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춘추전국시대 혼란의 원일을 신분질서가 무너진 탓으로 보았다.
이러한 시대 혼란을 그는 仁의 사랑으로 또한 禮로서 바로잡으려 하였다.
이러한 노력에도 춘추전국시대의 통일은 법가의 영향을 통해이루어지었지만
이러한 순차적 차례가 없이는 불가능했을것이라 생각한다.
그가 말하는 인은 시대적으로 가족에서 부터의 사랑, 즉가까운 대상에게로 사랑
혹은 지배계층간의 인륜도덕이라고 할수있다.
묵자는 이를 차별적인 사랑이라고 생각하여 차별이 없는 사랑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가 주장하는 禮는 효제사상으로 이어지며 효제사상은
영주제를 지탱하는 지주의 역할이된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신분제 철폐로 이어지지않았다.
그의 사상은 대문을 열어도 물건을 훔쳐가지않던 시대,
과거 주나라 시대로 돌아가야된다고 생각했다.
각자신분에서 역할을 다하고 하극상또한 없고 밑사람에게는 예를 갖추는 그런 이상사회를 바랬다.
서로의 처지를 공감하고 이해하는 仁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인 孝와 祭
그의 이상사회의 추구모델은 잘 이루어지진않았지만
그럼에도 현대에 와서 그의 仁과 禮는 유교사상있는 국가의 국민으로서일수도 있지만
가장근본적으로 항상 상기 시켜야하는 덕목이되며
후에 많은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준 철학자임에는 틀림없다.
첫댓글 "신분질서가 무너진 탓"이라고 하면 너무 범위가 좁습니다. 물론 당시로 볼 때는 신분질서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예제, 곧 문화질서라고 할 수 있겠지요. 예전에는 저도 이걸 인문질서라고 했는데, 인문질서라고 하면 모던 이후의 인문학 같은 느낌으로 국한되어서, 요즘은 문화질서라고 다소 범위를 넓혀서 이야기해요. 문화질서라고 하는 것은 자연질서와는 다르면서도 그것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다만 그것이 자연상태 그대로가 아니라 인간의 삶을 전제로 했다고 하는 점에서는 인문으로 특정되겠지만 문화가 자연에 대비되는 개념이니 문화질서라고 하는 거랍니다. 자연의 일부분인 인간이 그 나름의 질서에 맞추어서 살아가는 것이 요구된다는 점, 다시는 원시시대로 돌아가면 안된다는 점 등을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런 점에서 원시희구 사상, 또는 원시반본 사상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라고 할 수도 있답니다. 이 점에 대해서도 좀 더 생각해보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