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세운 집 / 마경덕
그의 조상은 칼을 만들고 후손들은
그 칼로 피를 보며 살았다
증조부는 소를 잡는 백정이었지만
한때는 칼잡이였다는 소문도 있었다
대를 이어 피로 밥을 먹었지만 그는
한 번도 ‘피로 세운 집’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가난한 집에 풋살구가 맺힐 무렵
동네 얼굴에 마른버짐이 피어도 그의 식구들은 기름이 잘잘 흘렀다
고기 맛을 본 아이들은 염치없이 그의 집을 기웃거렸다
퉁명스런 그의 아비는 도마에 널브러진 자투리 고기를 그러모아
적선하듯 던져주었다
세상이 바뀌고
그 친구는 도축사로 손자는 발골사가 되어 능숙한 새김질로 집을 일으켰다
어느 청년은
‘우리 집은 피로 세운 집’이라고 까발리며 스스로 집을 무너뜨렸다
입을 열자 피비린내가 흥건했다
온몸에 시뻘건 핏물이 얼룩져 있었다
도축장 앞에서 네 발로 뻗대던 짐승들은 모두 피의 집으로 들어가고,
두 발로 짐승처럼 살아온 사람은
핏구덩이에서 나오겠다고 죽을힘으로 애원하고 있었다
- <시산맥> 2023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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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경덕 시인
1954년 전남 여수 출생.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신발論』 『글러브 중독자』 『사물의 입』 『악어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밤』.
북한강문학상 대상. 두레문학상 수상. 선경상상인 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