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 대학 그룹사운드 대학가요제 시리즈' 다섯 번째 순서로 ‘일곱색깔 무지개처럼 다양했던 음악, 작은거인 김수철’이다. 작은거인 멤버는 김수철(보컬/기타), 최수일(드럼), 정운모(베이스), 김근성(키보드) 이었다.
1970년대 말, 일본 팝송잡지에서 세계 3대 기타리스트가 ‘에릭 클랩튼’, ‘제프 벡’, ‘지미 페이지’라고 백인 3명을 지들 마음대로 선정했다. 그런데 팝송 마니아들은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흑인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는 하드록 뿐만 아니라 블루스, 재즈까지 모든 영역을 넘나드는 기타 천재인데 그를 3대 기타리스트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누가 기타를 제일 잘 치냐고? 물으면 그 질문에 정답은 없지만 그래도 '작은거인'의 기타리스트 김수철이 지미 헨드릭스같다고 감히 말할 것이다.
1974년 겨울, 서울 무교동의 ‘석굴암’이라는 클럽(술집)에 키가 작은 고등학생이 나타났다. 술집 밴드 오디션을 받고 싶다는 그의 말에 업소 사장은 “니가 잘하는 노래로 하나 해봐” 하자, 그 학생은 베이스 기타로 딥 퍼플의 '스모크 온 더 워터(Smoke on the water)'를 연주하며 노래했다.
▲ '작은거인 2집' 멤버인 김수철과 최수일.[사진제공= 셀수스 협동조합]
연주가 끝나자마자 업소 사장은 가발을 사줄 테니 내일 당장 나오라고 했다. 이 키 작은 고등학생이 4년 후 그룹사운드 '작은거인'의 김수철이다.
그룹사운드 샌드 페블즈, 활주로, 블랙 테트라, 휘버스 등이 대학가요제 수상 이후 인기를 얻으면서 그들만의 독집앨범을 제작한 것과 달리, '작은거인'은 1979년 6월에 '넋두리'라는 타이틀명으로 독집앨범을 발표한다.
▲ 작은거인의 '일곱 색깔 무지개' 유튜브 영상.
그리고 나서 ‘제1회 대학축제 경연대회’에 참가하여 ‘일곱색깔 무지개’로 금상을 차지한다. 이들에게 가요제 입상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작은거인은 탄탄한 연주와 수준 높은 작곡 실력으로 어설픈 스쿨밴드를 넘어서려 했던 것이다.
‘일곱색깔 무지개’ 라이브에서 김수철은 썩 잘 부르는 노래는 아니지만 호소력 있는 고음역의 창법과 속주 기타의 현란하면서도 정교한 애드립, 그리고 호주 그룹 'ACDC'의 기타리스트 앵거스 영을 방불케하는 폴짝폴짝 뛰는 무대 매너를 선보였다. 이에 록 마니아들은 한국에도 하드록이 가능하다는 메시아를 본 듯 흥분했다.
김수철이 중학생 때, 신중현의 ‘미인’ 노래를 들으면서 기타를 독학했는데 마침내 신중현의 음악수준을 뛰어넘는 ‘작은거인 2집’ 레코드판을 1981년에 제작한다.
우선 눈에 띄는 건, 녹음방식이다. 앨범 재킷에 이런 문구가 인쇄되어 있다. '이 레코드는 16채널 녹음방식과 최신형 컷팅머신 SX74에 의해 제작되었습니다'
그 당시 발매된 가요 음반을 양쪽 스피커로 들어보면 기타, 베이스, 드럼, 키보드 소리가 뭉그러져 하나로 들린다. 입체감이 없기에 뮤지션의 음악적 표현을 전혀 살려내지 못했는데 김수철은 이런 치명적 약점을 해결하기 위해 일본에서 녹음엔지니어(지다가와 마사토)를 한국으로 모셔와 녹음을 했다. (참고로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음반도 이 방식으로 제작됨)
▲ '작은거인 2집' 앨범. [사진제공= 셀수스 협동조합]
마침내 세계 록 음악 시장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해외 유명밴드와도 겨룰 만한 연주실력을 겸비한 작은거인 2집 앨범이 나왔다.
