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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뢰아 20기 제15강
◎성경에 나타난 세 영적 존재
사람의 영혼인데 이게 영이고 이것은 육체입니다. 이걸 사람의 눈으로 가시될 수 있는, 그러니까 육과 영이 죄를 짓는다. 죄를 짓는 것은 영이 죄를 짓는 겁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바로 당초에는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고 그 사람에게 생기를 부어서 이제 생령이 되었습니다. 산 영이 되었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이 지구상에서 이게 우주라면 지구에서 태어난 피조물 가운데 유일하게 하나님과 교통할 수있도록 통로가 생긴 하나님과 직접 교통할 수 있는 영적 존재가 된 인간입니다.
그러니까 마귀는 타락해서 하늘에서 내려와서 갇혔지만 인간은 이 곳에서 지음을 받아서 하나님이 그 안에 생기를 부어 영적 존재가 되게 하여 하나님과 직접 교통할 수 있는 특별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적 존재라 이말이죠.
그러니까 인간은 이 땅에서 흙으로 지어 놓으시고 다른 동물과 똑같이 산소로 호흡할 수 있는 그러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영적인 호흡을 할 수 있도록 영적 존재가 되게 하셨어요. 그러니까 생기를 부었다고 할 때 생기를 부었다고 하니까 자꾸 생기를 호흡으로만 생각하고 있지, 생기를 부어 생령이 되었다. 곧 영을 부었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아서 그래요.
창세기 2장 7절에 ‘사람을 지으시고...’ 이것은 호흡이 있는 인간입니다. 호흡이 있는 인격이에요. 거기다 생기를 부어서 생령이 되게 했다 그랬어요. 호흡이 있는 사람, 사람을 지으시고, 모양을 만들고가 아니고 흙덩이만 만든 것이 아니고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거기에 생기를 부어 생령이 되게 했다 그랬어요. 이것들도 하나님께서 호흡을 하게 만들었어요. 그러나 이들에게는 특별히 생기를 부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들이 생령이 되지는 않았어요. 인간만이 생기를 부어서 생령이 되게 했다 했는데 생기를 호흡으로만 생각하니까 그래요. 이게 바로 영을 부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아서 그래요.
그래 사람이 영이 되었다 이거죠. 아담 할 때 ‘담’이라는 말은 피라는 말인데 곧 사람이라는 말이고 생기를 부으니 하나님이 곧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 이말이죠. 그러니까 인간은 어떤 사람이 베뢰아는 이중 아담론이라고 하는데 이중 아담이라고 말하는 그 사람이 거짓말장이입니다. 나는 이중 아담이라는 말을 해 본 역사가 없어요. 가리킨 사실도 없고 그저 마구잡이로 말을 만들어서 뒤집어씌우는 거에요. 예수 죄 없는 자를 죄 있다고 뒤집어 씌우듯 그들도 똑같은 겁니다. 우리 베뢰아는 이중 아담론이 아닙니다. 그것은 무식해도 보통 무식한 것이 아니고 사단도 보통 사단이 아니에요. 사람을 잡기 위해서 도끼로도 죽이고 쥐약으로도 죽이고 목졸라 노끈으로도 죽이고 별 짓 다하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을 지으시고, 창세기 2장 7절에 말했듯이 사람을 지으시고 그 사람에 생기를 부으니 그가 생령이 되었다 이렇게, 여기에서 사람을 지으시고 나서 생기를 부을 때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걸릴지 몰라요. 생기라는 말은 단순한 호흡이 아니고 신령한 호흡이라는 것을 이것을 제가 강조한 겁니다. 그런데 무슨 이중 아담론이여. 누가 앞으로 이중 아담론이라고 하면 그 사람에게 따져야 되겠다고 생각해요. 그동안에는 침묵을 지키느라고 했는데 이제는 따져서 벌개 좀 벗겨야 되겠어요. 아주 한국 사람은 망신을 당해야 다시 안 해요. 봉변을 당해야 다시 않지, 아주 마구잡이로 봉변 좀 시켜야 되겠어요. 이중 아담론, 여러분도 그런 소리 많이 들을 거에요. 베리아가 이중아담론이라고, 그건 아담이 둘이라는 얘기가 되고, 또는 사람을 두번 창조했다든지 창조한 거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고 생기를 부어서 사람이라는 말은 흙이라는 말이에요.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이것은 완전히 호흡이 있는 다른 동물과 같아요. 호흡이 있는 사람을 지으시고, 그 다음에 상당한 시간 후에 거기다 생기를 부어서 생기는 신령한 호흡이라, 그래서 아담이 되었다. 아담이라는 말은 생령이라는 말이에요.
우리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하는 것처럼 우리가 성령을 받아 성령으로 거듭났죠. 우리가 거듭났지 두 번 지음 받은 것은 아니에요. 엄마 배 속에서 또 나옵니까?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거듭난다니까 ‘그럼 사람이 모태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야 됩니까?’ 이렇게 묻는 바보처럼 오늘날도 그렇게 얘기합니다. 두 번 창조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지으시고 그 다음에 생기를 부어서 신령한 호흡을 부어서 생령이 되게 했다. 비로소 이게 아담이에요. 하나님은 이 아담을 만들려고 이미 계획하셨어요.
창세기 2장 7절에 말한 것처럼 그런데 요새 모함하는 사람들이 사람 하나 모함해서 사람 하나 죽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 얼마나 방해받는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요새 총 가지고 횟칼 가지고 살인하는 것 그것만 살인인줄 아십니까? 요새는 목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그거보다 더 잔인하게 죽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께서 사람을 마음으로 미워해도 살인자라고 했어요. 칼로 죽여야 살인이 아니에요. 여기에 생기를 부어서, 아담을 둘을 만들었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전에 기침에서 이중 아담론, 우리가 공개 질의했는데 답이 없어요. 그냥 이단이면 이단이여. 대교단 신학교가 있고 신학자가 있는 교단에서 그런 답이 어디 있어요? 정말 내가 그 교단에 몸담고 있던 것이 창피할 정도로 내가 그 전에 몸담고 있을 때 얘기했어요. 우리 교단에 이렇게 신학자가 없느냐? 아무개가 신학자냐? 우리 교단을 대표할 수 있는 신학자냐? 내가 이렇게 편지를 낸 적도 있었어요. 우리는 참으로, 그러니까 여기서 이중 아담론 하거든 물어 보세요. 우리는 성경대로만 하자 이거죠.
