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 송구영신)
가장 위대한 발견 (창 45:1-5)
1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들에게 자기를 알리니 그 때에 그와 함께 한 다른 사람이 없었더라 2 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3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이 시간 “가장 위대한 발견”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새해 큰 보물을 발견하는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탈리아의 철학자요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는 그의 저서 “시간 박물관”이란 책에서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바로 시간의 발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어느 동물에게서도 발견할 수 없는 개념이 시간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간 발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더 위대한 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 발견은 바로 하나님과 그분의 은혜입니다. 오늘 본문의 요셉이 발견한 보물도 그 보물입니다. 본문은 요셉과 그 형제들이 상봉하는 장면인데 영화의 어떤 장면도 이 장면을 넘기 어려울 것입니다.
아시는 대로 형들이 요셉을 미워하여 죽이려다가 애굽에 팔았는데 세월이 지나 요셉은 놀랍게도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었고, 팔았던 형들은 그걸 모른 체 애굽에 곡식을 구하러 요셉 앞에 나간 것입니다. 그들을 만나는 요셉의 마음은 만감이 교차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요셉에게 신앙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삶 파란만장했지만, 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위대한 발견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지난 한 해, 그리고 수십 년의 지나간 세월 속에서 무언가 발견해야 할 귀한 것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3-4절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요셉이 아버지의 안부를 물음도 놀랍지만, 아우 요셉이라 하니 깜짝 놀랐습니다. 더구나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놀라 간이 떨어질 뻔했을 것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자기들이 미워서 판 요셉이 애굽의 2인자가 되어 있으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러나 염려했던 보복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요셉이 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높이셔서 가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런 섭리가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이처럼 우리 인생에서 발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롬5:8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했듯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사랑하셔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 믿지 않았더라면 어떤 운명이었을까요? 그런데 하나님을 발견했지만 더 깊이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
20세기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여성 사역자 중의 한 사람인 캐더린 쿨만은 1907년 태어나 21살 때부터 사역한 위대한 영적 사역자입니다. 그녀의 사역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가득한 사역이었습니다. 캐더린 쿨만은 피츠버그의 제일장로교회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성령님을 훼방하지 마세요. 그 분은 나의 모든 것입니다. 제발 그분에게 상처를 주지 마세요. 그는 나의 전부입니다. 여러분과 나의 관계보다 나와 그분의 관계가 더 가깝습니다." 이렇게 깊이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이 함께 하실 뿐만 아니라, 다시 사신 주님을 우리 중심에 모시고, 늘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성령으로 그와 신비적 연합을 이루어, 그와 함께 죽고 그와 함께 살고 그와 함께 하늘의 영광으로 빛나는 그 은혜를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보다 더 큰 발견은 없습니다.
2.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5-7절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요셉은 깨달았습니다. 형들이 자기를 미워한 것도, 애굽에 종으로 판 것도, 다 하나님의 예정하신 섭리였다는 것입니다. 이 섭리가 없었으면 요셉은 가나안 땅의 한 촌부의 아들일 뿐 총리는 물론 가족을 구원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 섭리를 몰랐다면 요셉은 총리는 고사하고 형들에 대한 원한으로 폐인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지나온 생애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해야 합니다. 즐거웠던 일, 괴로웠던 일, 감사했던 일, 슬펐던 일, 힘들었던 일, 이 모두가 나를 사랑하셔서 위대하게 하시려고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그런 고통이 없었다면 하나님을 이렇게 가까이할 수 있었겠습니까?
3. 자기와 이웃에 대한 발견입니다.
9-10절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아뢰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지체 말고 내게로 내려오사 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머물며 나와 가깝게 하소서”
요셉은 자기를 죽이려다 말고 노예로 팔아넘긴 형들을 용서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아버지와 함께 애굽의 비옥한 고센 땅으로 초청했습니다. 요셉이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가지로 시험해 보았지만 자기가 본 형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수차에 걸쳐 자기를 감추고 온갖 시험과 취조를 해보았습니다. 형들의 악함을 증명해 보이려고 곡식 대금으로 가져온 것을 자루에 넣어 보내기도 하고, 자루에 은잔도 넣어 보내 누명도 씌워 보았지만, 형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부모를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에 대한 양심의 가책과, 요셉의 하나뿐인 혈육의 동생 베냐민을 목숨 바쳐 아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본 요셉은 형들이 본디 악한 사람들이 아니라, 나의 앞날을 위한 하나님이 섭리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형들에 대한 재발견이었습니다.
이처럼 이웃에 대한 재발견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먼저 성도들은 한 몸 한 지체입니다. 생명이 통하고 사랑이 통하고 기쁨과 슬픔이 통합니다. 우리들은 남남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예수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천하보다 귀한 생명입니다. 불쌍히 여기십시다. 사랑하십시다. 기도하십시다. 전도하십시다. 성도끼리도 서로 사랑하고 축복하십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 보면서 하나님과 이웃과 그 은혜를 발견한다면 그보다 위대한 발견은 없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입니다. 앞으로 다가오는 새해에는 하나님과 그 은혜를 더 많이 발견하는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시간 속에서 하나님께 가장 큰 영광을 돌리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