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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라
불가(佛家)에서는 한 수행자가 평생을 두고 수행하는 주제를 화두(話頭)라 한다. 효봉(曉峰)스님의 경우 화두는 무자(無字)였다. 그는 無字의 화두를 벽에 써 붙여두고 평생토록 수행에 정진하였다. 그와 같이 불교식으로 표현하자면 나는 2011년 일 년간 추구하여 나갈 화두를 "거룩하라"는 말로 선택하였다.
구약성경 레위기 19장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위기 19장 1, 2절)
"거룩하다"는 말의 성경적 의미는 "구별되었다"는 말이다. 우리들 크리스천들은 세상 속에서 살면서도 세상과 구별되어 살아야 한다. 이것이 거룩함의 본질이다.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그러나 아직은 하늘나라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살고 있다. 이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백성들로 살아가는 것이 거룩한 삶이다. 위에 인용한 말씀에서 하나님이 거룩하시니 너희는 거룩하라 이르셨다. 2011년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본성을 따라 거룩하게 사는 해가 되기를 1월 1일 새 해 첫 날에 다짐한다.
거룩하라 (2)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위기 19장 2절)
'거룩하라'를 2011년의 화두로 삼아 일 년 365일, 12달 53주를 거룩함을 이루어 나가자는 뜻은 어제 글에서 쓴 바이다. 위에 인용한 레위기 19장 2절의 말씀은 레위기서 전체를 대표하는 말씀이다. 레위기서 전체가 거룩한 생활을 주제로 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위의 말씀에서 '거룩하라'는 말은 명령문으로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거룩하라'고 명령하신다.
명령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따를 것인가 않을 것인가만 남는다. 우리가 이 명령을 받아들여 거룩하여야 할 이유는 하나님 자신의 본성이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이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살려는 백성들을 통하여 자신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시고 영광을 나타내시려 하시기 때문이다.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겠고 온 백성 앞에서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 하셨느니라."(레위기 10장 3절)
거룩하라 (3)
2011년 화두로 '거룩하라'를 삼았음은 연초에 밝힌 바이다. 성경 66권 중에서 '거룩한 생활'을 주제로 하는 책은 레위기서이다. 구약을 경전으로 삼고 있는 이스라엘의 유대교에서는 성경 전체 중에서도 레위기를 중요시하여 자녀들에게 가장 처음 읽게 하고 있다. 마치 유교에서 어린이들에게 천자문을 먼저 읽히고 동몽선습을 읽히듯이, 유대교에서는 레위기서를 가장 이른 나이에 읽힌다.
이는 레위기서에서 강조하는 거룩한 생활이 어린 나이에서부터 체득되어 평생토록 지켜 나가게 하기 위한 기초학습의 일환이다. 그런데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레위기서를 소홀히 여겨 어떤 설교자들은 평생토록 레위기서를 주제로 설교한 적이 없노라고 하는 설교자도 있을 정도이다. 그렇게 하는 이유인즉 레위기서의 내용이 비교적 딱딱하고 현실감이 없는 듯이 보이는 탓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레위기서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레위기서의 주제(keyword)는 11장 44, 45절이다.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니라."
이 말씀에 따르면 우리가 거룩하여야 할 이유가 하나님 자신이 거룩하시기에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들도 거룩하여야 한다고 이르셨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거룩하여질 것인가에 대하여 디모데전서 4장 5절에 일러준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그리고 요한복음 17장에서 일러준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니이다.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한복음 17장 17, 19절)
거룩하라 (4)
레위기 19장은 거룩한 생활에 뒷받침되어야 할 실천사항을 낱낱이 일러준다. 그 중에 여덟 가지 사항이 핵심을 이룬다. 거룩한 생활이 구호로만 그치거나 추상적인 수준에 머물지를 않고 날마다의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되어지기 위하여 이들 여덟 가지 거룩한 생활의 실천요강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19장의 서두에서 먼저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로 시작하여 이어서 거룩한 생활의 내용이 이어진다.
