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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 산행의 약속은 10여년전 송정태. 민경선 그리고 정윤이 세명이 주말마다
서울 인근 산행을 하던때, 우연한 자리에서 고산에 대해 얘기하던중, 장비없이 맨몸으로 갈수있는 곳을
찿다보니 아프리카 최고봉이며 5895개의 높은산이 적도 근처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막연히 가고 싶었다.
세사람이 여러차레 의논끝에 고소증을 경험해 볼수 있는곳을 가보기로하여 선택된곳이 동남아의
최고봉 코타키나발루산(말레시아 4100m)이었다.
비행거리도 너무 멀지않고 높이도 적당하였다.
그래서 곧 바로 예약을하고 코타키나발루로 떠나 여러 우여곡절 끝에 정상에서 해돋이를 보며
킬리만자로의 꿈을 키웠다.
많은 날들을 지리산. 설악산.북한산을 떠돌며 주점에서 보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정태는 쓸쓸히 떠났다.
우리를 남겨두고..
모두들 한동안 앚어버리고 살고 있었다. 간간이 경선이만 킬리만자로를 이야기 할 뿐이었고.
시작
이번 킬리만자로 원정대의 대장을 맡은 경선이가 2년전부터 조직하고 인선을 하는등
이런저런 수고를 아끼지 않고 추진했었다.
원정대를 꾸리면서 대원 상호간의 유대관계을 돈독하게 하는뜻으로 호흡을 맞춘다는 미명하에
북한산 12성문부터 불.수종주등반. 지리산 화대중주 1박 2일간등
힘들고 빡샌 산행을 통하여 힘든상황도 있었지만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
여러사람들이 참가신청을 했다가 철회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마지막까지 남은 원정대원이 6명이었다.
김영미. 김정윤. 민경선. 박상현. 박종묵. 윤성덕(가나다라순) 박종묵과 김정윤외에는 산꾼을 만드는
부천등산학교 출신들이다.
12/4일
킬리만자로 출정식및 부천등산학교 송년회가 부천황제오리식당에서 개최되었다.
부천등산학교 교감 이충환사장의 기증으로 새로운 단복점퍼를 차려입고 부천등산협회장및 부천등산학교
관계자등 여러 산악인들의 킬리 원정대의 성공적인 등정과 무사귀환을 응원해 주셔서 많이들 감동 받았었다.
고마운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다시한번 보냅니다.
12/7
인천공항 j지역에서 오후 5시 30분 모이기로 하였다.
매번 지각하던 박상현이 2시간이나 일찍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머지 맴버는 전원 정시 전 도착했다.
부천등산학교장인 민대장을 따라 교감등 학교관계자 여러분들과 특별히 민대장 사모님께서 환송을 나오셨다.
기념촬영 등 번잡한 과정이 끝나고 우리는 킬리만자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프리카 미지의 세상을 찿는 기대감도 잠시 하루 24시간에서 약간 모자라는 시간동안 환승공항에서 기다림.
네번에 걸친 기내식. 비행기내의 좁은공간. 깊은 잠이 들지않은 힘든 긴밤등등
환상은 깨져가고 있었다.
12/8
이 모든것을 이기고 킬리만자로 공항에 내리는 순간.
대원들의 얼굴에 생기가 돌고. 팽팽한 긴장감이 뜨거운 적도의 태양을 싱그러운 희망으로 바꿔놓았다.
크리스마스 트리의 빨간꽂이 여름의 크리스마스를 보여주고 있었다.
아디스아바바(에티오피아 수도)와 킬리만자로 공항에서는 에티오피아 국적의 비행기외에는
다른 국가의 비행기는 보지 못했다.
아프리카 중부는 에티오피아 항공기가 거의 점령한것 같았다.
