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진 교수의 전쟁과 미술]
레핀의 ‘자포르지아 코사크의 답신’
무장한 자유인’ 코사크 정신의 생명력을 담다
자유·평등 넘쳐났던 코사크 … 18세기 유럽 최강 전투력 과시
스탈린의 박해·강제이주로 위기 … 우크라이나 사태로 재부각
카리스마 넘치는 추장 등 등장인의 독특한 개성을 사실적 표현
요즘 우크라이나가 시끄럽다. 러시아계가 다수인 크림반도는 지난 3월 이미 러시아가 접수했고, 동부 2개 주에서도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친러시아 반군들이 주요시설을 점령 중이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이 지역을 통과하던 말레이시아항공 비행기가 격추되면서 295명의 목숨을 잃은 일이다. 비극의 발단은 금세기 초 러시아혁명에서 출발한다. 공산주의자들은 독립적이고 저항적인 코사크를 인정하지 않았다. 스탈린의 무자비한 박해와 강제이주로 코사크는 절멸에 가까운 위기를 겪기도 했다. 이 빈자리를 러시아계 이주민들이 채워 나갔다. 소련 해체 이후 우크라이나가 친서방으로 돌아서면서 러시아계 주민들의 반발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비극의 씨는 이미 오래전에 뿌려져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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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사실주의 화가 일랴 레핀(Ilya Repin·1844~1930)의 그림 ‘자포르지아 코사크의 답신’(1880~1891)은 자포르지아 코사크(Zaporozhian Cossacks)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역사적으로나 지역적으로 많은 코사크 집단이 존재했지만, 지금의 우크라이나 지역에 번성했던 자포르지아 코사크만큼 강력했던 집단은 없었다.
원래 코사크 부족들은 13세기 전후 봉건귀족의 지배력이 미치지 않았던 동부유럽과 러시아, 중앙아시아에 걸쳐 산발적으로 존재했다. 이들은 초원이나 강 주변에서 집단적으로 거주하며 독자적인 삶을 영위했다. 봉건영주의 가혹한 수탈과 억압을 피해 탈출한 이들이 코사크의 주요 구성원이었다.
코사크가 ‘자유로운 사람(free man)’을 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코사크들은 당시 동부유럽을 괴롭혔던 타타르족의 습격과 납치에 대응하기 위해 뛰어난 기마술과 총검으로 무장했다. 모든 코사크 남자들은 어릴 때부터 용맹한 전사로 조련돼야 했다. 그 결과 유럽 최강의 전투부대로, 용병의 대명사로 이름을 날리게 된 것이다.
코사크, 자유로운 사람들
17세기 코사크는 러시아 남부를 위협했던 오스만 튀르크와 맞서 싸우고 있었다. 코사크 부족과 튀르크(그리고 타타르) 간 습격과 보복공격이 지속적으로 반복됐다. 당시 러시아가 코사크에게 자치와 특혜를 주는 대신 국경 방어를 맡겼기 때문이다. 그림의 소재가 된 이야기는 1676년 오스만 튀르크의 최후통첩(항복요구)에 대해 조롱과 욕설로 가득 찬 답신을 작성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미 한 번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코사크들은 자신들의 답신 내용에 자지러질 듯 유쾌해하고 있다. ‘너희쯤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배여 있다.
그림에서 추장(hetman)과 일반병사, 늙은이와 젊은이, 다양한 복장의 전사들이 자유롭게 뒤섞여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의 복장이나 행동에 어떤 격식이나 규율조차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자유롭다. 코사크는 모든 추장과 군사 지도자를 민주적으로 선출했기 때문에 그들 간에 계급적인 거리감은 크게 없었다. 함께 싸우고 함께 살아가는 전우요, 이웃이었다. 레핀이 말했듯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이들만큼 자유와 평등, 연대의 가치를 깊이 향유한 집단은 없었다.”
그들의 관계가 자유로운 만큼 표정이나 자세 또한 생동감이 넘친다. 다소 천박해 보이는 이들의 복장이나 태도에서 오히려 천부적인 자유로움과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그림에 등장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독특한 개성을 갖고 있으며 말 그대로 ‘살아’ 있다. 그림 가운데 답신을 작성하는 바가지머리 지식인과 검은 샤프카(러시아 털모자)를 쓴 이는 나름 진지하다. 바가지머리 뒤에 푸른 모자를 쓰고 있는 추장 시르크(Ivan Sirko)는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으로 전방을 응시하고 있다. 주변에 허리가 휠 정도로 크게 웃고 있는 이들은 자포르지아(현재 우크라이나) 출신 코사크들이다. 자포르지아 코사크의 전통적인 갈기머리(춥뤼나)와 긴 콧수염은 이들이 누구인지 알게 해준다. 이들의 개성과 자유로움으로 인해 우리는 마치 현장에 있는 것 같은 생생함을 느낄 수 있다.