첫째가 부모공경이다. 기독교는 철저한 효(孝)의 종교이다. 십계명에서부터 하나님과의 관계를 일러주는 4계명까지에 이어 인간관계의 첫번째를 “네 부모를 공경하라”로 시작한다. 그리고 신약성경 에베소서에서는 부모공경에 대하여 다음같이 일러준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에베소서 6장 1~3절)
거룩한 생활의 두 번째는 ‘안식일 지키기’이다. 구약시대부터 안식일을 지키는 성수주일(聖守主日)은 지켜도 되고 지키지 않아도 되는 그런 정도가 아니었다. 말하자면 목숨 걸고 지켜야 하는 계명이었다. 구약성경에서는 안식일을 범한 죄로 사형에까지 처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요즘들어 안식일 지키기가 너무 소홀하여진 감이 있다. 거룩한 생활의 실천에는 예나 지금이나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는 성수주일은 필수사항이다.
거룩하라 (5)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신 말씀은 지금도 우리들에게 일러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명령이기에 무조건 지켜야 한다. 2011년 새 해에는 ‘거룩하라’ 명령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일을 첫째가는 목표로 삼아 나가고자 한다.
그런데 레위기 19장에는 거룩함을 실천하는 실천요항을 여덟 가지로 일러주고 있다. 첫째와 둘째인 부모공경과 안식일 지키기는 지난 글에서 적은 바이다. 오늘은 셋째와 넷째인 우상숭배 금지와 올바른 제사, 곧 바른 예배에 대하여 살펴보자.
“너희는 헛된 것들에게로 향하지 말며 너희를 위하여 신상을 부어 만들지 말라.”(레위기 19장 4절)
“너희는 화목제물을 여호와께 드릴 때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리라.”(레위기 19장 5절)
참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고 다른 신의 신상(神像)을 만들지도 말고 절하지도 말라는 명령은 성경에서는 절대적인 명령이다. 구약시대는 다신교(多神敎)의 시대였다. 부족마다 나라마다 신이 달라 서로 전쟁을 하면 신이 센 쪽이 승리한다고 믿던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 유독 성경은 유일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길 것을 가르쳤다.
거룩한 생활의 네 번째로 하나님께 제물로 제사를 드릴 때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리라 이르셨다. 요즘 말로 하자면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이다.
예수께서 예배에 대하여 친히 이르셨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한복음 4장 23, 24절)
바울도 로마서에서 참된 예배에 대하여 다음같이 말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로마서 12장 1절)
거룩하라 (6)
우리들 크리스천들은 스스로 부르기를 성도(聖徒)라 부른다. 성도란 글자 그대로 거룩한 무리이다. 그러나 교회와 교인들의 삶이 점차 세속화되어지면서 거룩함은 이름만 있고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다. 말하자면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다 이르신 말씀처럼 거룩의 이름은 있으나 거룩의 실상과 능력은 없는 것이다. 거룩함을 잃은 크리스천은 마치 맛을 잃은 소금과 같아서 버려질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그래서 레위기 19장에서는 거룩한 삶을 살아감에 필요한 구체적인 사항들을 여덟 가지로 일러주고 있다. 지난 글에서 거룩을 이루어 나감에 필요한 네 가지들인 부모공경, 안식일 지키기, 우상숭배금지, 올바른 예배를 적었으니 오늘은 다섯 번째 항목인 ‘가난한 자들에 대한 배려’이다.
“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또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레위기 19장 9, 10절)
가난한 이웃에 대한 배려는 성경의 일관된 관심이다. 성경은 거듭거듭 누누이 가난한 이웃돌보기를 강조한다. 위에 인용한 말씀은 농경시대에 가난한 이웃을 도울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일러준다. 농사를 지어 추수할 때에 밭모퉁이 몇 고랑은 욕심 부리지 말고 남겨두라는 것이다. 마을에서 농사가 없는 고아나 과부 혹은 나그네들이 거두어 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뜻에서다. 그리고 밭고랑에 떨어진 곡식이삭이나 과일 열매를 줍지 말라는 것이다. 추수할 것이 없는 이웃을 위한 몫으로 남겨두라는 것이다. 이런 모습으로 “가난한 이웃을 위한 끊임없는 배려”가 거룩한 삶의 내용이라 성경은 일러준다.
