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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 사이로 돋는 선율
재즈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
두 손으로 받쳐든 하모니카에 입술을 포갠다. 숨이 들고 나는 동안 손과 입은 그 파동을 그대로 받는다.
손가락 밑에서 올라오는가 싶더니 어느덧 재즈로 변주되는 소리, 그 소리를 깨친 5년, 소리를 얻은 즐거움으로 달린 2년, 두 장의 음반을 일군 3년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이제 '시각장애를 극복한'이란 말이 아닌, '국내 최고의'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뮤지션으로 당당하게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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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처음 본 건 1년 반 전쯤, 어느 야외무대에서 였다. 나름대로 음악으로 할 말 있다 싶은 뮤지션들이 줄줄이 등장해 서늘한 가을밤이 불꽃처럼 튀어 오르던 그날, 그는 젊은이들의 환호를 뚫고 무대 위로 저벅저벅 걸어 올라왔다.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내딛는 그는 분명 시각에 어려움이 있는 듯했다. 그가 자리를 잡자 곧이어 밴드의 음악이 들어왔고, 그는 가만히 하모니카를 꺼내 물었다.
뜻밖이었다. 멜로디를 따라가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손가락은 새를 움켜진 것처럼 퍼덕거렸고, 묵직하게 다문 입에서 펌프질하듯 들고나는 숨에 온갖 음들이 물 맑은 소리를 내며 쏟아졌다. 때론 피아노음을 리드하고 때론 베이스음 한복판에 뛰어들며 때론 드럼 소리를 가르며 종횡무진 달리던 그 하모니카 소리.
그 후로 20여 개월이 지났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낯선 소리를 주는 음악가가 아니다. 국내 유일의 '재즈 하모니카 연주자'로 알려지며 낯선 음색의 놀라운 재즈를 선보였다. 또한 바비킴, BMK, 조규찬, 박상민 등 유명 뮤지션들의 음반 세션으로 참여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최근에는 펑크 소울부터 애시드 소울, 셔플 등 다양한 소울 장르를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소화하며 하모니카 음을 통한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 호암아트홀에서 단독 공연을 마친 이튿날 그를 만났다.
- 하모니카로 메운 공허함 -
"긴장이요? 당연히 긴장했죠, 공연 전의 긴장, 그리고 공연 후의 허탈감은 음악하면서 영원히 떨치지 못할 것 같은데요."
공연 리허설 때와 사뭇 다른 푸석한 모습으로 인터뷰 장소에 나타난 그에겐 피로가 뚝뚝 묻어났다. 오후 10시를 넘어서까지 진행된 콘서트, 그리고 이어진 한판 술자리, 몸 상태를 짐작할 만했다. 그러나 그의 피로는 몸의 피로만이 아니었다.
"몰입하던 일을 끝내면 마음이 휑해지잖아요. 갑자기 몰려드는 공허함. 누구나 느껴본 기분이겠죠. 하지만 전 그게 특히 싫었어요."
그래, 나만 바라보던 관객, 그리고 내게 쏟아지던 스포트라이트에 마침표가 들어갔다. 이제 그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번쩍이는 선글라스를 벗고 감각을 잃은 두 눈을 드러냈다. 최고의 밴드 그리고 까다로운 관객을 작고 차가운 악기 하나로 리드하지만, 무대를 내려오면 작은 발걸음도 홀로 딛기 버거운 이 사람. 그래서 공연을 끝낸 이튿날이면 무대, 그리고 현재 그의 모습이 극렬하게 교차하기 마련이다. 그 대비가 '허탈'이란 감정속에 오롯이 들어찬다.
그는 한 때 김덕수 산하 사물놀이패 단원이었다. 시각장애자 특수학교인 인천 혜광학교에 입학한 이후 북을 통해 음악을 처음 만났고, 중1 때 사물놀이에 입문해 장구 채를 잡았다. 이후 사물놀이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그는 김덕수 산하 사물놀이패에서 활동하게 됐고, 그때부터 공연이 하루 이틀 늘어나기 시작했다. 몰아치듯 이어지던 공연. 그 빡빡했던 공연 시간이 끝나고 남는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 잡은 것이 하모니카다.
