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돌리기 - 신미균
심지에 불이 붙은 엄마를
큰오빠에게 넘겼습니다
심지는 사방으로 불꽃을 튀기며
맹렬하게 타고 있습니다
큰오빠는 바로 작은오빠에게
넘깁니다
작은오빠는 바로 언니에게
넘깁니다
심지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언니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에게 넘깁니다
내가 다시 큰오빠에게 넘기려고 하자
손사래를 치며 받지 않겠다는 시늉을 합니다
작은오빠를 쳐다보자
곤란하다는 눈빛을 보냅니다
언니는 쳐다보지도 않고
딴청을 부립니다
그사이 심지를 다 태운 불이
내 손으로 옮겨붙었습니다
엉겁결에 폭탄을
공중으로 던져버렸습니다
엄마의 파편이
우리 머리 위로
분수처럼 쏟아집니다
*시집/ 길다린 목을 가진 저녁/ 파란출판/ 2020
# 참 아프게 다가오는 시다.
병든 어머니를 폭탄으로 묘사해 서로 불효 경쟁을 벌이느라 어떻게 하면 곧 터질 폭탄을 자기 손에 머물게 하지 않을까 게임을 한다.
이럴 땐 얼굴도 두꺼워야 하고 능청스럽기도 해야 하고 때론 앓는 소리를 하는 탁월한 연기력도 필요할 것이다.
어릴 때 소풍을 가면 수건 돌리기 놀이를 했다. 빙 둘러 앉아 노래를 부르는 도중 술래는 원을 그리며 돌다 누군가에게 슬쩍 수건을 놓고 딴청을 피운다.
결국 자기 뒤에 수건이 놓인 것을 모른 사람은 술래가 되고 벌칙을 받아 노래나 흉내내기 등 장기 자랑을 해야 했다.
소풍 날의 수건 돌리기는 순박한 놀이였기에 걸려도 노래나 춤을 추는 것으로 모두가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인생이 마음 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진리라지만 어머니의 병든 말년은 당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자식들보다 어머니 마음이 어떨지에 먼저 눈길이 간다. 어머니는 폭탄을 서로 떠넘기다 되레 옴팡 파편을 뒤집어 쓴 자식들을 걱정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만약 저 분이 내 어머니라면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도 생각해 본다.
신미균 시인은 시를 잘 쓴다. 1955년 출생으로 서울교육대를 나온 여성 시인이다.
등단한 지 3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이 시가 실린 <길다란 목을 가진 저녁>이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일 정도로 과작이다.
## 하루 마무리로 일기를 쓰다가 이 시가 떠 오르며 문득 카페에 글을 올리고 싶었다. 입에서든 머리에서든 맴도는 문장이 있으면 휘발되기 전에 후딱 써야만 한다.
이런 글은 숙성할 필요 없이 즉석에서 꺼내야 잊어 먹질 않는다.
오늘 직장 근처로 찾아 온 친구와 저녁 겸 술을 몇 잔 나눴다. 스무 살을 막 넘은 나이에 만났으니 40년지기다.
한때는 일주일이 멀다 하고 자주 만났었는데 오늘 만난 것은 거의 1년 만이다.
오랫동안 함께 살았던 어머니를 최근 요양원으로 보낸 친구다. 나는 그것을 오늘에야 알았는데 두 달 전쯤 어쩔 수 없이 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모셨다고 한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해도 남의 가정사를 꼬치꼬치 알려고 드는 것도 실례되는 일이지만 내겐 친구 어머니가 각별했다.
친구는 내가 걱정할까 봐서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던 모양인데 오늘 내가 어머니 근황을 묻자 털어 놓았다.
철 없던 20대 시절 술을 마신 날이면 그는 한 잔 더 하자면서 나를 끌고 자기 집으로 갈 때가 종종 있었다.
