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수갑산을 가더라도..."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꼭 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할때 이 말을 보통 쓰는데
삼수군과 갑산군이 바로 혜산 옆에 있고 혜산과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도시가 장백현이다.
(혜산의 압록강-좌측은 중국. 우측은 북한)
백두산 준령들이 감아도는 이곳은 예전에는 한양에서 천리밖으로 귀양이나 보내는 머나먼 오지였고
일제시대에는 항일 빨치산의 근거지였으며 지금은 탈북자들이 가장 많이 넘어오는 루트이다.
공사중인 송강하-장백현 구간을 4시간쯤 달렸을때 검문소가 나타났다.
조중국경 지대를 다니면서 처음 검문을 당하였는데 무장을 한 군인 2명이 차에 올라와
버스 뒤까지 죽 훑어 보고 내려갔다.
혹시나 나를 검문할까 싶어 쳐다 보는데 그냥 지나 가기에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꺼내 만지작 거렸지만 걸릴까봐 무서워서 차마 찍지는 못했다.
(발전소가 있던 자리, 강 건너가 북한)
검문소를 통과하니 강이 나타났는데 처음엔 압록강인줄 몰라 창밖을 내다 보다가
강 건너편 산이 민둥산이기에 혹시나 해서 차장에게 "나거 얄루장? (저거 압록강이니?)" 하고 물으니
맞다고 하면서 건너편이 차오센(朝鮮)이라고 한다.
량강도의 도청 소재지인 혜산은 이 깊은 산중에 이런 도시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꽤 큰 도시였다.
장백현 버스 터미널까지 가면서 강을 따라 죽 마주보는 혜산은
뒤에는 높은 산이 있고 앞에는 압록강이 흐르는 강변도시인데
중간에 산이 있어 상류와 하류쪽이 두개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도시의 총 길이는 대략 10km는 될 것 같았다.
(북한과의 교역창구인 장백 해관)
터미널에 내린후 다음날 림강이나 통화로 나가기 위해 차편을 알아 보는데
이곳은 조선족 자치현이라 조선어가 병기 되어 있어 보기가 편했다.
그러나 시간표대로 버스가 꼭 다니는 것은 한국에서나 있는 일이기에 차시간을 확인 하려고 물어 보는데
내가 타고온 차장이 마침 대합실에서 당구를 치고있다가 나를 보고는 웬 아저씨를 데리고 와서 조선족이라 하였다.
그런데 이 사람 사투리가 너무 심해서 차라리 중국어로 말하는게 편할 지경이다.
(장백현 터미널 앞의 음식점)
다음날 7시에 송강하 경유 통화행 버스가 있고 압록강을 따라 가는 버스는 11시 반이라 하여
11시 반에 떠나는 버스표를 미리 사고 터미널을 나오니 바로 앞에 조선족 식당이 있었다.
아침을 굶은터라 식당에 가서 뭘 잘 하냐고 물으니 장국밥을 먹으라고 권하였는데
개장국은 아니고 돼지고기와 버섯 등 채소를 넣고 끓인 일종의 찌개였는데 먹을만 했다.
(물놀이를 하는 북한 아이들)
숙소는 터미널 근처의 빈관을 잡았는데 공안국에 등기를 해야 한다며 복사를 해야 하는데
복사집이 없어서 시내가서 해 와야 한다고 여권을 달라고 하였다.
여권을 주는게 좀 찝찝 하였지만 할 수 없이 줄 수 밖에..
다른곳에서는 여권 내용을 적기만 하면 끝나는데 여긴 검문도 쎄게 하고 등기도 하는걸 보면서
예전에 갔던 히말라야 산속, 인도와 접경에 있는 "아리"와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느꼈다.
주인 아줌마에게 여기서 조선땅 사진을 찍어도 괜찮냐고 물으니 "메이쓰(일 없어요)" 라고 하기에
재차 공안에게 안 걸리냐고 물으니 사진 찍는게 뭐 어떠냐고 괜찮다고 한다.
(혜산시 모습)
한국에서는 촬영이 안된다고 듣고 왔는데 약간 마음이 놓여 사진을 찍는데,
마침 뭘 물어 볼께 있어서 강변에서 북쪽을 구경하는 아저씨에게 중국어로 말을 걸었다.
그 아저씨가 어디서 왔냐기에 한국에서 왔다니까 그때서야 한국어로 자기도 서울서 왔다고 한다.
그는 북한을 돕기 위한 교회쪽 일로 장백현에 머물고 있다면서 사진을 찍지 말라고 했다.
몰래 찍어도 북쪽에서 보고 중국측에 연락을 하면 공안이 잡으러 오고
공안에게 끌려가면 이삼일은 조사를 받고 험한꼴을 당할수도 있다면서 찍지 말라는 거였다.
