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옥몽(속 금병매) <143>
*석녀가 된 금계는 연정이라는 법명으로 불가에 귀의하고,
공씨댁은 대각사에 들렸다가, 연정 스님을 만나게 된다.
노을지는 산사에 대나무숲 깊은데
비구니 암자의 하루는 적막하기 그지없다.
문득 한가함에 속세 잡념 찾아드나,
뒤돌아 보는 꽃 한송이 부처 웃음 가득하네...
금계는 음탕함이 지나쳐서 밤낮으로 어찌하면 남정네와 질탕하게 놀아볼까 애태우며 갈망만 하다가 진정한 쾌락은 맛도 못보고 고해의 바다에 빠져버렸다.
매옥이 년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비록 한때 합목아의 첩이되어 남정네가 무엇인지 맛은 보았으나, 겨우 사흘간의 정분으로 끝이나고 모진 고역을 당한뒤 두번 다시 서방 얼굴 구경을 못하였다
이 모든 결과는 다 그녀들이 전생에 진 죄업이니, 그때 당시 음욕에 눈이 멀고 남의 남자를 넘본 죄로 하늘이 그들을 벌한 것이다.
대각사에 귀의하여 법명을 연정(莲净)으로 하게 된 금계는 먼저 부처님께 절을 올린 뒤 치렁치렁한 머리를 미련없이 잘라버렸다.
그 반질반질한 머리에 가사를 입고 승모(僧帽)를 쓴 다음, 섬섬옥수를 모아 합장하며 아미타불을 외어본다.
이제 설령 속세의 잡념이 그녀의 가슴 속 깊숙히 아직도 남아 있다 한들, 적어도 겉 모습 만큼은 누가 봐도 차갑고 경건한 불가(佛家)의 사람이었다.
금계의 모친 여씨댁은 딸을 비구승 복청(福清)에게 맡기고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유조는 달리 갈 곳도 없는지라 계속 신발 수선을 하며 여전히 여씨댁을 장모로 모시었다.
금계는 비록 출가한 비구니 연정 스님이 되어 음욕의 고해를 뛰어 넘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속세의 정은 완전히 끊지는 못했다. 그렇게도 친하게 지냈던 매옥의 소식이 여전히 궁금했던 것이다.
그러든 어느 날이었다
연정이 부처님전에 재를 올리고 대웅전을 나서는데 누군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연정을 붙잡고 소리치는 것이었다.
"아니, 이게 누구야?
너 금계 맞지?
이게 어떻게 된거야?"
잡념을 잊기 위해 될 수 있으면 세상을 덜 보기 위해서 늘 고개를 숙이고 걸어 다니던 연정 스님이 그 목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어머, 아주머니!
오래간만이군요?
그래, 매옥이는 잘 지내고 있죠?"
그 목소리는 매옥의 모친 공씨댁이었다.
딸 매옥이 본처 암호랑이에게 붙잡혀 간 이후로 답답한 마음을 달랠길 없어 절에 불공도 드리고 점도 칠 겸해서 왔다가 천만 뜻밖에도 중이된 금계를 발견한 공씨댁은 처음에는 자기 눈을 의심하며 긴가 민가 했었다.
서로 어찌된 일이냐고 궁금한 것을 묻다가, 공씨댁이 딸 매옥이 본처에게 당한 일을 얘기해 주었다.
지금 암호랑이 본처에 잡혀가서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구박받으며 아무도 만나지 못하게 한다면서 공씨댁은 하염없이 눈물을 펑펑 쏟아내었다.
"내가 할 수 일이라곤 고작 그 망할놈의 뚜쟁이 할망구 한테 가서 우리 딸 내놓으라 땡깡을 놓는것 밖에 더 있겠어? 그런데 그 할망구도 중신선 죄가 있으니 그집에 들어섰다가는 본처한테 맞아 죽을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구나. 그 서방이란 놈은 그날 우리 매옥이를 내팽개치고 도망간 이후 어디가서 자빠졌는지 지금까지도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이 없다니 답답할 뿐이야. 아이구,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차라리 매옥이도 부처님께 귀의하라 할 걸 그랬어?"
"참, 기가 막히네요.
대체 매옥이랑 저는 왜 이리도 운명이 기구한지 모르겠어요.
전에는 그래도 매옥이가 나보다는 잘되어 좋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저 신세가 오히려 맘 편하네요.
하지만 저는 출가한 몸이라 이제는 속세의 일은 더이상 생각하면 안된답니다."
"얘, 금계야!
그러지 말고 좀 도와주렴."
"공씨 아주머니 이제는 금계라 부르지 말고 연정 스님이라고 불러 주세요?"
