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유학은 과연 현대에 얼마나 와닿을까? - 정명론
중국고대철학
김치완 교수님
철학과 2019101237 김현승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뿌리를 신화의 시대인
요, 순 시대에서 찾는다. 그때의 중국은 그야말로 이상사회 그 자체, 고대 유학자 공자와 근대 유학자인 캉유웨이(康有爲)가 꿈꾸었던 ‘대동(大同)’ 사회와 거의 일치되는 유토피아적 세계였다. 그러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학자들이 대거 활동하던 춘추전국시대에는 전쟁과 분란이 끊이질 않았고 혼란 속에서 사람들의 삶은 참혹하게 망가지고 있었다. 언제나 위기에는 기회가 있듯이 혼란기에도 영웅들이 출현하고 학문적으로 큰 발전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모든 유학자 중 제일이라 일컫는 공자도 이러한 인물 중 하나이다.
공자는 공자 이전부터 존재해왔던 철학을 십분 활용하였다. 하, 상, 주 동안 쌓여 있던 여러 사상을 정립해 정리하여 사람들에게 가르치던 것이었다. 공자는 춘추시대 노나라에서 태어나 혼란을 겪고 있는 중국을 보며 어떻게 하면 과거 요, 순 시대의 황금기를 재현해낼 수 있을까 고민하였다. 오늘날 인식과 다르게 공자는 단순하게 사회 질서를 엄격하게 유지하려고 하기만 하던 보수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단순한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좋았던 과거를 현대에 어떻게 재현해낼 수 있을까가 그의 사상의 핵심 부분이다. 지금 알아보려고 하는 것은 공자의 사상이 그 시대에 어떤 작용을 하였는지, 그리고 그의 생각의 어떤 부분이 현대에 필요할지 볼 것이다.
주나라의 무너진 인문질서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공자는 질서 회복을 추구하였고 그가 내세웠던 사상 중 하나가 “정명론(正名論)”이다. 이름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이 사상은 각자 자신의 위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직위에 걸맞는 행동을 하라는 것이었다. 임금은 임금답게 행동하고, 신하는 신하답게 행동하고, 백성은 백성답게, 부모는 부모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행동하면 지금의 분란이 사라질 것이라고 하였다. 요즘 말로 ‘닉값’을 하라는 것이었다.
(사진출처: https://funnypani.com/1365)
실제로 춘추시대의 혼란은 주나라 시기 제후들의 힘이 강해지고 중앙의 힘이 약해지면서 시작했다. 주나라의 왕이 왕노릇을 하지 못하고 제후들이 신하들의 노릇을 하지 않지 시작된 것으로 평가된다.
공자는 왕이 왕 노릇을 하지 못하면서 계속해서 왕의 대우를 받으려고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했으며 부모가 부모 노릇을 똑바로 하지 않으면서 자식으로부터 효도를 받는 것을 원하는 것 역시 부정적으로 평가하였다. 하지만 우리가 인간인 이상 완벽할 수 없고 아무리 열심히 하여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신하는 부족한 임금을 보좌하며 예를 갖춰 계속 충고해야 하고 자식은 부족한 부모의 위신을 세워주고 효를 다 하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나중에 와전되어 조선 후기처럼 엉뚱하고도 숨 막히는 사회가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현대 시대에 적용해보도록 하자. 과거에 비해 훨씬 복잡해진 세상을 살고있는 우리는 “눈뜨고 코 베인다.”는 속담을 온 몸으로 겪고 있다. 믿고 있던 사람이 배신하고, 기댈 곳 없이 사는 우리에게 이 정명론은 정말 ‘유토피아’적으로 들리게 된다. 정치인들이 자기 잇속을 챙길 생각보다 자기 구역의 시민들, 자국 국민들을 더 먼저 생각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면 계속되는 정치 불신과 정치적 폭력이 과연 지속될까? 친구란 명목으로, 선생과 애인이란 명목으로 사람에게 접근하여 뒤통수를 후려치고 가는 이들이 진정하게 인의예지(仁義禮智)를 가지고 사람을 대하면, 모두 자기의 위치에 걸맞는 행동을 하게 된다면 어려운 사회 문제를 푸는 것은 어렵지 않으리라.
공자는 단순히 보수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는 춘추시대 이전의 이상적인 사회를 꿈꿨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현대의 각박한 세상이 아닌 예전처럼 인심 넘치는 한국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다.
첫댓글 "강유위가 꿈꾸었던 대동사회와 거의 일치되는 유토피아"라기보다는 강유위는 "요순시대"라는 대동사회, 곧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것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적확한 표현입니다. 중국인에게는 원시반본, 곧 시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복고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화적 세계관과도 일치하는데, 그래서 세계 각국의 신화에서도 쉽게 발견되는 구조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 세부적인 내용은 다를 수 있습니다. 대동사회의 핵심은 화이부동, 곧 조화를 이루지만 모두가 똑같아야 하지는 않는 데 있습니다. 똑같기만 하고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을 소동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강유위를 비롯한 공자는 이런 사회를 이루려면 우선 우리가 생각하는 개념들이 어느 정도는 일치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상대의 가치를 허용한다는 이야기입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상대의 가치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까지도 허용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왜 상대의 가치를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지 귀기울일 수는 있지만, 가치표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오늘날에도 이런 점이 고민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