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아~ 이 모자 쓰고 가라."
"누부야 밤샜구나. 멋있나? 히히."
"우리 익이 참 잘 생깄네. 재미있게 갔다 온나~"
국민학교 6학년 수학여행.
첨성대와 석빙고 앞에서 모여 찍은 빛바랜 흑백 사진 속의 나는 까만 빵모자를 쓰고 있다.
형편상 수학여행을 보낼까 말까 고민하시던 어머니께 형과 누나들이 나서서 보내는 쪽으로 우겨준 덕에 나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국민학교 수학여행을 갈 수 있었다.
그 수학여행은 많은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술잔을 물에 띄워 돌려가며 마셨다는 포석정, 얼음을 보관하던 석빙고, 천문을 관측하던 첨성대, 마당 넓고 빙 둘러가며 방이 있던 여관. 저녁 먹고 작은 랜턴 하나 사서 건전지 다 닳을 때까지 이 방 저 방 다니며 장난하던 일, 새벽에 오르던 토함산의 숲 우거진 흙길, 장엄하던 석굴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아름다운 불국사 오르는 계단, 천년 세월 우뚝 선 다보탑과 석가탑.
가까운 친척집이나 여행 다니던 내 여행 경험으로는 한 번에 다 감당하기 어려운 너무나 엄청난 여행이었다. 그 여행길 내내 내가 쓰고 다니던 모자. 까만색 빵모자.
수학여행을 보내기로 확정된 다음날.
"익아. 내가 니 여행 선물 하나 해주께."
작은 누나가 선물을 주겠다 했다.
"뭔데 누부야? 뭐 해줄라꼬..."
"내가 니 쓰고 다닐 멋진 모자 하나 만들어 주께."
"그냥 운동모자 쓰고 다니면 된다."
"아이다~ 오래 기억에 남을 수학여행인데... 멋지게 하고 가야지."
"그래~ 그라마 잘 만들어도고 누부야~"
그날부터 고등학교 3학년이던 손재주 많은 누나는 뭔가를 종이에 그리고, 천을 사 와서 자르고 하더니, 시간이 부족했는지 여행 출발 전날 밤까지 앉음뱅이 재봉틀 앞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며 재봉틀을 돌리고 있었다. 나는 그 재봉틀 소리를 들으며 편안히 잠을 잤고...
아침에 누나가 내민 그 모자는 베레모와 예술가 모자를 합친 아주 독특한 모양의 검은색 빵모자였다.
"내 성의를 봐서 꼭 이 모자 쓰고 댕기야 된데이..."
모임 장소에 갔을 때, 친구들이 한번 쓰보고 싶어서 난리가 났을 정도로 그 모자는 멋있었다.
그 빛바랜 수학여행 사진만 보면, 나는 석빙고 보다도, 첨성대 보다도, 불국사 보다도 더 먼저 그 모자에 눈길이 가고, 내 귀에는 작은 누나가 밤새 돌리던 그 재봉틀 소리가 들려온다.
첫댓글 빵모자 사진을 올리셔야죠.
대구에선 국민학교 수학여행을 경주로 갔었죠.
전 고향으로 수학여행 간 셈.
누님의 빵모자 .. 사랑으로 기억되시겠습니다.
전 재봉틀로는 못 만들어봤고
뜨게질로 아들 .조카들 옷 모자 많이 떠 봤어요.
이젠 떠 줄 사람도.
뜨게옷을 선호하지도 않으니...
사랑을 담아 누구에게 주는 추억 만들기도 어려워요.
제 아들 초딩 들어가기 전에 떠서 입혔던건데. 지난번 옷장 정리하다
햇볕에 말려두느라..
@커쇼
어머 ! 커쇼님,
뜨게질이 수준급이네요.
@콩꽃 ㅎㅎ 모자는 지금도 제가 산에갈 때
가끔 쓰고다닙니다.
칭찬주시니 감사합니다.
활동적인 분으로 알고 있었더니
차분하고 끈기가 있어야 할 수 있다는
뜨게질을 이렇게나 잘 하시는군요.
제 아들 돌 색동옷을 큰형수가 짜주었는데 얼마나 감동스럽던지..
잘 보관해 두었다가 장조카 아들 돌날 물려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나는 중 고등학교때 갔었던 수학여행은 교복과 교모를
의무적으로 입고 쓰고 갔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빵모자 와 같은 추억은 없습니다만
수학여행이란 신나는 거 였던거는 기억합니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저도 중고등 수학여행 때는 교복을 입었었는데, 저때는 초증학생 때라 사복으로 갔었습니다. ㅎ
아주 신이 났었지요. ㅎ
멋진 모자를 선물하신 작은 누님,
막내라서 그런지
형제들과 누님의 우애가
흘러 넘치는 듯... 합니다.
