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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져내린 불칸동굴의 전설
소설가 김종록의 한민족 원류 탐험기 바이칼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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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간의 5년여 동안 나는 소설을 내놓지 않았다. 아니, 예전에 출간한 소설도 시나브로 잊혀지게끔 내버려두었다. 재출판하자는 출판사도 많았지만
노루 때려잡은 몽둥이 10년 우려먹는 것 같아 사양했다.
뜻은 애초부터 다른 데 있었다. 얼마쯤 여비를 벌었으니 산문(山門)을 나와 문학을 시작하면서부터 품었던 초발심으로 돌아가 필생의 작업을 하자는 것이었다. 이 땅과 역사와 조상과
내 영혼의 4중주를 풀어낼 수 있는 광활한 무대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우리 땅을 무른 메주 밟듯 돌아본 뒤 곧바로 한민족의 원류를 찾아
북방역정(北方歷程)을 감행한 이유다.
그 대장정이 거의 끝나간다. 그동안 만주벌판을 넘어 싱안령(興安領)과 위대한 바이칼을 보았다. 1996년 8월 바이칼을 처음 찾은 이래 지난 3월까지 네번을 다녀왔다. 이제 이 역정에 살을 붙여 글로 빚어내는 인고의 시간이 남았을 뿐이다. 이 글은 그 서문과도 같은 보고서로,
역정의 순서에 개의치 않고 테마별로 느낌을 정리한 것이다.
바이칼 호수는 살아 숨쉬는 신화다. 찾을 때마다 그 비밀스러운 생명력 앞에서 외경을 느낀다. 몽골리안의 본향(本鄕)인 그곳에서 영혼을
씻으면서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때 머리 바로 위에서는 북두칠성이 거대한 국자를 기울여 빛의 세례를 내려주었다.
바이칼로 가는 길은 울창한 숲이 하늘을 가린다. 숲은 길 하나만 열어주고 있어서 가르마 같은 그 오르막길을 달릴 때면 먼 하늘을 응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숲은 많은 오솔길들을 숨겨두고 있다. 그 숲길을 더듬어 여러 차례 숲으로 들어갔다. 원시성을 지닌 자연은 신선하면서도 신비로워 처녀라는 말을 붙여야 더 뚜렷하게
다가온다. 처녀림! 얼마나 가슴 뛰는 조합어인가. 처녀의 몸을 헤치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는 환희에 젖는다.
그 속에 하얗게 빛나는 둥치와 황금빛 이파리를 나풀거리는 자작나무가 있다. 만지면 희디흰 가루가 묻어나는 둥치들은 눈을 아리게 할 만큼 강렬한 반사광을 뿜어낸다. 우리가 백양나무 혹은 백화수라고 부르는 나무다. 몽골인들은 ‘호스못’, 러시아인들은 ‘비로자’라고
부른다. 특히 시베리아의 자작나무는 샤먼이 영계를 오르내리는 신성한 매개체, 곧 우주목(宇宙木)이다. 자작나무로 인해 시베리아 타이가
숲은 비로소 영성(靈性)을 띠는 것이다.
코리족은 자작나무를 경외스러운 마음으로 대한다. 그들은 이 나무를
‘에크헤 모돈’, 곧 어머니 나무라고 부른다. 자작나무가 없으면 샤먼의 신성한 정화 의식은 불가능하다. 코리족뿐 아니라 이곳 타이가
숲 속에 사는 모든 종족은 나무를 귀중하게 여긴다. 우리와 사촌쯤 되는 시베리아 원주민 부리야트인들은 함부로 나무를 자르면 목숨이 짧아진다고 믿는다.
시베리아 타이가 숲의 자작나무. 시베리아 자작나무는 샤먼이 靈界를 오르내리는 宇宙木이다. |
숲속의 목수시인 미샤
처음 바이칼을 찾았을 때 숲의 시인을 만난 적이 있다. 리스트비얀카로 가는 버스를 탔는데 일행은 몇 되지 않았다. 뒷자리에 앉은 금발의
러시아인이 말을 붙여왔다.
“어디에서 왔는가?”
안경을 낀 후덕한 인상의 사내였다. 구레나룻과 턱수염을 길렀는데도
깔끔하고 멋진 외모였다. 가이드도 나도 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긴장과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이방인의 본능이었다. 한국에서 왔다는 말은 한참 마주보며 뜸을 들인 다음에야 꺼낼 수
있었다.
“한국은 따뜻하고 좋은 나라다. 뉴스에서 접할 때마다 그곳을 꿈꾼다. 남으로 가는 철새들처럼 그곳을 여행해 보고 싶다.”
