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여행, 소망의 집을 다녀오다.”
기 간 : 2008.12.22 (월) ~ 29 (월)
12/22(월)
전국 강추위. 서울 아침 영하 9도. 추워진 새벽 날씨지만 코피온을 통해 봉사활동을 나간 자녀 딸을 만나러 가는 설레임에 추위도 잊은 채 미지의 땅. 네팔로 가기 위해 예약한 콜밴으로 이른 아침 6시 30분 안산 집을 떠나 인천국제공항으로 이동했다. 출국수속 중 대한항공으로 네팔행 카트만두 이용 승객은 빨리 수속을 하라는 안내 방송 출국장 앞으로 나가서 9시 30분에 인천 국제공항을 출국하여 6시간 비행 속에 기내방송 네팔 카트만두 공항이 다가온다는 방송을 들였다. 구름 속에 히말라야의 설산의 장관이 비행기 창밖에 펼쳐지고 있었다.
산기슭에는 계단식 논과 밭 그리고 허름한 주택들이 보였다.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만난 다문화가정의 네팔출신 이소리씨. 경남 거창군 결혼 이민자 가족 지원 센터(YMCA)소속 두 아이엄마의 도움으로 네팔공항에서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네팔 공항 앞인데도 초라한 도시. 오래된 차량들, 낡은 버스, 소형차량들 등의 무질서 속에 분주하게 오가는 차량. 우리의 짐을 차량 지붕위에 싣고서 줄도 매지 않고서 거리를 달린다.
네팔 카투만두 소망의 집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다.
마침 도착한 날이 2008년 재 네팔 한인회 송년회가 열리고 있어서 참석. 밤 늦은 시간까지 진행되었다. 네팔 이곳을 방문 찾아온 우리 일행을 환영하듯이 말이다. 한인 송년회 장소는 카트만두의 Yak & Yeti 호텔로 그날 행사장에서는 네팔 대사님의 인사와 장기자랑 게임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었다. 하나님은 참으로 공평 하시다. 우리 가족일행은 모처럼 부녀간의 즐거운 만남과 식사를 함께하는 즐겁고 기쁜 시간이었다. 송두리와 함께 우리 일행을 마중 나온 은혜 학생에게는 미안 했었다. 그러나 행운권 추첨에서 고국 귀국 여행 왕복 대한항공권 행운이 그 은혜 대학생에게 안겨졌다.
호텔에서 부페식에 김밥, 양고기 등의 식사가 다양하게 나왔는데 그런 한국식사들을 모처럼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첫날이 지나갔다.
12/23(화)
닭 울음소리가 네팔 카트만두의 소망의 집 게스트 하우스의 아침을 알려주었다. 아침식사를 맞이하며 드린 식탁 기도는 “감사합니다.” 목이 메여서 주신 식사에 감사합니다, 네팔까지 무사히 오게 하심을 감사기도 드렸다. 예약한 차량으로 치투완 소망의 집으로 향했다.
거리를 지나면서 허름한 주택에서 살고 있는 네팔사람들의 모습에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여자 머리에 둘러 쓴 보자기 천, 얼굴 이마에 붉은 칠, 열악한 생활환경, 궁핍한 삶 등. 산길 따라 구불구불한 도로, 좁은 길, 열악한 도로 사정, 도로 교통판도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은 시설. 빵빵 경적소리는“추월한다, 내가 간다, 알았다”라는 뜻. 먼지와 매연, ‘뭐! 이런 곳이 있나.’ 하고 생각했다.
교통사고가 나서 길이 막혔다. 길가의 도로 휴게소와 과일가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6시간이 지나서 이렇게 해서 도착한 곳이 나라안 가드 달빛학교 소망의집(제1)였다. 이곳에서 차편으로 1시간 떨어진 곳에 치투완 소망의 집(제2)이 있었다.