킬리만자로산 입구에있는 모시 시내를 산책했다. 1km쯤 길에 좌판이 사려는 사람도 없는데
옷이랑 구두등 잡화품이 행인만큼 많은가게 주인이 앉아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12/9
아침 7시 조금은 부실한 호텔 조식후 포터용 big bag을 꾸리고 각자매고갈 등산가방을 챙겨서 9시에 호텔를 출발했다.
마차메 게이트로 가는중 슈퍼마켓. 정육점을 들렀다. 소. 돼지를 아침에 직접도살하여 가게에 걸어놓고 판매를 하였다
냉동시설이 없다고 했다.
당일로 처리완료되는것 같았다.
마차메 게이트에서 입산신고를 하는데 2시간이 걸렸다. 입산하는 인원이 많지도 않은데.
후진국병인 것으로 생각됐다.
그래도 짐의 무게를 총 중량과 소비중량을 체크한다고 했다. 그것은 쓰레기를 방지하려는 뜻이라 한다.
어려운 상황에서 환경과 자연을 보존하려고하니 기특하기도 했다.
또한 우리 원정대원보다 4배나 많은 가이드. 포터.쿡등 27명이 동원되어 더욱 놀라웠다.
마차메 게이트에서 마차메 캠프까지 거리 11km 표고 1080m (마차 게이트 1950m. 마차메 캠프 3033m)
너무나 좋은 조건의 산길이었다. 산길 주위에는 열대 큰키의 밀림이 푸는 녹색을 뽐내고 있었다.
아주 작은 화산재 자갈이 양탄자 처럼 깔려 있어서 낮은 경사로의 길이 행복하였다.
산행도중 두번이나 소나기기 내렸다. 많은 비가 아니었지만 옷이 젖고 축축해서 옥의 티가 되었다.
그러나 포터들의 어깨와 머리에 이고 지고 산길을 오르는 모습에 불평은 사치가 되었다.
홍일점 대원의 기침소리에 모두 걱정이 되었다.
쿡의 솜씨와 정성이 담긴 저녁식사는 즐거웠고
밤하늘의 별은 너무 촘촘하여 몇개 뗠어질것 같았다.
12/10
마차메 (3033)에서 시라켐프(3750)까지 거리 5.5km 다소 짧은 코스지만 어제보다는 다소 경사로가 놓은 곳이다.
마차메 켐프를 떠나서 키작은 나무들과 빛나는 태양. 가끔씩 능선을 오르내리는 안개.
여기 저기 흐르는 냇물.작은 폭포들. 정말 환상적인 산행이었다.
표고 3500m에서 멀리보이는 메로 (4560m)산의 미끈하고 아름다운 자태가
영암 월출산처럼 혼자 구름위에 우뚝서 있었다.
에델바이스 (솜다래꽃)이 지천으로 널려있었고 킬리만자로에만 서식하는 세네시오는 큰나무가 3~4m가 되며
아주 작은 세네시오는 앙증맞은 자태로 눈요기를 시켜주었다.
같은 코스를 걸어가는 일행중에는 서양인들이 많았고 가끔 조우하는 중국 여성이 가녀린 외모와 달리
혼자 산행을 하는 당찬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점심시간 전 시라캠프에 도착하니 하늘에서 갑자기 비가 떨어졌다.
1시간 정도 내리고 그치고 또 1시간 비가 내린 어제와 달리 계속 내리는 덕분에 시라 동굴(4100m)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식당텐트에서 수다로 시간을 보냈다.
텐트얘기가 나왔으니. 개인용텐트1~2인용 4개에 식당텐트 7명사용.숙녀용 화장실텐트가 설치됐다.
한사람을 위한 화장실텐트, 상상해보라
현지 일꾼들의 지극정성의 배려에 감동을 하였다.
우리 홍일점 영미씨는 아직 기침으로 모두의 걱정이 무겁다.
12/11
시라캠프(3750) -나바타워(4600)-바란코 (3900)
4000m 가까이 올라오니 새벽에는 쌀쌀했다. 아침부터 바쁘게 짐을 꾸렸다.
