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터 안정나씨는 나주나씨에서 나왔다는 기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양 나씨들 족보를 대비시켜보면 분명해집니다.
정묘보(丁卯譜, 1747) 서문에 휘 業 관련 기록이 존재하여 간략히 옮깁니다.
한산에 사는 나경성 등이 자기들의 세계(世系)를 기록한 장자(障子)를 가져왔는데, 맨 위층에는 시조 휘 업을 기록하고 둘째 층에는 4대손으로 휘 총례를 기록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시조라 하는 휘 업은 다른 여러 족보에는 찾아볼 수 없어 믿기 어려웠지만, 총례 이하의 관직과 작위(爵位), 자손록은 다른 기록과 일치하였습니다.
당시 금성계의 족보에 휘 업의 上系가 나타나지 않았고 봉(奉)의 후계가 금성계 족보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이에 정묘보 편찬자는 휘 봉의 후계를 확인하고 총례 이하의 기록이 다른 족보와 일치한다는 점을 근거로 그 후계를 인정하여 마침내 수단을 거두어 합보(合譜)하였다는 기록입니다.
1. 안정나씨 상계는 신라 때 휘 인(認)과 아들 천업이라 했으며, 그 후계를 잃어버려 고려 말엽 안정백 안천군 천서공을 시조로 삼았습니다.
이는 지강 계와 별도의 계통입니다. 지강 후손에 이분들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편 안정나씨족보(1933년)에 나지강 이후 천서공 이전의 상계가 있는데 그것은 금성나씨대동보(1987년)와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안정은 열 한 분, 우리는 열 네 분입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나주나씨 본관을 받았다는 나경이 있는가입니다.
안정에는 없고 우리 족보에만 존재합니다. 족보를 거짓으로 찍어내지 않았다면, 단언하건대 안정나씨는 나주나씨 후계가 아닙니다.
족보상으로 증명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안정나씨는 나주나씨 또는 금성나씨와도 무관합니다.
그 계보를 보입니다. 한산파 족보에는 업이 시조로 있었다지만, 우리 족보에는 없었고 합보 시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나지강---혼---홍원---전---면---금---익장---치---문---협---의-----경(璥)---호휼---양---총례
나지강---혼---홍원---전---면---금---익장---치---문---협---의----------------------------- 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