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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주일 예배 설교 *
+ 제 목 : “자녀들에게 이렇게 행합시다.”
+ 본 문 :사 사 기 13장 8절- 14절 (구약 385쪽)
8 마노아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주여 구하옵나니,
주께서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오게 하사,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지를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소서 하니
9 하나님이 마노아의 목소리를 들으시니라 여인이 밭에 앉았을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다시 그에게 임하였으나 그의 남편 마노아는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10 여인이 급히 달려가서 그의 남편에게 알리어 이르되,
보소서. 전일에 내게 오셨던 그 사람이 내게 나타났나이다 하매
11 마노아가 일어나 아내를 따라가서 그 사람에게 이르러 그에게 묻되,
당신이 이 여인에게 말씀하신 그 사람이니이까 하니 이르되 내가 그로다 하니라.
12 마노아가 이르되 이제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리이까.
13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이르되 내가 여인에게 말한 것들을 그가 다 삼가서
14 포도나무의 소산을 먹지 말며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고 내가 그에게 명령한 것은 다 지킬 것이니라 하니라. 아멘!
오늘 본문 8절에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가 여호와께 기도하는 기도문이 나옵니다.
“주여 구하옵나니, 주의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임하게 하사,
그로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소서!“
이 기도가 자녀들을 둔 우리들의 기도가 되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 옆에 분들과 함께 인사를 나눕시다. / ‘당신의 자녀손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우리나라 모든 교회에서 함께 지키고 있는 어린이 주일입니다.
어린이주일은 1856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첼시에 있는 ‘제일 유니버샬 리스트 교회’의 목사님인
찰스 레오날드에 의해 6월 둘째 주일로 제정되어, 1867년과 1868년에 걸쳐 유니버샬릿트
협의회에서 정식으로 건의되어 처음으로 세상에 어린이주일이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고 방정환 선생님과 아동문학에 뜻을 둔 마해송, 윤극영, 정순철, 손진태 씨
등이 1922년 일본 동경에서 어린이를 위한 색동회를 조직하고, 5월 1일을 어린이 날로
제정하여 지키다가 1927년부터는 5월 첫주일로 변경하여 지켰으며, 1946년부터 5월 5일을
어린이 날로 제정하여 공표하였습니다.
우리 한국교회에서는 미국 방식으로 어린이주일을 6월 둘째 주일로 지켜 오다가, 1956년부터
5월 첫째 주일로 변경 제정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어린이주일을 지키는 데는 몇 가지 우리가 기본적으로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아이들에게 자기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어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살아 나가는 방법에 대해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눅 2:49).
셋째는, 부모는 자녀들이 자신의 자식인 동시에 하나님의 선물이며,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께 바치며,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을 가지도록 힘써야 합니다.
넷째는, 어린이주일은 부모와 교사가 사랑하는 아이들을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치겠다는 새로운
결의를 다짐하는 날임을 명심해야 합니다(신 6:7, 딤후 3:16).
다섯째는, 어린이주일과 어린이날은 어린이들이 무조건 우대를 받는 날이 아니라, 고마운 분들을
찾아 감사하게 하고, 불우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봉사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시편 127편 3절에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했습니다.
자식이 기업이라면 어떻게 양육해야 할 것인가 하는 중요한 문제가 뒤따르게 됨을 깨닫게
해 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업으로서의 자녀를 잘 양육하지 못했을 때, 그 부모는 물론 가정과 사회가
모두 아픔을 가지게 되며, 흉악한 상처만 남게 됩니다.
그래서 유태인 부모들은 초달을 해서라도 자식들을 하나님과 접붙이는 일에 전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유태인들은 자녀 교육에 성공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세워졌고,
그와 같은 신앙교육이 모든 가정에서 철저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은 자녀 교육을 할 때, 꿀 한 방울을 떨어뜨려 그것을 핥아먹도록 한 후에 하는 말이 ‘얘야
꿀이 더 다니? 하나님 말씀이 더 다니?' 하고 물어서 꿀이 더 달다고 대답을 하게 되면
회초리로 종아리를 쳐서 하나님의 말씀이 더 달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 주었습니다.
교육 방법은 다양하지만 지금까지 가장 엄격했던 스파르타 교육' 이 교육현장에서 멀어지고,
요즈음은 '몬테소리 교육' '눈높이 교육' 을 가정이나 교육 현장에서 쉽게 접하게 됩니다.
성경의 교육 방법 중에는 '나실인 교육 방법' 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나실인이 태어나는 장면과 ‘나실인의 교육 방법’ 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노아라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자가 와서, 잉태치 못한 자신의 아내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하자, 그의 아내와 함께 너무도 당황하고 감사하면서 “우리가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오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오리이까?" 하고 하나님의 사자에게 묻습니다.
이 물음은 부모로서의 책임이 무엇이며, 자녀는 부모의 사유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기에,
자녀 교육에 있어서 최고의 결정권자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물음입니다.