아침 저녁으로 가져다주는 따뜻한 세수물부터 우리의 일과는 시작된다.
오늘은 먼길을 가야하니 새벽부터 바쁘다. 화려한 적도의 태양이 어제오후에 내린 빗물을 말려서
아침 운무가 이계곡 저계곡을 넘쳐 흘렀다.
모든 대원들도 고소증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극복하리라는 기대감으로 끝없는 능선을 말없이 올라간다.
킬리만자로산은 코스 디자인을 아주 잘해서 완만하면서도 구비구비 쉽고 어려운 길이 계속되었다.
나바 타워에서 점심으로 라면을 끊여 먹었다.
안개가 계속 겉혀지지 않아 타워을 보지 못하고 바란코로 내려가는데 급경사였다.
오랫만에 내리막길을 걷고있다는 생각에 ...
정말 넓고도 높으면서 여러가지 기이한 풍물과 화산재의 비옥함을
생각하고 조화스러움에 감탄할 뿐이었다.
그런생각도 잠깐 점심으로 먹은 라면이 소화불량으로(고소증으로?) 괴롭혔다.
금방 낫겠지 하고 길을 재촉할 수 밖에...
오후내내 흐렸지만 다행히 비는 오지 안았다.
비만 오지 않아도 오늘은 다행이다. 비가오면 눅눅한 텐트속의 침낭등이
습기로 인한 구질구질함에 불편한 얼굴이 되었다.
바란코에 도착하니 용암이 흘러내려서 만든 장벽이 한쪽에 떡 버티고 있다.
이름하여 바란코월이다.
내일 저 장벽을 넘어 가야 한다.
며칠간 계속된 산행과 정상을 앞두고 저녁식사후 미팅시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중에
다소 언성을 높이는 경우가 발생했다.
각자 대원들의 생각이 다소 다를 수도 있고, 그러나 대장은 총원이 등정해서 해피앤등을 시킬
생각이 강하다보니 그랬던것 같았다.
제이스 김사장이 다시 한번 대원과 가이드의 1:1 산행으로 가능한 총원이 등정할수 있게 도우겠다는
약속(?)으로 마무리 했다.
밤하늘에 별이 총총히 빛나고 있었다.
12/12
바란코- 카랑가(4033m)-바르후(4673m)
오늘아침도 항상 같은 일과가 진행된다.
세숫물제공. 아침식사. 짐꾸리기 8시 출발. 그런데 하나가 추가 되었다.
바랑코월을 쳐다보며 감상하는것.
쬐그만 텐트에서 두사람이 짐꾸리는게 보통고역이 아니다. 짐꾸리다 고소증을 먹게 된다는 얘기가
진실로 와 닿는다.
지금까지 부드러웠던 킬리산이 새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용암바위 벽은 직벽인데다 곳곳에서 네발을 사용해야 할만큼 난 코스였다.
문제는 포터들이었다. 짊어지고 머리에도 얹은 그무게만도 힘드는데, 바위길에 미끄러운 신발. 균형잡기 힘든길.
너무나 가혹하였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더워진다.
위험한 바위길 내내 어린 포터들의 힘든 걸음이. 선한 눈동자가 눈에 밟혀 마음이 짜안했다.
높은 킬리만자로의 위용도 있지만 화산 분출로인한 기묘한 바위풍광. 넓은 능선
그리고 깊은계곡에 때묻지않은 자연을 훼손되지않게 방지하려는 노력들이 곳곳에 보였다.
아직은 미개발국가의 면면이 있지만 미래에 대한 탄자니아의 희망과 자부심을 엿볼수 있었다.
카랑가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오르락 내리락한 끝에 계곡에서 물을 길어나르는 행렬이 보였다.
1.5km나 떨어진 바르푸캠프까지 오르막길을 머리에 물통을 이고 날랐다.
표고 300m 를 가벼운 배낭만 지고 올라가는 나를 다시한번 돌어보게 하였다.
