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홍기
뒤돌아서 어머님을 바라본다는 고개, 고모령. 어머님을 뒤돌아보는 아들은 효자다. 이런 효자는 예로부터 참사람으로 꼽았다. 중국에 있는 곤륜산의 옥은 사흘 동안 밤낮을 연이어서 숯불에 태워도 색과 윤기가 변하지 않고, 장강에는 어둠 속에서도 광채를 발하는 야광구슬이 있다고 한다. 효자의 마음도 이와 같다. 이런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가 ‘비 내리는 고모령’이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
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턱을
넘어오던 그날 밤이 그리웁구나
(현인 ‘비 내리는 고모령’ 가사 1절)
이 노래는 대구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고모령에서 어머니와 헤어진 화자가 오랫동안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심정을 묘사하고 있다. 고모령을 한 맺힌 이별장소로 묘사하며 눈물 어린 인생고개로 은유하고, 스스로를 망향초 신세라고 자조하면서 비통하게 향수를 달랜다. 당시는 일본제국주의 식민지와 태평양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했던 격동기였다. 1948년 노래가 발표됐을 때 고모령은 경북 경산군이었으며, 인근에는 경부선 철도 고모역이 있었다. 이 곡은 고 최규하 전 대통령의 애창곡이기도 했다.
이 노래 발표 당시 작사가의 이름은 호동아. 유호의 초기 필명이었다. 유호는 박시춘으로부터 어머니 관련 노래의 작사를 부탁받은 후 서울중앙방송국 도서관으로 간다. 그리고 그곳 벽에 걸려 있던 커다란 지도에서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담은 이미지를 발견한다. ‘어머니를 돌아다본다’는 고모(顧母)의 뜻이 있으면서 급행열차가 서지 않는 고모역을 발견한 것. 노래 발표 당시 대구역에서 영천역을 향해 가노라면 경산군 초입에 고모역과 고갯마루가 있었다. 고모역은 1925년에 건립됐다가 2006년 11월에 폐쇄됐다.
현인의 창법은 성악 발성을 기반으로 한 특유의 떨림이 매력이다. 그의 번안곡 열창은 세계적인 추세와 함께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는 6·25전쟁 이후 전쟁상황과 피난생활의 애환을 그려 시대 분위기를 음유했으며, 지병인 당뇨병을 앓다가 2002년 4월13일 영면했다.
유차영<솔깃감동스토리연구원장, 한국콜마 상무이사>
출처 농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