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프로 스포츠 세계에서 ‘노장’이라는 말에 익숙하다. 그런데 ‘노장’이라는 단어의 본 뜻은 무엇일까? 단순히 사전적 개념에 따라 ‘노년과 장년을 이르는 말’ 쯤으로 여긴다면 큰 착오다. 팬들은 흔히 ‘노장’이라고 하면 이미 전성기를 지나 은퇴에 다다르고 있는 시점, 혹은 기력이 쇠약해진 선수쯤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축구계 ‘노장’의 투혼은 언제 봐도 감동적이다. 2006 독일월드컵에서 보여준 프랑스 대표팀 ‘주장’ 지네딘 지단의 노장 파워는 물론이고, 대한민국 대표팀의 큰 형이었던 수비수 최진철의 붕대 투혼도 그렇다. ‘노장’은 늙은 장수이기도 하지만 싸움의 경험이 많아 군사에 밝은 장수, 노련한 사람을 일컫는다.
K-리그에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수많은 노장 투혼이 숨쉬고 있는 인생의 무대이다.
이번 핫 피플의 주인공은 나이로는 ‘노장’이라고 의식할 수 있지만, 이제 축구의 본 내음을 알고 젊은 피를 압도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다리를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2006 K-리그 챔피언을 이끌었던 성남 일화의 ‘남기일’이 주인공이다.
2007년 2월 2일. 성남 일화 천마의 선수단 숙소에서 남기일 선수를 만날 수 있었다. 이 날 광양 전지훈련을 마치고 올라온 터라 피곤한 기색이었지만 반가운 미소로 필자를 맞아주었다.
<C> 김용일
영광과 환희의 2006 시즌, 그리고 자신
- 비 시즌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한 해가 지나고 새로운 한 해가 오니까 개인적으로 적은 나이가 아닌 만큼 체력적으로 젊은 선수들보다 더 뛰어나지는 못하더라도 경쟁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새로운 선수들이 들어온 만큼 호흡을 맞추는 것에 주력했고요. 오늘 광양 전지훈련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 지난 시즌 챔피언 등극에 감회가 남달랐을 텐데요.
선수로서 팀을 이적해왔는데 성남 팬들이 너무 환대해주셔서 감사드리고, 저희들도 운동장에 나가서 천마불사를 비롯한 성남 팬들과 함께 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단순히 팬과 선수와의 관계가 아니라 동료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사실 10년 만에 처음 해 본 우승이었고 비록 경기에 출전을 못해서 마음은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고 뭉클한 심정이었습니다.
지난 시즌 성남의 챔피언 등극은 남기일에게는 특별하다. 프로 선수 생활 중 생애 첫 우승컵을 거머쥐게 된 것이었다.
프로 생활의 절반을 넘게 보낸 과거 부천 SK와 1년의 짧은 시간을 보낸 전남 시절을 뒤로 한 채 성남으로의 또 다른 도전은 그를 사랑하는 팬들이 그의 향후 행보에 대한 우려도 갖게 하였다. 그렇지만 보기 좋게 우승 트로피로 보답하였다.
- 올 해는 정규리그, A3, AFC 챔피언스리그, 피스컵 등 대회가 많은데요.
개인적으로 노장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감독님께서는 올 시즌에 후반 조커로 많이 사용하실 것 같아요.
팀이 어렵게 가고 있을 때 교체로 들어가서 결정적인 역할을 해준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지금까지 중요한 상황에서 골을 많이 넣었는데, 기억에 남는 골이 있다면요?
작년 시즌에 전기리그 1위를 할 때 경남 FC와의 경기였어요. 당시 경기에 못나가다가 출전을 해서 결승골을 넣어 팀이 6연승을 달렸어요. 항상 준비를 하고 있었고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행운이 찾아 온 것 같습니다.
- 유난히 ‘수중전에 강하다’라는 말을 많이 들으시는데요?