거룩하라 (7)
신앙생활에서 ‘거룩하다’는 말만큼 오해가 많은 말도 드물다. 교인들 중에는 애써 거룩하여지려고 ‘거룩하기’를 꾸미려 애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말소리에 거룩을 나타내려고 자기 소리가 아닌 다른 소리를 낸다든지 괜스레 헛기침을 하며 5분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말한다든지 아니면 시도 때도 없이 ‘아멘! 아멘!’을 반복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 동료 목사 중에는 설교만 시작하면 자기 소리가 아닌 변성을 내며 목에서 가래 끓는 듯한 소리를 내는 목사도 있다. 내가 듣기에 민망스러워 “왜 그렇게 자기 소리가 아닌 가성(假聲)을 내느냐? 그러지 말고 본래 타고난 자신의 소리를 내라”고 일러 주었더니 “허허 할~렐루야....”하며 얼버무렸다. 나는 몸에 닭살이 돋는듯하여 “친구, 왜 그래 목에 부스럼 났냐? 왜 그런 소리를 자꾸 내느냐? 제발 그러지 마라 그건 거룩도 아니고 경건도 아니고 허세일 뿐이다”고 일러준 적이 있다.
거룩함과 순수함 그리고 자연스러움은 하나로 통한다. 거룩한 사람은 순수한 사람이요 순수한 사람은 자연스러운 사람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거룩하여지려고 부자연스런 행동을 취하고 순수함이 없이 꾸며서 거룩한 체 한다. 거룩과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 방법으로 거룩한 척 하려 든다. 한국교회 교인들 중에 그런 분들이 많은 것은 아마 우리 사회에 아직도 유교적인 형식주의의 잔재가 남아있어 그렇지 않을까 여겨진다.
출애굽기에서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제단을 쌓을 때에 꾸미지 말고 자연석들을 원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쌓으라 하였다. 그리고 도구로 돌을 다듬지 말라고 하였다. 그대로의 모습, 자연스런 모습이 거룩함과 통하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에는 숱한 종교들이 있다 그 많은 종교들이 각기 나름대로의 제사법이 있고 제단이 있고 성전이 있다. 그렇게 많은 종교와 제단들 중에 절대로 꾸미거나 인위적인 수단을 취하여 모양을 내지 말게 한 경우는 성경 밖에 없다. 성경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거룩하라 (8)
거룩함을 추구함에 있어 인위적인 조작(Artificial manipulation)이 있어서는 위선으로 흐르게 됨은 지난 글에서 지적한 바이다. 거룩함은 거룩하신 하나님 자체로부터 비롯되는 것이기에 절대로 순수하여야 하고 자연스러워야 한다. 그럼에도 많은 목사들이 거룩함을 꾸미려 들기에 오히려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레위기 19장에서 일러주는 거룩함에 이르는 여덟 가지 사항 중에서 여섯 번째는 공평과 공의의 실천이다.
"네 이웃을 억압하지 말며 착취하지 말며 품꾼의 삯을 미루지 말며...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둔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며... 네 이웃의 피를 흘려 이익을 도모하지 말라."(레위기 19장 13~16절)
요즘 우리 정부에서도 '공정한 사회'를 이루겠다는 의지를 자주 표명하고 있다. 위의 말씀에서 개인이나 기업이나 국가가 거룩함에 이르기 위해서는 혼자서 깨끗하다 하여 되는 일이 아님을 일러준다. 개인 개인이 속한 공동체 전체가 공평과 공정을 이루어 나갈 때에 거룩함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를 위해 억압과 착취가 없고 재판의 공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재판의 공정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가난한 사람이라 하여 편들지를 말고 부자거나 권력이 있다 하여 아부하여서도 안 된다. 글자 그대로 공정함을 실천하여 나갈 때에 거룩한 공동체가 이루어지게 된다.
