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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은 어렵고 지루하다. 아니, 나름대로 즐겨 듣고 좋아하는 데도 공연장에 가면 엄숙한 분위기 속에 깜빡 조는 것은 예삿일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클래식 공연장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이야기와 웃음이 있는 재밌는 공연들이 늘고 있다. 특히 젊은 연주가들을 중심으로 색다른 클래식 공연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그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뮤지션이 바로 피아니스트 김정원이다.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로 더욱 알려진 그는 10월부터 전국 12개 도시를 돌며 팬들에게 한 발 더 다가설 예정이다. 연주활동과 10월 초 발매될 앨범작업을 위해 비엔나에 머물고 있는 김정원과 e-메일로 짤막한 대화를 나눠봤다. |
자료조사를 위해 인터넷에서 ‘김정원’을 검색해 봤더니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 관련 내용이 단연 눈에 띕니다. 영화 출연 뒤 매스컴의 위력이랄까, 어떤 변화를 실감하시나요?
“물론 영화를 통해 피아니스트 김정원을 처음 알게 되신 분들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또 그것을 계기로 많은 분들이 클래식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건 반갑고 기쁜 일이지요. 하지만 지나치게 <호로비츠를 위하여>의 피아니스트 김정원 만으로 인식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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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역시 과거에는 대중적인 음악이었고, 분명 대중에게 사랑받아야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장르지만, 왠지 지나치게 대중적이면 품위를 잃는 듯한 모순도 안고 있습니다. 클래식 연주가로는 흔치 않게 '오빠 부대'를 몰고 다니시는데 어떻습니까?
“클래식이 과거에는 대중적인 음악이었다고 언급하셨는데, 저는 클래식 음악이 가진 아름다움은 시대의 흐름을 초월한 절대적인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기쁨이지요. 지나치게 대중적이면 품위를 잃는다는 말씀은, 음악가로서 가져야 할 음악에 대한 애정과 철학이 결여되어 있을 때 해당되는 것 아닐까요. 클래식 음악계의 ‘스타문화’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것을 클래식 음악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으로 이어질 수 있게 하는 것이 차세대 뮤지션들의 의무이고 사명이겠지요.”
9월 16일과 17일 빈 Musikverein의 황금홀과 클라겐푸르트(오스트리아 남부도시)에서 있을 프라하 방송교향악단과 협연을 위해 현재 오스트리아에 머물고 있는 김정원은 10월 28일 서울 공연을 시작으로 연말까지 국내 12개 도시를 돌며 리사이틀을 마련할 예정이다. 클래식 피아니스트로는 국내 최초. 특별한 계기나 취지가 있는지 궁금하다.
| “아직도 대부분 지방에서는 클래식 공연을 접할 기회조차 많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지방에 있는 많은 클래식 팬들이 좋은 공연에 대한 갈증을 가지고 있고, 제 서울 공연 때도 지방에서 올라오셔서 다음에는 꼭 지방에 와달라고 부탁하신 팬들이 많았습니다. 지방곳곳의 문화수준이 고루 발전하는 것이 결국 우리나라의 문화수준이 발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무대에 오르는 공연은 크게 늘고 있지만 공연계는 계속 불황입니다. 이른바 스타 가수들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 이번 전국 투어의 경우 지방 공연은 대부분 천 석을 훌쩍 넘는 공연장들입니다.
“공연장을 꼭 가득 채워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공연장의 반만 찬다면, 거기 오신 분들이 안타까워하실 만큼 그래서 다음 공연에는 꼭 누구라도 함께 와서 이 빈 공간을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드실 만큼 좋은 공연을 보여드리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국내에서 클래식 공연은 여전히 소수 집단만이 즐기는 문화인 것 같습니다. 게다가 요즘 피아노 연주는 이사오 사사키나 이루마 등 듣기 편한 곡이나, 양방언이나 막심처럼 스케일이 크거나 쇼적인 공연이 주도하고 있는데요. ‘정통 클래식의 대중화’가 가능할까요? 어떤 방법을 시도하고 계십니까?
“클래식 음악의 내용에 있어 본질 자체의 변화는 필요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클래식 음악은 난해하다. 지루하다. 클래식 음악은 특수계층만이 누리는 고급문화다.’ 등의 선입견을 없애기 위해서는 보다 오픈된, 젊은 감각에 맞는 홍보와 마케팅이 필요하겠지요. 음악회를 가기 위해서는 꼭 정장을 갖춰 입어야 한다거나 클래식 음악가는 천편일률 학구적인 이미지라는 등의 클래식 음악을 둘러싼 잘못된 선입견들이 먼저 허물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국내외 클래식 공연이나, 공연을 즐기는 관객들의 문화적 차이를 느낀 적이 있을 텐데 비교해 주실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클래식 문화계의 미래가 희망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럽의 공연장 분위기가 아직 어떤 면에서는 더 수준이 높다고 볼 수도 있지만(어려운 레퍼토리를 이해하는 부분이나 청중예절 등) 우리나라 공연장에는 유럽에 비해 훨씬 젊은 청중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또 불과 십여 년 전과 비교해도 눈에 띄게 많아진 세계적 수준의 국내 음악가들. 저는 높아지는 우리나라 아티스트들의 수준과 함께 청중들 또한 성장해가리라 생각합니다.”
이번 공연이 ‘대중 속으로 한걸음 가깝게 다가서기 위한 도전’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객석과 거리를 좁히는 김정원 공연만의 특징이 있을까요?
“‘가장 위대한 예술은 스스로에게 진실한 음악이다.’ 제가 음악을 사랑하는 만큼, 또 제가 진지하게 연구하고 노력하는 만큼 청중들이 감동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중적이고 캐주얼한 것은 공연홍보(신세대 감각의 포스터와 프로그램 제작 등)만으로 충분할 것 같은데요(^^).”
이번 공연 포로그램을 보면 드뷔시의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이나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등 귀에 익숙하면서도 다소 음울한 곡들입니다.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남다른 공연의 모습이 있습니까?
‘“위의 곡들이 다소 음울한 면이 있지만 또한 음울하기만 하지는 않지요. 청중들이 공연이 끝났을 때, 상처를 위로 받은 후의 따뜻한 느낌 안고 공연장을 나가실 수 있었으면 합니다.” |
| 클래식은 같은 곡이라도 연주하는 사람에 따라 느낌이 크게 달라집니다. 김정원 씨의 연주는 다른 피아니스트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이번 연주회에서 관객들이 김정원 씨의 어떤 점을 알아주길 바라시는지요?
‘“특별히 김정원의 어떤 점을 알아주시길, 하고 바라지는 않습니다. 드뷔시와 베토벤과 무소르그스키의 아름다움. 제가 그 곡들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느꼈던 아름다움과 행복함이 그대로 전달되길 바랍니다.”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는 말이나 글은 물론, 눈빛과 표정, 억양 등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짧은 e-메일 인터뷰를 통해서는 이 모든 것을 살펴볼 수 없었기에 비엔나로 직접 찾아갈 걸 하는 후회가 남는다(^^). 하지만 그가 고심해서 써 내려갔을 답변들과 그 글에 담긴 뉘앙스로 미루어, 다소 고집 있고 깐깐한 성격의 뮤지션일 거라 짐작해본다. 대중에게 다가서되 음악의 본질은 지키려는, 클래식 음악가로서의 철학과 애정을 지닌 피아니스트 말이다. 나이와 함께 연륜의 깊이가 묻어나는 연주자로 늙어가는 것이 소원이라는 피아니스트 김정원. 서정과 열정을 연주하는 그의 음악여행에 동참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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