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과연 물 부족 국가인가’ 유엔이 정한 ‘세계 물의 해’를 맞아 세계물포럼이 열리는 등 어느 때보다 수자원 대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물 수요 예측치의 신뢰성 논란으로 몇년째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건설교통부와 한국수자원공사는 ‘세계 물의 날’인 지난달 22일 내놓은 홍보자료 ‘물과 미래’에서 “2006년부터 물 수요가 공급을 초과해 2011년이면 연간 18억톤이 부족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이에 대비해 27개의 대형 댐을 새로 건설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농림부에서도 2451개의 농업용 댐을 더 지을 계획이다.
문제는 이 내용이 지난해 발표 당시 환경단체들로부터 강한 반발과 함께 “과장과 오류투성이”란 지적을 받아 이미 신뢰성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환경단체들은 “지난해 지적한 오류와 문제점들이 해명되거나 시정되지 않은 채로, 여전히 물이 모자랄 것이므로 댐을 더 지어야 한다는 건교부의 논리는 인정할 수 없다”며 새 정부에서 수자원 장기종합계획을 무효화하고 다시 세울 것을 요구하고 있다.
■ 물 부족 국가 근거 논란=건교부·수자원공사·환경부 등 정부에서는 ‘우리나라도 유엔이 정한 물 부족 국가’란 캠페인을 줄기차게 해왔다. 그 근거는 ‘인구행동연구소’(PAI)란 국제기구의 보고서에서 1993년 이후 우리나라의 1인당 이용 가능한 물(강수량에서 증발산량을 빼고 인구로 나눈 값)이 1520톤으로 물 풍요국의 1700톤 미만이어서 물 부족 국가로 분류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댐반대국민행동의 염형철 사무국장은 최근 한 기고문에서 “인구행동연구소는 유엔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미국의 사설 연구소에 불과하다. 또 문제의 보고서에서 우리나라를 물 부족 국가로 분류한 것은 이 연구소가 아닌, 팔켄마르크라는 한 수리학자의 기준일 뿐이었다. 다른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건강한 생활에 필요한 물의 양을 1000톤으로 제시한 데 비해 팔켄마르크가 높은 기준을 적용한 것은 인구 증가를 억제하지 않으면 물이 부족할 수 있다는 일종의 ‘경고등’이라고 설명하고 있다”며 정부가 ‘거짓 선전을 해온 셈’이라고 지적했다.
■ 물 수요예측 과장 논란=건교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발표한 자료에서도 2011년에 18억톤의 물이 부족할 것으로 예측하고, 이 가운데 6억톤은 댐간 연계운용으로 조달 가능하지만 나머지 12억톤은 다목적댐을 건설해야만 확보할 수 있다고 밝혔다.
환경단체들이 건교부의 자료를 신뢰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부족량 18억~20억톤’이란 수치가 1996년 이래 바뀌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96년 이후 환경부가 추진중인 물절약 22억톤 계획으로 수요가 감소해야 하고, 공급면에서도 동강댐·내린천댐·지리산댐 건설 무산 등으로 15억톤의 차질이 생겨야 하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물절약운동 등의 성과로 우리 국민 1인당 하루 물 사용량은 97년 409리터에서 2001년 374리터로 크게 줄고 있다.
또 2011년 농업용수 수요를 주무부처인 농림부는 179억톤을 공급할 목표인 데 비해 건교부의 수자원계획에는 161억톤으로 추정해 18억톤이 차이가 난다. 이를 댐간 연계운용을 확보되는 6억톤과 합하면 24억톤이 돼 물 부족분 18억톤을 채우고도 6억톤이 남는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농림부의 쌀증산정책 폐기에 따른 휴경농지 보상제 등으로 농업용수 수요가 더 줄어들 것이란 예측도 있다.
“환경의 변화나 실측 자료에 근거하기보다는 전년도 자료의 오류가 드러나지 않도록 ‘18억톤 부족’에 숫자를 꿰맞춘 것 같은 의심이 들 정도”라고 한 환경단체 관계자는 표현했다.
건교부의 물 수요 예측 전제인 ‘30년 만에 한번 찾아오는 극심한 가뭄 대비’도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다. 건교부는 대부분의 기존 농업용 저수지가 ‘10년 만의 가뭄’에 대비해 설계됐다며 31억톤의 공급량을 제외시켰다.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2001년 ‘100년 만의 가뭄’에다 금강산댐의 담수로 한강 수량이 8%나 주는 등 전국의 담수량이 부족했을 때도 정작 농경지에는 큰 피해가 없었고, 이는 농림부도 인정하는 사실”이라고 건교부의 논리를 반박했다.
수리 전문가들은 “건교부의 수자원계획은 물의 수요관리 효과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했다는 논란의 소지가 있는 만큼 주요 시설에 유량계 등 물 사용량과 실태에 대한 정확한 측정시스템을 갖춰 신뢰도부터 회복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