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이해
김진숙
나는 그 아이를 사랑이라 부른다. 나는 아이로 인하여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사랑을 속삭이고 사랑을 외치고 사랑을 찾고 사랑을 만진다.
삼 년 전, 사무실 복도에서는 환경미화 여사님과 일찍 출근한 동료들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분위기가 다른 날과는 확실히 달랐다. 걱정과 설렘이 뒤섞인 목소리들. 나를 본 그들은 돌파구라도 찾은 듯 반색을 했다. “그래, 자기가 하면 되겠다. 여사님이 지하실을 청소하다가 고양이 새끼들을 발견했대. 다섯 마리라는데 자기가 한 마리 키워라. 식구도 적고, 반려동물도 없잖아.”
당연히 완강하게 거부했다. 동물을 키우고 싶지도 않고 키울 만큼 시간이나 여력도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고양이라니! 반려동물이라면 마땅히 귀여운 강아지여야 하지 않는가? 머릿속 어느 지점에 어떤 경로로 저장되어 있었던지 고양이와 관련된 온갖 나쁜 소문들이 빠르게도 떠올랐다. 동료들은 구경이나 하자면서 임시 보호처인 여사님의 거처로 나를 이끌었고 다섯 마리가 오글거리고 있는 그 아이들의 라면 상자를 두려움과 망설임 끝에 나는 결국 들여다보고야 말았다.
보지 말았어야 했다. 아니 아예 동료들의 손을 뿌리치고 평소처럼 사무실에 들어가 커피부터 마신 후에 컴퓨터를 켜고 하루의 일정을 시작했어야 했다. 나의 문제는 항상 타인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하는 데 있었다. 하루 종일 그 아이들의 작은 꼬물거림, 커다란 눈동자, 분홍색 코가 눈에 아른거렸다.
그 후 휴식 시간마다 여사님의 방을 찾았고 “그냥 보기만 할 거예요. 전 못 키워요, 전 원래 동물 만지지도 못해요.”를 외치면서도 기어코 그중 나를 빤히 쳐다보던, 덩치는 다른 놈들보다 크면서 다른 놈들이 타고 오르고 밟아도 가만히 아래에 깔려 있던 한 아이와 깊이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유난히 큰 눈이었다.
그로부터 이틀 뒤, 퇴근하는 내 손에는 상자 하나와 폭우 속을 뚫고 동물병원을 찾아 구입한 젖병과 분유가 들려 있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숱하게 여사님의 방을 들락거린 후였다.
나는 아이의 입양 문제를 사전에 식구들과 의논하지 않았다. 고양이의 입양에 대해 그들이 얼마나 반대할지는 불을 보듯 뻔했고, 그 아이와 눈이 마주친 후로는 도저히 아이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강아지라면 모를까 고양이라니! 라면 상자 속의 수상한 바스락거림과 울음에 고양이의 존재를 감지한 남편은 벌떡 일어나서 자리를 떴다.
“난 고양이 싫어.”
그러나 몇 시간 후 저녁, 우리 세 식구는 아이의 이름을 짓고 있었다. 고양이는 싫다고 했던 남편은 ‘나비’라는 이름을 제시했고 그 이름은 상상력과 노력이 개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머지 구성원에 의해 거부되었다. 다음으로 조심스럽게 그가 제시한 이름은 ‘샤넬’, ‘조이’ 등이었다. 막 취업을 한 아들은 피곤함과 무심함을 과장하여 “고양이니까 ‘양이’ 정도로 합시다.”라고 했다가 나의 눈총을 받고, 생각해 보겠다며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내가 데려온 아이에 대해, 양육의 책임을 함께 가져주기를 바라는 야심에서 그들이 제시한 이름들을 수용하기로 했다. “당신이 말한 샤넬의 ‘샤’와 네가 말한 양이의 ‘양’을 합해서 ‘샤양’, 발음이 어려우니 ‘사랑’.” 어불성설, 견강부회에 아전인수 격이었지만 별 저항 없이 아이의 이름은 성별도 모르는 채 ‘사랑’이 되었다.
