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동네 아랫동네 모엿수다
내러티브 주제모음
* Intro(2편) / 무대가 되는 공간을 소개
-> 이주자들의 공간, 오해와 재해석, 새로운 이주자들의 등장
1980 도봉구
마을활성화사업
* 내 친구를 소개합니다 / 인물탐구(7편)
평양에서 온 남자 / 이*국 / 경평축구
최사장 / 최*실 / 아래로부터의 시장화
강냉이래 질렸시요 / 류*혁 / 군복무 및 계급구조
진맛 / 허*철 / 북한의 계층
만남 / 김*래 / 사회주의대가정
과학전집 / 방*여 / 공산주의적 새인간형, 북한의 학제, 교육과정
외국어 천재 / 변*금 / 북한의 외국어교육
* 더불어 살아가는 작은통일이야기 / 우리들의 일상(7편)
새해를 축하합니다
평양랭면 이야기
힐링수다 / 문화어
크리스마스 송년파티
다시 신의주 / 4대경제특구
* 환대의 마음 / 통일교육(7편)
아들과 함께한 하루
어머니 / 북한의 고령화
가가호호성탄방문 / 김일성-김정은주의, 김정은체제의 공고화
교회를 가다 / 사회정치적생명체론
첫번째 가족의 날
* Epilogue(3편)
단둥에서의 하루
아버지 왜 가셨어요?
통일, 그 이후
“형님, 주말에 산에 갈까요?”
올해 들어 목표 중 하나가 취미생활로 산에 가는 것이다. 내가 사는 지역은 좌우로 산이 들어 서 있다. 중랑천을 마주하며 동쪽으로 수락산과 불암산이 노원구를 품고, 서쪽으로는 도봉산과 북한산이 도봉구를 품고 있다. 한반도의 70%가 산지라고 배우지 않았던가. 이렇게 많은 지역이 산지로 형성되었는데도 정작 도시에서 아웅다웅하며 사는 꼴이라니. 지천명, 나이 50에 들어서 나는 하늘의 뜻을 깨달은 것인지, 올해는 도심을 벗어나 산을 자주 오르고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라도 취미생활을 만들어 억지로라도 산에 오르려 했다.
이렇게 생각하기까지는 용기가 필요했다. 사실 20년 가까이를 산에 가본적 없고, 야구며 축구며 그동안 취미생활로 가졌던 스포츠들이 단체 운동, 구기 종목이다 보니, 산행은 재미가 없을 듯 하였다. 지인들이 산의 좋은 점을 얘기할때마다 항상 했던 말. “다시 내려올 산 굳이 꾸역꾸역 왜 기어 올라가?”라고 얘기하여 주위로부터 핀잔을 듣기가 일쑤였다. 사실은 용기가 안 났다. 축구며 야구며 그 끝에는 무릎의 관절이 이탈되어 기브스를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20대 초반, 모든 남자라면 한번쯤 거쳐야 하는 군대, 평생을 안주거리로 얘기하고, 너무많이 얘기해서 뭇 여성들로부터 핀잔듣는 군대이야기. 한때 바퀴벌레, 축구, 군대 이야기는 이성간의 주류문화에서 금지어가 되기도 했었다. 그 군대를 나도 갔다 왔다. 그것도 미디어에서 군대 이미지로 항상 보여주는 거기, 휴전선으로. 그것도 산세험한 동부전선.
내가 있었던 지역은 금강산 1만 2천봉 중 가장 끝자락. 금강산이 자랑하는 7개의 봉우리, 그 중 가장 아름답다는 이름을 지닌 가칠봉이다. 하지만, 이곳 생활은 이름만큼 아름답지 않았다. 철책길로 이어진 각 봉우리들을 수없이 오르락 내리락 거리다 보면, 어느새 닳아 없어진 내 안의 연골들. 이곳을 지나는 뭇 남성들이 디스크다 관절염이다하며 고통받는다. 많은 선임들이 했던 말이 “나 제대하면 다시는 산에 안 오른다.”이 말이 제대할 때가 되니, 내 말이 되었다. 20대에 활동성 연골연화증이라니. 나 또한 제대 후 3개월을 꼬박 병원신세였다. 그랬던 산인데.
최근 몇 년, 직장생활을 하며 다시 산에 올랐다. 사시 사철 바뀌는 아름다운 풍광들. 고요하고 잔잔한 숲의 노래. 산에 오르는 다른이들을 향한 열린마음. 아름답다. 아름답다. 아름답다. 모든 것이. 다시 산에 오른다. 장비도 하나둘 구비하다보니 어느덧 아웃도어가 나의 유니폼이 되어 버렸다. 매주 토요일 생계를 위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나는 산에 오른다.
산이 많은 동네에 새로 입주한 *철이 형의 정착 교육이 모두 끝났다. 아니 이제부터 실전이다. 북한이탈주민의 정착교육은 배정받은 하나센터에서 공식적으로 일주일간 갖게 된다. 하지만, 한국에 들어와 정신없는 틈에 받는 교육, 실제 정착생활은 이제부터이다.