그래서 어린이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는 이 시간, 우리 또한 우리의 자녀들을 어떻게 기르며,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인가를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첫째는, 우리는 하나님의 선물인 자녀들을 지혜롭고 건강하게 자라도록 해야 합니다(눅 2:40).
우리의 자녀를 지혜롭고 건강하게 자라게 하려면, 말할 것 없이 기도의 투자가 필요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학교 교육이 없어서 삶의 의미와 목적과 가치를 모르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녀들이 가정 교육이 없어서 삶의 기쁨을 잃은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사회 교육이 없어서 오늘 우리들의 자녀들이 그처럼 방황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자녀들은 영적으로 기근과 기갈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영적 기갈과 기근에서 벗어나 마음껏 생명수를 마실 수 있고, 생명 강수의
말씀에 헤엄치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아갈 때 주어집니다.
그런데 우리 자녀들에겐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생명 강수에 헤엄칠 수 있는 삶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자녀들에게 부단한 신앙교육과 말씀훈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자녀들의 영혼은 생명 강수에 헤엄은커녕, 영혼이 메말라 있어 영과 육은 지칠
대로 지쳐 있고, 마음에 기쁨을 잃고, 삶의 방향 감각을 잃은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 자녀들이 어떻게 지혜롭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우리 자녀들이 어떻게 하면, 지혜롭고 건강하게 자라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가장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기업으로 받은 자녀를 위하여, 우리 부모들이 기도해야 합니다.
부모 된 우리가 기도하므로, 우리 자녀들을 기도의 보자기에 싸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 하나님은 그 기도의 보자기에 싸인 우리 자녀들을 받으시고, 영과 육이 축복으로
넘치는 삶을 살게 하실 줄 믿습니다.
복음 성가 가운데 우리가 잘 불렀던 "오늘 집을 나서기 전 기도했나요?" 하는 찬양이 있습니다.
1. 오늘 집을 나서기 전 기도 했나요? 오늘 받을 은총 위해 기도 했나요?
(후렴) 기도는 우리의 안식, 빛으로 인도하니, 앞이 캄캄할 때 기도 잊지 마세요.
2. 맘에 분노 가득할 때 기도 했나요? 나의 앞길 막는 친구 용서 했나요?
3. 어려운 시험 당할 때 기도 했나요? 주가 함께 당하시면 능히 이기리!
4. 나의 일생 다하도록 기도하리라. 주께 맡긴 나의 생애 영원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침에 집을 나서는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까?
아침에 등교하는 아이들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 기도를 해보셨습니까?
군에 가 있는 자녀를 위해 매일 매일 기도하십니까?
방황하고 괴로워하는 자녀를 위해 피눈물 나는 기도를 드려 보셨습니까?
공부해라 학원 가라 말하기 전, 하나님 앞에 먼저 기도해 보셨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하는 자녀들의 이름을 불러가면서 기도의 보자기에 싸 보았습니까?
시편 37:25-26 말씀입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어머니 한나의 기도의 보자기에 싸여 자란 사무엘은, 위대한 이스라엘의 등불이 되었습니다.
아버지 마노아와 어머니의 기도의 보자기에 싸여 자란 삼손은 위대한 사사로 살았지만,
그 기도의 보자기가 터질 때, 삼손은 들릴라의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어머니 요게벳의 기도의 보자기에 싸여 자란 모세는 위대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의 보자기에 싸여 자란 어거스틴은 위대한 성자가 되었습니다.
어머니 낸시의 기도의 보자기에 싸여 자란 링컨은 인류 역사의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드리는 기도의 보자기에 싸여 자라는 자녀는 걸식하지 않고, 각기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아름답고 축복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자녀들이 지혜롭고 건강하게 자라도록 부모 된 우리가 기도하므로, 우리 자녀들을
기도의 보자기에 싸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 둘째로, 우리는 우리 자녀들을 하나님과 사람 앞에 사랑스럽게 자라도록 해야 합니다(눅 2:52).
그 집 자녀들을 보면, 그 집 어른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버릇없이 자란 아이에게서 효도를 기대할 수 없고,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 인물이 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했습니다.
교육학에서는 이 말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린이의 버릇없음은, 십중팔구 그 원인이 부모의 과잉보호에서 비롯됩니다.
자녀를 양육하면서 좋은 버릇을 길러 준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우리의 자녀에게 어떤 오늘을 만들어 주느냐가 내일의 필연적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자이며 유명한 심리학자인 월리암 제임스는 '사고가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성격이 바뀌고, 성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 고 매우 의미 있는 말을 했습니다.
오늘 우리 자녀들에게 하나님 생각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하나님 생각으로 가득 차면 믿음을 갖게 되고, 그 믿음은 아름다운 행동으로 나타나고,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룩하고 흠 없이 보전되는 인격과 삶이 됩니다.