너무 많이 들었어요(웃음). 운동장에서 다른 기자들에게도 말을 하는데요. 개인적으로 운동장에 물이 있는 것을 좋아해요. 오히려 플레이를 하기가 더 쉽더라고요. 그러면서 결승골도 많이 넣었지만 왜 그런 수식어가 나왔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웃음)
- 좌우명은 ‘맑은 하늘을 보면서 살자’라고 하던데요?
어느 시점에서 어떤 분이 하루에 하늘을 몇 번 보고 살고 있냐고 물어보셨어요.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까 그 순간 여유가 없이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어느 날 맑은 하늘을 보는데 마음도 맑아지는 것 같았어요. 결국 하늘처럼 맑게 살자고 늘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죠. 운동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사실 맑은 하늘을 보면서 산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일까? 세상이 1차적 사회, 2차적 사회로 거듭 변하면서 어느 덧 풍요로워지고 '삶의 질'을 논하는 시대라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수많은 눈꺼풀이 존재한다.
프로 선수의 삶도 영광과 환희가 존재하지만 그 만큼의 고통과 눈물도 교차하는 아이러니 하면서도 드라마틱한 삶이 아닌가. 그 속에서 남기일의 마음속에서는 맑은 하늘처럼 항상 푸른 꿈을 꾸며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자세가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축구의 인연, 그리고 프로 행까지
- 전남 순천 출신이신데, 축구를 어떻게 시작하신 거죠?
사실 초등학교 당시 육상부에서 높이뛰기를 했었어요. (아, 잘하셨나 봐요?) 그런데 예선 통과는 못해봤어요(웃음). 그런데 축구를 유난히 좋아했고, 4학년 때부터 감독 선생님이 권유를 하셔서 시작을 하게 되었죠. 어렸을 때는 스피드가 장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워낙 빠른 선수들이 많아서 아니더군요.
그러면서 북성중학교와 금호고등학교에 진학을 했고, 고등학교 때 감독님이 가장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절 믿고 계속 키워주셨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요즘에도 연락을 자주 드리고 만나 뵙고 있어요.
- 학창 시절에도 공격수였나요?
당시에는 미드필드였어요. 프로 데뷔도 미드필드에서 시작을 했는데, 개인적으로 성남 일화에서 감독님이 원하는 측면 공격수도 마음에 들지만 미드필드가 본래의 포지션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체력적인 면에서는 과거와 다른 부분이 있겠죠.
- 중, 고등학교 시절 대통령배에 대한 추억이 있다면요?
사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에 4강에 진출한 것 이후로는 큰 성과가 없었죠. 한 가지 숨은 이야기라면 현재 동료 선수들이 말을 해요.
소위 한국에 성남 일화 정도 되는 클럽에는 뛰는 선수들은 대표 경력도 많고 한데, 제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형이 그런 상황에서도 베테랑으로서 좋은 팀에서 11년 동안 활약하는 것이 더 대단한 것 아니냐”하면서 농담으로 이야기를 해요.
사실 대표팀은 할 수도 있었지만 운도 따르지 않은 부분도 있고, 실력적으로 부족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죠. 지금도 아쉬운 생각이 들고 있는데 무엇보다 은퇴를 하면 조금 더 그럴 것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프로에서는 성실한 자세로 11년간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 97년에 부천에서 첫 프로 생활을 시작했는데요.
당시 드래프트 3순위로 입단을 했죠. 그런데 드래프트 전에 당시 모 감독님께서 무조건 드래프트 1순위로 입단할 것 같다고 말씀을 하셨어요. 사실 당시 은행 팀이 유행이었고, 평생직장으로써 가치도 있다고 해서 가닥을 잡았었는데, 권유를 듣고 프로 행을 결정한 것이었어요. 그런데 3순위로 되어서 실망을 했죠. 하지만 결론적으로 부천으로 간 것은 큰 행운이었어요. 그곳에는 니폼니쉬 감독님이 계셨는데 지금도 너무나 감사한 부분이 많아요.