어찌 보면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남편에게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해 본 적이 없다. 남편은 술에 취하면 사랑한다는 말을 곧잘 했지만, 왠지 어떤 순간에도 그 낯간지러운 말은 좀체 할 수가 없었다. 아들에 대해서도 비슷하였다. 아들이 크면서는 사랑한다는 말이 더욱 어려웠고 아들 역시 그런 말을 가볍게 할 수 있는 성격은 아니었다. 우리는 고작 주고받는 메신저에서나, 그것도 이모티콘으로 하여금 사랑의 표현을 대신 하게 하곤 했다.
우리 집을 제외한 온 세상은 사랑이라는 말로 넘쳐 났지만 우리 식구는 마치 사랑이라는 단어의 존재를 잊은 사람들처럼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눈만 뜨면 사랑부터 부르고 한밤중에도 사랑을 절절히 외친다. 고양이는 밤을 즐긴다. 탐색의 시간, 호기심 충족의 시간. 이유 없이 ‘우다다’ 뛰다가 화분을 깨뜨리기도 하는 시간. 그럴 때 우리는 부르짖는다. “사랑아!” “사랑아, 제발 자자.” 우리 집에도 사랑이라는 말이 넘쳐흘렀다.
아버지의 임종을 사흘 이내라고 선고한 의사의 말대로 아버지의 명은 하루가 다르게 사위어 갔다. 의사의 말을 믿고 싶지 않은 나는 계속 아버지에게 눈을 떠 보라고, 나 보이냐고, 숨만 잘 쉬면 산다고 끝없이 말을 걸었지만, 그 사흘이 가깝던 날 아버지는 마지막 숨을 내쉬셨다. 나는 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내가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시지요? 미안해요. 이렇게 늦게 말해서. 아버지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여전히 따스한 아버지의 손을 잡고 마지막으로 한 나의 인사가 아버지에게 최초로 표현한 사랑의 말이었다. 그 후로 오랫동안 그 단어를 다시 발음할 기회도 마음도 없었다. 마치, 사랑이란 말은 최후의 순간에나 할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말이라는 듯. 아버지께 드렸던 사랑의 말이 너무 늦었음과 당신과 함께한 그 긴 세월 동안 한 번도 그 말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참 많이도 후회했었다. 그러나 나는 오랜 관성의 산물이라 여전히 그 말을 좀체 하지 못하고 지낸다.
우리 사랑은 무럭무럭 자랐다. ‘나는 고양이 싫어’라고 말했던 남편은 엄마 잃은 사랑이를 자기 러닝셔츠 속에 넣고 키웠다. 어린 사랑이는 남편의 배 위에서 들숨 날숨에 따라 오르락내리락 잠들기도 했다.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아들도 사랑이의 간식과 장난감을 들고 퇴근하였다. 사랑이는 이제 커다란 눈망울과 여린 분홍 콧방울을 그대로 지닌 채 큰 체격의 청년이 되었다. 나는 그 씩씩한 잔등을 쓰다듬으며, 어느 스님이 권한 대로 ‘나무 대방광불화엄경’이라는 진언을 세 번씩 외고 ‘우리 사랑이 다음 생에는 씩씩한 남자 사람이 되어 세상을 활보하게 해 주세요.’하고 소원한다. 길고양이로 태어나 평생을 집안에서만 살아가는 집고양이가 말할 수 없이 안쓰럽기 때문이다.
늘, 사랑이란 감정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확신이 없었으나 이제는 그것에 대해 알 듯도 하다. 상대가 아무것도 해 주지 않아도 존재만으로 마음속에 풍선 하나를 매단 것 같은 느낌. 내 입맞춤을 매번 거부당해도 웃으며 다시 시도하는 것. 아주 가끔 그가 내준 곁에 감지덕지하며 따뜻한 체온을 나누는 것.
결국,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는 진부한 말이 사랑이로 하여 얻은 사랑의 이해였나 보다. 사랑이로 인하여 알게 된 이 사랑을 나와 같은 종(種)인 ‘사람’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까? 용기를 내야 한다는 것은 항상 두려운 일 아닌가? 하지만 조금씩, 서서히, 그들에게 다가가 보기로 한다. ‘사랑한다’고 말해 보기로 한다. 그러면 어느 틈에 사랑은 우리 곁에 사뿐히 내려와 앉을지도 모른다. 내 고양이 ‘사랑’이 그러하듯.
한국한국산문작가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