사실보다 더욱 사실적인 표현
이들이 갖고 있는 무기나 장신구 또한 대단히 사실적이다. 중앙 하단에 일단의 무기들이 그려져 있다. 화승총과 함께 허리춤에는 화약통(소뿔모양)과 총알주머니를 차고 다녔다. 이들이 사용했던 칼은 폴란드식 카라베라(karabela) 사브르로 칼이 곡선으로 휘어져 있어 말에서 베기 좋았다. 그림 뒤쪽에 머리 위로 솟아 있는 긴 창들은 타타르 기병을 꺼꾸러뜨릴 수 있는 결정적 무기였다. 화려한 장식의 물통과 물잔, 꽃무늬 손수건, 코사크 특유의 악기 코브자(kobza) 역시 그들을 상징하는 물건이다.
코사크의 무기나 복장은 이들이 얼마나 문화적으로 개방적인지 잘 보여준다.(그림설명 참조) 폴란드식 사브르에 터키식 바지, 러시아 털모자에 우크라이나 갈기머리, 유럽식 외투에 페르시아 새시벨트까지 당시 코사크가 접촉했던 다양한 문화가 융합돼 있다. 자유를 찾아 초원지대로 들어온 만큼 다른 문화와 인종에도 관대했다. 코사크가 되는 기준은 그리스정교를 받아들이고 코사크식의 삶, 즉 전사로서의 운명을 수용하면 되는 것이었다.
이 그림의 미덕은 자포르지아 코사크의 모습을 놀랄 정도로 사실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에 있다. 여기서 ‘사실적’이란 사진과 같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진으로는 잡아낼 수 없는 표정과 태도, 상징들을 ‘사실 그 자체보다 더 사실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사실적이다. 이 그림을 그린 레핀이 자포르지아 코사크의 모습을 이토록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역시 우크라이나 코사크의 후예였기 때문이리라. 삶의 진실을 포착하고자 하는 그의 집념 어린 작업 태도(이 작품을 제작하는 데 무려 11년이 걸렸다)는 러시아 민중들의 고단한 삶을 생명력 넘치게 표현하게 만들었다. 사실주의(realism) 그림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자포르지아 코사크의 운명은 그림에서 표현된 것만큼 그리 유쾌하지 않다. 17~18세기만 해도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전투부대는 코사크인이었다. 그들이 용병으로 유럽 전역에 불려다녔던 것도 탁월한 전투력 덕분이었다. 러시아 제국의 국경 수비와 반란 진압도 이들 코사크의 몫이었다.
러시아와의 운명적 대립
하지만, 러시아혁명(1917)은 코사크의 운명을 돌려놓았다. 러시아 황제에 충성했던 코사크들이 반혁명 백군에 가담함으로써 혁명세력으로부터 대대적인 박해와 살육을 감당해야 했다. 1930년대 스탈린 체제의 수탈과 기아로 100여만 명의 우크라이나인들이 희생됐고, 거의 인종청소 수준의 이주를 강요당했다. 그 빈자리에 채웠던 것이 러시아계 이주민들이다. 그 결과 러시아에 가까운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 러시아계가 상대적으로 다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코사크가 추구했던 바로 그 자유와 평등, 그리고 연대의 정신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아닐까. 레핀의 작품을 통해 코사크 정신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교수>
무기와 장신구 코사크는 자신들이 만든 화승총과 곡선모양의 폴란드식 칼, 그리고 도끼나 해머로 무장했다. 만돌린 모양의 코브자 역시 이들을 상징하는 물건이다.
시르크 추장 강렬한 눈빛으로 전방을 응시하고 있는 시르크 추장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 그가 물고 있는 파이프 담배는 코사크들의 가장 중요한 기호품이었다.
자포르지아 코사크의 복장 진홍색 외투는 주판(zupan)으로 동유럽 귀족들이 즐겨 입던 튜닉이다. 안에는 단추가 없는 린넨셔츠를 입었고, 허리에는 화려한 장식의 노란색 새시(sash)를 둘러맸다. 여기에 단검이나 작은 화승총, 또는 부라와(bulawa)라 불리는 철곤을 꽂고 다녔다. 바지는 승마에 편하도록 자루같이 헐렁한 터키 바지(샤로바리)를 주로 입었다.
즐겁고 행복한 나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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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