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석 시신보존에서 냉동인간까지
이종호/페르피냥대 과학국가박사
지난 4월 15일은 1994년에 사망한 북한 김일성 주석의 89회 생일이었다. 그런데 평양에 있는 금수산기념궁전에 안치된 김주석의 시신은 마치 살아있는 듯한 모습이라고 전해진다. 김주석 시신 보존에는 도대체 어떤 방법이 사용됐길래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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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생명이 다시 살아난 경우는 없다. 지구상에 생명이 탄생한 이래 단 한번도 바뀐 적이 없는 진리다. 이러한 엄연한 진리를 바꿔보려는 생각에서 시작한 과학적인 노력이 바로 ‘미라’다.
미라는 세계 각지에서 만들어졌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 이집트의 미라다. 이집트인들은 육신은 영혼이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이므로 영원한 삶은 죽음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몸을 떠난 죽은 자의 영혼이 언제라도 육체에 다시 돌아오게 하기 위해 시신을 썩지 않는 미라로 만들었다. 70일 동안 정성 들여 미라를 만들어 피라미드에 안치하면서 미라가 언젠가 다시 살아날 날을 위해 사자(死者, 죽은 자)가 생전에 사용하던 물건과 함께 그의 일대기를 피라미드의 벽면에 조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미라가 살아난 적은 없다. 사실 미라를 만드는 제작 방법을 생각하면 다시 살아 날 것이라고 믿을 사람은 없다. 또한 미라의 모습은 살아 있는 사람과 너무 다르기 때문에 살아 있을 때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었다 할지라도 그에 대한 경애심이 사라지기 십상이다.
이런 단점을 보완해 인간은 미라를 만드는 새로운 방법을 창조해냈다. 사망한 사람의 시체가 썩지 않고 생전의 모습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다. 사자를 숭배하는 수단으로 사자의 생전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것처럼 좋은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말랑말랑한 피부의 레닌 시신
현대판 미이라로 보존된 옛소련 공산당의 아버지 레닌.
1994년 7월 8일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자 시신을 어디에 안치할 것인지가 세간의 관심거리가 됐다. 가장 유력한 장소는 남한의 국립묘지 현충원에 해당하는 혁명열사릉이었다. 그러나 1년여라는 시간이 지난 뒤에야 밝혀진 사실은 김주석의 집무실이었던 금수산의사당을 금수산기념궁전으로 개축해 시신을 영구 보존한다는 내용이었다.
시체를 살아있을 때의 모습 그대로 보존하기는 쉽지 않다. 시체에 화장을 시키고 방부처리해 생전의 모습처럼 유지하는 기술을 엠바밍(embalming, 혈액 대신에 방부제를 주입하는 기술)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시신을 영구히 보존하는 방법은 옛소련 공산당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레닌으로부터 시작됐다.
우크라이나 하리코프 의대의 해부학자 블라디미르 비오로비요프와 모스크바 생화학전문가 보리스 즈바르스키 박사는 레닌의 시신보존이란 임무를 맡았다. 두사람은 레닌 시신의 수분을 단계적으로 특수한 발삼향액과 교체해 넣었다. 시신을 마치 살아있는 사람과 같이 말랑말랑한 상태, 즉 탄력성이 있도록 만든 것이다. 물론 세균이 시신을 부패시키지 못하도록 방부처리도 했다.
사상 초유의 레닌 시신이 공개됐을 때, 살아 있는 듯한 모습 때문에 ‘모형’이라는 설과 피부만 보존된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그러나 옛소련 당국에서는 사실여부를 확인해주지 않았다. 1991년 옛소련이 해체된 이후 레닌 묘의 내부가 공개되면서야 실물이 확인됐다.
레닌 이후 시신보존 방법으로 영구 보존된 사람은 8명인데 모두 공산국가의 지도자들인 것이 특징이다. 연도순으로 레닌(1924), 불가리아의 디미트로프(1949), 옛소련의 스탈린(1953), 옛체코슬로바키아의 고트발트(1953), 베트남의 호치민(1969), 중국의 마오쩌둥(1976), 앙골라의 네트(1979), 가이아나의 바남(1985), 그리고 김일성 주석(1994)이다. 이 중에서 김주석의 시신보존 방법은 레닌이나 마오쩌둥의 시신보존 방법과는 약간 다르다고 알려져 있다.