늦은 밤이라 대문을 두드려 깨울 수 없어 담을 넘어 들어 갔는데 그것을 친구 부모님이 몰랐겠는가. 저것들 이제야 들어오나 보다 하면서 모른 체 했을 것이다.
거실에 있는 담금술을 들고 들어가 마셨는데 어머니가 때론 찌개 같은 것을 데워 슬쩍 친구 방으로 넣어 주시곤 했다.
그때 지청구라 해 봐야 너무 많이 마시지 말라는 딱 한 마디뿐이었다.
늦잠 자고 일어 나면 꼭 밥상을 차려 주시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한 순간이었다.
철부지 시절 지나고 가끔 찾아 뵐 때면 어찌나 살갑게 대하는지 마치 친이모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활달하고 총명하던 분이 치매 진단을 받고 한동안 아들의 수발을 받았다. 물론 요양등급을 받아 방문요양서비스를 이용하긴 했으나 나머지 시간에는 가족들 보살핌이 필요했다.
4남매가 있으나 장남인 친구가 전적으로 어머니 보살핌을 책임졌다. 다른 형제들이 요양원으로 모시자고 할 때도 함께 지낼 수 있을 때까지는 견디겠다고 했단다.
아들이 착하니 며느리도 착해서 묵묵히 시어머니를 보살폈다.
이런 다짐과는 달리 어머니의 상태가 점점 심해지니 별 수가 있었겠는가. 87세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신 것이 친구는 죄를 짓는 것 같다며 길게 한숨을 내 쉬었다.
나는 최선을 다 했으니 너무 자책하지 말라는 위로 외에는 할 게 없었다.
친구는 어머니가 요양원으로 떠난 후 잠이 잘 안 온다고 했다. 쉽게 잠에 들지도 못 할 뿐만 아니라 자다가 깨도 금방 잠 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날이 많다고 했다.
나도 불면의 괴로움을 알기에 일시적일 거라는 위로뿐, 아직까지는 베개 닿으면 바로 잠드는 내가 미안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폭탄이 될지 폭탄을 돌리는 사람이 될지 사람 일을 어찌 장담할 수 있으리. 사람은 누구나 시한부 생이지만 어쩌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하나씩 안고 사는지도 모른다.
잠이 쏟아지는 밤이건만 같은 시집에 실린 고운 시 한 편 더 올린다.
형제들한테 떠넘기지도 탓하지도 않고 혼자 어머니를 책임졌던 착한 내 친구처럼 순하게 다가오는 시다. 평소에 친구는 늘 내 탓이다. 고마운 일이다. 미안한 마음이다라고 했다.
바위를 탓하지 않는 들꽃처럼 스치는 바람까지 고맙게 여기며 살 일이다.
업 - 신미균
바위가 쑥부쟁이 하나를
꽉, 물고 있다
물린 쑥부쟁이는 똑바로
서 있지 못하고
구부정하다
바람이 애처로워
바위를 밀쳐 보지만
꿈쩍도 안 한다
바위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쑥부쟁이는 그래도
고마워서
바람이 언덕을 넘어갈 때까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한다
첫댓글 잘 읽고 갑니다.
폭탄, 그거 한 사람이 안으면 한 사람만 다치련만
돌리다보니 여러사람이 다쳤나봅니다.
참 어려운 일이지요.
모두 한정된 인생을 살아가는데
희생만 할 수도 없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칸트는 후생이 있어야 한다고 했데요.
석촌 선배님을 오랜만에 뵙습니다. 여전히 왕성한 활동과 공감이 가는 선배님 글을 대할 때면 팔팔한 중년이라는 것을 느낀답니다.
체력이야 중년을 못 따라가더라도 선배님같은 늙지 않은 그 감성이 더 중요하니까요.
어제 늦은 밤 알콜 성분이 약간 섞인 감정이었던 터라 오바한 단어가 보여 댓글 달면서 단어 두어 개를 솎아 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부끄럽네요.
모쪼록 오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열흘 전 부터 내 업무에 좀 큰 일이 주어졌습니다.