"남는 시간을 때우는 취미였죠. 하모니카로 밥 벌어먹을 생각은 애초에 없었어요. 모든 게 처음에 이렇게 하겠노라고 다짐하고 시작하면 힘이 들어가잖아요. 그렇게 시작했고, 그러다 시간이 흘렀고, 결국 이렇게 됐네요."
- 12키와 씨름한 5년 -
국내에서 전무후무하던 재즈 하모니카의 영역을 개척한 '업적'을 그는 이렇게 뭉개듯 얘기하며 넘어갔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마실 다니며 한두 번 불어젖힌 하모니카에 천상의 소리가 절로 찾아든 형국이었다. 그러나 물론 그게 다가 아니었다. 찬물을 잔째 벌컥벌컥 들이마신 그는 호흡을 고르며 지난 과거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라디오에서 우연히 접한 투츠 틸레망의 음반. 재즈 하모니카 거장의 하모니카 소리를 듣고 그는 전율했다. 가슴 깊숙이 꽂힌 투츠의 음악은 하모니카에 그의 숨을 가져다붙인 절대 이유가 됐다. 그러나 전 세계를 통틀어도 재즈 하모니카 연주자는 손에 꼽을 정도. 그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판단조차 서지 않았다.
"투츠가 내는 소리는 끝이 없는데 그것을 12키(key)로 소화하는 것이 가능한가, 거참 신기하지 않은가 싶었어요. 고민은 그때부터 시작됐죠."
크로매틱 하모니카는 반음 조절을 가능케 하는 버튼이 달려 있어 하모니카 하나로 모든 키의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 그러나 음이 변주되는 원리를 체득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또 어렵사리 원리를 깨달아도 자신에게 맞는 하모니카를 고르는 것이 문제였다.
"크로매틱 하모니카만 해도 50가지 종류가 넘어요. 소리와 마음에 와 닿는 느낌이 모두 달라요. 내게 맞는 소리를 찾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죠."
그렇게 독학으로 하모니카를 깨치는데 바친 시간이 5년. 밤낮없이 불어대는 바람에 하모니카는 한 달 만에 그 수명을 다했고, 모델 삼아 듣기 시작한 CD는 1000번을 넘게 돌리는 바람에 닳아 못 쓰게 됐다. 그러면서도 힘들다 생각지 않았다. 그러 거센 과정을 지나온 결과물을 문득 마주할 뿐이었다.
- 소리를 다시 돌아보다 -
그때부터 그는 이미 소리의 본질과 가까워지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태어난 지 보름 만에 원인 모를 열병으로 잃은 시력. 그 때문에 서른 네 해 동안 청각에 기대어 살아온 그이건만, 그는 다시 소리에 달라붙을 수 밖에 없었다. 음악에 자동적으로 따라붙는 악보를 소리로써 소화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점자 악보가 있긴 했지만, 그것은 문자 해독에 가까웠다. 4분 음표 '도', 8분 음표 '레' 등과 같은 모든 음들을 기호로 표현해야 했다. 곡을 하나 풀면 악보가 3~4장씩 넘쳐흘렀다. 게다가 연주할 때는 머리로 음을 헤아리는 과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에 이중의 고충이 됐다. 중요한 작업이긴 하지만, 시간을 너무 많이 가져가는 일이었다.
그가 택한 건 소리의 체화. 소리를 몸으로 익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사물놀이 배우던 시절부터 이어오던 습관이었다. 그는 장구를 놓고 선생님과 마주 앉아 선생님의 한 장단을 듣고 묵묵히 따라 치곤 했다.
"그렇게 익히면 소리가 몸 속에 들어오죠. 몸으로 받아들이는 소리는 몸에 깊이깊이 박혀요. 하모니카도 마찬가지였죠."
귀에 의지해 세상을 읽은 것을 넘어, 그 귀로 음악이란 정제된 소리까지 쉼 없이 받아온 전제덕. 그에게 좋은 소리란 어쩐 것일지 문득 궁금해졌다.