김주석의 시신을 보존한 방법
김주석의 시신보존 방법에 관해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선 시신을 발삼향액이 담긴 수조에 넣어 발삼향액이 삼투압에 의해 피부로 들어가게 한다. 그리고 뇌, 안구, 내장 등을 빼내고 반고체인 젤 상태의 발삼향액을 시신 내에 채워넣는다. 생체의 수분량과 같은 약 80%의 발삼향액이 시신에 들어간 다음에는 피부를 건조시킨다. 발삼향액이 새어나오지 않도록 가죽으로 노출된 부분을 제외하고 모두 감싼다. 얼굴에 화장을 시킨 후 옷을 입히면 작업이 끝난다. 시신은 항상 섭씨 16℃에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
시신보존이 어려운 것은 사망 직후의 보존 처리 작업으로 완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주 2회 방부제를 얼굴과 손 등 노출부분에 발라줘야 하며 1년 반이나 2년마다 한번씩 발삼향액 수조에 시신을 한달 가량 담가둬야 하는 것도 문제다. 더구나 이런 작업에 소요되는 경비도 만만치 않은데, 그 예로 옛소련이 몰락하고 러시아의 경제상태가 나빠지자 레닌의 시신을 매장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기도 했다. 현재까지 일반에 공개되고 있는 것은 레닌, 호치민, 김주석 등이고, 스탈린은 철거했고 마오쩌둥은 휴관 상태다.
인간 복제술이 발달한다면 먼 훗날에 이들이 다시 부활할 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있다. 앞으로 복제기술이 발달하면 단 한톨의 머리카락이나 세포만 있어도 복제인간이 탄생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실물 표본이 훼손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과거의 유명 인사들을 복제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시신이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므로 시신보존은 그만큼 죽은 사람의 인간복제가 가능한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복제된다고 하더라도 복제되는 사람은 원본의 기억과 마음을 갖지 못하므로 그들이 다시 활보한다는 것은 억설에 지나지 않는다.
새로운 삶을 꿈꾸는 냉동인간
1993년 개봉된 영화 ‘데몰리션맨’은 매우 현실적인 인간의 부활을 그렸다. 영화는 포악한 악당 피닉스와 거칠지만 정의로운 경찰 스파르탄이 대결해 결국 정의가 이긴다는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스토리다. 그러나 이 영화가 특별히 관심을 끈 것은 냉동인간을 심층적으로 다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인체의 냉동과 해동과정이 과학적 상상력을 총동원해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흥미를 갖고 있는 것은 냉동인간이 인간의 소망인 생명을 연장시키는데 현실적으로 기여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현재 불치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냉동인간이 돼 불치병 치료제가 개발된 수십년이나 수백년 뒤에 해동돼 다시 새로운 삶을 산다는 꿈같은 얘기가 과연 가능할까.