한 계층 면적이660평방미터(200평)는 되어야하는 꽤 큰 주간보호센터.
일명 노치원이라 불리는 어르신들 유치원을 하려는 법인에서 건물을 찾아 달랍니다.
처음 상담 갔을때 방문한 곳이 찾아 달라는 곳 보다 더 큰, 어르신들 모시는 병원인데,
주차하고 마당부터 복도, 엘리베이터를 탈 때 만난 어르신들의 모습에 우울해 졌습니다.
유치원을 개조해서 노치원으로 용도변경해 쓰는 곳도 많고,
고령화사회에 접어드니 노인들을 위한 시설이 많이 필요한가봅니다.
노령화에 따른 질병은 누구나에게 찾아올 것이고,
치매 발병률이 몇 프로인지는 모겠지만 꽤 높은 걸로 알고있습니다.
치매라는 병만 걸리지 않는다면 노인 '보호시설'에는 가지 않으려는게 어르신들의 바램이지요.
열 자식이 한부모 모시지 못 한다죠.
폭탄 돌리기. 가슴이 찡 해집니다.
아하~ 댓글 읽으면서 커쇼님이 마당발임을 알게 되니 더욱 친근함이 생깁니다. 이것이 커리우먼의 제일 앞에 서는 덕목이기도 하지요.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노치원이 유치원보다 영업 이익이 높기에 노인을 상대로 한 분야가 요즘 블루오션이라고 합니다.
폐업한 예식장에 장례시설이 들어서기도 하데요. 쓸쓸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네요.
여행을 하다 보면 지방일수록 어린애와 젊은이는 잘 보이지 않고 노인 반, 외국인 노동자 반이더군요.
점점 치매 발병률이 높아지는 것도 장수사회라 그렇답니다.
옛날에도 치매가 있었겠지만 다들 환갑 넘으면 세상을 떠났으니 치매 걸리기 전에 죽었기 때문이었겠지요. 치매 걱정은 나중에 하고 우리 일단 가을부터 즐기자구요.ㅎ
좋은 날들 되세요.
글을 읽고 저의 느낌을 간략하게 적어봅니다.
옛날엔 고려장이 있었죠.(실제로 있었다는 증거가 없다고 하지만, 설화가 전해오고 있고, 장사익의 노래 '꽃구경'의 주제도 고려장과 비슷한 내용입니다). 고려장은 워낙 못살던 시절 먹을 게 없어서 입 하나 덜기 위함이었죠. 요즈음에는 양로원이 현대판 고려장에 해당하겠네요. 먹을 게 풍부한데도 부모를 양로원에 보내는 이유는 부모 병치레가 귀찮기 때문이죠.
두번째 시는 부모로서의 업보를 안타까워하는 내용으로 읽혀지네요. 무겁고 꿈쩍도 하지 않는 바위는 자식을, 쑥부쟁이는 부모를 상징합니다. 구부정한 쑥부쟁이는 자식으로 인해 고생한 부모를 의미합니다. 바위 틈에 끼여 꼼짝도 할 수 없는 쑥부쟁이는 자식이라는 굴레에 얽매여 있는 부모를 상징합니다. 마지막 연에서
'연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한다'는 의미는 자식으로 인한 고생으로 몸이 구부정해졌어도 그게 자식을 위한 희생이므로 작은 바람에도 부모로서 감내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제목 '업'은 부모로서의 업보를 의미합니다. 저 나름의 감상입니다.
효의 의미를 새겨볼 만한 글을 올려주셨네요.
여름날님의 긴 댓글을 공감하며 읽습니다.
시가 시인의 손을 떠나면 그 시는 읽는 사람의 몫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해석하든 좋은 시는 공감을 일으키기 마련입니다.
두 번째 시, 업은 業을 말함이겠지만 한자 없이 업으로만 표기했기에 더 다양한 은유를 품고 있다고 보여지네요.
