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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역사게시판 동아시아 명나라말기의 삼총사
영웅본색 추천 0 조회 1,205 11.03.19 17:54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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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3.19 19:26

    첫댓글 만력 말년 이후의 명나라는 그야말로 "관성으로 나아가는 배"의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왜란과 청군의 침입으로 개판된 화북지역(구체적으로 북직례, 산동)은 토적들의 소굴로 전락하였고,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먹혀들지 않을 지경이었죠...-_-; 산동의 경우는 지방관의 1/3 정도만 임지에 부임했고, 나머지는 토적이 두려워 부임을 회피하거나 부임 도중 토적에게 참살당했습니다. 심지어는 토적을 진압하려는 관군의 횡포를 보다못한 지역의 향신들이 관군을 성안에 들이지 않기 위해 관군과 사투를 벌이는 개막장 상황이 연출되죠...ㄷㄷ 여기에 청군이 수차례 침입하여 북직례, 산동은 물론 남직례까지 쳐내려옵니다.

  • 11.03.20 07:50

    당시 농민들의 상황은 이렇습니다. 농번기에는 농민이 되었다가 나라에서 조세를 걷을 철이 되면 일제히 토적이 되었고, 이들을 회유하면 다시 농사를 시작했다가 다시 토적이 되기를 반복했죠. 토적들의 활동이 워낙 활발하다 보니, 살려면 토적이 될 수 밖에 없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됩니다. 여기에 청군의 방어를 위해 대규모 징세를 행하면서 아예 농민들이 일제히 토적이 되고요. 당시 명나라가 살아날 수 있는 가망은 그닥 높지 않습니다. 몇몇 인물들이 나왔다고 망하는 나라가 살아나는 것은 아니죠...^^; 원숭환이 영원성에서 지키는 상황에서도, 청군은 영원성을 우회해서 북직례를 드나들었습니다...-_-;

  • 11.03.20 09:16

    명나라는 이미 활력을 잃고 만주족이란 외세침입이 없었어도 농민반란으로 천명을 잃어가고 있던상황이지요. 부패하고 거대한 관료조직. 사치스럽고 궁정과 정쟁.

  • 11.03.21 20:43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원숭환은 상당히 과평가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국내의 혼란한 상황을 보건데 관외에 거점방어를한것은 오히려 국력만 낭비한 요소가 더 컸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거용관과 산해관 중심으로한 장성방어체제가 훨씬 좋은선택이었을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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