인류 최초로 냉동인간이 된 사람은 미국의 심리학자 제임스 베드포드 박사다. 그는 간암에 걸려 현대 의학으로는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자 스스로 냉동인간을 자원했다. 그는 사망하기 직전인 1967년 1월 12일 어는 현상을 방지하는 DMSO(디메틸설파옥사이드)를 녹여 만든 부동액으로 혈액을 바꾼 뒤 섭씨 영하 1백96℃의 액체질소가 채워진 알루미늄 용기에 넣어졌다. 베드포드 박사는 인류의 암 치료술에 큰 발전이 예상되는 2030년쯤 해동돼 전신에 퍼진 암 세포를 몰아내고 60년이 넘는 긴 겨울잠에서 깨어날 예정이다. 만화 영화로 유명한 월트 디즈니가 머리만 냉동시켰다는 설이 있으며, 현재 4백여명의 냉동인간이 미래에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해동돼 깨어날지는 미지수
냉동보관은 크게 다음과 같은 단계를 거친다. 신청자가 사망하자마자 서서히 체온을 끌어내려 30분 이내에 섭씨 영상 3℃ 이내가 되도록 한다. 그 다음에는 혈액 등 수분 제거 작업을 해 생리작용이 멈춰 생체 조직이 파괴되는 것을 막는데, 혈액을 인공혈액과 글리세롤로 대체해 어는 현상을 방지하는 작업을 한다. 그리고 곧바로 드라이아이스 등을 이용해 영하 79℃까지 급속 냉동시키는데, 그 이하로 냉동하면 세포 조직이 손상되기 때문에 영하 79℃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은 장기 보존을 위한 처리 과정으로 영하 1백96℃의 액체질소가 들어 차있는 알루미늄 통속에 옮겨놓은 후 해동될 시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한마디로 냉동인간이란 시신이 생체시간을 멈추고 세포가 노화되지 않은 채로 보존하는 것이다. 그러나 냉동인간의 꿈이 현실로 이어질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영원히 잠에서 깨어나지 못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저장법은 난자와 정자 등의 냉동보관법과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문제는 냉동정자의 복원율만 해도 완전치 않다는 점이다. 더구나 난자와 정자는 하나의 세포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냉동해도 얼음 결정이 잘 생기지 않는 이점이 있다. 세포가 파괴될 위험성이 그만큼 적다는 뜻이다. 그러나 인체는 60조개 이상의 세포로 이뤄져 있고 장기마다 저온에 견디는 정도가 다르므로 냉동인간이 정말로 완벽하게 해동될 수 있는지 미지수다. 인체 장기의 경우 신장은 현재의 기술로 2-3일은 보관할 수 있지만 심장은 겨우 몇시간 정도에 불과하다.
얼었다 다시 깨어난 아기
쥐와 개의 경우 4시간 30분 동안 냉동 상태에 있다가 아무 이상 없이 깨어난 연구 결과가 있다. 특히 2001년 2월말에 캐나다에서 13개월 된 아기가 기저귀만 찬 채로 엄마를 찾아 집밖으로 나갔다가 영하 24℃의 눈밭에서 동사한 사건이 있었다. 어린아이가 발견됐을 때는 산소부족으로 인한 뇌손상은 없었지만 심장이 멈춘 지 2시간이나 지났고, 체온이 16℃에 지나지 않았다. 의료진은 사망했다고 진단할 수밖에 없었는데, 담요를 덮어주자 놀랍게도 아기의 심장은 차츰 다시 뛰기 시작했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것이다. 이러한 예를 보아 냉동인간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인간의 복원 성공률은 100%가 보장돼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큰 어려움이 있다.
독일에서 의학적으로 엄격히 관리되는 조건에서 냉동돼 일단 사망상태가 됐다가 40분 후에 해동하는 실험이 실시된 적이 있다. 실험 결과 4명 중 3명은 살아났고 1명은 영영 깨어나지 못했다. 생존자 중 한명은 아무 것도 기억해내지 못했다. 나머지 2명은 러시아의 여성 과학자와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였는데 이들은 사후의 경험담을 얘기했으나 흥미롭게도 그 내용이 매우 달랐다. 프랑스 정신과 의사는 악몽을 이야기했다. 깨어난 후 엄청난 히스테리 증세를 보여 진정제를 투여해야만 했다. 이미 죽은 친척의 피묻은 해골이 자신을 터널 같은 데로 끌고 가려했다며 매우 혼란스러워 했다. 한편 러시아 여성학자는 아름답고 즐겁고 편안한 상태를 얘기했다. 이 여성도 친척들을 만났는데 매우 사랑스럽고 자신을 잘 돌봐주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40분이 아니라 40년 또는 4백년 후에도 깨어날 수 있을까.
