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일요일, 다 큰, 스물세 살과 열여섯 살 아들 둘을 데리고 에버랜드엘 갔다.
아내와 나는 첫 번째, 큰 아이는 두 번째, 막내는 세 번째.
대학생 아이는 리포트를 써야한다고, 막내는 친구들 만난다고 동참을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서슬 퍼런 아버지 말씀에 어쩔 수 없이 따라 나서는 기색이 역력하다.
에버랜드는,
어마어마한 금액의 재산상속이 과세를 피하여 이루어졌다는 얘기로 떠들썩했던 곳.
난생 처음 가 본 에버랜드는 우선 그 규모 면에서 대단했다.
본 위락시설은 물론이거니와 진입로는 매우 수려했고, 주차장의 면적도 상상을 초월했다.
멀리 떨어진 여러 개의 주차장에서 놀이터 정문까지
대형 셔틀버스가 쉴 새 없이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어찌 되었든 우리는 오늘 ‘가족’ 중심이다.
대부분의 다른 가족들과는 달리 우리 일행 중에는 정작 어린이는 없어 어색했지만
유쾌하게 각각 손목에 표 띠를 받아 감고 정문을 들어섰다.
흥겨운 음악과 온 동네를 진동하는 팝콘의 냄새가 강렬하다.
어린이 취향의 시설은 피하고 ‘스릴’있다는 곳만 들르기로 했다.
첫 번째 탈거리는 ‘롤링 엑스 트레인’이라는 이름의, 세칭 롤러코스터였다.
얼마 만에 타보는 롤러코스터인지 기억도 가물거리지만,
우리 네 식구가 탄 열차가 급상승과 강하를 반복하고,
360도 몸을 틀어 회전을 해대는데 정신이 다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 운행시간은 길지 않아 이내 정신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무섭거나 두렵다는 기구를 탈 때 나는 ‘안전하다’라는 생각을 한다.
‘이 놀이기구에서 과거에 누가 사고로 죽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없으니 그냥 몸을 맡기자.’
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안심시키면 공포감은 많이 누그러진다.
‘공포’는 ‘위험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은 순간적으로 다른 생각이 들었다.
나와 진지한 대화를 거부하는 저 셋째 막내 아이 때문이다.
큰 아이와 10년 터울의,
조금 늦게 본 아이라서 너무 사랑한다는 핑계로 엄한 교육을 시키지 못한 점과,
예민한 나이 앞에서 솔선수범, 모범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지 못한 것이 원인이다.
사춘기도 겹쳤겠지만
2년 가까이 제 어머니나 내 말을 듣지 않아 어지간히 속을 썩여오고 있던 터.
그런 상황에서도, 이곳까지 따라와 준 것이 고맙고,
이렇게 옆에 앉아, 무섭다는 핑계로, 내가 꼬옥, 손을 잡아주어도 거부하지 않고,
체온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했다.
내가 지켜줄 가족이 있다는 것에 스스로 감동하여 콧등이 찡해지며 눈물 한 방울.
이렇게 가족들과 함께하는 행복감이 공포감을 저 멀리 밀어낸 것이다.
아찔했던 찰나가 지나가고 아내가 장난스레 묻는다.
‘무서웠지? 솔직히 말해봐.’
대답 대신 그냥 웃어주었다.
다음은 ‘더블 락 스핀’
그네처럼 큰 원을 그리며 도는 공중에서,
중복적, 비정기적으로 별개의 회전이 반복되는 기구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어렵고, 무서운 것으로 느껴졌다.
등을 맞대고 탄 각각 15명씩, 30명이 질러대는 함성이 더 공포감을 자아내는 분위기.
모든 사람들의 머리와 쭉 뻗은 다리가 하늘을 향하거나 지상과 수평으로 뻗쳐지거나,
상하좌우를 가리지 않고 제 각각으로 날리고 있다.
잘 알려진 바이킹은 비교할 바가 되지 않는다.