그사람 말을 들은 이후로 완전히 쫄아서 카메라를 품속에 숨겨 다니면서 찍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니..
그사람은 탈북단체에서 활동을 하니까 조사를 심하게 받겠지만
나야 관광객인데 뭘 겁내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일종의 자기검열이 주눅들게 만든다.
(압록강변의 인민군 초소)
탈북을 하는것이 현실이긴 하지만
반대로 기획탈북이라 일컬어 지는 일부 개신교 단체의 탈북지원 사업은 영 못마땅하다.
그들의 활동 때문에 오히려 국경이 강화되고 중국측이 에민하게 반응하는 면도 있다고 본다.
물론 북한 사람도 우리 국민이니까 탈북자를 한국으로 데리고 와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긴 하지만
국제법적으로 조선은 독립국이고, 중국과의 관계로 볼때 북한주민이 국경을 넘어 중국에 몰래 왔다면,
비자가 없으니 당연히 불법입국자, 불법체류자가 되고 이들을 본국인 북한으로 송환하는것은 중국입장에서 당연한 것이다.
(인민군과 주민)
짐을 풀고 압록강변에 나가니 건너편 강가에는 물놀이를 하는 북한 아이들로 바글바글 하였다.
그 모습이 옛날 우리나라 애들이 개울가에서 멱 감는다고 빨개벗고 풍덩 거리는 모습과 똑 같다.
반면 둑위 곳곳에는 초소가 있고 북한 군인들이 왔다 갔다 하고 있는데
꼭 감시를 한다기 보다는 그냥 건들 건들 다니는 정도였다.
그렇지만 일부 군인은 군견을 데리고 다녔는데 압록강에 장남감 뼈다귀를 던지면 개가 물속에 뛰어 들어
그걸 물고 오는걸로 봐서는 탈북자를 막기 위한 감시 초소임이 맞을것 같다.
북한쪽에는 "강성대국" "장군님 따라 천만리"
"위대한 김정일 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혁명의 수뇌부를 목숨으로 사수하자"
"21세기의 태양, 김정일 장군 만세" 등의 구호가 씌여 있는데
이런 구호 보다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와
고난의 행군 시절에 나왔다는 "가는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라는 구호가 오히려 솔직해 보였다.
일제 시대, 김일성의 "보천보 습격"사건은 항일 운동사에 길이 빛날 항일 유격대의 업적이다.
보천보는 이곳 혜산에서 압록강을 따라 약간 상류쪽으로 올라가면 있는데
김일성은 보천보의 일본 경찰 주재소를 점령한 후 이런 연설을 했다고 한다.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은 일제가 철벽이라고 호언장담하는 국경 경비진을 뚫고 국내에 진격하며 며칠전에는 무산 방면에서 종횡무진의 활동으로 원수들에게 복수의 불벼락을 안기었으며 오늘은 여기 보천보에서 우리 민족의 불굴의 투지와 숭고한 기개를 유감없이 시위하였습니다.
우리 혁명군은 방금 경찰관주재소, 면사무소를 비롯한 일제의 폭압기구와 통치 기관을 쳐부수고 거기에 도사리고 앉아 여러분들에게 온갖 불행과 고역을 들씌 우던 우리 민족의 피맺힌 원수 일제침략자들을 소탕하여 버렸습니다.
여러분! 저 불길을 보십시오. 거세차게 타번지는 저 불길은 놈들의 최후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저 불길은 우리 민족이 죽지않고 살아있으며 날강도 일제놈들과 싸우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온 세상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 불길은 학대와 굶주림속에서 신음하는 우리민족의 가슴 속에 희망의 서광으로 빛날 것이며 투쟁의 불씨로 되어 온 삼천리강토에 퍼지게 될 것입니다.
(북한 군용 차량)
(중략)
동포 여러분!
최후의 승리는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싸우는 우리들의 것입니다.
우리 모두 광복된 조국의 땅위에서 다시 만나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부르며 행복하게 살아갈 그날을 위해 총매진합시다."
조선독립만세! 조선혁명만세!
(군견을 끌고 이동중인 인민군)
그러나, 조선 독립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일제를 쳐 부수기 위해 강을 넘던 이 자리에
이제는 자국인의 탈출을 감시하기 위해 서 있는 무장한 군인들과 초소들을 보면서
가슴 한켠에 비릿하고 찜찜한 기분이 드는것은 어쩔수 없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사상이 잘되어 있으면 배가 안 고프다는 혁명정신은
아직도 유효한 것일까??
(중극쪽 해관에서 본 북한의 인민혁명영웅 기념탑)
까불면 누구든 박살을 내주는 세계유일의 초강대국 미국 마져도 두려워 하지 않는
세계에서 가장 비범(?)한 주체의 나라,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지도자에게 문득 이런걸 묻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