설사 해동이 성공하더라도 또다른 문제점이 있다. 냉동상태에선 아무런 신체 변화도 없이 그대로 보존되기 때문에 냉동된 사람은 몇십년이 지나 해동될 때에도 냉동됐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다. 그러므로 냉동될 당시의 가족은 거의 죽거나 아주 늙어버린 다음이고 냉동 될 당시에는 태어나지도 않았던 손자나 증손자가 비슷한 나이로 만나게 될 것이다. 인류의 사고 방식 자체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올 수 있다는 얘기다. 냉동인간의 탄생이 인류에게 장점이 될지 단점이 될지는 아직 판명할 수 없다.
겨울잠을 자는 인간?
냉동인간의 한계 때문에 새로 연구되고 있는 분야는 겨울잠을 자는 동물의 생리구조를 인체에 적용하는 인공 동면법이다. 동면을 하는 동물은 여러 종류이지만 인간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것은 무늬다람쥐이다. 무늬다람쥐는 거의 1년에 1회 주기로 동면을 되풀이하는데 동면기간은 연평균 4-6개월이다. 동면하지 않는 시기에는 사람 몸과 같이 37℃ 정도의 높은 체온을 유지하지만 동면 시기에는 마치 변온동물처럼 체온을 낮춘다. 심지어는 5℃까지 체온을 변화시킬 수 있다.
무늬다람쥐의 동면이 특이한 점은 스스로 체온과 동면 리듬을 제어한다는 사실이다. 놀랍게도 무늬다람쥐는 1시간 정도 사이에 30℃를 넘는 온도차를 경험한다. 인간은 정상 체온(36.5℃)에서 1-2℃만 떨어져도 심하게 떨기 시작하고, 32.2℃엔 근육이 굳어지며 26.6-29.4℃에 이르면 의식 불명에 빠진다. 이보다 온도가 더 떨어져 20℃ 부근에서는 1-2시간만 지나도 기관이나 조직에 저온에 의한 장애가 일어난다.
학자들이 인간 동면을 주목하는 이유는 동면중에는 악성 종양의 활동이 억제되고, 세균 감염이나 방사선 장애가 일어나기 어려우며 혈액 흐름의 저하에 따른 뇌장애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등의 연구보고가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동면 기간동안 수명이 연장된다는 추측도 있다. 즉 동면 중에는 나이를 먹는 속도가 현저하게 늦어진다는 뜻이다. 실제로 무늬다람쥐의 수명이 거의 같은 크기의 설치류인 생쥐나 시궁쥐의 수명보다 4-5배에 해당하는 12년이나 된다.
지구에 인류가 태어난 이래 사망한 사람이 단 한명도 다시 되살아나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인간의 의도에 따라 시간을 이동하는 기술은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인간에게는 무엇보다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인간관계가 중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미라부터 동면인간까지 인간의 생명을 오래 유지하기 위한 염원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기도 하다. 인간의 생명을 담보로 한 과학기술은 연구대상이 바로 인간이므로 여러가지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지만 영원을 갈구하는 인간의 꿈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인간이 인간의 특권을 버릴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용어 정리
ㅣ 발삼향액ㅣ
발삼이란 천영수지 중 하나로 생물 방부제로 사용된다. 여기서 발삼향액이란 시신을 보관하는데 사용된 특수한 용액을 말하는데, 물과 알코올,글리세린, 아세트산 칼륨 등의 혼합물로 추정된다.
ㅣ삼투압ㅣ
삼투는 용매(용질을 녹여 용액을 만드는 액체)만 통과시키고 용질(용매에 녹아 있는 물질)을 통과시키지 못하는 반투막을 농도가 낮은 곳의 용매가 통과해 농도가 높은 쪽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와 같은 반투막을 사이에 두고 농도가 다른 두 용액 사이에서 생기는 압력이 삼투압이다.
농도가 낮은 쪽의 용매는 반투막을 통과해 농도가 높은 쪽으로 이동함으로써 평형을 이룬다. 따라서 농도가 높았던 쪽은 용매가 많아져 높이가 높아지고, 반면 농도가 낮은 쪽의 높이가 낮아진다. 이런 현상으로 인해 농도가 높았던 쪽은 용매가 많아져 막에 대한 압력이 높아지는데, 이 압력 차가 바로 삼투압이다.
2001년 5월 과학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