다독인다. 가급적 낙엽더미는 그 밑이 자갈이
라 비켜간다. 밧줄 붙들고 슬랩 닮은 돌길을 한 피치 바짝 오르면 ┣자 갈림길이 있는 636m
봉이다. 적막한 산속, 들리는 건 내 거친 숨소리뿐이다. 눈 못 뜨게 흐르는 땀을 손으로 훔치
는 것도 귀찮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땀 뿌린다.
슬랩을 연속하여 밧줄잡고 오르고, 등로는 암릉 왼쪽 사면을 돌아 오르곤 한다. 눈으로나마
숨 가쁘게 나이프 릿지 암릉을 넘는다. 한 걸음이 퍽 아쉬운 판에 이정표 거리는 200~300m
씩이나 들쭉날쭉 하여 맥 빠진다. 타는 목마름으로 데크계단을 5차례 오르고 839m봉을 살
짝 내린 ┣자 갈림길 안부다. 오른쪽은 마당바위로 간다.
반바지 나시 차림의 건장한 청년이 마당바위 쪽에서 올라와 쉬고 있는 나를 보자마자 이 근
처에 옹달샘이 없느냐고 묻는다. 온통 바위투성이라 이 근처는 물론 용문산 가는 길 앞으로
도 샘터는 없다고 말해준다. 한편 겁이 더럭 난다. 물 좀 달라고 하면 어떻게 거절할까 묘책
이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나도 3리터 물이 넉넉하지 않다. 쉬다말고 바삐 걸음을 옮길 수밖
에. 그 청년은 뒤돌아갔는지 이후로 만나지 못했다.
2. 당귀, 용문관광단지 화단에서
3. 용문사 일주문 지나서 뒤돌아본 풍경
4. 용문사 가는 길
5. 용문사 은행나무
6. 멀리는 도일봉, 그 앞은 중원산. 용문봉은 안개에 가렸다
7. 용문산 가섭봉 정상
8. 왼쪽은 봉미산, 오른쪽은 천사봉
9. 왼쪽은 천사봉
10. 백운봉, 앞은 장군봉
여느 때는 천하제일을 다투던 경점들이 오늘은 연무로 다 가렸다. 치악산, 백운산, 추읍산은
커녕 왼쪽 상원골 건너 백운봉도 가렸고, 오른쪽 용각골 건너 용문봉도 가렸다. 눈요기할 게
없으니 발걸음이 더욱 팍팍하다. 용문산 250m. ┣자 갈림길 오른쪽은 한강기맥 길이다. 한
피치 곧추선 데크계단을 엉금엉금 기어오른다. 용문산 110m. ┫자 갈림길 왼쪽으로 장군봉
을 간다.
정상을 마저 오를까 말까 몇 번이나 망설였다. 이렇듯 힘들 때면 3년 전 이맘때 지리산 화대
종주를 생각한다. 장터목에서 천왕봉 오르던 그 비길 데 없는 고역을 떠올리고는 스스로 힘
을 북돋운다. 그래 가자. 그러는 중에 생각 한 구석에 희미하게 꿈틀거리는 반역이 있으니,
어쩌면 그때를 능가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데크계단 수를 또 센다. 50개 단위로 나누어 센다. 223개. 용문산 정상 가섭봉(迦葉峰)이다.
가섭은 석가의 십대 제자 중 한 사람이다. 석가가 죽은 뒤 제자들의 집단을 이끌어 가는 영도
자 역할을 해냄으로써 ‘두타제일(頭陀第一)’이라 불린다(두산백과). 용문산이 가섭에 비견
되는 이 근방의 맹주다. 정상의 부채모양 조형물을 다시 보자 은행나무다.
용문산 정상에 서도 연무는 가시지 않았다. 그나마 바람의 분투로 도일봉, 중원산이 흐릿하
게 보인다. 이러니 나 혼자 차지다.
▶ 백운봉(△941.2m)
큰 고비는 넘겼다. 물론 백운봉이 남았지만 내리막을 한참 쏟다보면 그 추동으로 수월하게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장군봉 가는 길. 용문산 남쪽 사면을 도는 길이라고 만만하게 볼 것만
은 아니다. 제법 통통하게 살 붙은 지능선을 5개나 넘어야 한다. 하늘 가린 숲속 길 너덜지대
를 두 차례 지나고 주로 너덜 버금가는 돌길이다.
