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3: 35 서로 사랑하면 - 요 13: 36 어디로 가시나이까?
요 13: 35 서로 사랑하면 -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표가 된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에서 이단과 적그리스도에 대해 경계할 것을 교훈하는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는 형제들에 대해 참된 형제 사랑을 실천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는 그 서신에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우리가 빛 가운데 있는 증거이며 생명에 들어간 증거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가 된다고 강조하였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알게 될 것이다.
1]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여기 이른바,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인도주의(人道主義)에 속하는 사랑이 아니고 주님을 믿으며 사랑하는 일의 열매이다. 예수 제자 됨의 증거는 서로 사랑하는 것뿐이다. 여기서 '사랑'이ajgavph(아가페)로 사용되어 하나님 안에서의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 것을 말한다.
모든 사람(세상)이 이 사랑을 보고 예수님의 제자를 식별한다는 것은, 두 가지 내용을 포함한 말씀이다. 이것은,
(1) 예수님의 제자 된 표가 사랑이라는 말과 같고,
(2) 또한 이 사랑으로 말미암아 불신자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게 된다는 뜻도 있다.
* 요 17: 21-23 –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2] 주님이 주신 새 계명 (요 13: 34-35)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새 계명이란 말을 쓰셨다. 새 계명이란 말은 분명히 옛 계명이란 말과 구별된 말이다. 인류에게는 새 계명이 필요하다.
그것은 옛 계명은 인간에게 의를 줄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정죄함을 주기 때문이며 우리는 이제 의문에 쓴 율법적인 옛 계명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신 의에 합당한 새로운 계명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새 계명에 대하여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예수님이 우리에게 새롭게 주신 계명은 사랑이다.
(1) 율법에 나타나 있는 두 면
율법에는 겉으로 드러난 면이 있고 속에 숨겨진 면이 있다. 나타난 면을 율법 혹은 계명이라고 부르고 숨겨진 면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의 숨겨진 이 새 계명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들어나게 되었다.
① 이스라엘은 율법에 숨겨진 면을 바라보지 못하고 나타난 면만을 바라보았다.
그 결과 그들은 율법에서 의를 얻으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에서 의를 얻지 못하고 오히려 그 율법 때문에 정죄를 받게 되었다.
② 율법에 숨겨진 면이란 무엇인가?
예수님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율법을 주신 참 뜻이 정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있었다는 점을 들어내셨다.
* 마 22: 37-40 –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것은, 겉으로 나타난 면을 바라보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인 사실을 발견하고, 나타나지 아니한 또 다른 면,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고 그 사랑을 베풀라고 하신 것이다.
이것이 구약에서 속죄의 제사로 나타났고 신약에 와서 속죄 제물 되신 그리스도의 피로써 하나님의 영원한 의를 나타내신 것이다.
(2) 새 계명이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계명이란 말씀 앞에 “새”자를 불이셨을까? 새롭다라고 하는 이 새란 말은 ‘카이노스’로 새로운, 신선한, 전에 없었던 이란 뜻을 포함하고 있다. 이것이 곧 사랑이다.
이스라엘은 율법에서 사랑을 발견하지 못하고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고 하는 보복적인 요소만을 바라보았다.
예수님은 이 새 계명에 대하여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란 단서를 붙임으로 우리가 나타내야 할 사랑이 ‘아가페’의 사랑임을 밝히셨다.
① 새 계명이라고 주신 주님의 사랑은 자신을 낮추신 사랑을 말한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해 스스로 자신을 낮추셨다. 말씀이 육신의 몸을 입으시기까지 낮추셨다.
* 요 1: 14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② 새 계명이라 하신 주님의 사랑은 원수 되었을 때 나타내신 그 사랑을 말한다.
* 롬 5: 8 -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③ 죄인을 위해 스스로 고난을 당하신 사랑을 말한다.
* 사 53: 5 -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④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는 사랑이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바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한 회생이셨다. 그의 회생의 피는 우리의 모든 죄를 영원히 용서해 주시기 위하신 것이었다.
* 히 9: 12-14 –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3)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사랑에는 한정된 대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형제를 사랑하라고 하셨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으며, 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은 특별히 그리스도의 제자 됨을 나타내기 위한 사랑을 말씀하시면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것이다.
우리들의 사랑 중에 그 무엇보다도 귀하고 아름다운 사랑은 형제들에 대한 사랑임을 알게 한다.
① 이 사랑은 서로 죄를 용서해 주는 사랑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형제가 죄를 범했을 때 일혼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 마 18: 21-22 – 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② 이 사랑은 형제의 허물을 덮어 주는 사랑이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운다고 하셨다.
* 잠 10: 12 -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 잠 17: 9 -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③ 이 사랑은 자신을 낮추고 남을 대접해 주는 사랑이다.
형제를 자기보다 낫게 여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빌 2: 3-4 –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말씀하셨다.
* 마 7: 12 -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 눅 6: 31 –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 요일 4; 20-21 – 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사랑을 내 형제들에게 나타낼 수 있는 것인가? 첫째로 나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서는 주님의 사랑을 나타낼 수가 없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그리스도인의 사랑으로 세상에 냄새를 풍긴다. 예수님은 이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고 하셨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지고 서로 사랑하는 성도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6. 베드로가 부인할 것을 이르시다. ( 13: 36-38 )
36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37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3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이 부분의 말씀은, 베드로의 결심과 예수님의 예언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가신다"는 것(33절), 그가 죽어서 하나님이 계신 하늘나라에 가실 것을 가리킨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것을 오해하고 질문하기를,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하였다(36절). 그리고 그는 예수님의 가시는 곳에 목숨을 버리기까지 따르겠다고 맹세하였다. 그것은, 진리대로 움직인 신앙의 용기가 아니고 하나의 유적인 용기였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육적인 용기를 꺾어 겸손하게 하시려고 예언의 말씀으로 경고하셨으니, 곧,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하셨다(38절). 그가 이렇게 경고하신 이유는, 육적 용기는 도리어 주님께 대한 신앙과 충성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요 13: 36 어디로 가시나이까 -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의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 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
베드로는 아직 죽을 때가 아니었다.
그에게는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가 죽을 때가 되면 그는 주님을 따라 그가 가신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
1]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언제나 수제자로 자청하고 예수의 가까이에 있었던 베드로가 예수의 죽음을 어느 정도 감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베드로는 예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모르지만 자신이 함께 가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확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알고 있지는 못했다.
2]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예수님은 지금은 따라 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 오리라고 말씀하셨다.
후에 소설 <쿼바디스>에서 기록한 전승에 의하면 베드로는 로마 당국에 체포되어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죽었다고 한다.