창세기 2장 7절 한 번 확인해 보세요.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기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흙이 생령이 되었다가 아닙니다.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사람이라는 말은 살음 생(生)이라는 뜻입니다. 호흡한다는 뜻이에요. 호흡하는 사람을 지으시고 그 다음에 거기다 생기를 부으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오직 이런 동물적인 호흡을 하는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이렇게 말했다고요. 사람이 생기가 들어오니까, 흙이 생령이 되었다가 아니에요. 흙으로 사람을 지었어요. 사람이라는 말은 살음, 생이라는 뜻입니다. 거기에 생기를 부으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 이중아담론이니 핍박하는 사람들 어이가 없어서 말도 할 수 없어요. 나는 말 안하려고 가만히 있지만 이제는 붙들어 놓고 망신 좀 줘야 겠어요. 나는 넘어져도 더이상 앉아서 드러 눕는 것이니까 뇌진탕 좀 걸려 봐야 되요.
기독교인들은 한국 사람들은 망신만 주면 왜? 의지가 없어요. 목숨 걸고 할만한 것이 없어요. 그러니까 잘 보세요.
이제 사람을 지으셨어요. 다른 동물들과 같아요. 그리고 이 사람에게 생기를 부어서 사람이 생령이 되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적 존재가 되었다, 영적 사람 영적인 존재가 되었다 이말이에요. 그러니까 이 사단, 마귀가 가만히 볼 때 만약 여기 그냥 사람으로서 흙으로 만든 사람이면 문제가 다른데 아니 여기다 생기를 부어 생령이 되게 해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특별한 약속받은 존재라는 것을 볼 때 마귀가 얼마나 질투하겠어요?
그러니까 이 안에서 육체 때문에 천사보다 잠깐 부족하지만 하지만 천사보다 뛰어난 것은 하나님과 직접 교통할 수 있는 안기부 요원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하나님과 직통할 수 있는 영적 존재가 되었다는 데 질투합니다. 그러니까 마귀는 여기서 끊으려고 하지요. 하나님과 관계를 끊는 것은 영적 존재이니까, 육신은 식물을 먹어야 하고 영은 영을 먹어야 합니다. ‘내 말은 영이요 생명이니라’ 그랬어요. 요한복음 6장 63절에 육신은 식물을 먹고 영은 말씀을 먹도록 되어 있어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하심 같이 그러니까 이것을 끊어 버리면 이것은 그냥 영적 존재이지만 하나님과 끊어 버리면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이고 저주는 영이니까 저주는 더 받고, 마귀는 이것을 끊습니다.
그러니까 이걸 끊으니까 마귀라는 말은 디아볼로스... 디아라는 말은 이간자 분리자라는 뜻이지. 그러니까 이간시켜 버렸다. 하나님과 인간을,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과 끊겨진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죄가 무슨 도둑질이나 사람 죽이는 윤리와 도덕의 탈선을 자라 하지 않고 그것은 영적인 것이 없는 다시 말하면 유교나 하나의 도덕 교육이니까, 그 사람들이 말할 때는 영적인 것을 죄라고 하지 않죠. 영적인 것을 취급도 않하니까. 그래서 도덕적인 문제, 도덕적인 부도덕한 것을 죄라고 취급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도덕적인 것만 취급하지 영적인 것은 전혀 취급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전혀 부도덕하지 아니하고 정말 덕이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이미 관계가 끊긴 사람이면 이미 죄인이에요.
그러니까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마귀는 하늘에서 애당초에 하나님과 단절된 존재라 이거여. 하나님과 단절되었기 때문에 타락한 자입니다. 그러니까 육이 식물을 먹지 않으면 죽듯이 영이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이 공급되지 않으면 이미 죽은 자가 되 버립니다. 그러니까 영이 있으나 영이 하나님으로부터 공급을 받지 못합니다.하나님과 관계가 없습니다.그러니 영이 죽었다는 거여.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영이 단절되었다 이말이죠. 그게 바로 죄라는 거거든요.
그래서 예수께서 이제 마귀로 인해서 끊겼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마귀를 시고 끊겨진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예수 그리스도 오셔서 다시 통로를 만드셨어요. 그래서 나는 죄로 인하여 죽은 사람이지만 예수로 인하여 다시 산 사람이다 이말이죠. 다같이, 나는 죄로 인하여 죽었지만 예수로 인하여 다시 살았다.
그러니까 내가 하나님과 다시 대화하는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가 정말 그 생령으로서의 기능을 영적 사람으로서의 기능을 다시 회복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전에 아마 지금부터 24,5년 전에 청양 구봉광산이라는 데가 있는데 거기 광산이 메몰된 적이 있었어요. 거기 한 근 한 달 가까이를 양창선이라고 이 사람이 김씨인데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개가를 해서 그 집이 양씨인데 호적을 올려서 그런데 이 사람이 구봉강산에 메몰되었어요. 완전히 끊겼어요. 그런데 여기 굴 속에서 작업하는 전화선이 마침 연결되었었기 때문에 그래서 2키로 굴 속에 있는데 저화선을 통해서 바깥에서 통화가 되었어요. 그래서 박정희씨 대통령 특령으로 양창선 구조하는 작업을 해서 굉장했지요. 이런 사람들은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 얘기에요.
그래 가지고 마치 이게 우리가 인간과 하나님은 마치 굴이 무너져서 전혀 정말 생존 가능이 없는데 마침 전화선이 연결되고 바람을 공기를 집어 넣는 파이프가 깨지지 않아서 거기다 공기를 계속 집어 넣고 근 한 달간을 작업을 해서 이 사람을 기적적으로 끄집어냈어요. 그러니까 여기서 전화선과 공기통 때문에 2 킬로 땅 속에서 살아 났어요.
그와 같이 인간은 하나님과 끊겼던, 마귀로 인해서 끊겼는데 예수로 인해서 연결되었어요. 그러니까 내가 하나님과 다시 연관한 것은 예수로 말미암아 다시 교통하게 되었어요. 바로 이와 같은 거에요. 그러니까 인간은 육체뿐 아니라 영이라는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영은 항구적인 존재입니다.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영은 지옥에 가서 살든 하늘에 가서 살든 항구적인 존재에요. 육체는 먼지처럼 소멸되지만 영은 그렇지 않습니다.