바르후에 3시 30분쯤 도착했다. 휴식후 5시에 누룽지로 저녁식사를 하고
오후12시에 라면으로 식사후 정상을 향한 산행을 하기로 하였다.
나는 누룽지를 계속먹고 소화제도 먹었다.
영미씨는 죽수프를 먹었는데 기침도 잦아지고 컨디션이 회복되고 있었다.
12/13
정상도전 (우르후 피크 (5895))
생각보다 바람도 적게불고 따뜻했다 느낄정도로 매서운 추위는 아니였다.
새벽 1시 정상을 향한 마지막 준비물. 복장을 점검하고 산행이 시작되었다. 가이드의 얘기로 정상까지
7~8시간 소요된다고하여 일출감상을 포기하고 붐비지 않는 시각에 출발했다.
모든 대원들이 캡틴가이드 잭슨의 리드에 따라 바위 언덕길을 조심조심 올라갔다.
4200m와 5898m의 중간지점인 5300m을 넘은뒤 나는 갑자기 호흡곤란의 고소증세가 왔다
잠시 방심하여 오버한게 화근인가보다.
심한 호흡곤란에 힘들었지만 쉬지않고 걸었다.
50m앞에 가는 동료대원들이 보였지만 말을 할수가 없었다.
뒤에 알았지만 대원 6명중 박종묵. 박상현 두사람만 별다른 고소증없이(훈련기간 중 가장 염려했던) 조금은
편안하게 정상에 도착했다.
나머지 4사람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지러움. 호흡곤란. 두통. 구토등) 고소증을 견디며 정상에 도전했다는것이다.
내일 또 다시 올라올수 없는 산이기에 또한 죽을 정도는 아니기에 젖먹던 힘을 다해 신행을 계속했다.
5750m 스텔라 포인트에 도착하니 태양이 떠오르기위해 먼동이 밝아오고 있었다.
결국 5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선두 가이드가 너무 속도를 내었나보다.
스텔라 포인트에서 우후루피크까지 표고 150m 1.2 km 완만한 오름이라 한걸음에 뛰어 갈것 같은데
높은 산의 희박한 산소는 발 뒤축을 잡아 당긴다.
정상 팻말에 도착하니 다른 대원들을 10여분 기다리게 하였나보다. 미안하고 고맙기도 했었다.
이게 우정인가보다.
고소증을 걲어보니 누구나 올수있다고 강조하던 민대장이 옳았다.
시간이 넉넉하면 하루 더 쉬고 다시 도전하면 되겠지만 시간이 없을때는 자신의 상태를
냉정히 체크하여 가이드의 조언을 통하는등 도전과 포기를 결정해야된다.
큰 사고가 날 수있다.
모즌 대원들이 고생을 했다. 우후루피크 (킬리 정상) 기념촬영 후
먼저간 정태친구에게 술한잔 올리고 경선이 종묵이랑 우리 3명이 3배를 했다.
경선이가 통곡을 했다. 나는 가슴이 먹먹하여 눈을 감았다.
시린 콧등만 쳐다볼 뿐..
정태야 보고있제..
자유하산. 모두 후다닥 내려와 점심때까지 텐트에서 휴식하였다.
점심후 짐을 다시 꾸려서 무웨카 켐프(3100m)으로 이동 했다.
정상도전후 힘도 빠지고 피로의 누적에다 하산길이 매우 거칠었다. 이때까지의 넉넉하고 편안했던 길이 아니고
경사로도 높은편인데다 거친 돌계단길이어서 못마땅한 얼굴이 되었다.
그래도 북한산 위문에서 대동사까지의 길보다는 나아보였지만 지친 발과 다리는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제이스 김사정의 배려로 맥주캔을 몇개 게이트에서 반입하여 캠프로 올려보냈다.
모두 축배를 들었다. 대원모두들 가슴에 뜨거운 무엇이 꿈틀거렸을까? 궁금했다.