그래서 여름날님의 해석도 나름 의미 있는 방식입니다. 제겐 이 시가 남 탓이 아닌 내 탓이라는 쑥부쟁이의 고운 마음이 맑게 전해져 오데요.
강요된 효든 자발적 효든 고달픈 인생살이의 한 부분입니다.
님의 댓글에 제가 좋아하는 가수 장사익이 나와 귀가 솔깃합니다. 사람의 가슴을 후비는 묘한 매력을 가진 소리꾼이지요.
암튼 여름날님이 공감하셨다니 다행입니다.ㅎ
저는 차라리 할 말이 없다는 게,
저의 대답입니다.
늙으신 부모님이 항상 '나는 괜찮다' 하는
부모님의 말씀에 그 말을 믿었다기 보다
믿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지금 내 나이에는, 현실적인 이야기 입니다.
신미균님의 '폭탄 돌리기' 詩題가
너무 과격한 표현이기도 하나, 사실이기도...
또 할 말이 궁색하네요.
모처럼, 오신 유현덕님,
깨달아야 할 이런 좋은 글에 넘 감사합니다.
그리고 친구의 마음에도 공감하고 갑니다.
자주 오시면, 더 감사합니다.^^
ㅎ 콩꽃님, 때론 할 말이 없을 때가 훨씬 무난하게 삶을 살아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네요. 저 시인 또한 무슨 정답을 찾자고 한 건 아니었을 겁니다.
천륜이든 인륜이든 다 내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이니 그저 세상에 나온 원죄의 숙명이라 여기며 살아 갈밖에요.
제 어미 또한 늘 당신은 괜찮다 하셨는데 저도 그 말을 믿었답니다. 그래서 저는 시에 나오는 자식들뿐 아니라 누구도 나무랄 자격이 없습니다.
이미 지은 죄야 돌이킬 수 없으니 이제부터라도 가능한 죄 짓지 말자고 다짐하건만 날마다 반성과 후회의 연속입니다.
제가 먹기 위해서 사는 사람이라 출근하면서부터 기다렸던 점심시간입니다. 이 시간에 본 가을볕이 봄날처럼 참 맑고 따뜻하네요. 모쪼록 평온한 날들 되셨으면 합니다.
콩꽃님이 반겨주시니 자주 오도록 하겠습니다.ㅎ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글이네요
잘읽고갑니다...
넵! 저도 예전에 읽었을 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시였는데 어제 친구 어머니 소식에 이 시가 퍼뜩 떠올랐답니다.
우울함도 잠시뿐, 오늘이 가장 젊은 마지막 날이라 여기며 열심히 산답니다.ㅎ
문선이님 건강하세요.
@유현덕 점심먹으며 읽다가
눈물도 나고
목이메이네요ㅜ
폭탄. 심지에 불을 붙인 엄마?
무슨 뜻인지 의아했는데 엄마는 열 자녀를 사랑으로 키우지만,
열 자녀는 엄마 한 분을 모시지 못한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푸른비님 안녕하세요.
모든 어머니가 다 폭탄이 되는 것은 아닐 테지요. 마지막까지 자신을 태우는 촛불처럼 자식들 앞길 만을 비춰주며 사는 분도 있더군요.
세월은 지 혼자서 잘만 흐르고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늙어 가는 것이 순리이지만 유독 마음 대로 안 되는 것이 자식이란 말이 있습니다.
저는 철없이 살았으나 어머니의 위대한 사랑을 나이 들어서야 알았습니다.
폭탄이지 말고 차라리 사과였으면 한입씩이라도 베어물고 서로 나누었을 텐데요
우리 또한 모두가 폭탄일 텐데...
돌림 폭탄 되기 전에 뭔가 바른 길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자리님 댓글에서 착한 냄새가 솔솔 풍겨 옵니다. 저는 이런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거든요.ㅎ
애초에 폭탄을 사과처럼 여긴다면 부모님을 혹이 아니라 복이라 여기며 살 수 있을 겁니다.