과거 사람이 영적 존재가 아니었을 때는 문제가 아니지만 생기를 부어서 영적 존재가 된 다음에는 육신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삽니다.그래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아무리 육을 위해서 노력해야 한평생은 살 수 있지만 영원히 살 수는 없어요. 오직 영만이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적 존재라는 것, 오늘 여러분과 내가 신앙 생활하면서 제일 문제가 뭔고 하니 일반적으로 보통 신앙 생활하는데 영적 생활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게 뭐니 오늘날 교회에서 영적 생활하게 합니까? 전부가 영적 생활을 무시하고 일반적으로 전부 도덕생활 강조하고 있어요. 그 다음에 종교사상 강좌, 이것만 늘어 놓는 거여. 영적 생활은 파괴해 버리고 도덕 생활을 강조하고 종교 사상을 강좌합니다.
일반 교회가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전부가 기독교도 하나의 종교 사상, 그러니까 예수의 사상, 예수의 이념, 주장, 그래서 구원보다는 사랑이 강조되어 가지고 영혼 구원보다 사랑이 강조되어서 예수를 마치 박애주의 사령자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대 교회의 신앙의 문제입니다. 영적 생활은 완전히 파괴해 버리고 도덕 생활 강조하고 종교사상 강좌만 합니다. 우리는 이까짓것은 해봐야 구원 못 받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일평생 도덕 생활이 완전하다 해도 영적 생활 못하면 지옥 아랫목에 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일평생 강도 창녀처럼 지저분하게 남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지저분하게 살았어도 영적 생활하고 예수 그리스도 구원을 받으면 그 사람이 먼저 천당 갑니다.
오늘 그리스도가 오셔서 아들 낳고 딸 낳고 너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즐겁게 지내라고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전통적으로 내려 왔어요. 이미 천연적으로 내려 왔어요. 그리스도가 오신 것은 우리를 마귀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었던 것을 다시 연결시키고 이제 예수그리스도가 직접 희생이 되셔서 그 속에 들어가셔서 그 속에서 주장하시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들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어주려고 하는 겁니다. 오늘 도덕 생활, 어떤 사람은 저에게 주문이 옵니다. 우리 교회도 영적으로는 충만한데 생활에 대해 강조했으면 좋겠다고, 우리가 시골 교회 부흥회 가서는 복음적인 얘기보다는 생활면을 더 강조합니다. 제가 개교회 집회하면 다섯 단계로 집회하는데 대도시 중도시 소도시 전도집회 농촌교회 다 집회가 방법이 달라요. 농촌에 가면 이런 높은 수준의 복음적인 얘기를 할 수가 없어요.그러니까 그들은 교회생활을 억압해 주는 교회에서는 주일 지키시요, 주일 빠진 사람 손 드세요. 안 빠지려면 높이 들어요. 그래 가지고 천부여 의지 없어서 30분 동안 손이 끊어지려고 하지, 또 십일조 안 하는 사람 손 들어, 십일조 할 사람 손들어, 천부여 의지 없어서, 그렇게 반강제적으로,
왜니? 시골 사람들은 머리로 듣고 이해할 수 없으니까 훈련하는 식으로 해야 좋아 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해서 생활 훈련을 시키지요. 교역자 생일날 아는 사람 손 들어 봐, 6월 25일이야. 생일 몰라? 떡 좀 해 가지고 왔어? 당신 생일날 떡 해 먹고 미역국이라도 끓여먹지, 그런데 목사 생일날 그래도 당신 영적 지도하는 아버지인데 아무 것도 안 해 가지고 왔어 당신 시루 있어 없어? 오늘 당장 시루 사와, 오늘 부흥사도 왔으니 떡 좀 해 먹어, 그렇게 했어요. 그렇게 훈련을 시켜요. 그러니까 그게 시골 교회에서는 맞아 들어가요. 영적이네 하면서도 생활 교육을 시킵니다.
새벽 기도 안 나간 사람 손들고 그렇게 반강제 교육 훈련 시키는 일을 합니다.그러나 이것은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성경에도 히브리서 8장에도 말한 것같이 하나님을 어떻게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적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하나님을 아느니라 그랬어요.
효자는 철 나면 어머니 잡수세요, 아버지 잡수세요 이해합니다. 그러나 불효자식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효자는 이해합니다. 불효자는 이해 못하지만 효자는 이해합니다. 복음은 효성이 있는 효자처럼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라 하지 않아도 다 섬길 줄 안다 이말이죠. 그래서 도덕을 강조하지 않아도 영적인 것만 알면 다 하나님 섬기게 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영적인 것보다는 전부, 우리 교인들도 이런 것을 강조하면 어떻겠느냐? 내 생각이 그래요. 그래서 저는 이런 오해도 받았어요. 우리 목사님은 복음은 참 좋은데 생활을 잘 안가리키신다고, 그것 가리킬 새가 없어요. 그건 가리키지 않아도 시아버지 잘 섬기고 시 어머니 잘 섬기라는 것은 당연히 부모 잘 섬겨야 하고 당연히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하고 그건 당연하다 이거죠. 여기서 배워서 그정도한다면 동물입니다.