홀로 등산객을 만난다. 오늘 산행 중 처음 만나는 등산객이라며 무척 반긴다. 이후로도 홀로
등산객 또는 단체등산객과 서너 번 마주쳤는데 그때마다 처음 만나는 등산객이라고 반긴다.
줄달음하여 용문산 서봉(1,149.9m) 아래 ┫자 갈림길이다. 서봉은 접근하지 못하도록 환형
가시철조망을 쳤고, 군사제한구역이니 돌아가라고 방송한다.
무성한 풀숲 헤치고 배너미고개 쪽으로 돌아가 본다. 봉재산 능선이며, 중미산, 어비산, 마유
산(유명산), 대부산, 청계산 등의 조망이 뛰어난 경점이다. 또한 장군봉 너머로 둥두렷이 떠
오르는 백운봉이 가경이다. 숲속 내리막길 한달음에 장군봉이다. 여기서는 밋밋한 둔덕으로
보이지만 반대편에서 볼 때는 듬직한 준봉이다.
저절로 내리쏟아지는 발걸음을 제동하느라 땀난다. 발걸음이 주춤하게 되는 건 야간 도드라
진 봉우리에서다. △967.0m은 함왕봉(咸王峰)이라고 한다. 삼각점은 용두 449. 2005 재설
이다. ┣자 갈림길 오른쪽은 사나사로 간다. 그냥 사나사계곡으로 내려가서 알탕이나 즐길까
하는 생각이 자꾸 자맥질 치는데 백운봉에서는 조망이 트일 것만 같아 차마 그러지 못한다.
무너진 석축은 함왕산성이다. 삼국시대의 산성이다. 둘레 약 9㎞. 함공성(咸公城), 양근성
(楊根城), 함씨대왕성이라고도 부른다. 규모가 큰 포곡식(包谷式 : 계곡과 산정을 함께 두른
성)의 성인데 석축의 성벽은 거의 무너졌다. 해발 1,031m의 봉우리에서 낮아진 봉우리와 사
나사(舍那寺)가 있는 계곡을 포위하고 있다.
11. 오른쪽 멀리는 중미산, 그 앞 왼쪽은 마유산(유명산), 그 앞 오른쪽은 어비산, 그 앞은 용천봉
12. 백운봉
13. 백운봉
14. 백운봉, 발걸음으로 줌인한다
15. 868.0m봉, 용문산 서봉 남릉의 암릉 암봉이다.
16. 용문산
17. 멀리 오른쪽은 용문봉
18. 멀리 왼쪽은 마유산(유명산)
19. 추읍산
그늘진 숲속 공터가 점심자리로 명당이다. 시원한 바람까지 솔솔 분다. 혼자 산행할 때면 점
심 첫 숟갈은 으레 무사산행을 빌며 고수레한다. 설악산 구조대 이대장은 휴식하며 음식을
먹을 때마다 고수레하였다. 그는 에베레스트도 등정하였다. 그의 자신은 낮추려는 자세가 마
음에 들었다. 냉막걸리 한 병을 어렵게 비운다. 고수레와 함께 비운다. 밥 수저 물고 그만 졸
다가 수저 떨어뜨려 깬다.
무너진 함왕산성 석축과 잇닿은 868.0m봉에서 구름재까지는 자연성릉인 암릉이다. 올릿지
는 어렵다. 868.0m봉은 등로 따라 오른쪽 슬랩을 돌아 오른다. 백운봉 북벽의 숨 멎을 듯한
위용을 바라보는 즐거움이 각별하다. 주춤주춤 슬랩 내리고 그 다음 암봉에서는 나이프 릿지
인 날등을 왼쪽 사면으로 비켜 뚝 떨어져 내린다.
바닥 친 안부는 ╋자 갈림길인 구름재다. 왼쪽은 백운봉 동쪽 사면을 0.6km 돌아 형제우물
로 간다. 나는 그간 수없이 백운봉을 올랐으면서도 형제우물은 가본 적이 없다. 이곳 지날 때
마다 망설이다가 백운봉 오르기를 포기할 수가 없어 지나치곤 한다. 백운봉 북벽을 오른다.