그 분은 성적 위주가 아닌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해 주세요. 축구를 배워온 것에서 많은 것이 바뀐 시점이었죠. 훈련하는 것이나 전술적인 것. 정말 그 분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어요. 지금도 가끔 뵐 수 있다면 아직까지 가르쳐주시려고 하세요.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가……. 정말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 오랜 시간 부천에서 함께 했는데요.
지금도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다시 돌아갈 순 없지만 혼자서 생각을 합니다. 고향 같은 곳이고 많이 성장을 했죠. 어떻게 보면 좋은 성적을 못낸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합니다. 정말 기회가 된다면 당시 선수들이 모여서 운동을 해보고 싶기도 해요.
친했던 선수들과 상대편으로 만난 다는 것이 사실 어렵거든요. 이상하게 마음 한 구석이 좋지 않을 때도 있었죠. 그렇지만 프로이기에 받아들여야 할 부분입니다.
프로 선수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여 소속팀에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야 하는 중책을 갖고 있지만, 이 땅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인간의 미묘한 정이 싹트듯 친정팀과 그 식구들과 만난 자리는 어지간히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라고 시인한다. 그러면서 남기일은 실제로 제주유나이티드(전 부천SK)와 만난 경기에서는 유난히 쉬운 상황에서도 득점이 잘 되지 않았다면서 웃음 짓곤 한다.
- 2003 시즌에 전남으로 이적을 했는데요.
당시 이회택 감독님이 물러나시면서 몇 번 만나 뵙게 되었는데 전남이 널 필요로 하니까 와주었으면 한다고 말씀을 하셨어요. 그러면서 한 시즌을 뛰면서 플레이오프에도 진출은 했는데 허정무 감독님이 부임하시면서 제 플레이 스타일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러면서 성남 일화에서 감학범 감독님이 저를 추천하셨고, 트레이드를 성사시키셨죠.
프로 11년차, 축구 속에 나 있다.
- 부천 시절 ‘세레모니’ 사건이 있었는데요.
제 고향이 전남인데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잘못한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 이후로 구단에 사과 글도 올리고 팬들도 직접 만났는데요. 그거로는 부족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전남 팬들이 야유를 많이 하더라고요. 그런 행동이 왜 나왔을까 하는 마음고생을 정말 많이 했었습니다. 사실 이런 얘기 나올 때마다 힘들게 느껴지고 있어요.
2003 시즌은 남기일에게는 가슴 아픈 기억이 도사리고 있다. 바로 9월 21일 전남 드래곤즈와의 경기에서 2-3으로 뒤져있는 상황에서 후반 종료직전 극적인 헤딩 동점골을 터트렸다. 그러나 그 이후 전남 서포터즈들을 향해 자극적인 골 세레모니를 펼쳐 그 이후의 폭력사태로 이어지고 말았다. 결국 퇴장 명령을 받았지만, 사태가 심각하게 이어져 자필로 직접 전남 서포터즈와 구단에게 사과글을 작성하고 방문을 하기도 하였다.
일부에서는 선수로서 경기 도중 다소 감정이 격해진 상태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시선도 있었지만, 프로 선수답지 못한 비신사적인 모습이었다고 비판하며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것이 사람이었다고 했을까. 남기일의 기억 속에는 지우고 싶은 순간의 일화였을지 모르지만, 오히려 그것이 프로 선수 남기일의 삶 속의 베풀어야 할 짐을 주었고, 현명하게 풀어가는 시간을 준 것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의 말속에는 은퇴까지도 후회할 수 있는 추억, 그리고 항상 '미안함'이라는 세 글자를 가슴에 띄고 축구를 해왔지만, 자신의 진정어린 플레이를 보여주려 했다는 것에는 확신에 차 있었다. 이러한 모습에 팬들의 자그마한 용서의 목소리는 언제나 힘이 된다고 한다.
- 2005 시즌 FC 서울과의 경기에서 생애 첫 해트트릭을 기록했는데요.