교회에서 가정 화목하시오 하고 배워서 가정 화목한다면 그건 안 믿는 자만 못하는 겁니다. 그것은 자기가 알아서 자기 가정을 어떻게 화목해야 하며 자기 가정에서 어떤 경우를 어떻게 소화를 해야 하는가 잘 압니다. 그것을 교회에서 배우지 않아도 하나님의 의도를 가리켜야 합니다. 그래서 주기도문할 때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고기도는 하면서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야 땅에서도 이루려고 노력하지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말만 하지 그 뜻이 무엇인지 알아야 바로 이 땅에서도 이루려고 하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우리 목사님은 복음은 잘 가리키는데 생활 같은 것을 안 가리킨다고 그러니까 마치 제가 방종하는 사람 같이 제가 듣기를 은근히 그렇게 들려요. 우리 목사님은 사람들 무질서하게 사는 것 방종하는 것 같이 그러니까 목사님도 그러니까 그렇게 방종하는 게다. 지들 생각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둬요. 생각하는 데 돈이 들어 세금 내여? 생각 암만 크게 해 보시요. 국세청에서 조사 안 올 테니까,
그것이 아니라 나는 지금 내 생애를 통해서 이걸 영적인 문제를 사람들에게 주입시키고 그걸 훈련하기 까지는 내 생애가 시간이 부족합니다. 내가 목숨이 한 개니까 한 개만 바치는 거여. 열개면 열개 다 바쳐도 부족하다고요. 그정도로 부족합니다. 또 종교사상 강좌할 새가 없어요. 요새 전부무슨 세미나 무슨 세미나 전부 종교 사상을 강좌하고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의 역사를 하나의 종교적인 새로운 의미 부여로 여깁니다.하나님이 독생자를 준 것은 우리를 멸망치 않고 살리려고 오신 것이지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고 오신 분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다른 교인들과 성락 교인들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우리 성락교인들은 오래 다니다 보니까 들은 풍월이 있거든. 또 영적으로 수준에 올라 가 있어요. 다른 교회에서 설교 들어 보시요. 도저히 들을 수가 업어요. 그게 가만 확실히 죽어 있는 교육을 시킵니다. 도덕 생활을 율법이 얼마나 강조합니까? 그러나 율법 자체가 뭡니까? 율법은 사망의 법입니다. 저주의 법, 혹은 사망의 법이라 이거여. 그래서 로마서 8장 1절 2절에 성령의 법은 사망의 법에서해방시킨다. 다같이 율법은 사망의 법이다. 바울 선생이 율법은 사망의 법이다 그랬어요. 그래서 성령의 법 진리는 이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킨다. 곧 율법에서 우리를 해방시킨다 이말이여. 그래서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 아래 사는 자들이 저주 아래 사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렇게 강조하잖아요. 왜? 도덕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자체가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사망의 법이라는 거여. 도덕 자체가 나쁘고 사망의 법이라는 얘기가 아니라 도덕 자체가 구원할 수가 없고 율법 자체가 구원할 수 없어요. 도덕 자체가 사람을 타락하고 망한 영적으로 타락하고 망한 데서 구원할 수 없어요. 도덕은 영적 타락에서 사람을 해방시킬 수 없어요. 다같이 도덕은 영적 생활을 하게 할 수 없다.
타락한 영적 생활에서 구원 시킬 수 없어요. 해방시킬 수 없어요. 그러니까 도덕만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한다면 영적 생활에 도덕이 도적이여.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것 때문에 그럽니다. 현대 교회가 영적 생활을 완전히 묵살해 버렸어요. 이게 얼마나 무섭습니까? 그러니까 현대 교회는 영에 대해서 들어 보지 않았어요. 영이 굶어 죽어도 좋아, 전부 이걸 만족,
여러분 새생활 새생활 하는데가 많은 데 상당히 미국에서도 유행되고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전부가 육적만족입니다. 이것은 전부가 육적 생활 완성입니다. 육적을 만족하자는 거여. 어떤 육적 생활? 현대인의 육적 생활, 현대인의 육적 생활입니다. 바로 이것이 신앙인들이 아니라 현대인의 육적 생활, 그러니까 기독교인 목사가 새생활 세미나를 어디서 하는줄 아십니까? 일본인 회사에서 요새 회사에서 훈련하지 않습니까? 회사에서 사원들 스트레스 해소시킨다고 해서 하고 여러가지 가정이 화목해야 회사가 화목해 진다고 해서 훈련하는 세미나를 합니다. 그러니까 그런 데서 이런 걸 다 받아 들이고있는 거에요. 이런 것은 전혀 영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당장 듣기가 좋으니까 그러니까 영적 생활하기 싫은 그러니까 나이론 교인같은 사람들은 듣기에 멋있죠. 왜? 요새 현대 교인들 제일 싫어하는 게 무엇입니까? 기도하자, 하는 것 싫어해요. 성령 받으라는 것 싫어하거든. 방언 하라는 것 싫어하거든. 아주 성령 은사 귀신 쫓는 것, 축사 축사하니까 결혼식장에서 축사하는 줄 알고 있어요.
전부가 이게 제일 싫어하거든. 기도하라 성경 봐라, 그 다음에 성경 읽는 것 다 싫어하는 것들입니다. 기도도 순교적인 것, 헌신 이런 것들을 싫어하거든요. 그러니까 여러분 같은 교인이라도 특별하게 기도많이 하고 성령 충만하고 능력있고 귀신 쫓고 순교생활하고 헌신하고 하면 뭐라고 하는 줄 아십니까? ‘아고 나는 제 같이 될 까봐 무서워, 나는 기도 조금만 할래.’오히려 경계하고 무서워하고 오히려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해요.
그러니 주님이 무엇을 원하시겠습니까? 만약에 아까 말한대로 기독교를 도덕 사회로 타락시켜 버린다면 율법을 그대로 놔 둬 버리지 왜 예수께서 율법을 갖다가 율법아래 있는 자들을 맹렬히 비난하고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요한은 맹렬히 비난했겠어요? 바리새인들이 율법으로 훈련잘 된 바리새인들을 보고서 독사의 자식들아 하고 막 꾸짖는다 이거여. 왜 그것이 옳았으면 왜 예수께서 오셔서 율법 아래서 이제까지 수천년 전통 가지고 있던 전통 속에 살던 그들을 왜 파괴시켰느냐 이거여.꿈을 파괴시켰느냐 이거여. 그것이 안 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이 세상이 망하는 것들은 도덕이 없어서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학교에서 도덕강의하지 않습니까? 도덕이 없어서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 사상을 가리키지 않아서 망하는 거 아닙니다. 그러니까 기독교 사상을 강조하니까 마치 기독교는 이 세상의 선구적인 역할만 생각하지 구원이라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아요. 세상의 선구적인 주체로만 생각하지 구원하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믿게 하지 않아요. 이게 얼마나 타락이에요. 그러니까 이런 것들이 다 육체는 유익이 있어요. 육체를 위해서 디모데전서에도 말한 것같이 육체의 연습은 이 땅에서 약간의 유익이 있지만 경건의 연습은 금세와 내세에 유익이 있는 것이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우리 성락교회 오면 반대거든.나는 무슨 옷을 입어라 라고 말하지 않거든. 가정에서 부부간에 어떻게 살라 얘기하지 않거든. 왜? 그정도 할 수 없는 정도라면 인간 이하의 사람이기에 얘기할 것도 없어요. 나는 보통 사람이 보통 생활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필요한 것은 영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신 것은 여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예수가 와서 예수가 육신의 예수를 해 봐야 이것은 하나의 종교인은 될지는 몰라도 아무 도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에 예수를 보내신 것입니다. 이래야 영원한 생명이 있고 구원이 있고 영생이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 설교도 예수를 육에 가입시키려고 하지 영에 모시려고 하지 않아요. 이게 문제가 있어요. 그러니까 오늘 여기서 바로 우리는 영이라는 존재입니다. 영적 존재에요. 그래서 하나님과 끊긴 것이 죄요, 하나님과 다시 연관된 것이 사는 거에요. 그러니까 예수가 들어오셔서 임마누엘 영원히 너희와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 이제는 끊을 수가 없어요. 마귀가 이간하여 끊어놓은 것을 그리스도 오셔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있도록 이루어 놓았어요. 완성시켜 놓았어요. 그래서 우리가 영적 생활하고 있지요. 예수로 인해서, 그런데 이제 자 보세요.