이런 인격과 삶을 가질 때,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라는 책의 작가 레오 버스카글리아의 가정에서는 식사 때마다 아름답고
행복감을 경험하게 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그것은 자녀들이나 부모가 서로에게 '나는 오늘
이것을 배웠다‘ 라는 발표 시간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저녁 식탁에서 ‘네가 오늘 배운 건 뭐지?' 라고 물으면, 자녀들은
한 가지씩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말할 것도 없이, 그 가정의 자녀들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사랑스럽게 자라게 되었습니다.
제사장 엘리의 아들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 사랑스럽게 자라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 엘리가 자식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서, 신앙 교육과 가정 교육에 실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 앞과 사람들 앞에 사랑스럽게 자랐습니다.
그것은 그의 어머니 요게벳의 신앙 교육과 가정 교육이 철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는 어떻게 자라고 있습니까?
하나님과 사람 앞에 사랑스럽게 자라고 있습니까?
우리들의 자녀들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 사랑스럽게 자라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생각과 마음을 가득 채우는 신앙교육과 가정교육을 철저히 하시기를 원합니다.
# 셋째로, 우리는 자녀를 내 자녀가 아닌 우리의 자녀, 하나님의 자녀로 자라도록 해야 합니다.
(시 127:3).
한나의 아들 사무엘과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같은 시대에, 같이 성전에서 자랐습니다.
그런데 엘리의 아들들은 불랑자였고, 사무엘은 점점 자라면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더욱 은총을
받았습니다(삼상 2:12 / 2:26)
그것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의 차이에서 이루어진 결과였습니다.
엘리는 하나님보다 아들들을 더 소중히 여겼습니다.
엘리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고기를 빼앗아가고, 회막 문 앞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을 희롱해도
'내 아들아, 소문이 좋지 않으니 그리하지 말라‘ 고 조용히 타이를 뿐이었고, 그 자녀들은
그렇게 타이르는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고, 더욱 불랑아로 자랐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어렵게 얻은 아들이었고, 날마다 품에 안고 살아도 모자랄 만큼 소중한 아들이지만,
아들 사무엘이 젖을 떼자 즉시 하나님 앞에 데리고 나와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렸습니다.
다만 일 년에 한 차례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주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할 뿐이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엘리의 아들들은 전쟁터에서 죽고, 엘리 자신도 목이 부러져 죽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지만, 사무엘은 위대한 하나님의 선지자로 세움을 받았고,
그의 어머니 한나는 그 후에 세 아들과 두 딸을 더 얻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다윗도 하나님께 복을 받았지만, 자녀 교육에는 실패자였습니다.
셋째 아들 압살롬이 잘 생겼다고 특별히 귀여워해 주었더니, 결국은 아버지를 반역했습니다.
넷째 아들 아도니아에게는 한 번도 화를 낸 적도, 섭섭하게 한 일도 없었는데, 아도니아는
그런 아버지 다윗을 몰아내고, 스스로 왕이 되려고 반역했습니다.
엘리와 다윗의 자녀 교육 실패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내 자식' 이라는 잘못된 생각 때문입니다.
한나의 자녀 교육의 성공이 무엇 때문입니까? '내 자식'이 아니라 '우리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 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양육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녀를 '내 자식' 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양육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의 자녀' '하나님의 자녀' 라는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양육하고 계십니까?
그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서 분명히 교훈 받아야 합니다.
어느 문방구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주인 아주머니는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니는 아이가 물건을 훔치는 것을 붙잡았고, 야단을 치면서
엄마를 불러오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징징 울면서 엄마를 불러왔습니다.
그런데 아이 엄마의 첫 마디가 ‘얼마짜리에요? 배로 물어 드리면 될 거 아니에요? 어린아이가
뭘 알아요? 가지고 싶은 마음에 그럴 수도 있는 것이지'하면서 오히려 화를 내더랍니다.
예배 시간에 여섯 살짜리 아이가 너무 버릇없이 굴며 떠들어대니까, 안내하던 권사님이
꾸지람을 했고, 그 아이는 예배 시간에 막무가내로 울어대기 시작합니다.
아이 엄마는 아주 못마땅한 눈으로 권사님을 흘기며, 아이를 품에 안고 ‘괜찮아 울지마’ 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다른 곳으로 옮겨 버렸습니다. 참으로 슬픈, 그러면서 가슴 답답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종종 '내 자식인데 참견 말라.‘ ’왜 내 자식 기 죽이느냐?‘ 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 '내 자녀' 가 아니라 '우리의 자녀' 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자녀' 입니다.
문제 가정에서 문제아가 나옵니다.
어떤 심리학자는 문제 아동이 문제가 아니라, 문제 부모가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선물인 우리의 자녀들이 지혜롭고 건강하게 자라도록
기도의 보자기에 싸서 하나님 앞에 드리고,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도록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인격과 삶을 가지도록 하나님의 생각으로 가득 채웁시다.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이 '나의 자식' 이 아닌 '우리의 자녀' '하나님의 자녀' 라는 마음으로
잘 양육하여, 부모 된 우리는 물론, 우리들의 자녀들이 복 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