그 당시에는 몸 컨디션이 좋았던 것 같아요. 한 가지 기억에 남는 점은 전날 어머니께서 올라오셨어요. 몸이 편찮으셔서 병원에 가셨거든요. 그리고 경기 당일에 직접 관전하러 오셨는데 해트트릭 하는 모습을 보시고 거짓말처럼 그 날 이후로 몸이 좋아지셔서 고향으로 가셨어요. 신기한 일이죠. 그 전에도 한, 두골씩 넣었지만 해트트릭은 처음이었거든요.
- 올해로 K리그 11년차인데, 베테랑으로서 과거와 현재를 본다면.
개인적으로 2002년 월드컵 개최 전에는 프로 축구가 그렇게 일반인들에게 이미지가 좋지 않았어요. 그 이후로 스타 선수들이 배출되면서 실력도 월등하게 유럽 선수 못지않게 좋아졌고, 저 또한 노력했죠.
요즘 어린 선수들을 보면 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이렇게 실력이 좋은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나 어릴 때는 저렇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 흐뭇하지만 경쟁의식도 느끼게 되더라고요. 팀 내에서도 김두현 선수나 최성국 선수 등 젊은 선수들이 각자 잘하는 부분이 있어요. 좋은 점은 배우려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 팀 내에서 어떤 선수의 장점이 돋보이던가요?
개인적으로는 모따 선수를 좋아해요. 전남시절부터 함께 해왔는데, 골 결정력, 드리블 모두 좋지만 특히 팀플레이 위주로 하려고 해요. 욕심내지 않고 찬스를 잘 만들어주고, 팀을 위해서 플레이 하는 선수이기 때문에 실력뿐만 아니라 여러 면에서 훌륭하죠.
(감독님은 어떠세요?) 방에서 나오시질 않으세요. 들어가 보면 엄청난 종이에 많은 것을 적고 계시고, 비디오 분석을 하시면서 항상 고심을 하시는 모습이죠. 공부하는 감독님이세요.
- 가족들은 어떻게 되세요?
집에 있는 아내가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항상 ‘사랑하는 아내’와 딸 경민이가 있다고 말을 하라고 해요(웃음). 딸은 올해로 29개월째가 되었어요. 한참 귀여울 때고 말을 조금씩 배워갈 때라 보면 볼수록 힘이 나고 행복합니다.
반면에 아내에게는 항상 미안해요. 훈련을 나가서 시간도 많지 않고, 혼자 딸을 키우느라 고생이 많죠. 잘해주려고 하지만 사랑은 부족한 것 같아요. 힘들때, 경기를 항상 잘 할 수만은 없기 때문에 아내는 옆에서 자신감도 주고, 격려도 많이 해주죠.
- 프로 선수들에게 아내의 힘이 클 것 같은데요.
어린 선수들에게 얘기를 해줘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결혼을 빨리 하는 것도 좋다고. 개인적으로 도움이 많이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 예전에는 부모님이 늦게 결혼하라고 했지만 결혼을 해보니까 안정되는 부분도 있고 장점이 많았어요.
특히 요즘에는 고액연봉을 받는 선수들이 많아서 미래를 위해서라도 결혼을 빨리 하고, 은퇴 후에도 자리를 잡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 어렸을 적 좋아했던 선수가 있나요?
아르헨티나 출신의 레돈도 선수를 좋아했어요. 특히 바르셀로나 시절을 많이 지켜봤는데, 미드필드를 봤었는데 저렇게 플레이를 하고 싶다고 생각을 많이 했어요. 환상적인 모습이 기억에 남죠.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선수를 하면서는 이임생 선수를 좋아했어요. 같은 팀에도 있었는데 너무 많이 배웠죠. 항상 축구도 그렇지만, 공부하는 모습이 와 닿았어요.
이번에 모 대학원 박사로 들어가셨다고 해요. 대학교 졸업하고 프로 2~3년차 시즌을 보낼 때 당시 이임생 선수가 대학원을 들어가셨어요. 그러면서 혼자서 공부하면서 장학생으로 졸업을 하셨거든요. 조언 하기를 축구만 하지 말고 지식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셨죠.