이게 영혼입니다. 이게 육체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예수가 들어와서 하나님과 연관되어 있어요. 이 사람은 예수가 없어서 죄인입니다. 하나님과 관계 없어요. 마귀가 끊어놓은 대로 가만히 있어요. 여기다가 그러니까 영이 저주를 받았어요. 이미 하나님과 끊겼으니 저주를 받았어요. 저주 받은 사람은 자기 몸이 있거든요. 자기 저주가 있어요. 저주가 다시 말하면 선천적으로 숙명적으로 자기에게 저주가 와 있어요. 그러니까 성경에도 날 때부터 소경된 자, 누구의 죄입니까? 그 사람의 죄입니까? 모친의 죄입니까? 하듯이 바로 이들이 저주가 이미 있을 때 그 사람이 소경이 되었는지 아니면 앉은뱅이로 되었는지 또는 만약에 이 사람이 귀머거리가 되었는지 또는 이 사람이 영원한 가난뱅이로 되었다든지 간질자로 되었다든지 이것이 모태에서 자기 저주를 가지고있기 때문에 그 저주가 어떤 방법으로나타났느냐? 이런 현실로 나타날 수 잇어요. 소경 될 수도 있고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되고 귀머거리 되고 가난뱅이 되고, 어린아이들이 소아마비 되는 것은 중간에 된다 하지만 애들이 태어날 때 골반이 좁아서 나올 때 부러져서 나와 가지고 어리니까 붙기도 하고 잘못되면 그런 식으로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현실로 영이 받은 저주가 이런 것이 피할 수 없는 것으로 가지고 나옵니다. 그러니까 애들이 울지 않는 것을 겁나하죠. 어린애 태어나서 울지 않으면 궁둥이 때려서도 울게 하지요. 왜? 그게 벙어리인지도 모르니까, 낳아서 울지 않으면 제일 두려워합니다. 그건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어요. 왜니 현실로 나타나니까, 이걸 자기 병이라고 해요. 자기 저주로 인하여 현실화 된 것이 자기 병이에요. 자기 영이 받은 저주가 현실화 된 것이 자기 병이라고요. 자기 병 가지고 나왔어요. 거기다가 또 어떤 귀신이 들어왔어요. 귀신이 들어왔는데 다른 병이 들어왔다 합시다. 예를 들면 암이 들어왔다 합시다. 이랬을 때 이 사람은 두 가지, 소경인데다가 암까지 걸렸으니 그러나 이 사람은 병이 두 가지라고만 생각하지 원리를 생각지 못합니다. 현실로 나타난 자기 병이라는 것을 저주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 자기 병인데 이건 이미 하나님과 끊겨 있는 인간에게 어떤 모양으로 태어날른지 몰라요.
그 사람은 자기가 받은 저주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 숙명적인 가난뱅이로 태어났다 합시다. 그런 사람 있지요. 남 보기에도 사람이 장사해도 나는 장사군이 못돼요. 왜니? 미남이 못됩니다. 장사군이 될려면 얼굴이 훤출하고 기생들이 따르고 해야지 나처럼 시커멓게 부리부리해서는 못해요. 장사군은 멋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지독하게 옹졸하게 생겼는데도 키도 쬐그만데다가 못생겼는데 공부는 했는데 그 사람은 외모로는 안 돼요. 자기도 탄식해요. 공부는 명문대학을 했는데 자기가 업무직을 가졌는데 인상을 보고 막는다는 거여. 그렇다고 안타깝다고, 상당히 실력이 있는데 막혀요 그런데 얼굴이 시커매가지고 여러 가지로 안타까와요. 그러니까 이런 사람 어디 가서 누구 중매할래도 비슷해야 해주지 중매하기도 어렵고 앉아서 명문대학 나왔다고 하니까 그러냐고 선을 보다가 질려서 나가 버려요. 그러니까 외모로 많이 보거든. 사기꾼들이 학교도 안 나왔으면서도 ‘저는 의과대학 나왔어요’ 그러니까 아파트 열쇠가 세 개 있어야 된다나? 이런 것이 자기의 저주로 왔다고 합시다.
이건 자기 병이에요. 그런데 죄인이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았어요. 구원을 받는 순간에 예수가 이 안에 들어왔어요. 이 저주를 예수께서 담당하시고 저주는 예수가 담당하시고 이 안에 예수가 들어오셨어요. 성령이 들어오셨어요. 예수가 이 안에 오심으로 저주는 사라졌어요. 자기 병은 없어졌어요. 그러니까 자기 병은 없어졌는데 암이 여전히 있거든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저는 예수 믿고 신경통 고질병 있었는데 다 나았는데 이 병은 안 낫어요’ 그러니까 자기 병은 예수께서 담당하셨으니 없는데 이것은 내 쫓아야 합니다. 남이 들어와서 만든 병은 쫓아 내라는 거여. 그러니까 귀신을 쫓아 내라는 거여. 그러니까 예수 믿으면서 병이 두 가지인데 한 가지는 나았는데 한 가지는 안 나았어요. 왜 하나는 자기 병이에요. 다시 말하면 자기가 예수 믿기 전 자기에게 부여된 자기 저주가 현실화된 것이 저주나 그 이상의 기막힌 불행이에요. 그러나 예수 믿으므로 그리스도가 담당하셨고 그러므로 예수 믿으므로 가난해야 할 사람이 부유해 지고 병들어야 할 사람이 낫고 소경이 눈 뜹니다. 그러나 ‘나는 왜 암은 안 낫냐고?’ 그것은 자기 병은 나았는데 다른 놈이 들어온 것은 자리 잡고 있어요. 그래 이건 쫓아 내라는 거여. 다같이 내 병은 예수께서 담당하셨고 이 병은 내 병이 아니라 귀신 네 병이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우리 교회 그런 경우도 있어요.
