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장(臨契長)은 누구입니까?
허 열 웅
“어이, 경비 너 이 새끼, 주민들 피 같은 돈 들어가는 공동 수돗물 펑펑 써? 당장 잘라야할 놈이네. 그 수돗물 값은 네 월급에서 까게 해주마, 오늘 아주 제대로 걸렸어,”음식 쓰레기통을 씻다가 경비원 조경진씨가 아파트 젊은 주민한테 당한 갑질이다. 그는 자녀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로스쿨에서 들어가기 위해 과외수업을 받느라 많은 비용이 소요되어 조금이라도 벌어야하기에 때문에 선택한 직업이었다.
임계장이란“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줄임말이다. 비슷한 말로 ‘고다자’란 말도 있다고 한다. 풀이하면 고르기 쉽고, 다루기 편하고, 자르기 쉽다는 의미의 직업군이다. 지난 5월 10일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원이 ‘억울하다’는 유서를 남긴 채 자신의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졌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이중二重 주차된 차량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유 때문이라고 한다.
주민 A씨가 자기 차를 건드렸다는 이유로 경비원에게 욕설을 하면서 폭력을 휘두른 것이다. 경비원은 코뼈가 부러지는 등 심한 부상을 입고 사망 두 시간 전 가족에게 전화해 ‘불안해서 못 견디겠다“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이 보도되자 온라인에서는 A씨 처벌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A씨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글이 3십 만 건이 넘게 올라왔다고 한다. 그는 구속영장이 발급되어 현재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다.
‘임계장’이란 제목으로 책을 쓴 조성진 씨는 지방 소도시에 살며 공기업 사무직으로 38년 간 근무를 한 사람이다. 퇴직 후 아파트경비원, 빌딩청소부등을 전전하며 노동을 하며 겪은 이야기다.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궂은일을 도맡아 묵묵히 열심히 일하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처우는 너무 얄팍하고 차갑다. 가장 가슴 아픈 건 임계장을 괴롭히는 대다수가 젊은 층이라는 점이다.
2012년에 상영되었던 영화[은교]에서 주인공 노교수가 제자에게 하던 명대사가 있다.“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영원할 것 같던 젊음도 빙판 위를 달리는 스케이트 날처럼 빨리지나가고 어느 날 퇴색한 낙엽 같은 노쇠가 너희들에게도 퀵,서비스로 도착할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조사에 의하면 임계장을 함부로 대하거나 괴롭히는 것은 다수가 젊은 층이라는 것이다. 아직 60~70대가 되려면 멀었다고 생각하며, 당신들처럼 가난하고 무기력하게 늙지 않겠노라고 과신하며 현재를 흥청망청 보내는 부류라고 한다. 그들이 무심코 내뱉는 한 마디, 행동 하나에 임계장들은 가슴에 큰 상처를 입는다고 한다. 젊거나 장년이 된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들이 오늘 날 임계장이라고 부르는 세대들이 지난 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피땀 흘려 조국의 근대화를 앞당긴 덕에 오늘 풍요를 누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내 절친한 친구 두 명도 현재 아파트경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한 사람은 공기업 과장으로 정년퇴직을 하고 시민단체에서 일하다가 취업하여 열정적으로 계속하고 있다. 내가 농담으로 그 나이면 잘릴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40여명의 경비원 중에서 자기 나이가 제일 많기에 더 열심히 모범적으로 일하기 때문에 아직 붙어있다고 했다. 그는 노후생활자금에 도움도주지만 일하고 싶다는 의욕이라며 힘이 닿고 그만두라고 할 때까지 근무할 것이라며 의지를 다졌다.
또 한 사람은 아내가 빚보증을 잘 못서 많은 부채 때문에 근무하는 친구다. 그는 대학시절 ROTC 훈련을 받아 장교로 임관되어 제대를 하여 대기업에 근무하다 퇴직을 했다. 고등학교시절에는 밴드부에서 트럼펫을 멋들어지게 불던 친구다. 많은 경비원 중에 자기도 아파트에 거주하며 관리비를 내고 현재 근무하고 있는 입주민과 똑 같은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노인 노동자는 45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노동자 중에서 임계장은 우리 부모, 형제의 이름일 수도 있고 너와 나의 은퇴 후의 삶일 수도 있다. 노후준비가 덜 되었거나, 누구는 집에서 놀기가 무료해 일자리를 구했으리라, 청년실업은 늘어나고 있지만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바람에 누군가가 해야 할 어려운 일을 하는 이들에게 위로하고 격려해주어도 모자랄 판에 갑 질을 해서는 안 된다.
임계장 이야기를 책으로 낸 조성진씨 말차처럼 아파트주민은 좋은 사람 소수와 무관심한 다수, 나쁜 사람 극소수, 이렇게 세 유형이 있다고 한다. 극소수 나쁜 사람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만 무관심한 사람들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누구나 평등한 세상을 원하지만 자본주의와 자유주의가 제대로 된 기능이 발휘하지 못한 이기주의 사회에선 새로운 카스트(Caste)제도가 형성될 수 있다고 본다.
아메리카 남미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여자 버스기사가 운전하는 차가 한적한 시골 길을 가는 중에 한 남자가 탔다. 그는 갑자기 무뢰한으로 변해 여자 운전기사를 희롱하고 성폭행까지 감행했다. 20명이 넘는 승객들 중 누구 하나 제지하려들거나 맞서려하지 않고 못 본체했다. 다만 허약하게 생긴 청년 한 사람이 말리다가 그에게 얻어맞고 나뒹굴었다. 온 몸이 만신창이 된 운전기사가 운전대를 다시 잡으며 쓰러진 청년에게 화를 내며 내리라고 소리쳤다. 자기를 도우려한 사람이기에 모두들 어리둥절한 중에 청년은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가 내리자 차를 몰고 가파른 길을 올라가 계곡으로 돌진하여 운전사는 물론 범인과 탑승객 전부가 사망한 사건이었다.
20여 명이 넘는 경비원이 근무하는 아파트에 살고 있다. 사람들 간에 인사란 먼저 본 사람이 하는 게 당연하기에 내가 먼저 다정한 목소리로‘안녕하세요’로 인사를 한다. 쓰레기를 버리려갈 때 경비원이 분리수거를 도와줄 때 ‘수고하십니다’로도 격려를 한다. 그럴 때 마다 밝은 표정과 맑은 목소리로 답례가 온다. 악惡이 이기는 유일한 조건은 선한 사람들이 못 본체하며 아무 행동도 안 할 때가 아닐까?
첫댓글 그저 가슴이 저릴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