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낯섦' 참 생소한 말이지만 조금만 생각해 봐도 우리는 익숙하지만, 낯선 세상에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우주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별과 행성이 있다는 건 우리가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우주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더 많다 이건 우주의 낯선 면일 것이다. 우리가 이 세계에 존재한다는 건 익숙한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우리는 실재하는 건지 우리는 왜 존재하는지를 계속 생각해 본다면 우리의 존재는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듯 익숙하지만, 낯선 것들은 우리 주변에 어디든 어떠한 형태로든 항상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많은 익숙하지만 낯선것들 중에서 만남과 이별에 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익숙한 낯섦이라고 딱 들었을 때 나는 만남이 가장 먼저 생각이 났다 우리에게 만남은 익숙하다 어제 만났던 친구와 다시 오늘 만나는 일은 우리에게 정말 익숙한 일이다 하지만 같은 만남이지만 새로운 만남은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항상 겪는 일이지만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새로운 만남은 우리에게 항상 낯섦을 가져다준다. 그런데 새로운 만남이라고 우리에게 항상 낯섦을 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길을 걸어 가면서 항상 새로운 만남을 반복한다. 또 우리는 항상 다른 버스 기사가 운전하는 버스를 타면서 낯섦을 느끼지 못한다.
만남과는 반대로 이별이 있다. 이별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별로 익숙함을 주는 단어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별 또한 우리에게 참 익숙한 현상 중 하나이다. 학교에 갈 때 우리는 항상 집에 있는 가족들과 잠깐의 이별을 한다. 우리는 이 이별에 익숙하다 이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하지만 이것 또한 이별이다. 이별은 어떻게 보면 우리에게 만남보다 익숙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낯설게 느끼는 이별은 여러 가지의 이별이 있겠지만 영원한 이별은 우리에게 낯설게 다가올 것이다.가족, 친구와의 영원한 이별은 우리에게 정말 낯설게 다가온다. 우리는 항상 이별을 반복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이렇게 우리는 항상 만남과 이별을 반복함에도 익숙함과 낯섦을 동시에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만남과 이별의 익숙한 낯섦에 대해서 생각해 본 나는 익숙함과 낯섦은 생각의 깊이와 관련이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우린 뉴스에 나오는 교통사고에서는 익숙함을 느낀다. 교통사고 관련 뉴스가 많이 나와서 그런 것이 아니냐? 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눈앞에서 일어나는 교통사고는 굉장히 낯설어한다. 뉴스를 통해서 매우 많은 교통사고 장면을 보았음에도 우리의 눈앞에서 일어난 일에 낯섦을 느끼는 이유는 좀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단서들이 많아서 일 것이다. 직접 겪는 일은 수집되는 정보가 많으므로 우리는 이 일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너무 깊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우리는 더욱 낯섦에 늪에 빠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익숙함과 낯섦을 통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익숙함과 낯섦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낯섦을 최대한 덜 느낄 수 있는 방법이다. 낯섦이 부정적인 감정은 아니지만 낯섦 보다는 익숙한 감정이 우리가 무엇을 하더라도 더 능동적이고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별과 행성이 있다는 건 우리가 모두 알고 있다."고 했는데, 정말 확신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이렇게 질문을 던지는 편이 더 효과적이었을 수도 있겠어요. "우주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더 많다."라고 한 점에서 이 질문과 유사한 문제의식을 찾아볼 수 있기는 하지만 말이죠. "우리가 이 세계에 존재한다는 건 익숙한 사실이다."에 이어서 "어떻게 존재하는지 우리는 실재하는 건지 우리는 왜 존재하는지를 계속 생각해본다면"이라고 했으니까 이 질문도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계속 이어나가는 게 좋았을 듯해요. 영화 매트릭스의 세계관을 대입해도 좋을 듯해요. 우리는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현실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지 않을 수 있다. 왜 그런가? 이런 질문을 하다 보면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던 존재, 세계, 가치에 대해서 되물을 수 있고, 깊은 성찰을 할 수 있게 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