큰 아이와 나만 탔다.
아내와 막내가 저 아래에서 허공에 떠있는 우리에게 맑은 미소를 보낸다.
세 번째는 렛츠 트위스트.
아이 둘과 셋이.
양쪽에 아들 둘을 데리고 하늘을 난다.
두 번째 기구를 타지 않았던 막내가 이 기구는 도전해볼 만 하다고 느꼈는지, 즐/긴/다.
이름에서 보이듯이 주로 타원형으로 비행하다가 허공에서 비트는 놀이기구다.
입체 회전이라고나 할까.
현기증은 다소 있었지만 더블 락 스핀보다는 한결 쉬웠다.
이번에도 아내는 먼발치서 미소만 짓고 있다.
네 번째 티 익스프레스.
아내가 끝내 울었다.
길고 긴 대기 줄이 조금씩 줄어들 때마다
‘내가 타려고 한 것이 아닌데. 화장실 없나?’하며 초조감을 감추지 못하더니.
세계 최대 경사라는 77도, 시속 104km, 여섯 번 일곱 번 계속되는 급전직하...
거듭하여 허공을 향해 열차와 승객들의 몸이 실제로
무서운 속도로 내던져지는듯한 느낌은 가히 공포 이상이었다.
서너 번을 참아내던 아내는,
‘것 봐, 이래서 내가 안탄다고 했잖아...’하다가 결국은 울음을 터뜨리고 만 것이다.
나는 내가 무서운 것은 고사하고 이러다가 아내가 어찌 되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에
제발 이 열차가 빨리 멈추어주기만을 고대했다.
손을 잡아주고, 등을 두드리면서
‘다 왔다, 30초만 참아라.’ 안심시키기에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두려움이 아니라 아내가 어떻게 될까봐 얼마나 불안했는지.
정말 심약한 사람들에게는 피하라고 말해주고 싶은 탈 것이었다.
다섯 번째 아마존 어드벤쳐.
보트도 아닌 둥그런 튜브 정도.
인공으로 흐르는 강물에 띄워 요동도 있었지만 그야말로 노래 부르면서 타는 기구.
이렇게 마지막 탈 것은 잔잔히 그 동안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는 정도에 불과하였다.
에버랜드 정문 앞에 설치된 유명 스포츠사 할인매장에서
아이 운동화와 티셔츠 몇 장을 사주고 돌아오는 길.
별 반응이 없던 막내가 제법 살갑게 말을 던진다.
‘아빠, Thanks!'
쑥스러워 감사의 표현을 이리 하는가보다.
이렇게,
나이 먹은 가족끼리의 놀이공원 나들이도 의미가 있었다.
다음 기회가 있으면 밤에 아내와 단 둘이 와봤으면 좋겠다.
벚꽃 피는 내년 봄이면 더 좋겠고.
차 없이 와야 맥주라도 한 잔 할 텐데.
동네 시장통에 들려 족발과 장수 막걸리 두 통을 사들고 집에 왔다.
아내는 작은 잔으로, 나는 뚝배기 잔으로.
한잔을 걸치며 티비를 켜니 ‘나가수’라는 프로그램이 시작된다.
첫 번 째 가수가 이 소라.
그녀가 송창식님의 노래를 골랐다고 말한다.
‘응? 이 소라가 창식님의 노래를 부른다고?
무슨 노래가 있을까.
이소라라면 아마 ‘사랑이야’ 정도나 부를 수 있을까?’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화면에 자막으로 ‘사랑이야’ 라는 노래 제목이 뜬다.
아내가 내 얼굴을 쳐다본다.
‘자리 피셔도 되겠어요.
하긴, 어지간히 좋아하시는 게 아니니...‘
그러나 이소라의 노래는 너무 약했다.
약간의 실망.