거룩하라 (9)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위기 19장 18절)
우리들 크리스천들은 거룩함에 대하여 세 가지 그릇된 생각을 하고 있다. 첫째는 나 혼자서 거룩하고자 한다. 이웃과 섞이지 않고 세상과 섞이지 않은 채로 혼자서 고고하게 거룩함을 지키려든다. 둘째는 교회 안에서만 거룩하고자 한다.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나 교인들끼리 모였을 때에만 거룩해지려 든다. 셋째는 영적인 일에만 거룩하고자 애쓴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일러 준다. 이웃 사랑이 '거룩'에 이르는 지름길임을 일러 준다. 그런데 이웃 사랑의 기준을 제시하여 주기를 자신을 사랑하는 기준으로 이웃을 사랑하라 일러준다. 그래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두 가지 사랑이 모든 율법과 가르침의 근본이요 거룩함의 기본이다.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것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였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태복음 22장 35~40절)
거룩하라 (10)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위기 19장 2절)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거룩하신 하나님이니 그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이 거룩하여야 함은 당연하다. 그래서 성경에서 ‘거룩하라’는 말은 명령문으로 나온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명령이다. 그리고 창세기 1장에서 일러주듯이 사람이 지음 받을 때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기에, 사람의 내면에는 거룩함을 지향하는 본성이 잠재되어 있다. 그러나 그 본성이 세파에 시달리고 죄와 습관에 짓눌려 상실되었을 따름이다.
그렇기에 거룩함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훈련이 필요하다. 디모데전서에 이르기를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하였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습하라.”(디모데전서 4장 7절)
마찬가지로 거룩함에 이르는 일에도 연습이 뒤따라야 한다. 그래서 날마다 말씀과 기도가 이어지는 삶의 실천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디모데전서 4장 5절)
건강한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는 데에는 네 가지 연습이 필요하다.
첫째는 육체의 연습이다. 곧 운동과 절제를 통하여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꾸어 나간다.
둘째는 생활의 연습이다. 무질서한 생활을 하면서 좋은 크리스천이 되기는 불가능하다. 질서 있고 조화로운 생활을 체득(體得)하여 나감에는 연습이 필요하다.
셋째는 경건의 연습이다. 경건이란 말의 성경적 의미는 예수를 닮아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삶과 인격을 닮아 나가는 훈련이 경건의 연습이다.
넷째는 거룩의 연습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본성을 이어받아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거룩한 백성들이 크리스천들이다. 오늘도 복잡한 세상 속에서 복잡한 일과를 감당하면서도 그 속에서나마 거룩하라 명령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기에 최선을 다하는 우리들이 되어야겠다.
거룩하라 (11)
2011년 한 해 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추구하여 나갈 화두로 ‘거룩하라’를 정하고 그에 대한 다짐으로 열흘간 글을 썼다. ‘거룩하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내리시는 명령이기에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거룩하여야 할 의무가 우리들에게 있다. 성경의 세 번째 책인 레위기서는 그 주제가 거룩한 생활을 주제로 한다. 그래서 레위기서에만도 ‘거룩‘이란 말이 75회나 되풀이 되어 나온다.
특히 19장이 거룩한 생활을 함에 꼭 필요한 여덟 가지 사항을 일러주는데 오늘 글에서는 마지막 여덟 번째 사항을 적는다. 다름 아닌 건전한 상거래(商去來)에 대한 내용이다.
“너희는 재판할 때나 길이나 무게나 양을 잴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고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와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한을 사용하라. 나는 너희를 인도하여 애급 땅에서 나오게 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레위기 19장 35, 36절)
얼핏 생각하기에는 거룩한 생활과 공평한 상거래와는 관계가 없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성경 말씀에는 분명하게 일러준다. 거룩한 생활에는 공정한 재판과 공평한 상거래가 필수조건임을 일러준다. 재판에 공정하지 못하고 불의를 행하거나 상거래에 속임수를 쓰면서 거룩함을 말할 수 없을 것은 당연하다. 이런 사항들이 거룩한 삶이 종교행위에 한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에서 바른 삶이 이루어질 때에 거룩함을 이루어 나가게 된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되풀이 하면서 글을 줄인다.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니라.”
2011. 1. 김진홍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