“형님, 교육 잘 받으셨어요?”, “ 네, 교육이라는 것이 뭐 잇갔시오? 일 없시요. 목사님, 낼언 무엘 하시나요?”, “네 저는 산에 가려고 했는데”잠시 주춤했다. 연초 계획했던 토요산행, 혼자다니는 맛을 알아서 일까? 누가 같이 가는 것이 귀찮다. 하지만 동네에 막 전입온 사람의 정착을 도와야 한다. “형님, 산에 같이 가실래요?”
“산은 어케 갑니까?” 몸이 아프다는 말인지, 다른 일이 있다는 말인지, 못 알아 들었다. *철이형은 몇 주전 간암 수술을 받았다. 회복이 덜 되어서 그런 것일까? 가기 싫다는 말인가? “형님. 저는 내일 주말이라 산을 가려고 하는데, 형님, 같이 가실래요? 수술받은것 때문에 힘드실려나?”, “일 없시오! 내가 군에 있얼때, 산악부대였단 말이디, 나 산에서 경보를 해, 아마 목사님두 나를 따라 못 올거야요.”,“그럼, 내일 9시에 도봉산역 1번 출구에서 만나요.”
시간은 9시 10분, *철이 형이 출구 입구에 나타났다. 아. 복장이. 양복이다. 그래도 신발은 검은 운동화이다. 내가 복장에 대해 말하지 않았지, 그래도 그렇지 산에 가는데 양복이라니, 아마 형은 산에 갈때 묘향산이나 이런데를 생각한 모양이다. 북에서 산은 접대를 받는 관광지 정도로 생각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산은 어떻게 가는지 물었던 거구나.
형은 나와서 대뜸 화부터 낸다. 늦게 와서 내게 미안했었나? “내비게이션이 어케 틀리나? 이거 못쓰겠다 야, 나올때 분면 40분 걸린다고 나왔단 말이디, 긴데, 50분이 걸렸단 말이야.”, “ 괜찮아요. 잘 찾아 오셨어요. 그래도 여기 사람들은 시간을 잘 지키니, 다른 사람하고 약속을 할때는 꼭 일찍 나오세요.”
우리는 시간에 대해 철저한 편이다. 형에게 온라인 거래에 대해 알려주며, 쿠팡과 당근마켓을 깔아주었다. 얼마전 형이 당근마켓에 대해 비판 한움큼을 쏟아냈다. “내 말이디, 물건을 사는데, 팔갔다는 넘이 듕간에 다른 넘에게 넘기겠다그래. 거게 말이 된?” 형이 시간을 못 맞춰 양해를 구한 모양이다. 그런데 판매자가 신용에 대해 문제를 걸고 다른사람에게 넘긴 것이다.
형은 자신이 살 사람인데, 판매자가 잘 보여야 하는것 아닌가라는 논리를 폈다. 물론 일반적으로 그렇다. 하지만 요즘 온라인 중고 거래가 그런가. 결코 기다려주는 법이 없다. 결국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형은 아직 다른 사회를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살았던 예전 시대, 그때는 아웃도어를 입고 산을 가지 않았을 시대, 그때는 여가생활로 산에 오르지 않았을 시대. 그 시대에서 형은 이 곳에 왔다.
“내가 봐도 우습다. 목사님. 내 모양이 한심하디요”날이 좋아 그런지 많은 사람이 산에 왔다. 모두가 아웃도어를 입고 왔는데, 본인은 양복. 내심 창피한 모양이다. “형님, 사람들이 형님보고 회사 나갔다가 땡땡이를 치고 왔구나, 대단한 사람인데?라고 생각할거예요.”, “ 기렇게도 생각하겠구나, 여기서 복무하는 사람이라고도 생각하겠디?”, “아, 산림청에서 일하는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겠네요.” 하하하 주고 받은 농담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우리는 목소리가 커졌다.
확실히 산은 마음을 연다. 나도, *철이형도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들키지 않으려 그 동안 조용조용 말했는데, 오늘은 다르다. “북한은 말이디, 이런거 없서.”, “사람들이 어케 산을 가니? 일 해야디, 야, 남한이 좋긴 좋구나, 기러기까나 이 모양을 인민들이 본다면 말이디, 모두 깜짝 놀랄걸? 헐벗은 남한의 인민들이 어케 산에 놀러댕기니? 나도 학교 다닐때 딱 한번 산에 가봐서. 원산에 휴양소가 있는데, 학교다닐때 한번 가는 곳이야. 두 번도 못가, 내가 평양에서 살았는데, 다른 것 한심하디, 어케 가나?”, “나 군데 있디, 폭풍부대 나와서, 목사님, 폭풍부대 아나? 우리는 전쟁나면 말이디, 보트타고 후방으로 넘어와 적을 교란한단 말이디.”
통일이 별거 있나? 서로 마음을 열고, 큰 소리로 신나게 떠들 수 있는것, 남의 눈치 안보고 마음을 실컷 나누는 것. 이렇게 우리의 첫 산행에서 한걸음 더 통일에 다가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