그 사람이 병이 몇 가지 있는데 다른 병은 오자마자 첫날 나았는데 또 한 가지 병은 낫지 않아서 그 병으로 교회 나온지 한달만에 죽었다 합시다.그래도 기뻐요. 그러니까 자기 병은 그리스도로 인하여 끊났고 그런데 남의 병이 들어온 것은 막지 못했어요. 아직 그만한 믿음과 능력이 없어요. 그러니까 자기 병은 나았는데 소경으로 된 것이 누구의 죄입니까? 자기 병입니까? 하고 물은 것같이 자기 병, 그러면 이 사람은 영은 깨끗해요. 구원받았으니까, 그 다음에 육체가 죽었어요. 육체가 죽으니까 육체는 사라졌어요. 없어졌어요. 그러나 이것은 육체 안에만 머물거든요. 육체가 이것은 자기 영은 육체가 있을 때는 함께 있었는데 육체가 없어지므로 이제는 이거와 분리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이 사람의 영혼은 어디로 가죠?낙원으로 가죠. 여기 들어와서 있어야 할텐데 거기 있지 못하니까 다른 데로 가는 거여. 그러니까 여기 와서 암이 생기는 거여. 왜 기도도 않하더라 이거여. 이놈이 여기로 들어와 버렸어요. 그런데 그러니까 다시 병이 생겨요. 그러니까 예수 믿으면 자기 병은 없어요. 왜 예수가 담당하셨으니까, 자기 병은 끝나요. 그러니까 중풍병자에게 안수하실 대 내 죄 사함 받았다. 그러니까 그리스도로 인해서 구원 받은 사람은 자기 병이 없어요. 그러나 남의 병 가지고 사는 거여. 그러나 예수 안 믿는 사람은 자기 병도 있고남의 병도 있고 두 가지 세 가지 박서방, 이 서방, 친구 들것 잔뜩 가지고 있지...
14-2
믿는 사람 경우는 자기 병은 없고 다른 병이 와 있어요. 이걸 쫓아 내라는 것이거든. 그러니까 예수 믿으면 귀신 절로 나간다는 것은 자기 병은 믿음과 동시에 완전히 자기 저주는 끝난 거니까 저주의 세월이 없어졌어요. 그러나 이것은 안 끝났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걸 아셔서 그러니까 우리가 영적 존재라는 데서 이 사람이 만일 예수안 믿는다 합시다. 그럼 자기 병이 있어요. 그 다음에 또 다른 것들이 들어와 있어요, 다른 것이 들어와서 자기 병이 있고 자기 병도 암으로 저주가 현실화되었다 합시다. 이제 육체가 끝났어요. 육체가 끝나니까 분리되 버려요. 자기 병으로도 죽을 수 있고, 그러니까 이 사람은 예수 안 믿는 사람이고, 어디로 갈까 예수 믿든 안 믿든 이 사람 속으로 육체로 들어가 버려야 되겠다 하고 들어가 버립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돌아다니다가 들어가 버리죠. 이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이면 이걸 추방할 수 있고 안 믿는 사람이면 추방할 능력이 없지요. 믿는 사람은 에수라는 힘이 있기에 추방할 수 있지만 안 믿는 사람은 예수가 없기 때문에 추방할 능력이 없어요. 예수를 믿는 사람은 자기 병은 없어졌고, 이런 것도 추방할 능력도 있어요.
그리고 이 사람이 육체가 없어졌다. 육체가 없어지면 영은 낙원에 가지만 이 놈은 제 3자에게 갑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자연 수명 옛날에는 천년 가까이 살았는데 노아 때 120년으로 제한해 버렸어요. 그러니까 보리밭에 큰 것도 있고 적은 것도 있듯이 평균적으로그렇다 이말이여. 그러니까 이것은 120년이라는 것을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아브라함은 그보다 더 오래 살고 모세도 더 오래 살았는데 이런 식으로 하거든. 예수님 때가 모든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때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당시에 가장 평균 수명을 생각해야 돼요. 점점점점 줄어 들다가 이제는 다시 상승하기 시작하죠. 그래 모든 의학적으로도 과학도 그렇게 인정해요. 한의도 인정하고 양학도 인정해요. 사람이 120년 의학책에 나와요. 나도 읽어 봤어요. 바로 120년 이것은 인간의 수명인데 병들면 병으로 마이너스 당합니다. 옛날에는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과식을 많이 합니다. 너무 가난하기 살았기 때문에 일년 내내 굶다가 우리도 어렸을 때 추석 명절 2,3일 전에 쌀밥 먹거든요. 그럼 배 아픕니다. 왜 보리밥만 먹다가 쌀밥 먹으니까 얼굴이 노래서 이러거든. 오랜만에 먹으니까 또 그랬다가 명절에 오랜만에 잘 먹으니까 나중에 못 먹을 거 생각해서 배곱 주름살 펴지도록 먹어 버리거든. 그러니까 설 명절에 이집 저집 다니면서 하루에도 떡국 다섯번은 먹는다고요. 그것이 체해 가지고 침으로 따고 별짓 다하다가 얼마 지나서 대보름 만나니까 오곡 잡곡 먹으니 소화가 안 되죠... 그래서 장의사보고 물어 보니까 언제 사람이 제일 많이 죽냐고 하니까 계절 바뀌는 때하고 추석 다음날하고 그 다음에 정월 초하루 지난 다음과 대보름 지난 다음에 제일 사람이 집중적으로 죽는다는 겁니다.
왜 오래간만에 먹으니까 그래요. 그런데 여기서 먹는데 눈 뒤집히지는 않지만 요새는 자기 밥 그릇 이렇게 올리는 사람 있나요? 그런데 한번 과식하면 일년이 감소됩니다. 사람이 과식 열번 하면 십년 감소됩니다. 그래서 옛날 사람 수명이 짧아요. 그러니까 짜궁이 나서 배만 볼록 어깨로 숨쉬지, 배로 숨쉬지 못하니까 대신 어깨로, 자꾸 과식하니까 수명이 잛아집니다. 그러나 의학적인 수명은 병 생기지 않고 정상적으로 사람이 자라면 그런데 기름 같은 거 많이 먹어도 병 생기는 거죠. 그러면 줄어듭니다. 그런 것만 없다면 120년 산다는 거여. 이것은 바로 양학이나 한의학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그렇게 얘기했어요. 그러니까 이것은 예수님 때가 모든 것이 완성되기 때문에 가장 정상적인 때죠. 그러니까 대략 이러니까 100살이 자연 수명이 될 수도있어요. 그런데 이 사람이 만약에 자연 수명이 미처, 그러니까 이 사람이 태어날 때 자연 수명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교통사고나 어떤 불의의 사고로 죽어서 수명이 미달되어 버린다면 그건 자연 수명으로 죽으면 무저갱으로 갑니다.
