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양심
장희한
그제 시장에 갔다 오는 길이다
언제나처럼 친구의 가게를 지나다 보면 친구가 있는지 들여다보는 습성이 있다. 이날도 그랬다 뭘 보는지 친구는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오늘 밥값 했냐 나의 첫 인사다 친구는 요즈음 장사가 되어야지
그렇다 건설경기가 있어야 하는데 건설경기가 없다 사실 그렇다 아파트값은 천정부지로 올라 있고 인건비랑 자제 값이 올라 건설경기가 식은 지 오래다 타일을 붙이는 이들의 인건비가 하루에 사십 만원이란다 입이 딱 벌어진다. 사십 만원이면 쌀이 두 가마가 넘는다 옛날 같으면 일년 먹을 식량이다 그러니 건설경기가 있을리 없다 그러니 일거리가 있을리 없다 이렇게 비싼 인권비에 공사를 한다는 것은 얼토 당토한 이야기다 그래도 똥 퍼는 것도 직업이라 아니 나올 수 없고 가게 세만 나오면 해야 할 일이다 하기야 그렇다 나이 80이 넘었으니 집에 있으면 무엇하랴
둘이서 세상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지인 한 분이 왔다 이분도 마을에 살면서 같이 산 지가 오래다. 나이가 나보다는 5살이나 위라. 형님이라 하는 사이다 서로 그동안에 만난 지가 오래되어 악수를 청했다 그런데 악수를 하고는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 행방이 묘연하다. 한참을 있으려니 가게서 음료수를 샀다며 친구랑 나에게 주었다 고맙기도 하고 부끄러움이 앞선다 아니 음료수를 사주려면 내가 사 드려야 하는데 나이 많은 분이 사서 주니 양심이 부끄럽다 이분은 본래 좀 친하다 하면 무엇을 잘 사주시는 분이다 바깥에는 타고 온 자전거가 짐이 실린 채 서 있다 처음에는 보일라를 싣고 왔는가 싶었다 자전거에 실린 박스가 린나이 보일러라 적혀있다 그런데 알고보니 고물을 싣고 온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내가 대뜸 하는 말이 형님 저것은 뭐 하러 싣고 왔는지요 하니 고물상에 팔려고 가져왔다고 했다. 그리고 하는 말씀이 고물을 주우면 하루에 이천 원 벌이는 한단다. 그러면서 열 번을 주우면 돈이 이만 원이란다 참 어처구니없다 못사는 사람도 아닌데 왜 그럴까 재산이 작아도 집이 두 채다 이런 분이 고물을 줍는다니 하기야 그렇다 나이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집에 처박혀 있으면 무엇하랴 운동 삼아 다니는 것도 괜찮다 싶다 하지만 그렇게 번 돈으로 음료수를 사 왔으니 고맙고 미안했다. 집에 와서 생각하니 내 양심이 허락지 않았다 하룻 밤을 자고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게 그 형님 전화번호 좀 가르쳐 주라 내일 자네랑 그 형님이랑 점심 식사를 같이 하고 싶다고 했다 그랬더니 친구 왈 아니야 내일 점심은 자기가 산다나 어허 그러고 보니 내가 식사를 얻어먹고 싶어 전화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기가 빚진 것을 갚아야 한다며 자기가 밥값을 낸다나 이 사람아 내가 무엇을 주었다고 빚이 졌다고 하나 지난해 콜로라로 죽을 뻔했는데 그때 자네가 사다 준 죽을 먹고 살아났다고 했다. 사실 그랬다 그때 무얼 한다고 친구에게 전화를 한 일이 있다. 그런데 아프다며 다 죽어가는 사람처럼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가게에 들여보니 집에도 가지 않고 가게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보아하니 식사도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동네에서 소고기 죽을 한 그릇 사다 준 일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죽을 먹고 정신을 차려 살아났다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주고받는 정 나는 까맣게 잊고 있은 것을 이야기 하니 딴에는 고마운 마음을 가슴에 세기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려우면 서로 돕는 정 이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돈이란 꼭 써야 할 곳에는 써야 한다. 아낀다고 더 모이는 것이 아니다. 살다 보니 재산도 팔자에 있는 것을 알았다 내가 젊어 한 시절 큰 형님에게 집을 세 번이나 사 드렸다 아무리 시골집이라 하나 집 한 채는 상당한 돈이다 왜 동생이 면서 형님 집을 사서 주나 하겠지만 우리 형님은 장애인이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해 드렸다 그렇다고 내가 잘살았어도 아니다 나도 남의 전세방을 살았다. 그렇다고 내가 굶는 것이 아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아내에게 고마움을 표해야 할 일이다 그렇게 형님에게 집을 사주어도 군 말없이 따라오는 아내가 고마웠다 이것이 사람이 사는 세상인가 보다 더불어 사는 세상 우리 모두 더불어 살 일이다
첫댓글
참, 마음 편한 이야기 속에
읽었습니다.
마치 요즘은
전투 속에 사는 세월 같아서
바싹 긴장하며 살아갑니다.
님의 글을 읽는 순간 순간,
"그래 그래, 그러는 세상이
우리들 세상이야~"
마음에 졸갑증을 내지 않는
양심이란 말을 들먹이지 않고도
서로 정이 오고 가는 세상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오늘 처음 오신 님의 글이
반갑기도 합니다.
연륜이 쌓였기도 하고요.
글도 잘 쓰시네요.^^
형님 집도
사 드리고
좋은 일 하셨습니다.
축복 받으시는 삶
입니다.
저도 가진 것은 없지만
수필방에 오시면
소주,막걸리, 빈대떡은
대접하겠습니다.
즐거운 세상
더불어 살아야
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