본인의 감성이야 충분했을지 몰라도
가창력도 부족하고, 무엇보다 노래에 대한 몰입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긴 그 분의 노래는 마음대로 편곡을 할 수도 없을 것이고,
힘이 있으면서도 애절하고, 감미로우면서도 절절한
인생 자체가 담긴 곡들을 쉬 소화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리듬, 눈을 감고, 오르내리면서, 잔잔하게 때로는 폭풍처럼 몰아치듯이, 절제된 격정.
다시 관조의 세계.
카타르시스를 느끼도록, 마지막에는...
가만히 읊조려본다.
당신은 누구시길래 이렇게
내 마음 깊은 거기에 찾아와
어느 새 촛불 하나 이렇게 밝혀놓으셨나요...
그 이후 여섯 명 다른 가수들의 노래가 다 끝나고, 평가를 하는 시간.
아내와 나는 만 원 내기를 하였다.
오늘 일곱 명 중 일등과 꼴찌를 알아맞히기.
아내가 지명한 1등은 김범수, 꼴찌는 이소라.
나는 1등 임재범, 꼴찌 박정현.
거짓말 같이 내가 둘 다 맞추었다.
더구나 내가 한 촌평들이, 조금 과장하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심사평에 나왔다.
윤복희의 ‘여러분’을 부른 임재범은
음악성보다는 자신과 곡을 일치시키는 體化로 사람들을 울린 것이다.
아내는 돈 만 원을 건네주며 다시 한 번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억울하다, 뭐. 노래에 관한 한 당신하고 나하고 같아?
내 돈 꼭 받아야 돼?’
(2011. 5. 22)
첫댓글 멋지구려.... 경륜은 무시못혀...
나가수? 본적도 없지만,,, 와우의 사랑이야는 듣고 싶음^^*
나가수를 보면서...난, 대단히 감동을 받았다.
아마 이전에는 그렇게 집중해서 노래를 들어본적이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
임재범의 노래는 말할 것도 없고 7명의 노래 모두가 찡했다.
정말 최고의 프로그램이다.
대한민국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인주'~이건희 NO3, 에버랜드 부정상속의 지휘자~고등학교 같은 반으로 도서관에서 자주 같이 놀았는데......
'나가수'~산행 후 저녁먹다 TV에서 처음 보았는데 가수들이 긴장감 속에 최선을 다해 부르는 것이 보기 좋더라만 경쟁의 긴장감을 너무 강조 편집하더구만...좋은 프로그램인데 PD가 프로그램을 버려 놓더구먼....
'가족'~~딸래미 캐나다 간지 10년이 넘어 직장까지 잡아 지내니 이제 뭐라 말해야 할지....아들, 일본에 있다 군복무로 강원도에 있고, 마누라와는 언제나 자기 할 일 하며 멀뚱히 소 닭보듯 살고 있으니 가족이란 얘기에는 가슴이 아련해지고 쓸쓸해진다....
박정현의 소나기..... 듣기 좋았어.....
근데 잘 알려지지 않은 노래라 아쉽더구만. 나만 모르나?
가수는 가수다 라는 생각이 들게 하고 ,처음으로
저렇게 노래 잘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갖게하고`
덕분에 정엽이라는 가수도 처음 알게 되엇고,
정엽의 노래 스타일이 내 적성엔 아주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재범의 노래도 새삼 멋지다는것도...
여튼 그 프로는 온국민을 집중시켰다~~
이제야 쎄시봉,,중견가수,,아이돌..분비가 맞는것 같고, 노래 장르가 다양해서 좋네...
나가수는 한번도 본적이 없어서 할말이 없고..
에버랜드는 아이들 초등학교시절 5년간 연간회원으로 뻔질나게 다닌 기억이..
특히 여름 야간 개장시즌에는 평일 퇴근 후 저녁먹고 마실로 다녔었지..
에버랜드. 자연농원 시절 많이 다녔어요.왠지 언니 오빠들보다 제가 더 오래 된 것 같어요.
사실 우리보다 더 나이 많지 않은가요?
자유부인이면 50년대 초반 활약하시던 분일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