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레터 64/전주 해성고]졸업기념 문집 『어떤 동행』
달포 전쯤, 친히 알고 지내는 중견작가가 전화로 부탁을 해왔다. 모교 졸업 40주년 기념으로 문집을 만드는데, 최종 교열을 해달라는 것. 무료로도 해줄 판인데 교열비까지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작가의 동기동창 32명의 글, 이게 사실 쉬운 일같지만 어렵다면 상당한 어려운 일. 제안을 수락하면서, 문득 2006년 우리 기수가 만든 문집 송년모임에서 졸업 30주년기념으로 만든 『쉰둥이들의 쉰 이야기』 문집이 찾아 펼쳤다. 졸지에 편찬위원장을 맡아 그 책 만드느라 고생했던 생각이 아련하다. 마침 지천명이라는 쉰의 나이, 50명에게 글을 받았다. 이제 와 고백하지만, 50편의 글을 취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할 수 없이 대면이나 전화인터뷰로 고교시절 추억이나 현재의 살아가는 이야기 등을 취재하여 18편은 직접 만들어 대필한 셈이다. 흐흐.
모교 후배들은 아니지만 전주 해성고 17회(대부분 63년생일 듯) 32명의 글을 이틀에 걸쳐 교열하면서 나름 재미가 있었던 것은, 환갑을 앞둔 아마추어들의 글잔치가 어설프긴 해도 그만큼 진솔했기 때문이었다. 32명의 글에는 전주 우범기 시장의 글도 있었다. 이런 성격의 문집 제작은, 서른도 안된 나이에 3권짜리『소설 풍수』로 밀리언셀러 작가가 된 그의 아이디어였을 터. 그는 최근 『금척』이라는 주목할만한 책과 『장영실은 하늘을 보았다』 『붓다의 십자가』 등의 소설, 『근대를 산책하다』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 등 묵직한 저서를 펴냈다. 해성고가 낳은 문사文士답게 그는 서문을 겸한 글에서 제법 멋드러진 영시英詩(롱펠로우의 <화살과 노래>) 한 편을 선보였다. 한번쯤 전문을 감상해봐도 좋겠다.
나는 창공을 향하여 화살을 쏘았다네.
땅으로 떨어졌으련만 어디인지를 알지 못했지.
그것은 그야말로 쏜살같이 날아가서
내 시선이 따라갈 수가 없었지 뭐야.
나는 창공을 향하여 노래를 불렀다네.
땅으로 떨어졌으련만 어디인지를 알지 못했지.
눈길이 아무리 예리하고 빠르다 한들
그 누가 날아가는 노래를 따를 수 있겠어.
먼 먼 훗날 어느 상수리 나무 속에서
나는 아직도 부러지지 않은 그 화살을 찾아냈네.
그리고 그 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어느 친구의 가슴에서 다시 찾아냈다네.
고교 1년때 이 시를 영시로 접해 지금도 애송하고 있다는 그는, 언제 만나도 유쾌하고 박식해 만남이 즐거운 친구이다. 자기 이름을 앞세운 첫 통화에 “풍수를 쓴 작가이냐? 내가 애독자”라는 한 마디에 순간 필이 통했던 게 10여년 전이다. 친함은 지속돼 고향집 대문터를 잡아주기도 했다. 그는 젊은 나이에 고명한 스승들을 만나 풍수와 주역에 조예가 무척 깊다고 한다. 우리 친구들도 그러했듯, 질풍노도의 시절, 10대 후반에 400여명이 쏘고 부른 화살과 노래를 이순耳順의 나이에 어느 나무 속에서, 어느 친구의 가슴에서 찾아낸 ‘감격’이 어찌 한 편의 에세이로만 그칠 것인가. 그래서 이 문집은 가치가 있을 터. 이제 그 화살과 노래가 하나로 수렴되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작가의 말대로, 개체가 전체를 반복하듯, 만법萬法이 귀일歸一하듯 말이다.
내 책꽂이에는 또 재밌는 제목의 책이 한 권 있다. 『55세 고교동기들의 58가지 인생이야기』가 그것인데, 대구 대건고등학교 28회 동기생들이 엮은 문집이다. 미션스쿨로 김대건신부의 이름에서 교명을 땄다고 한다. 이 문집도 역시 하응백라는 문학평론가가 서둘러 만든 것인데 “영화 ‘국제시장’보다 더 진솔하고 다양하고 재미있는 진짜 살아왔던 이야기” “평범한 아저씨들의 이야기에는 55세 남자들의 슬픔과 좌절과 분노와 희망과 사랑이 오롯이 담겨 있다”는 띠지의 문구 역시 재밌다.
아담한 사이즈의 『어떤 동행』이라는 귀한 문집을, 지난 화요일 인사동 ‘오수별채’에서 작가로부터 전해 받는데(이 친구, 고맙게도 책 뒷장에 ‘교열 최영록’이라고 명기까지 했다. 친절하고 고마운 일이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 우리 친구들과 모르긴 해도 우리의 수많은 후배들도 50대를 거쳐 60대가 되고, 고교 졸업 30년, 40년, 50년, 60년이 될 터. 할 이야기들이 왜 없겠는가.
‘꺾어지는 해(30,40,50 등)’ 때마다 그런 이야기들을 책 속에 못쓰는 글로라도 한번쯤 진솔하게 털어놓는 것도 우리 살아가면서 켜켜이 쌓인 온갖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리는 계기도 되지 않을까. 글이라는 게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윤활유가 될 것은 틀림없기 때문에. 내가 이런저런 생활졸문을 거의 날마다 신새벽에 쓰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터. 졸지에 추워지는 날씨, 달랑 달력 한 장이 남은 2022년도 금세 갈 것이기에 괜히 마음까지 스산해지는 날에, 나는 <어떤 동행>을 <어깨동무>로 읽으며, 불운의 강철시인 김남주의, 노래로도 나온 명시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