항상 아침에 오면 조그마한 영어 단어장을 들고 와서 외우고 있고, 아무리 훈련을 해도 하루에 30분씩이라도 시간을 할애하여 보라고 권유하셨어요. 정말 멋진 분이었죠.
- 시간이 지나서, 현재 자신의 플레이에서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찬스가 생기면 슈팅 능력은 자신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에 집중하는 훈련이 체력적인 것과 슈팅인데, 예전에는 플레이를 하는 것을 중요시했지만 요즘에는 결정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느 정도 베테랑으로서 게임을 결정할 수 있는 것도 개인적으로나 팀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K리그가 ‘거칠다’고 하는데요.
거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거예요. 저는 공격수이고 상대편은 후배 수비수들이 많은데요. 팀을 위해서는 당연한 거죠. 개인적으로 유럽 축구 경기를 많이 보는데 비교를 해보면 그리 거친 것도 아니에요. 최근에 프리미어리그를 보면서도 사실 우리 리그가 더 거칠다고 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고 봐요.
- 유럽 리그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갖게 되나요?
프리미어리그를 보면 경기의 템포도 차이가 있지만 특히 경기를 운영하는 것이 다르다고 봐요. 우리 리그는 공을 앞으로 주려고 서두르는데, 그쪽은 수위를 조절하면서 운영을 잘 해요. 그렇지만 무엇보다 가장 부러운 것은 좋은 잔디와 많은 관중들 앞에서 플레이를 한다는 것이죠.
사실 플레이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 것 중 하나의 요인은 많은 관중들이 있고 전 세계로 중계가 되는데, 선수들이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거든요. 관중들이 많으면 플레이 자체가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리그 개막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한 마디 부탁드리자면.
나중에 골을 넣었을 때나 의미가 있는 날에 많은 기자 분들 앞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요. 주위에는 얼굴로만 공을 차지 않는 매스컴에 알려지지 않는 선수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선수들을 눈여겨서 지켜보셨으면 합니다. 그 팀에 꼭 필요한 선수가 있습니다. 어떤 선수는 대표팀에 나가고 게임도 뛰는 사람이 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하는 선수가 더 많다는 것이죠. 이런 것을 고참으로서 말하고 싶네요.
사실 프로 선수는 누구나 열심히 합니다. 얼마만큼 팀에 속해서 저만의 색깔을 낼 수 있느냐가 올해 중요한 것 같습니다. 2007 시즌에도 팀이 우승하는 데 일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는 성남의 남기일 선수가 될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사실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은 '거침없는 하이킥'이다. 누구나 과정 속에 실패가 없는 일은 절대 없고 그 만큼 축구도 무조건 이기는 경기만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남기일의 프로 11년의 생활을 그려본다면 그야 말로 '성실함’속에 묻어나오는 진심어린 승부였다고 느껴진다. 누구보다 거침없이 질주해왔지만 앞으로 헛된 마무리가 아닌, 팀을 위한 주연급 배우보다 소금같은 '조연급 배우'의 역할을 통해 자신의 가치가 더 돋보이기를 원하는 겸손한 선수 '남기일'. 이러한 과정이 그의 프로 생활 은퇴 후, 그리고 향후의 장밋빛 미래를 그리는 또 다른 '주연급 배우'의 탄생을 알리는 복선이 되기를 기대한다.
K리그
첫댓글 그래도 수중전의 사나이라는 별명이 가장 잘 어울려요..^ ^
"주위에는 얼굴로만 공을 차지 않는 매스컴에 알려지지 않는 선수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선수들을 눈여겨서 지켜보셨으면 합니다" 남선수... 걱정마세요. 많은 성남의 팬들은 이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남기일 선수가 있어서 든든함니다~ 올해두 꼭꼭~수고해주세요 ^-^/
아~~~ 좋은선수예요~~~~^^;; 마음이 따스해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