사랑을 먹고 자라난
유년시절을 생각하면,
그 추억 만으로도
긍정적인 사고가 듬뿍입니다.
계속 행복하셔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4.11.10 14:27
동생이 있었으면 저도 좀 물려주었을 텐데, ㅎ 막내라 그저 받기만 했습니다. ㅎ
아, 포석정으로 수정했습니다.
다시 찾아보니 원래 이름이 포석사이고 하늘에 제사 지내던 곡이라고 훗날 밝혀졌다네요. ㅎ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학창시절의 추억은 향수 같은 그리움인듯 합니다
고향처럼 마음에 담고 있는 추억..
언제든 꺼내어 봐도 설레게 하는 뭐 그런
좋은 유년시절은 생각만으로 입가에 배시시
행복은 내안의 작은 선물
행복하세요
그리움의 끝에 매달린 작은 소리 익아...........
저는 유달리 어린 날의 추억이 많네요.
하나둘 수필방에 두서없이 풀어놓곤 합니다.
같이의가치님도 추억 같이 나누어 주세요. ㅎ
경주 고적이 빵모자에 고스란히 담겼네요.
저는 교모를 쓰고다니고 수학여행도 갔는데, 모자를 머리처럼 여겨 소중히 다뤘지만 그건 누이의 손이 거친 수제품이 아니라 그냥 모자였던 셈이지요.
사연이 있는 물건들의 기억은
생생하게 남아, 잘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ㅎ
까만 빵모자 슨 마음자리님 소년시절 상상해 봅니다.
사진 속의 저는 대부분 눈 둥그렇게 뜨고 골난 얼굴로 서있습니다. ㅎ
귀엽기만 한 막내동생을 위해 밤새워 모자를 만드는 누나의 모습이
누나없는 저로서는 무지 부럽습니다. ㅎ
정이 넘치는 가정에서 자라 늘 글에서 따스한 온기가 나오는가 봅니다.^^
전쟁이 나면 저는 꼭 데리고 피난가겠다 하던 작은누나였지요. ㅎ
경주불국사 수학여행은 누구에게나 추억으로 남지요.. 우리동기들은 몰래 여관담 담치기로 나가서 술먹으러 나갔다가 6명정도가 유기정학받았고 그때 그사연을 지금도 얘기합니다.
중고딩 수학여행 때는 그런 일이
많았지요. ㅎㅎ
전 괜히 들떠 숙소 주변을 돌아다니곤 했습니다.
공부가 바쁜 고3 때에 동생의 추억을 위해
멋진 모자를 만들어 주신 누나 정말 멋지십니다.
정해진 시간까지 완성해야하는
오빠들에게 입힐 쐐기풀옷을 열심히 짜는
'백조 왕자' 동화에 등장하는 공주님 같아요, 누님께서...
그땐 그냥 누나가 모자 만들어주고 싶은가 보다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수록 누나가 저에게 준 사랑이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빵모자를 쓴 마음자리님이 얼마나
귀여 우셨을까요?
참 자상하신 누님을 둔 마음자리님은
행복한 소년 이었네요 .
어릴 때 시랑받으며 자라던 날들이
제 가장 큰 행복이었습니다. ㅎ
그넘의 형편상~ 참 예전에는
우째 그리 수학여행가기도 그리도
어려웠는지 ~
초 5,6, 중 1,2,3 대략 5번중 겨우
두번 속리산과 경주만 수학여행을
갔었지요^
밤새워 떠준 누님의 빵모자는 평생
간직해도 모자람이 없을 정성과 사랑의
결집체로 보입니다.
옷도 잘 만들고 멋진 모자도 만들어 주던 작은누나는 손재주가 아주 좋았습니다.
마음자리 님, 참 행복한 가정에서
자라신 것 같습니다.
동생을 향한누나의 따뜻한 사랑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빵모자.
감기가 심해서 댓글도 제대로 못
달았네요.ㅠ
마음 따뜻한 글 잘 읽었습니다.
이제 몸 잘 추스르신 것 같더니 또 감기에게 발목 잡히셨군요.
얼른 쾌차하세요~!
모자를 흔하게 쓰고 다니던 시절도 아니였는데요.
얼마나 자랑스럽고 좋았을까요.
맘씨 좋고 솜씨 좋은 작은 누님 덕분에 평생 잊지못할 수학여행을 보내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