12/24(수)
새벽기도회 /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마 7 : 12 ~ 20)
자기와 싸움에서 승리하기를 바람의 말씀
이곳 전기사정이 않 좋아. 예고 없는정전, 전기 들어오는 시간보다 전기 나가는 시간이 더 많음
새벽말씀, 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4시 30분에 기상하여 새벽을 맞이하는 소망이들. 인정이 그리운 아이들. 자기를 알아주고 사랑을 주는 우리 일행에게 착착 안기고 손을 잡고, 옷깃에 착착 붙는 어린이들, 소망이들!
오늘은 돼지를 잡는다고 한다. 소망이들이 모여서 함께 담장을 쌓는 벽돌을 나르고 돌맹이들로 기초를 쌓는 공사일을 도와 함께 했다. 오전에는 돌을 나르고 함께 일을 하였다.
네팔 소망의 집에서 맞이하는 성탄절은 뜻 깊은 시간이었다. 소망이들이 무대에서 자신 있게 당당하게 말하는 자세나 찬양하는 고운 목소리, 남자아이들의 성탄노래. 애들은 애들인가 보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리가 어수선했다. 계속 진행되고, 여자 아이들의 패션쇼. 입장하는 어린이들을 보고서 환호하는 소망이들. 출연자들의 여러 복장에 마지막까지 환호성이다. 시간이 자나갈수록 흥미로웠다. 소망의 집이 네팔에서 희망의 집이 되기를 기원한다.
외국 네팔에서의 성탄절 새벽송. 5~10명씩 나이별로 우리숙소를 찾아와 노래도 부르고 춤도 췄다. 준비된 선물이 없어서 네팔 돈으로 한 명당 5루피 정도씩 주었다. 나의 어릴 적 중,고등학생 시절을 떠올리게 하였다.
12/25(목)
안개 낀 성탄의 아침을 맞이하다. 고요한 새벽. 아침 새벽기도 시간을 알리는 차임벨 소리가 들렸다. 아침 기도회에 선교사님의 말씀과 찬양, 기도를 드렸다. 소망이 어린이들의 식사모습은 맛있게 먹는데 식사량도 많아 보였다. 고학년인 중고생들이 배식을 돕고 나서 먹는다. 취사장에 가보니 나무를 때 밭을 짓는 부엌 이었다. 너무 오래되어서 보수를 해야 하는데 이곳에는 기술이 없어 걱정이라고 선교사님 사모님이 말씀 하였다. 이곳 나무는 벽돌공장 화목으로도 쓰여서 가격도 오르고 귀해지고 있어서 앞으로가 문제라고 한다.
성탄절 예배준비를 하고서 교회에 모였다. 네팔어로 찬양 하다가 한국어로 사랑 합니다 나의 예수님을 소망이들과 찬양을 드렸다.
중식 후에 코끼리 사파리를 하였다. MACHAN 주인사장과 만나서 애기를 하나가 나이가 같아서 친구를 하기로 했다. 그 친구의 이름은 Sarad Shresta이다. 1시간 30분 동안 하는 도중에 물속에서 코뿔소를 보았다, 코끼리 등위에 앉은 우리 가족 3명은 함께 모처럼 좋은 시간을 보냈다.
네팔 지역 물은 석회질 성분이 많아 정수한 물을 먹는다고 했다.
네팔의 자연, 밤하늘의 별자리가 뚜렷한 모습, 자연의 소리, 반딧불의 불빛, 여우 울음소리, 새소리 등. 하늘 아래 첫 동네 히말라야 산 밑 네팔 치투완 교회 벽에 쓰여진 문구 “Joy to the world, The Lord is come!”
(온 세상이여 주 예수 오심을 기뻐하라.)
예수님이 세상에 왜 오셨을까?
①사탄을 멸하러 오셨고,
②우리를 섬기러 오셨다.
남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도 예수님께 하는 것처럼 하기를 바라며 네팔을 구원하소서.
네팔 치투완 이 지역 사람들이 예수를 알게 하소서. 예수 오심을 감사. 뜻 깊은 성탄 예배가 되기를 기도 하면서 성탄 예배를 마치다.
이곳 네팔 소망의 집의 환경과 여건이 열악 하지만 잘 적응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송두리가 아빠로써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부모로써 감사하다.
