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후 인천 송내에 위치한 기능대회, 개도국 초청연수, 전문가파견의 요람인 글로벌 기술진흥센터 (GIFTS / 구 국제HRD센터)에서 35년만에 제자를 만났습니다,
출강을 위해 실험실습장에 들어서는 순간 어디서 본듯한 강사가 학생들을 열심히 지도하고 있었다,
휴식시간이 되어 드디어 그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선생님 35년만에 뵙습니다” “인천직훈때 제자 서XX입니다” 명함을 주며 설명을 한후에야 궁금증이 풀렸다,
너무 오랜세월이 흘러서일까 서먹서먹 하면서도 만감이 교차하고 교수, 박사, 회사경영자, “대한민국 명장”으로 성공한 제자를 가르쳤다는 보람과 함께 한편으로 제자가 스승을 능가한다는 후생가외(後生可畏)라는 말이 떠오르고...
이분야에서 열심히 하여 日就月長의 세월을 보낸 제자와 그저 35년간 교직계통에 몸담고 후학 양성으로만 보낸 나자신을 돌아봅니다 !
춥고 배고팟던 시절 70년대, 중화학공업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현재의 우리 선배님, 어르신 세대는 목숨을 걸고 전쟁터 월남으로, 서독광부로, 간호사로, 중동으로… 모두가 가난을 벗어나고자 노력할 때였다,
나와 제자는 가난한 직업훈련교사와 배고프고 아무것도 없는 훈련생으로 그야말로 기숙사는 고사하고 식당조차 없어 인천 주안6 공단 허허벌판 지대에서 당시에는 점심조차 밥먹듯이 굶던 시절이었다, (박대통령 지시로 기숙사와 식당건립)
성공을 축하한다는 말에 “선생님 지도 덕분으로 바탕을 이루어 이분야에서 현재 까지 이자리에 서게됐습니다” 제자의 겸손한 말에 고난을 이겨냈을 그의 세월이 자꾸 클로즈 엎 되어온다,
이제는 사제간에 함께 늙어가는 셈으로 잘나가는 제자일수록 점점 소식이 끊어 지는 세태속에서 반듯하게 성장한 제자를 통해 불현듯 한가지 생각이 난다,
당시 훈련원 정문 앞에 커다란 바위에 우뚝 새겨져 있는 “선 인간, 후 기능”을 보며 꿈과 희망을 갖고 기술습득 이전에 참된 인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 배는고파도 정신이 고파서는 안된다" 고 어렵고 척박했던 기술기능분야에서 필요한 끈기와 강인한 정신력을 키워준 탓일까 " !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대성한 제자가 자랑 스럽다,
교재하나 변변히 없어서 헌책방을 뒤지고 등사기로 작업지도서를 만들던, 기름때 묻은 실습복에 기계소음을 벗삼아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던 그때 그시절, “제자는 교사가 만든 인생의 작품” 이라는데 그때 더 잘 가르치고 사랑으로 대해주었을 것을 하는 悔恨속에 남은 삶에서 더 생활에 충실해야 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스승은 제자의 거울” 이듯이 옛날 학생들에게 지도했던 대로 흡사하게 기술분야의 최고 반열에 우뚝 선 서 명장(제자)이 학생들에게 전공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기본자세와 안전을 강조하는 오늘의 모습속에서 35년전의 나를 보는듯한 착각속에 빠져든다,
풍요속에 각박하게 돌아가는 현재의 삶의 여정속에서 70년대 공업한국의 일익을 담당하였다는 자부심과 함께 전공뿐 아니라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제자를 통해 한줄기 밝은 빛처럼 값진 교훈을 배웠습니다.
< 산업의 역군 / 진정한 애국자 ! >
소개: 대한민국 ‘명장’ 반열에 오른 서 대표(57세)는 산업포장 수상의 영예까지 누리게 됐다. 대형 상용트럭 운전석 개ㆍ폐 유압실린더와 초음파 금속용착 툴(=TOOL: Horn/Anvil) 국산화 개발 성공으로 수입가격 대비 300% 이상 원가 절감 수입 대체효과와 이차전지 제조 산업분야에서 연간 3000억원 이상의 생산유발효과에 기여, 광천중학교를 나와 1977년 인천직업훈련원 기계과에 입학하면서 대한민국 최고의 기능인을 목표로 지금껏 기술과 기능연마에 매진, 부평 법일정밀대표, 최근 컴퓨터, IT, CNC등 으로만 관심, 제조업의 근간인 기계분야 기피, 외국인 대체 안타까움, 훈련원 설립하여 후학 양성이 꿈..(한경인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