한 피치 슬랩을 밧줄 잡고 오르면 왼쪽으로 연수리 가는 ┫자 갈림길이 나오고, 가파른 철계
단이 시작된다.
철계단이 없던 시절에는 암릉 암벽 매만지며 오르는 손맛이 괜찮았다. 계단참에서는 발걸음
멈추고 뒤돌아서 용문산의 전모를 바라보며 숨 돌린다. 연무가 많이 걷혔다. 첩첩 산 너머 청
계산을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백운봉 정상. 여러 등산객들이 올랐다. 바람 세차게 불어 직
사하는 뙤약볕이 따갑지 않고 따스하다. 사방 둘러볼 경치가 많아 전망대에 오래 머문다.
▶ 두리봉(543.2m)
하산. 백운봉 서릉과 성두봉이 궁금하다만 출입금지 구간이라며 막아놓았고 인적이 보이지
않아 발길 돌리는 데 아무런 미련이 없다. 무릎 시큰하게 데크계단과 돌길을 다 내리면 왼쪽
으로 형제우물 0.6km 가는 ┫자 갈림길이 나온다. 백운봉을 직등하거나 형제우물로 돌아가
거나 거리가 같다. 이제 숲속 산책길 같은 등로다.
숲속 산책길은 헬기장인 682.5m봉을 잠깐 오르고 다시 이어진다. 등로에는 동네 뒷산에서나
진창을 메우려고 깔아놓는 값비싼 야자매트를 깔아놓았다. 두리봉 서쪽 아래에는 용문산자
연휴양림이, 남동쪽 아래에는 ‘쉬자파크’가 들어서서 이처럼 등로를 단장하지 않았을까 싶
다. 안부에는 좌우로 거기를 간다는 이정표를 세웠다.
두리봉 가는 길은 대로다. 태남막재 지나고 Y자 능선 분기봉인 575m봉에서 두리봉은 오른
쪽이고 왼쪽의 비고개 지나 삿갓봉(△472.8m)으로 가는 주릉은 ‘등로 없음’이다. 한 차례 가
드레일 밧줄 잡고 급박하게 떨어졌다가 ╋자 갈림길 안부 지나 약간 오르면 두리봉 정상이
다. 한수이남 경기의 최고봉인 양자산 쪽으로 조망이 트인다. 정상의 돌탑은 그새 훌쩍 컸다.
두리봉에서 새숙골(세수골, 새수골)로 내리는 길도 엄청 가파르다. 아직 흘릴 땀이 남았다.
땀에 절어 빳빳해진 바지자락이 다시 젖는다. 오른쪽 골 건너 대단한 첨봉인 693.1m봉을 나
뭇가지 사이로 기웃거리며 내린다. 산자락이 가까워지고 등로는 오른쪽 사면으로 방향 틀어
이내 용문산자연휴양림 구내다. 알탕할 데가 있을까 하고 새숙골 위쪽을 살폈으나 낯 씻을
물도 없다. 휴양림 입구인 약수사 앞으로 내려 양평 택시 부른다.
20. 백운봉 정상
21. 멀리 왼쪽은 청계산
22. 멀리 왼쪽은 마유산(유명산), 앞 중간은 봉재산 능선
23. 가운데 끄트머리가 두리봉
24. 추읍산
25. 왼쪽에서 두 번째가 두리봉
26. 백운봉
27. 백운봉과 서릉
첫댓글 백운봉 계단전 좌측에 형제약수가 있지요~ 더븐날 빨랑 가시느라 고생하셨네요~ㅎ
백운봉이 걸음걸음 다가오는 모습이 노고를 짐작케 합니다. 식사하다 졸 정도로 덥고 빡센 산행, 고생많으셨어요.
두시간 간격을 두고 백운봉 능선을 지나갔네요
편전산을 들면서 땀으로 멱 감는 날이었어요
더운날 홀로 고생많으셨습니다...밥먹다 졸고^^
누군가와 함께 산행하셨으면 좋았을텐데..
홀로산행..힘드셨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