12/26(금)
새벽기도회. 정전으로 어둠속에서 진행했다. (제 1) 소망의 집에 아쉬움을 남긴 채 나라안 가드에 있는 달빛 학교로 이동. 제 2 소망의 집 식구들과 인사 후 포카라로 이동 했다. 4시간이 걸리고 호텔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다. 포카라의 거리에서 대학생들이 거리 행진 시위를 하고 있었다. 예수그리스도를 찬양하기 보다는 “가라, 밑으로, 떨어져라”라고 외치는 거라고 들었다. 포카라 시내 투어로 산악박물관을 들렀다. 2004년 일본인들이 건축 했다고 한다. 이어서 땅 쏙으로 떨어지는 데이비스 폴(Davi's Fall)이라는 폭포를 갔다. 전에 데이빗 이라는 여자가 떨어져 죽어서 데이비스 폴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 다음 포카라 시내에서 우리나라의 PC방과 비슷한 인터넷 방에 가서 컴퓨터로 통신을 보내며 모처럼 문명의 시간을 보냈다. 그 후 숙소에서 TV로 한국 아리랑 프로도 시청 했다.
네팔인 들이 늙어 보이는 이유는 석회질 정분이 많은 물과 태양에 노출되어 그을린 피부 대문이라고 한다. 정전이 잦다는 것을 호텔 방에 놓인 촛대에서 알아볼 수 있었다.
12/27(토)
아침 기상하여 호텔 옥상에서 해 뜨는 모습과 히말리야 안나푸르나 봉을 바라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5분도 안돼서 구름이 산 봉오리를 가렸다. 힘들여서 전망이 좋은 곳으로 가도 변화무쌍한 날씨 때문에 안나푸루나봉 산 보기가 허탕치기 일수라고 한다.
옛 왕의 별장이 옆에 있는 혜화호수의 선착장에서 보트를 타고서 호수를 둘러보았다.
설산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호수 한 가운데에 있는 섬에 있는 힌두 사원도 구경하였다. 그 후 티벳 난민촌을 가기 위해 걸어갔다. 그러던 도중에 네팔 현지인 교회를 발견하여 그곳에서 함께 예배를 드렸다. 네팔은 토요일이 휴일로 포카라 사람 10여명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브로부 ~ 주여! 할렐루야! 간절한 목소리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소리가 울렸다.
다시 티벳 난민촌을 찾아가는 길에 길가에서 과일을 샀다. 그후 어린이가 우리 일행을 따라 오며 오렌지~ 오렌지~ 하며 우리 뒤를 계속 따라 온다. 나도 어릴 적에 군자면 새미에 있는 미군부대 군인들한테 쵸콜렛 기브미~ 하며 뒷따라 다리던 생각이 났다.
12/28(일)
포커라 휴양도시에서 7시간 걸려 네팔 수도 카트만두로 이동했다. 그리고 한국인이 경영하는 식당을 찾아서 그곳에서 한식으로 밥을 먹고 짐을 맡긴 후 카투만두 시내구경을 하고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와 쉬었다.
12/29(월)
카트만두 시내에 있는 사원의 화장터를 방문하여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것을 보았다. 사원 옆 강가에서 화장하는 모습은 장작더미에 태워서 타고 남은 유골과 재를 강으로 쓸어내는 방법이었다. 그 주변에는 먹을 것을 찾아 다니는 원숭이 떼들과 강가 물속에서 동전을 줍는 어린이들이 있었다. 유골과 재가 강물을 따라 인도 갠지스 강을 따라 흘러가는 모습을 보면서 윤회사상 등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네팔 공항에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무거운 발걸음을 겨우 옮겼다. 네팔에서 2월까지가 코피온 대학생 봉사기간인 송두리를 가방에 넣어서 한국으로 데려오고 싶은 심정으로 귀국하였다. -끝-
첫댓글 두리가 화물칸에 실려올뻔 했다....ㅋㅋㅋ 장로님 어제 재미있게 말씀 잘 하셨어요... 부뜨막 수리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