그러나 그 자연 수명이 가지 못하고 사이비하게 죽으면 나머지를 머물렀다가 무저갱으로 가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무덤 사이에 있던 귀신들린 자 귀신들이 예수를 보더니 나를 쫓아 내면 때가 이르기 전에 때가 되기 전에 우리를 괴롭히려 왔나이까 우리를 보내려면 돼지에게로 보내소서. 그러나 기어코 보내시려거든 돼지에게로 보내소서. 하고 말합니다.
무저갱으로 보내지 마시고 때가 안 되었으니 무저갱으로 보내지 마시고 돼지에게로 보내소서. 사람들은 그래서 예수께서 귀신이 요구대로 무저갱으로가라 하지 않고 돼지에게로 가라 그러셨어요. 그럼 예수께서 돼지에게 순종한 것입니까? 순종한 거 아니거든. 또 예수께서 ‘네 이름이 뭡니까? ’ ‘군대입니다’ ‘아 많구나’ 그렇게하셨는데 그럼 예수께서 귀신에게 배우신 것입니까? 오늘 사람들이 귀신이 뭐라고 했다고 하면 귀신한테 배웠다고 귀신 집단이라고, 그럼 예수께서 귀신에게 뭐하러 물어 봐요. 네 이름이 뭐냐고 뭐하러 물어 봐요? 예수께서 몰라서 물어 봤겠습니까? 사람들 모함하기 위해서 하는 소리지 그래서 그 사이비 죽음이 만약에 이 사람이 두 살 때 죽었다 합시다. 98살을 활동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다 그 이후에 만수될때 무저갱으로 자연히 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귀신을 쫓아도 늙어 죽었다는 귀신은 하나도 없어요. 전부 병 들어 죽었다. 교통 사고로 죽었다 전부 그러지, 늙어 죽었다는 귀신은 하나도없어요. 그러니까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부자와 나사로 얘기가 있어요. 부자가 병들어 죽었다고 하지 않았어요. 연락하며 편히 살다 죽었어요. 죽어서 음부에 있다고 했어요. 무저갱은 음부 안에 있으니까요. 나사로는 아브라함 품 속에 들어갔지만 음부에서 그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이여, 아브라함이여 내가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불 속이 아닙니다. 여러분 초가 있는데 초 끝이 제일 뜨겁습니다. 아직 불 속이 아닙니다. 불꽃입니다. 불꽃 있는데서 괴로워하나이다. 불 못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한 번 20장 보세요. 13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를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를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 행한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이 둘째사망이라”
음부가 지옥인데 음부가 다시 불못으로 또 들어갑니까? 그러니까 음부에 죽은 자들이 사망도 죽은 자를 내 주고 음부도 죽은 자를 내 주면 불 못으로 들어가고 사망도 불못으로 던지고 음부도 불못으로 던진다 그랬어요. 그와 같이 그러니까 부자가 거기서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나는 네게 갈 수도 없다. 너와 나 사이는 구렁이 있어 갈 수 없다.’ 하고 말한 것처럼 부자는 무저갱에 들어가 있었어요. 그러니까 그는 바깥에서 활동할 필요가 없어요. 그래 어떤 사람은 부자가 귀신이 아니냐 하는데 부자는 활동하지 않습니다. 이미 장수해서 편안히 살다 죽었다고 했어요. 여기들어간 사람은 다시 나오지 않습니다. 지옥이 아니에요. 아직 지옥은 예수께서 재림하신 다음에 형벌 받을 때 들어가는 것이지 아직 거기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부자는 생각하는 데 이해하시겠어요? 부자가 간 곳은 이곳입니다. 그러니까 그렇지 않으면 자기 자연 수명이 만수될 때까지 방황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건 여러분이 상식적으로 알아야 해요. 번역된 교과서를 쓰려면 막연히 번역해서는 교과서가 안 됩니다. 그걸 문교부나 국가에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감수를 받아서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번역물에 대해서, 그러니까 번역에는 사전적이어야 하고, 단어가 사전적이어야 하고 그러면 쉽게 말하면 성경에 나와 있는 원어 원문을 번역을 할 때 사전 완전히 우리 나라의 사전에의해서 번역합니다. 그런데 원문을 번역하니까 귀신이라고나왔어요. 여러분 한국 국어 사전에 귀신을 뭐라고 했습니까? 조상의혼, 혹은 사람의죽은 영혼 그랬어요. 죽은 사람의 영혼 이건 한국 사전만 아니라 일본 사전에도 나오고 성경을 번역할 때는 사전적으로번역하는 겁니다. 표준 사전에 기초해서 그렇지 않으면 승인이 안 되는 겁니다. 바로 성경도 우리 교과서에요. 원문을 번역한 것이 귀신이에요. 귀신은 조상의 혼 또는 죽은 자의영혼 이렇게 번역되어 사전에 나왔어요. 그러니까 이들이 원문 번역할 때 사전을 보고서 그대로 번역한 것입니다.