생전 처음 보는 중년 사내가 건네는 말치고는 아주 감상적이었다. 눈빛만으로도 별종은 별종을 알아본다. 내가 작가라고 하자, 그는 시를
쓰는 전직 목수라고 했다. 목수와 시인처럼 잘 어울리는 직업도 없을
듯싶었다. 가이드는 대낮부터 술에 취한 그를 경계했지만 나는 왠지
친근함이 느껴졌다.
“바이칼에는 왜 가려고 하는가?”
“내 지친 청춘의 영혼을 씻으러 갑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썩 괜찮은 대답이었다. 실제로 나는 바이칼에 뛰어들 참이었다. 오래도록 내 청춘은 무엇인가를 붙잡으려고 허우적거렸고, 그 사품에 메마르고 각박해져 있었다. 옹달샘 같았던 내 영혼은 이글거리는 불꽃이 되어 무엇이든 집어삼키려 들었다. 하지만 정작 이뤄지는 것은 없었고,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반복되는 일상 속에 세월만 흘렀다. 사랑에 고무되고 지식에 인도받으며 영적으로 진화하는
삶을 살고자 했으나, 사랑에 상처받고 혼란스러운 지식의 소용돌이에서 허우적댔으며 영적 진화는커녕 자본주의가 허락하는 풍요로움을
잡으려고 안달했다.
“바이칼에서는 능히 그럴 수 있으리라. 아내의 생일이어서 조촐한
파티를 할 생각인데 내 오두막에 함께 가겠는가? ”
뜻밖의 초대에 우리는 다시 한번 당혹했다. ‘어쩌지?’ 하는 표정으로 가이드를 돌아보니 가이드는 이런 식의 즉흥적인 어울림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오두막이 얼마나 먼 곳에 있는지 물어주세요.”
그리 멀지 않다는 회답이 전해졌다.
“가 봅시다.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도중에서 내렸다. 도로를 건너니 오솔길이 울창한 자작나무
숲 속으로 풀려 있었다. 오솔길 초입에 ‘자라아’가 드리워져 있다.
나뭇가지에 헝겊조각을 주렁주렁 매단 주술적 장식물이다. 우리의 서낭당에 해당한다. 브리야트족의 기원 풍습이다.
“어떤가? 이곳은 프리바이칼스카야 바자다. 한때는 휴양지였지만 이제는 옛일이 돼버렸다. 저 방갈로들은 내가 한창 인기 있는 목수였을
때 지은 것들이다.”
그 시절에는 경기가 좋았고 자신의 인생에도 서광이 비쳤다고 했다.
그 무렵 그는 20년 연하의 눈부실 만큼 아름다운 여인을 만났다. 이제
막 스무살이 된 류부쉬카 페트로바라는 처녀였다. 물론 당시 그는 이르쿠츠크에 가정이 있는 마흔살의 유부남이었지만 두 사람은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 아들까지 두었다. 벌이가 좋았던 시절이어서 두 가족들을 부족함 없이 돌볼 수 있었다. 그러나 운명의 힘은 잔인했다.
“소련이 붕괴되면서 나라살림은 엉망이 되었고 내 삶도 망가져갔다.
이 쇠락한 숲속에 류부쉬카와 어린 아들을 남겨둔 채 도시로 떠난 이후 보드카를 입에서 뗄 수 없었다. 그래도 달랠 수 없는 아픔을 이기기
위해 시를 쓰기 시작했다. 도시에 사는 가족들은 그런대로 살아가지만 이 숲속의 가족들은 남루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내게는 이들을 도울 능력이 없다. 오늘이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아내의 생일인데 이 잘난 샴페인 한병과 토마토 몇개를 선물이라고 들고 왔다. 가슴이 미어진다.”
언제부터인지 여우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미하일 마르겔라프.
그의 이름이었다. 애칭은 미샤라고 했다. 나는 뭐라고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하고 묵묵히 그의 뒤를 따랐다. 참으로 묘한 인연이었다. 오다가다 우연히 만나 이처럼 애잔한 삶의 이면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아내와 아들이 무척 좋아할 것이다. 멀리 남쪽 나라에서 귀인이 찾아왔으니 이보다 더 큰 생일선물이 어디 있겠는가.”
미샤는 커다란 소나무가 비켜선 자리에 터잡은 통나무집 앞에서 멈췄다. 그는 아이와 아내를 불렀다.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잠긴 문틈에
메모지가 끼여 있었다. 그가 가이드에게 그 쪽지를 펼쳐 보였다.