"얘, 금계야?
아니, 연정스님 스님은 평소에 아주 야무졌잖아요?
내 딸하고는 친자매처럼 지냈으니, 어떻게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내서 그애를 구해내 줄 수 없겠어요?"
답답한 마음에서 공씨댁은 금계 아닌 연정스님에게 매달리며 통사정을 했다.
그렇다고 연정에게 뾰족한 방법이 있을 리가 만무하였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늘이 길을 열어준 건지, 부처님이 도와 주신건지 일이 풀리기 시작한 것이다.
연정은 공씨댁을 배웅 하다가 절문 앞에서 뜻밖에도 뚜쟁이 손 노파를 만난 것이다.
중매장이 손노파는 공씨댁이 자기를 관아에 사기죄로 고소하겠다는 말을 듣고 걱정이 태산 같았다.
걱정을 하고 있는데 왠 계집아이가 찾아 왔다.
"여기가 매파 손씨 댁이세요?"
"그런데 아가씨는 뉘시우?"
"전 금이관인 댁 하녀예요."
손노파는 가슴이 뜨끔했다.
지은 죄가 있으니 금이관이란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마구 두근두근거렸다.
그러나 우선 당장은 시치미를 딱 떼고는 물었다.
"그런데, 뭔 일이우?"
"저희 마님이 할머니를 좀 뵙자는데요?"
"뭐라구?
아니, 내가 거길 왜 가?
무슨 일인데 날 보고 오라는 거야?"
손노파가 손사래를 치면서 난 거기 갈 필요가 없다고 거절했다.
계집아이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순진하게 대답했다.
"무슨일인지 저는 잘 몰라요, 하지만 우리 마님은 아주 엄하시니까 제발 꼭 좀 가주셔야 해요."
뚜쟁이 손 노파는 이거 안되겠다 싶어서 곧 가겠다고 해 놓고는 겁을 전뜩 집어먹고 대각사로 도망을 친 것이다.
그러다가 정문에서 공씨댁과 연정 스님과 맞닥뜨린 것이었다.
그러자 공씨댁은 손노파를 보자 울컥하는 마음에 다짜고짜 욕설을 퍼부으며 할멈의 멱살을 붙잡고 늘어져 대판 싸움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노파도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마주 욕설을 퍼부으니 하마터면 불당에서 치고 받을 지경이었다.
싸움소리에 복청과 신도들이 몰려나와 뜯어 말렸고, 연정 스님도 옆에서 공씨댁과 노파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할머니 !
일이 이지경이 되었으니, 처음부터 이 혼사를 중매한 할머니가 최소한 도의적이라도 한 번 그집을 찾아가 매옥이의 근항을 알아내어서 공씨 아주머니에게는 알려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육십이 넘은 할머니를 아무리 호랑이 본처라고 해도 할머니를 때리기는 하겠어요,
마침 그 마님이 할머니를 만나자고 오라고 하는것은 어쩌면 해결 방안을 찾으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눈 딱 깜고 한번 다녀오세요, 그러면 공씨(孔氏) 아주머니도 더 이상 원망하지 않으실겁니다."
연정의 이야기를 듣고 았던 공씨댁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려, 나도 우리 딸아이 소식을 모르니 화가 나서 그랬지. 할머니도 일부러 잘못되라고 한 것은 아니니 딸아이 소식이나 알려 주구려?"
그제서야 뚜쟁이 노파도 수긍을 하고
"하긴 그려, 내 잘못도 적지 않지 까짓것 늙은 몸 이제 죽기 아니면 까무라 치기지 뭐 내 가서 마님과 만나 매옥의 근항을 알아서 이리로 오겠수."
노파는 연정의 차분한 말씨에 양심이 캥겼는지 목이 마르다며 차한잔을 달라고 하여 목을 추기고는 합목아의 본처를 만나러 금이관인 집으로 갔다.
연정은 공씨댁을 승방으로 안내 차를 대접하고는 기다리게 했다.
공씨댁은 초조하게 손씨 할멈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백팔 염주를 손에서 돌리며 관세음보살을 외운다.
한편 매옥은 이미 운명이라고 체념한지 오래라. 또 자기 전생의 업보라 생각했기에 합목아 본처의 눈치를 살필것도 없이 자기 맡은 일을 열심히 군소리 없이 했다.
어쩌다 암호랑이를 만나면 '마님, 마님' 하며 깍듯이 예를 갖쳐 공경하며 복종했다.
어쩌다 욕을 먹어도 한마디 불평의 말도 입에 담지 않았다.
~계속해서 144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