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친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 족보는 나씨가 신라 효공왕(재위 897~912) 때 나주를 본관으로 받았다(賜貫羅州)고 전합니다. 그런데 「나주라는 이름은 왕건이 처음 지었으니, 그보다 앞서 나주를 본관으로 받았다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옛 기록을 같은 잣대로 하나하나 살펴보았습니다.
○ 「왕건이 나주로 고쳤다」는 기록부터 서로 다릅니다. 『고려사』 세가는 903년, 『삼국사기』 궁예전은 911년이라 하였고, 『고려사』 지리지와 『삼국사기』를 보면 이름을 고친 이는 왕건이 아니라 궁예입니다.
○ 김정호의 『대동지지』와 전라남도 향토문화총서 『전남의 마을유래 자료집』(1988)은 왕건은 금성군을 쳐서 빼앗았을 뿐이고, 나주라는 이름은 940년(고려 태조 23년)에 공식으로 정해졌다고 적었습니다.
○ 그런데도 그 전부터 「나주」의 흔적이 있습니다. 통일신라 초 686년의 「발라주(發羅州)」, 신라 효공왕 14년(910)의 「나주성」, 그리고 장화왕후 집안이 「대대로 나주의 목포에 살았다」는 『고려사』의 기록입니다.
○ 견훤이 열흘 넘게 에워싸고 바다를 전함으로 메웠던 나주성 싸움 이야기와, 1958년 송재공파보 변의문의 「우리 나씨가 가장 먼저 나주를 본관으로 받았다(惟我羅最先而賜貫羅州)」도 함께 실었습니다.
폰으로 넘겨 보는 책(플립북)으로 만들었습니다. 옛 기록은 한문 원문과 풀이를 함께 실었습니다.
아래 주소를 클릭하면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s://guemsungnac.github.io/sagwannaju.html
이 글은 개인이 옛 기록을 모아 정리한 것으로, 어느 단체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읽어 보시고 의견을 주시기 바랍니다.
금성나씨 心工 라정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