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시 6-8 고독 카페 (2015. 9. 21)
남애리 바닷가에 고즈넉한 카페가 있다
그곳엔 ‘검은 고독’ ‘흰 고독’이 함께 산다
당목(堂木) 억센 곰솔 잎에는 선비의 검푸른 절개가 이미 꺾였고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에는 변심한 연인의 얼굴이 설 비친다
바람이 잔잔히 불고 첫눈이 사르르 내릴 때는 여기를 들러라
침묵이 흐르는 적막 속에 시계의 초침소리가 고독을 깨운다
고독은 즐기는 자의 편이다
그것은 신(神)이 내려준 오묘한 커피향이다
씁쓰레하면서도 구수한 인생의 참맛인 게다
* ‘고독 카페’는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남애리 해변에 있다. 오대산 노인봉 청학산장지기였다가, 2014년 암으로 사망한 털보 아저씨 김영복(한국산악회)의 미망인 오향숙(吳香淑) 씨가 운영하는 커피집이다. 간판은 외국 번역 책에서 따왔다. 주위에 울창한 곰솔(해송)숲이 있고, 고운 모래와 함께 밀려오다 부서지는 흰 포말이 참 곱다. 산악인들이 즐겨 찾는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문을 닫았다 한다. 고독은 그 나름대로 의미와 색깔이 있다. 위 시를 통해 우리는 변화무쌍한 인간심리를 고독과 변절로 압축해본다. 무릇 ‘기승전결’이란 시에 통용되지만, 인생에도 적용된다.
* 《검은 고독 흰 고독》은 전설적인 등반가 라인홀드 메스너(이태리, 1944~)의 낭가파르밧(표고 8,125m 히말라야 험봉) 등정기를, 김영도 선생이 처음 번역한 우리말 책 제목이다.
고독은 너를 죽이는 힘이다/느닷없이 너에게서 터져나오면/고독은 지평선 저 너머로 너를 데려간다/
고독을 맞이할 마음이 있을 때..(월간 마운틴 2005년 8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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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작가》 격월간지 2015년 11~12월호 제93쪽에 게재.
* 《도봉문학》 제13호(2015년) 수록.
* 《山書》 제26호 제188면 2016. 1. 25 발행.
* 제5회 윤동주 문학상 본상 수상작 (2018. 10. 6). 중국 연변 동북아문학예술위원회 회장 방순애, 한국 윤동주 문학상 제정위원회 회장 이종철(월간 《禪으로 가는 길》 발행인) 공동 주최. 전 관동대 교수 엄창섭 심사. 선묵 혜자스님(도안사 주지)이 ‘파랑새’로 대상 수상. 2018. 10. 18 금강신문, 2018. 10. 19 VTN 불교TV, 2018. 10. 21 BBS 뉴스 참조.
* 책을 번역한 김영도 선생도 2023. 10. 21 자택에서 향년 10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제목 ‘검은 고독 흰 고독’이 주는 영감(靈感)이 우리에게 슬그머니 다가온다.(2023. 11. 20 추가)
* 졸저 『鶴鳴』 제6장 한중진미(閑中眞味) 자유시 10편 중 제8번(342-343면). 2019. 6. 20 도서출판 수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