"구슬이 튀는 것처럼 동글동글하니 예쁜 소리가 좋아요. 대가들 음악을 들어보면 현란한 테크닉을 써서 아무리 파워 있게 연주해도 그 소리는 하나같이 동글동글 예뻐요. 그 어떤 악기를 쓰든 마찬가지예요. 기게적으로 절대 만들 수 없는 소리죠."
얘기 끝에 소리로 쌓아온 그 인생의 기록을 함께 돌아보게 된다. 그러나 그 기록 속 소리는 뜻밖이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소리요? 글쎄요. 소리가 들려서 마음이 편해진 적이 없어서…. 산이나 바다 같은 한적한 곳에 가면 누구나 다 좋아하잖아요. 그러나 거기서 2~3일 지내다 보면 이 도시의 소음이 다시 그리워져요."
안식처는 될 수 없지만, 기댈 수 밖에 없는 소리, 내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는 그 소리를 넘어서고자 그는 그렇게 내달렸는지 모른다.
- 나의 생명 나의 하모니카 -
그런 그가 흑인음악에 매료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옛날 음악을 많이 듣는 편이에요. 음악가들의 치열함이 느껴지거든요. 삶 또한 치열했다는 것이 보여요. 소울만 봐도 그래요. 가난 냄새가 나요. 마이클잭슨 초창기 음악이 그렇지 않나요? 가난해 보이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어때요. 음악에서 돈 냄새가 나죠."
그 가난과 고난. 그는 본능적으로 그 상처들을 돌아보고 잇었다. 그와 동시에 그것들을 품고 피어난 흑인음악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는 일곱 살 때 혜광학교에 입학하며 음악을 만난 이래 사물놀이 장단에 몸을 내맡길 때까지도 흑인음악을 가슴에 품어왔다. 그 가슴에서 자란 음악은 따뜻한 숨 안에서 몸을 곱게 키워 하모니카에 가 닿았고, 그 차가운 물성은 그 뜨거운 마음을 쉬지 않고 뽑아냈다. 들숨, 날숨만으로 소리를 내는 유일한 악기, 연주자의 체온을 담을 줄 아는 악기, 하모니카. 색소폰을 '입'으로 불면 저 밑에서 소리가 흘러나오고, 피아노를 '손'으로 치면 저 건너에서 소리가 난다. 하지만 손으로 잡고 입으로 부는 하모니카는 손과 입 바로 아래에서 소리가 올라온다. 그래서 투츠 틸레망은 하모니카 연주를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것에 비유했던가. 어찌 됐든 흑인음악과 하모니카를 함께 만나 '재즈 하모니카'를 연주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겐 행운이었다.
하모니카를 손에 쥔 지 10년 만에 재즈 하모니카 연주자로 자리를 굳힌 전제덕. 길을 찾아 새 빛을 읽은 그이지만, 결코 내달릴 생각은 없다. 그저 묵묵히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내디딜 뿐이다. 어떤 힘들 일이 있더라도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그저 듣고 부는 연습에 충실할 것.
"그러다 보면 투츠처럼 몇 음만 꼭꼭 집어서 사용해도 제자리에 있어야 할 것 같은 음, 그리고 그런 소리를 낼 수 있겠죠."
심심하리만치 평범한 명제 속에 34년을 지내온 밀도 있고 곧은 삶이 그대로 들어 있다.
- 에디터 강신재 사진 신 빛, 김정태 -
첫댓글 난 왜 못 봤을까_
잤지?
ㅇㅎㅎ~ 전 머리만 닿으면 잡니다요...ㅋㅋㅋ
오우~ 기사가 엄청 길었구만!!! ㅎㅎㅎ 플키 고생 진짜 많이 했어~
맛난 거 맛난 거~ ㅋㅋㅋㅋㅋㅋ
아라써~ 맛난거 해줄께! "단호박 치즈구이" "뉴질랜드산 연어 스테이크" 둘 중에 하나 골라!
단호박~! 난 연어 못 먹겠옹 ㅎㅎㅎㅎㅎ
수고 많으셨겠어요.....넘 좋은 기사네요^^ 잘 읽었습니당~~^^
수고는요~~ 까이꺼 울 가족분들 위해서라믄 머 이 정도 쯤이야죠 ㅎㅎㅎ 잘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당 *^^*
음...당장 구해야겠어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