적어도 강단에서 말씀을 다루고 교과서적인 성경을 다루려면 이건 상식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이 표준 사전을 초월해서 되는 거 아닙니다. 사전적으로 다룬 겁니다. 번역 자체가 사전적이에요. 왜? 외국어를 우리나라 말로 번역해야 되기 때문에 사전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당초에 아니면 귀신을 귀신이라고 쓰지 말고 타락한 천사라고 쓰지 뭐하러 귀신이라고 써 가지고 오늘 나도 곤란하게 만들고 저도 곤란하게 만들어. 그러나 천안에서 어떤 분 베뢰아 타도 대회를 하고 어떤 젊은 집사가 ‘강사님 질문 있습니까?’ 무슨 질문이여. ‘천사가 타락한 것이라고 성서대로 한다고 했으니 성경에 어디 있습니까?’ 있어야지, 망신 혹독히 당했다고 해요. 여러분 누구든지 귀신이 뭐냐고 하면 천사가 타락한 것이라고 할 겁니다. 성경 어디 있느냐 아마 신학박사 1억을 갖다놔도 못 찾을 겁니다. 당신들은 나는 모른 체 할 거여. 저는 아무 것도 모르지만 김목사님 귀신이 성경에서 찾아 해 주는데 목사님 천사가 타락했다는게 성경 어디 있어요?” 물어 봐요. 아마 꼼작 못할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아직 무저갱에 그들을 보내지 않았어요. 그런데 성경에 네 이름이 뭐냐고 물어 보니까 군대라고 했는데 군대라고 하는 용어는 사전에 나왔어요. 군대는 주전 70년 경 로마 군대가 사용하던 용어라 하고 나왔어요. 네 이름이 뭐냐? 군대입니다. 제가 생각하기를 그때 군인이란 20살 때 가는 의무 군인이 아니고 장정이면 전부 민간인 군인이니까 전부 민병이니까 약 30살을 계산해 보면 70살에 70년 하면 100입니다. 그런데 아직 군대들이 하는 말이 아직 때가 안 되었는데 무저갱으로 가라 합니까? 돼지에게로 보내소서. 하고 하는 것은 아직까지도 그들이 자연 수명이 남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와 같이 우리는 구원 받지 못한 영혼이 얼마나 불행해진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런데 굳이 말이여, 귀신이 불신자의 사후 존재라는 문제에 대해서 그렇게 이를 갈 필요가 뭐 있는지 이해가 안 돼요. 귀신이 불신자의 사후 존재라 하니까 도저히 이해가 안 돼요. 그들은 예수 믿으라 믿으라 해도 끝내 예수믿지 않고 죽을 때까지 십자가의 원수 보혈의 원수로 있다가 죽었는데 그들이 죽었는데 그러니까 그 불신앙, 불신앙으로 끝까지 불신앙으로 죽은 자들이에요. 끝까지 예수반대하고 죽은 자입니다. 죽은 자인데 이들이 이 죽은 자의 영혼을 귀신이라고 하는데 자,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받은 사람들 예수그리스도의 보혈과 은혜로 구원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감사해서 감사 헌금 한 것 가지고 목회하면서 처자식 먹여 살리는 사람들이 아니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 받은 것이 감사해서 헌금한 헌금으로 처자식을 먹여 살리는 사람들이 어째서 일생동안 예수믿으라고 해도 안 믿고 죽은 예수 반대하고 예수 원수요 십자가의 원수요, 보혈의 원수로 죽은 자들의 영혼을 귀신이라고 했다고 해서 무엇이 답답하고 속상해서 귀신 편을 들고 욕하는 거여. 귀신 안 믿고 죽은 영혼을 편드는 거여? 아니 예수 안 믿고 죽은 영혼이 뿔이 열 두개라고 한들 그게 아니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 못하는 사람을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했고 자기 제자도 사단이라고 했고 가룟 유다보고 마귀라고 했는데 아니 예수 안 믿고 죽은 영혼을 저주 받은 자들이라고 했는데 우리 마태복음 25장 봅시다. 31절
“인자가 모든 영광으로 자기 천사들과 함께 올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41절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불신자를 마귀 심부름 꾼이라고 했어요.마귀와 그 심부름 꾼을 위하여 예비된 곳에 들어가라. 그러니까 저주 받은 자들은 마귀 심부름 꾼으로 취급하여 마귀와 함께 심부름꾼들을 위하여 예비된 곳에 들어가라 했어요. 예수는 저주 받은 자를 마귀의사자 귀신으로 취급했어요. 아니 일평생 예수의 반대 십자가의 원수된 죽은 영혼을 귀신이라고 했다고 해서 사전적으로 말하면 귀신은 죽은 자의 영혼이라고 했지 뿔 돋힌 자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무엇 때문에 열을 올리고 이단이니 삼단이니 하는지 모르겠어요. 아니 불신자의영혼이 눈이 독사 눈깔같이 생겼다고 하든 뿔이 사슴 뿔 같이 생겼다고 하든 무슨 상관이여,
귀신을 그 영혼이라고 했다고 해서 섭섭한 거여, 그 불신앙의 영혼을 귀신이라고 했다고 해서 섭섭한 거여. 무엇 때문에 구원 받은 사람들이 감사해서 헌금한 헌금으로 자기 먹고 처자식 먹여 살리는 사람이 그 돈 가지고 가서 다방에 앉아서 레지 앞에서 꼴딱 꼴딱 마셔 가면서 이거 잡자고 욕하느냐 이거여.
이런 사람들 앞으로 저는 교회 짓고 나면 이런 사람은 사례 주지 말라고 평신도 운동할 거여, 왜 사례 줘, 누구 편에 서는 거여? 예수 반대하는 편에 서는 거여? 어째서 예수반대하는 편에 서는 거여?이해할 수가 없어요. 이들은 예수 원수된 자에요. 끝내 보혈의 원수요 그리스도의 원수된 자들을 귀신이라고 해서 무엇 때문에 누굴 두둔하는 거여?
이것은 우리가 소홀할 수 없는 피할 수 없는 문제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세가지 영적 존재에 대해서 알아야 해요.
그래 우리의 영혼은 평소에 우리가 우리의 육신은 식물을 먹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 살리는 능력이 없어요. 살리는 능력이 없다. 그러나 영은 살리는 능력이 있어요. 살리는 능력이 영에 들어오면 영은 살아 납니다. 요한복음 6장 63절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아무리육신이 잘 먹어도 살지 못합니다. 내 말이 곧 영이요 생명이라 했어요. 그러니까 영혼 속에 하나님 말씀 진리를 많이 먹었다 합시다. 육신이 부서졌습니다. 부서졌어도 영은 하나님 말씀으로 윤택해진 영은 부활 때에 영이 몸이 됩니다. 그걸 알라는 겁니다. 우리는 우리 영이 잘 되기를 예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육신을 위해서 종합 비타민 먹으면 영양섭취가 된다죠. 왜 우리 영혼은 종합 비타민 먹으면서 영은 먹지 않아요? 왜 진리를 먹지 않느냐 이거여. 우리는 진리로 양육 받을 수 있기를 예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천사와 영에 대해서 알아 봤습니다. 이시간 기도할 때 내 몸에 하나님 말씀으로 채워 주시옵소서. 전심으로 당신의 영혼 속에 하나님 말씀으로 채워주옵소서. 왜? 부활 때를 위해서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