인생을 연극무대라 하는 것도 갓난애 역부터 늙은이 역까지 온갖 것을 다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언제나 평온한 날이기를 기원합니다.
바위 틈에 핀 쑥부쟁이
그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의 마음을
스케치하듯 그려내는 시선이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
소장하고 싶게 만드는
그림입니다ㆍ
역시나~
눈에 착 붙는 윤슬님의 댓글입니다.
우는 아이 울음을 딱 그치게 하는 곶감 맛이 이럴까요. 등산 중에 먹는 시루떡 맛이 이럴까요.
아부 같아서 조금 민망하지만 한 편의 시를 같은 눈으로 읽어 내기가 쉽지 않은데 업이란 시를 읽고 난 제 느낌이 윤슬님과 꼭 같았습니다.
이럴 때면 내가 길을 제대로 가고 있구나라는 안도감이 생겨서 참 좋답니다.ㅎ
부모님을 폭탄으로 설정한
시인의 마음을 읽으면서
좀
과도하다는 느낌이 들긴했어요 ㆍ
부모님을 안 모시겠다는 자식은
없을 것이므로요
부모님 모시는 행운을
아무나 주는 게 아니거든요
하늘에서 내린 복 중에 복이에요
저만 효부인척한
이런 댓글 얄밉지롸잉? ㅎㅎ
얼쑤!
하고 추임새를 넣고 싶지만
그렇게도
시집살이 시키시던 우리시엄니
똥 싸서 숨겨 놓은
방구석텡이를 청소할 때마다
가슴 저립니다 ㆍ
내게 들키지 않으려 얼마나
애를 쓰셨을까요!
잘해 드리진 못했지만
그리움의 대상1호입니다ㆍ
유현덕님
건필하십시요
부모님 모시는 일을 하늘에서 내린 복이라 여기시는 그 마음 또한 꽃처럼 아름답습니다.
이런 댓글을 질투하거나 얄미워할 게 아니라 자랑할 일이고 동네방네 떠들어도 될 일입니다.
윤슬님이 들꽃 같은 고운 마음 내려 놓고 가신 자리에 저도 기쁜 마음으로 돌탑 하나 얹겠습니다.
늦게까지 머물고 있는 봄날씨 같은 가을이 조금 의아하지만 올 가을은 늦게 왔기 때문이라 여기며 감사한 마음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윤슬님도 단풍처럼 고운 가을 보내시길요.ㅎ
@유현덕
제가 복효근 시인의 시풍을
좋아하는데
유현덕님 덕분에 신미균 시인의
시상에 빠져들겠어요
뜨거운 스푸를 호호 같이 부는 사이
이런 표현들이 넘 좋아요
그리고
댓글에 놓쳤는데
그림자 길어지는 저녁이던가요!
저는
그 대목에서
담벼락에 내 그림자랑 같이 걷는
해질녘이라 표현과 같은
맥락이라서 겁나 반가웠어요ㆍ
감사합니다
친한 친구 어머니께서 치매로 요양병원에
가셨으니 맘도 복잡하고 생각이 많으셨나봐요.
자신의 각본대로 움직여지지 않는게 우리네 인생사라고 하는데요.
백세시대 유병장수는 재앙이라서요.
우리들의 이야기가 이 아침
넘나 마음에 와 닿았어요.
나무랑님께서 제 마음을 콕 짚어 내셨습니다.
제겐 각별했던 분이셨고 워낙 활달하셔서 치매하고는 거리가 있을 거라고 여겼던 분이라 더 마음이 무거웠답니다.
죽는 거야 언젠가는 오는 것이고 받아들여야 하지만 저는 죽는 것보다 치매가 더 무섭게 여겨지데요.
정작 치매 당사자는 이런 것을 모르고 있으니,,
인간의 숙명인 생로병사가 참 무상하기도 했습니다. 나무랑님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