‘산딸기와 버섯을 따러 갑니다. 오래지 않아 돌아올 테니 기다리세요.’
미샤는 젊은 아내가 남긴 메모를 소중한 보물이나 되는 것처럼 잘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집에는 온기도 없었고 살림도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부엌에 물에 담가 놓은 버섯이 한 바가지 있었을 뿐, 식탁과 냉장고는
텅텅 비어 있었다. 미샤는 애써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두꺼운 안경알 너머로 비치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내 코허리도 시큰거렸다.
“집에는 빵 한조각 없다. 젊은 여자와 한창 자라는 아이가 버섯만 먹고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내가 이런 삶을 산다.”
급기야 미샤는 울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잠시 복잡한 생각을 달렸다.
그는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더운 물을 끓여 내왔다. 식탁 위의 자스민도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나는 어깨에 걸친 가방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어림해 보았다. 먹다 남은 초콜릿이 전부였다. 초콜릿을 전부 꺼내 그의 아내와 아들 몫을 덜어놓고 그에게도 한개를 권했다. 그는 초콜릿을 받아들고도 먹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묘한 분위기를 지닌 얼굴이었다. 슬픔을 얼마나 달게 견뎌내면 저런 얼굴이 될까 싶었다. 문득 그가 말을 던졌다.
“당신은 에고가 너무 강하다. 꽉 죈 집념의 줄을 느슨하게 풀어라. 인생은 물과 같다. 흘러가는 물결에 맡기고 음미하라. 바이칼로부터 그것을 배워라. 시대를 원망하거나 땅을 차거나 하늘을 두들겨 패려 들지 마라. 삶을 꾸밈없이 즐기고 그것을 노래하라.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대가 원했던 일이 저절로 이루어진다. 무엇을 하기 위한 삶을 살지
말고 하다 보니 저절로 이루어지는 삶을 살아라.”
딴은 명언이었다. 하지만 나는 심사가 뒤틀렸다.
“미샤, 당신 때문에 나는 우울해져버렸소. 남의 에고를 두고 콩팔칠팔 떠들지 말고 숲으로 간 모자 걱정이나 하시오. 비를 맞고 버섯을 따올 그들이 돌아와 먹을 음식이 아무 것도 없지 않소?”
나는 그때 서른네살의 한창 때였고 그만큼 더 기질이 성하던 시절이었다. 하고픈 말을 속내에 담아두는 성정이 아니었다. 제 코가 석자면서 남의 일에 오지랖 넓게 파고드는 것도 가당찮았고, 그 형편에 그처럼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도 못마땅했다.
“어서 가서 바이칼을 보라. 그러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그는 웅숭깊게 내 손을 그러쥐며 말했다. 오뚝한 콧날과 깊은 눈빛은
여전히 내 심연을 꿰뚫어 왔지만 손으로 전달되는 체온은 포근했다.
그 순간 미샤는 내 손가락에 끼워진 화이트골드 반지를 발견하고는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이것은 뭔가. 별자리인가?”
반지에는 삼태성과 북두칠성이 박혀 있었다. 운석과 사파이어로 새긴
성좌였다.
“…별을 좋아하는 영혼은 다른 이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구원받는다. 나도 별을 좋아한다. 내 별자리는 알골(영웅 페르세우스가 왼손에
거머쥐고 있는 악마, 곧 메두사의 잘린 머리)이라고 믿는다. 그런 생각이 든다. 밤하늘의 별을 볼 때면 나는 언젠가는 끝이 온다는 것을 느낀다. 그 끝 다음에는 무엇이 올까 두렵다. 산다는 것은 두려움을 연장하는 행위에 다름아니다.”
뒷골이 띵했다. 범상한 넋두리는 아니었다. 갑자기 두려워졌다. 으스스한 한기를 느낀 것은 결코 비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만 가십시다. 너무 많은 시간을 지체했어요.”
나는 가이드를 재촉해 서둘러 오두막을 빠져나왔다. 미샤는 내 속내의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눈빛으로 작별 인사를 건넸다. 비는 그쳐가고
있었다. 물안개 속의 자작나무 숲은 귀기마저 품고 있었다. 흰 둥치가
흡사 소복 같았다. 비 끝에 공중을 더듬는 바람소리는 원한 많은 여인의 호곡소리 같았다.
그 사건이 있고 벌써 7년의 세월이 훌쩍 지났다. 나는 여전히 삶의 고해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지금도 시베리아 타이가 숲을 떠올릴 때면 목수 시인 미샤의 깊은 눈이 내 심연을 응시하는 것 같다.
김종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