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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우암 송시열 埋安之壇 과 追慕碑 (대잠동)
藥泉(승호) 추천 0 조회 45 16.12.08 16:25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추모비 전문


存在하는 모든 것은 變化한다. 어떤 最上價値後人들에 의해 再評價 받기 마련이다. 그러나 재평가가 두려워 꼭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은 良心있는 선비의 태도가 아니다. 나라가 危殆로울 때 나아갈 方途를 제시하고 사람이 사람 노릇을 못할 때 道理를 외치는 선비가 있다면 그를 높이 推仰해야 마땅하다. 더구나 時空을 크게 열어 聖賢의 가르침에 바탕을 두고 身命을 바쳐 올곧게 산 선비가 있다면 後學들이 그를 崇奉 追慕함이 至當하다. 尤菴 선생이 바로 그러한 분이시다선생의 本貫恩津 時烈, 英甫, 우암은 이다. 선생은 아버지 甲祚와 어머니 선산 곽씨의 셋째 아들로, 선조 40(1607) 충청북도 옥천군 구룡촌에서 태어나시어 아버지로부터 擊蒙要訣등을 배우면서 孔子, 朱子, 栗谷을 푯대삼도록 가르침을 받았다. 栗谷 李珥嫡統을 이은 沙溪 金長生과 그의 아들인 愼獨齋 金集의 문하에서 栗谷의 학문을 전수 받았고, 全的으로 朱子의 책을 읽어 정통을 삼았다. 선생은 철저히 알고, 순수한 마음으로 실천하고 확충하는 것을 學問의 바른 길이라 여겨 正直終身토록 간직 하셨으므로 動靜言行靑天白日처럼 분명 하셨다. 선생은 ? 趙光祖至治主義栗谷變通論沙溪禮學을 수용하여 畿湖學派의 중심 학자로 우뚝 서셨다. 선생은 二十七세에 生員試에 장원하고, 二十九세에 鳳林大君師傅로 임명된 것을 시작으로 六十세가 넘어 잠시 右議政左議政을 맡았던 적은 있으나 七十四세에 領中樞府事를 맡기 이전에는 가급적 벼슬을 사양하고 철저히 학문에 몰두 하셨다. 德源流配되었을 때 공부할 수 있도록 조용한 장소로 옮겨줄 것을 요청하고 長?로 유배지를 옮기고서는 夫人을 여읜 아픔 속에서도 朱子大全箚疑를 완성하신 것이 그 한 이다. 선생의 학문적 폭과 깊이는 방대한 분량의 朱子大全에 담겨 있거니와 나라를 걱정하는 哀情經世炯眼乙丑封事丁酉封事에 잘 나타나 있다. 선생은 戶布制奴婢從母法의 실시를 주장하셨으며, 女性의 경제적 역할을 중시하고 身分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善行者를 글로 표창하는 등 人間 尊重의 사회구현에 솔선하시는 한편, 당신은 사치를 배격하고 근면 검소한 생활을 실천하여 학자의 模範을 보이셨다. 선생은 帝王家禮法士庶人이 것과 다르지 않다는 禮學精神으로 일관 하셨다. 선생이 趙大妃服喪 問題로 인해 함경남도 德源으로 유배되신 것도 그 때문이었다. 덕원에서 장기로 移配 되는 도중 烏川에서 이곳 선비들과의 첫 만남이 이루어 졌다. 선생은 圃隱 鄭夢周 등 여러 先賢이 이 고장에서 배출된 사실을 들어 君子의 고을에 家家忠孝고 일깨우셨다. 이곳에서 년 가까이 머무시는 동안 고을의 學風禮法이 크게 떨치니 士林들이 선생을 敬慕하여 竹林山 아래에 德林書社를 창건하였다. 高宗書院撤廢 명령으로 位牌鄕校埋安하게 되고, 향교를 江北 柳等으로 移建하자, 그 자리에 을 만들어 祭祀하고 를 세워 사실을 기록했다. 戊午년에 書院으로 승격하였던 바, 세월이 흘러 建物老朽하고 周圍環境劣惡하므로, 00二十 門中合力하여 이곳 포항시 남구 대잠동에 새 터를 마련하고, 드디어 00월에 追慕碑를세워 先儒들의 遺志를 계승하기에 이르렀다. 앞서 고을의 先儒賜額을 요청하였고 後學德林書院考往錄을 발간하는 등 정성어린 사업을 추진하였음도 添記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선생의 偉大하심과 追慕碑 건립의 아름다운 뜻과 내력을 엮어 기리는 글로 삼는다. 聖賢의 가르침을 生命처럼 히 여겨, 굶주림 견디고 밝은 벗 삼아 讀書를 즐기셨네 지으신 글 처리하신 사업 萬人이 부러워했고, 正直大義로 위대한 師表 이루셨네 배움은 實踐으로 完成되나니, 이를 위해 流配賜藥조차 마다하지 않으셨네 鄭圃隱 선생을 東方理學의 머리라 일컬으시며, 延日 고을 선비들을 로써 일깨우셨네 그 울림 생생한 歷史로 남아, 書社에서 書院으로 이어 나갔네 자세한 來歷 德林書院考往錄에 적혀 있는데, 꿋꿋한 儒林精誠 참으로 높고도 크구나 아아, 선생의 자취를 여기 追慕碑에 세기노니, 군자의 高尙香氣 길이 감돌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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忠南大學校 敎授 文學博士 光山 后人 金善祺 삼가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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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첫댓글 왕선생님~~
    늘 ~ 좋은 자료, 유익한 자료 부지런히 올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많은 도움을 받습니다.
    한자에 토시를()해서 해주시면 얼매나 좋을까요??
    제가 한자실력이 짧아서..
    제 한자실력이 완전히 뽀롱났네요~~ㅋ..

  • 작성자 16.12.13 08:06

    제가 한자를 모르기 때문에 처음에 그렇게 작성을 했는데 원문의 의도를 왜곡 할수도 있다는 생각과 회원님들의 능력을 무시한다는 느낌이 들까 우려되어 원문 그대로 올렸습니다.
    수정해서 다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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