신중현이 불모지 하드록 땅을 다졌다면 그 땅 위에서 김수철은 힘차게 뛰어올랐다. 그는 리드기타 뿐만 아니라 베이스 기타까지 직접 연주했는데 딥퍼플의 기타리스트 리치 블랙모어가 레인보우 그룹에서 ‘롱 리브 로큰롤(Long live Rock'n Roll)' 명반을 만들기 위해 본인이 베이스를 직접 담당한 것처럼 김수철도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을 받쳐줄 완벽한 베이스 파트가 필요했다.
음반에 실린 '새야'는 김수철의 숨쉴 틈 없는 기타 스피드를 받쳐주는 베이스, 묵직한 드러밍에 사이키델릭한 키보드가 합을 이루며 듣는 이의 심장을 마비시켜 놓는다.
그들의 데뷔곡이었던 하드록 ‘일곱색깔 무지개’를 엇박자 리듬의 펑키뮤직으로 재창조해냈고 ‘어쩌면 좋아’는 김수철 특유의 장난스러움이 묻어나는 가장 대중적인 노래다.
그리고 한국인의 한을 담은 국악적인 멜로디 라인 ‘별리’, 마음을 촉촉이 적시는 발라드풍 노래 ‘행복’까지, 이걸로 끝인 줄 알았는데 리드미컬한 베이스가 주도하는 재즈록적인 연주곡 '어둠의 세계'로 록 마니아들을 전율케 만들었다.
▲ '작은거인 2집' 수록곡 '새야'의 유튜브 영상.
‘새야’ 노래 홍보를 위해 출연했던 KBS ‘젊음의 행진’ 프로그램에서 김수철은 지미 헨드릭스처럼 1번 기타줄을 이빨(치아)로 물어뜯고 컵을 이용한 슬라이드 주법까지 해대면서 격정적인 메탈 사운드를 뿜어냈다. 록 마니아들은 너무나 고마웠다. 한국에도 이런 뮤지션이 등장했다는 사실에...
그러나 작사, 작곡, 편곡까지 담당한 김수철의 천재성이 드러난 전위적인 음반은 대중들이 뒷받침해주지 못했다. 그러면 음반은 죽는다. 실험성 강한 전위적인 작은거인 2집은 판매량 1만장을 넘지 못하고 대실패를 했다. 음반 제작사는 빚더미에 앉았다.
동연대에 발표한 뽕끼 가득한 트롯트 노래가 주류인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음반’ '고추잠자리'는 대중들이 100만장을 사주었는데 하드록, 헤비메탈, 재즈, 펑키, 발라드까지 다양한 음악적 시도가 녹아있는 ‘작은거인 2집’은 대중이 철저히 외면했다.
이후, 작은 거인은 해체되고 1983년에 김수철은 개인 이름으로 솔로앨범 ‘못다 핀 꽃 한송이’로 KBS 가요대상 가수왕이 된다. 한국의 록음악을 진일보시켰던 그는 이제 철저한 대중가수가 됐다.
실험성 강한 음반 ‘작은 거인 2집’의 창조자 김수철이 조미료 가득한 대중음악을 후속편으로 만든 것에 록 마니아들은 슬프다 못해 분노했다. ‘못다핀 꽃 한송이’ 레코드판을 부셔서 우편으로 레코드사에 보내기도 했다. 그 당시 어느 음악 평론가가 라디오에서 김수철의 음악적 변신(배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김수철의 음악을 들으면 나는 두 번 운다. 첫 번째는 그 음악에 감동해서 울고, 두 번째는 이런 뮤지션이 우리나라에서 받는 대접이 너무 억울해서 운다.”
록 음악의 한 줄기 빛은 김수철의 프리즘을 통과하여 헤비메탈, 펑키, 재즈, 발라드, 동요(애니메이션 ‘날아라 슈퍼보드’ 주제곡), 국악(영화 '태백산맥', '서편제' 등 영화음악) 등 일곱색깔 무지개처럼 다양한 음악을 보여줬다.
작은 거인 김수철은 우리시대 록 음악에 있어 ‘최고 거인’이다.
글: 셀수스협동조합 김형진 KBS미디어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