12/14
무웨카캠프- 무웨카게이트(1600m)
하루밤을 자고나니 모든대원들 얼굴에 화색이 돌아왔다.
모든 고난과 갈등은 총원 등정에 묻혀버리고. 자부심과 안도의 뿌뜻한 마음이 자리잡고 있었다.
무웨카 게이트까지의 길은 열대밀림과 함께 아주 부드럽고 즐거운 길이었다.
무웨카 게이트에서는 맥주병을 놓고 포터와 가이드 그리고 우리대원모두 킬리만자로 노래를 부르고
이별을 아쉬워했다.
포터들에게 약간의 팁을 건네주고 맑은 그리고 애처로운 눈동자들과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고 곧 제이스 김사장 식당에서 고락을 함께하던 가이드들과 작별인사를 했다.
5박 6일간의 긴여정의 길잡이로 동반자로서 수고에 약간의 성의를 표시하고 기념촬영도 하고
헤어졌다.
오늘저녁은 현지식으로 계획되어있어 기대가 컸다.
현지인들만 출입한다는 식당앞이 조용하고 어두컴컴해서 왠지 주눅이 들고 스산하기까지 하다.
식당 입구도 불빛이 어둡다. 이 도시 전체가 거리등도 켜지지 않아 어둡기 때문인지 적응되서인지
현지인들은 개의치 않은모양이었다.
염소고기를 3~4시간 훈연하고 양념을 바르고 요리해서 잘라주는데 큰 아라비아 만도로 고기를 쪼개서 내온다.
분위기가 살벌하다.
우리 눈에는 어두운 실내등불이 흰 옷에 큰칼에 겁 먹을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소세지. 염소고기의 환상적인 맛에 드리이진 35도에 푹빠져 버렸다.
킬리만자로 산행의 상처와 영광을 위하여 건배 또 건배.
자양김을 보내준 김득호친구. 비상약을 기증한 김자권친구에게도 "도와주어서 고맙다. 친구야"
내일은 새로운 세상.
경상남도 크기의 세렝게티 국립공원으로 간다.
동물의 왕국에 소개된 자연의 교과서.
첫댓글 등정기를 잘 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제 옛 일이 되었구나.
정태와 키나발루를 등정하고서 올린 친구의 글이
기억되는 구나.
유난히 가슴을 울리는 것은
포터들의 힘든 발걸음, 그들의 그 선한 눈동자.
그렇구나.
그들의 조력이 없다면 등정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 되겠구나.
강철같은 체력을 가진 그대도 5,300미터에서 부터 고소증을 겪었구나.
어지러움, 호흡곤란, 두통, 구토.
배멀미와 아주 흡사하구나.
정상에서 송정태에게 올린 술 한 잔,
삼 배를 올리고,
민경선 친구의 통곡이 가슴에 와 닿는구나.
정태가 하늘에서 미소를 보내고 있을게다
총원 등정.
아라비아 만도, 참 오랫만에 들어보는 익숙한 말.
수고 많이 했다.
글 쓴다고 고생했네~ 모든 내용을 글로 표현하기엔 어럽지~~
58홈피 산행방에 해외 산행기가 실려 참 좋네. 고생, 수고 했소이다.
그 떨어지는 별 몇 개 주어서 오지, 귀한건데....ㅎ ㅎ ㅎ
큰 박수 보냅니다.
정윤이~~ 수고 하셨네...
현지에서 같이 격고 나눈 말보다도 더욱 자세하게 정리되고 묘사 되어 있어 글을 읽는 동안
다시한번 킬리만자로 등정을 하고 왔네 그려~~
친구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게~
솜씨없는 글이 지루하게 길어서 읽는다고 고생 헸제?
끝까지 읽어줘서 고마워.
창훈이. 김병환친구 얼굴한번 보세댜.
무술년 새해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글을읽다보니 제가 킬리만자로에 가있는것 같았읍니다 다시한번더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